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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9 / 05 / 15 조회 : 313
제목 수도권55산 원샷종주
글쓴이 바람아래

2019년 2월 8일 여전히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뜻밖의 공지가 올라왔다. “수도권 55산 원샷” 가슴 뛰는 공지가 간혹 있다. 작년 가평환종주가 그랬고 이번이 그런 경우다. 이미 청록샘님이 댓글을 아름답게 달아두고 있다. 마우스는 스스로 움직여 참석 댓글 확인 버튼을 누르고 있고 정신을 차렸을 적엔 나의 참석 댓글이 기록되어 있었다.

매년 봄이 오면 한 해 해 보고자 하는 목표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것이 없다면 인생은 지루할 것이다. 수도권 55산 280킬로미터! 이 정도면 한 번 목표로 삼을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도 설악님, 여명락님, 동서남북님을 비롯한 여러 유명한 분이 당일 참석 댓글을 달았고 기라성 같은 산꾼의 댓글이 비장하게 채워지고 있다. 이미 일은 저질러지고 있었지만 55산에 포함되는 산의 목록조차 정의되지 않았고 모든 것이 암담하기만 하다. 더욱이 영알 실크 실패 이후 극심하게 위축되어 다양한 핑계 사전을 뒤적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동두천 대회도 나가고 강북오산대회도 나갔다. 사전 모임도 있었고 단체 대화방도 개설되었다. 여러 준비와 진행 일정이 작성되었지만 이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그만치 아직 진행자료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수확은 한올님의 전 구간 차량 지원 자원봉사다. 따라서 모든 품목을 배낭에 넣지 않아도 되고 다양한 품목을 준비할 수 있었다. 즉 지원 산행이 된 것이다. 한올님의 통 큰 자봉 결단에 놀라움과 고마움이 동시에 느껴지며 가늠할 수 없는 자봉의 크기와 산에 대한 애정을 알 길이 없다. 한올님은 그저 별거 아니라는 듯 호방한 웃음으로 대하신다.


드디어 당일이 왔다. 이른 아침 서대문에 어김없이 모였다. 이런 큰 규모의 산행에 어떤 복장을 할지 궁금했는데 더러는 대회 복장을 하였고 더러는 가벼운 산행 복장을 하였다. 약속대로 남정님이 구간 응원 산행을 하고자 나왔고 내친구대장님이 말끔한 신사 복장으로 응원 마중을 나왔다. 우리의 지원 차량은 서대문 인근 작은 주차장에 이쁘게 주차되어 있었고 뒤자석엔 우리의 더플백이 채워지고, 트렁크엔 보급품이 탑재되어 완벽한 지원 차량이 되었다. 남정님은 전통적인 등산인의 복장을 하였고 언뜻 보아도 단단한 근육질 몸매로 산행 경험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산행을 많이 하지 못하였다고 살짝 엄살을 보이지만 막상 시작하니 잘도 가시니 이대로 55산 완주를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날렵한 몸매와 독특한 복장으로 등장한 보고스님은 처음 만나지만 이미 대화방에서 구면이라 낯설지 않았고, 닉네임이 근사한 여명락님은 사전 모임에선 온화한 여성의 모습을 하더니 오늘은 전형적인 트레일러너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마치 어느 국제 대회의 선수를 보는 듯하다. 모두 저마다 유명 인사란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플래카드가 없는 산행은 별로다. 모든 산행은 플래카드가 있어야 제맛이다. 물론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은 동서남북님이 이쁜 플래카드를 찬조하여 직접 가지고 오셨다.

우리는 경기대 일대를 지나 무악 들머리에 들어섰다. 아침 초록빛은 상큼하여 장거리 산행에 이상적인 날씨라고 모두 이야기하며 즐거워한다. 고수 중에 고수들! 이런 사람들 곁에 바람아래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어울리지 않는다. 금개구리님의 초록빛 복장과 독특한 모자가 인상적인데 신록과 잘 어울렸고 장그래님의 파란 상의와 흰색 가방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닮았다. 무악은 금세 바윗길을 드러냈고 봉수대까지 이어졌다. 선두는 보이지 않아 지나쳤나 했더니 후미가 내려가려 하자 반대편에서 왔다. 무악재의 파란 아침이 시원하게 펼쳐져 멀리 가야 할 산길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다.

