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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6 / 03 / 25 조회 : 1891
제목 선각자가 거닌 다산능선
글쓴이 허 심

나라의 골조 재설계한 선각자가 거닌 ‘다산능선’

배두일의 에세이산행-예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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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높지는 않지만 숱한 봉우리가 울쑥불쑥 출렁대며 산꾼의 발길을 지치게 하는 예봉산~운길산의 산줄기. 긴 시간을 건너뛰어 이 시대에도 큰 울림을 주는 다산 선생의 발길이 미쳤음을 생각하면 새삼 힘이 솟는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혹한을 겪고 나니 더는 추위가 겁나지 않았다. 겨울은 이제 볼장을 다 본 것 아닌가 싶어, 가슴엔 슬슬 아지랑이가 어른거렸다. 

노란 햇살도 따스하게 쏟아져 가슴팍을 달구었다. 덩달아 한껏 달뜬 눈길이 산에 들기 전부터 산자락을 이리저리 훑어 댔다. 거기엔 한 마리 거대한 황소가 들판에 떡하니 드러누워 있는 듯했다. 

낙엽 같은 나뭇잎을 입때껏 매달고 있는 나무들로 하여 산이 온통 갈색투성이였다. 봄의 낌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날짜로 치자면 겨울이 한 달 가까이 남았으니 당연한 일이되, 부푼 가슴이 쉽사리 가라앉을 리 없었다. 퍼뜩 한 가닥의 빛이 머리를 스쳤다.

산을 넘어가면 나타날 물기 자작자작한 계곡에 탐스러운 복수초가 머리를 내밀고 있을지 모른다. 황홀하도록 샛노란 불을 밝히는 복수초를 한 송이라도 만날까 하는 기대감에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낮은 산이나마 군말 없이 넘을 기꺼운 마음이 일었다.

하, 요것 봐라? 한달음에 훌쩍 넘어가겠거니 했던 발길이 이내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들머리부터 곧장 치오르는 길이 좀 가파르다 했더니 머리 위로 봉긋한 봉우리가 보였다. 

설마 꼭대기는 아니겠지 하면서도 주능선에 올라붙나 싶었다. 역시 이도 저도 아니었지만 힘껏 배낭 한 번 추켜올리고 말았다. 한참 된비알을 올아 숨이 차오를 때 다시 나타난 봉우리를 올려다보고는 이제야 산등성에 올라서나 했다.

몇 걸음 앞까지 다가갔을 땐 큼직한 돌덩이까지 여럿 보여 쾌재를 불렀다. 산에서 허기나 피로만큼이나 사지의 힘을 빼는 것이 낙담이다.

작은 봉우리인 것은 맞는데 주능선은 아직 어디쯤인지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돌덩이 위에 넋 놓고 걸터앉으니 그야말로 낙담상혼(落膽喪魂)이었다. 주섬주섬 지도를 꺼내 들었다.

바람처럼 가볍게 올라서겠거니 했는데, 본줄기도 아닌 곁줄기가 이리 꿈틀거리며 애먹이는 산의 높이를 재확인하고 싶었다. 683m, 분명히 동네 뒷산처럼 오르내리는 북한산보다 150미터 정도 낮은 예봉산(禮峯山)이었다.

중턱을 넘어서자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날카로웠다. 돌아서서 굽이치는 한강을 내려다보고서야 까닭을 알았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두물머리의 팔당호에서 직각으로 꺾여 미사리로 유유히 흐르는 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강물은 따스한 햇볕을 받아 은빛 물비늘을 번뜩였고, 강가에서는 하얀 얼음장이 촛농처럼 녹아 흘렀다. 겨울의 마지막 파수꾼이 봄의 첨병인 햇살을 맞아 항전을 하며 내뿜는 거친 숨결이 바람에 실려 산 위까지 날아오는 것이었다.

보란 듯이 예상을 뒤엎는 예봉산의 경이로움은 그때까지도 맛보기에 지나지 않았다. 헉헉거리며 마침내 올라선 능선에서 숨을 돌린 것도 잠깐이었다. 

롤러코스터가 급전진하로 곤두박질하듯 길이 아래로 내리꽂았다. 철쭉이나 참나무 가지를 붙들어서 굴러 떨어지는 몸뚱이를 손으로 제동해야 했다. 

당장 먹기엔 곶감이 달다고, 초심자라면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반가울 것이다. 산행이 좀 몸에 배어서 수읽기를 하게 되면 그 반대가 된다. 능선에서 내리막길은 최소한 내려간 만큼, 대개는 그보다 더한 거리와 높이의 오름길이 기다린다는 뜻인 줄 알기 때문이다. 

오로지 걸음걸음에 마음을 집중하며 봉우리와 고개를 몇 개 넘어 정상에 서서야 드디어 예봉산의 대찬 기개를 가늠할 수 있었다.

지나온 남동쪽엔 울쑥불쑥한 산 너울이 율리봉, 직녀봉(예빈산), 견우봉, 승원봉 등으로 솟구치며 넘실댔다. 내려갈 북쪽으로는 철문봉, 582봉, 551봉, 적갑산, 496봉, 482봉, 463봉, 413봉이 꿈틀거렸다. 

마침내 새재에서 몸을 푸는가 싶던 산줄기는 돌연 허리를 구십도 동쪽으로 틀어 449봉, 482봉, 505봉, 485봉의 하늘길로 출렁거리며 운길산(610m)으로 뻗었다. 

일일이 호명할 수 없는 등성이까지 합하면 20개가 넘는 봉우리가 한 마리의 용처럼 두물머리를 'ㄷ'자로 감싸니, 그 용틀임이 산을 감도는 북한강과 한강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예봉산과 운길산의 줄기를 하나로 아울러 ‘작은 지리산’이라고 일컬음이 결코 과장이라 할 수 없었다.

낮고 가깝기도 한 예봉산이 지닌 비장의 보배가 따로 있음은 정상의 안내판을 보고서 눈치 챘다. 예봉산과 운길산의 발치를 에두르는 둘레길 이름이 ‘다산길’이 아닌가. 

조선의 개혁가 정약용(1762~1836)이 나서 자라고 말년에도 머물다가 숨을 거둔 생가가 바로 예봉산 줄기가 두물머리 옆으로 뻗어 한강에 발을 담그는 곳, 능내리에 있었다. 

다산은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꾼 정조를 도와 수원 화성을 설계하고 재래식 크레인인 거중기(擧重器)를 개발한 천재적 경륜을 마음껏 펼쳐야 할 40세부터 18년이란 세월을 귀양살이로 보냈다. 

조선의 권력을 틀어쥔 노론 세력은 억지 죄목을 씌워 날개를 꺾었지만 그의 꿈마저 깰 수는 없었다. 지금은 이름도 잊힌 권세가들로선 엄두도 못 낼 일을 다산은 그 먼 땅 끝에서 이루어냈으니 참으로 경이롭다.

‘사용(私用)의 절약은 보통 사람도 할 수 있지만, 공고(公庫)를 절약하는 자는 드물다. 재정이 바닥나면 또 거듭 거두어들이니 이는 각 도()의 공통된 폐단이다.’ 유배지에서 완성한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보면 구절구절 오늘의 세상을 지적하는 것 같아 놀라게 된다. 

예봉산의 햇살 아래서도 목덜미가 서늘한 것은 단지 북한강의 얼음이 녹는 서슬 때문만은 아니었다. 백성들은 파리하게 야위고 궁핍해지는데, 사목(司牧)이란 자들은 진수성찬으로 제 이익만 채우기에 급급하다는 다산의 탄식은 아직 유효기간이 한참 남아 있다.

목민심서의 특장은 결코 부패 고발에 있지는 않다.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한 행정의 원칙을 심하다 할 만큼 꼼꼼하게 기술하는 정성이 존경스럽다.

물에 잠겼거나 불탄 인가를 구휼함에 소호(小戶)는 쌀 5두, 중호는 6두로 하되…으레 환곡은 쭉정이투성이니 수령의 눈앞에서 찧고 키질해서 부족함이 없게 해야 한다는 식이다.

우리나라의 영웅이라면 충무공 이순신이 단연 첫손에 꼽힌다. 충무공은 나라가 존망지추(存亡之秋)의 위기에 처했을 때 등장한 전시의 영웅이다. 

변란이 나지 않았지만 밖으로 곤경에 처하고 안으로 병들어 곪는 지금 같은 일상의 시대에도 영웅은 절박하다.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제자리에서 제몫을 하도록 일깨운 다산이야말로 이 시대가 사표(師表)로 삼아야 할 영웅일 것이다.

한 산꾼이 블로그를 통해 예봉산에서 운길산에 걸친 산줄기를 ‘다산능선’이라 부르자고 한 제안에 동의한다. 다산은 물론 정약전, 정약종 형제들의 발길이 이곳에 미쳤음은 많은 기록이 증명한다. 

예봉산 다음의 철문봉(喆文峰, 630m)은 다산 형제가 올라 학문의 도를 밝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다산이 자란 능내리나 귀양살이 한 강진이나 모두 산의 끝자락이 물에 뿌리를 적시는 물가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다산의 품성이 외유내강의 전형이었다니 물이 감도는 산이 그와 같지 않은가.

하산하자니 발길이 무거웠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사람을 대함에 지위의 높고 낮음과 나이의 많고 적음을 가려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사람은 고사하고 산을 오름에도 높낮이와 원근을 따졌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옛말에도 먼 데 단 냉이보다 가까운 데 쓴 냉이라 했으니, 이제라도 무심히 지나친 일상과 주위를 잘 살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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