무악재 다리 앞 정자에 모였다. 대장님 브리핑과 진행에 관한 의견 교환이 있었다.

“모두 뛰어난 기량을 갖고 계시어 페이스 조절과 발 관리만 잘 한다면 전원 완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고스님은 55산 재수생이다. 이미 경험이 있었고 이번 종주에 치열한 전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양주 시청에서 천보산 능선 진입하는 보다 적합한 길을 제시하였고 몇 가지 노하우를 공유하였다.

사람들은 누구 하나 땀을 흘리거나 호흡소리를 내지 않았고 자연의 소리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바람아래 홀로 좋지 않은 다리의 반응에 놀라 뭔가 잘못된 것에 대해 당황스러워하고 있다. 하얀 바윗길은 금세 인왕산 정상으로 이어졌고 단체사진은 간단하고 빠르게 진행되어 파란 하늘과 어우러졌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인왕산 철책은 거의 철거가 되어 점점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아 보기 좋다. 성벽 바깥쪽 잘 보이지 않은 철책만 일부 남아있는데 이는 철거 대상이 아닌 것 같다.

자하문에서 김성경님을 만났다. 사람들은 깍듯이 인사를 하며 선배를 맞았고 선배는 사진을 담아주었다. 아침 시간에 업무가 있어 창의문부터 시작을 한다. 이런 식의 유연한 자세가 마음에 든다. 시간이 되면 되는데로 안되면 안 되는 데로 참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참석을 하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 끝에 나올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백악 구간 신분증 제시는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 신분증 없이 통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가운 일이다. 다만 출입증은 여전히 목에 걸어야 하고 다시 반납해야 한다. 가파르고 긴 계단을 올라 정상으로 갔다. 확실히 지난해 강북 12산 때보다는 쉬어진 느낌인데 가방의 가벼움과 덥지 않은 날씨가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정상에 올라가자 사복 군인이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가 절도 있게 찍어주며 본인의 따분한 일과를 인내하는 것 같다.

스치듯 지나가는 청운대는 여전히 이름은 지는 사람이 본 풍광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숙정문을 나와 한옥 매점으로 가지 않고 덱을 따라 한올이 님 계시는 하늘마루(정자)로 갔다. 이미 음료와 바나나를 정자까지 올려두고 반가이 맞이하여 준다. (11:45)

오늘 점심은 우이동에서 먹기로 하였다. 바나나 하나와 콜라를 마시고 하나를 가방에 넣었다. 여전히 사람들은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고 여유 있는 미소를 보이고 있다.

형제봉 입구까지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날씨가 상당히 더워 다리 사이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반바지가 적합할 것 같다. 종주의 계절이 끝나감이 느껴진다. 수도권 55산 종주 봉우리 정의는 명확하지 않거나 너무 과하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형제봉이 포함되었다. 이는 강북오산이나 12산에서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형제봉엔 비석도 없다. 그럼에도 암봉이 주는 존재감은 여전히 대단하다. 멀리 일선사가 보현봉 아래 그림처럼 위치해 있고 평창동 집들이 다닥다닥 흩어져 발아래 펼쳐져 있다. 우리는 일선사 갈림길에 모여 잠시 쉬어간다.

대동문을 지나 백운대에 올라가기 위해 좀 빨리 진행하였다. 날렵한 보고스님은 벌써 보이지 않고 청록샘님, 장그래님과 함께 했다. 몸이 그리 좋지 않지만 단체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백운대는 여전히 파란 하늘을 모두 덮을 만치 거대한 삼각 모양의 벽처럼 눈앞을 막아섰다. 처음 이 모습을 보았을 적의 그 엄청난 스케일이 주는 감동이 잊히지 않는다. 더욱이 거친 바위를 딛는 거친 호흡으로 문득 만나는 모습이 주는 감동은 극에 달한다. 여러 외국인도 오며 가며 잇따라 “그레이트!” “와우!”를 외친다. 꼭대기 올라가야 할 거대한 바위 두 개가 올려져 있는 모습은 이곳에서 본 다면 올라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위험천만해 보인다. 그곳이 바로 백운대다.

평일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백운대를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 국제적인 명소가 되어 외국인도 흔히 보인다. 주말이라면 우리와 같은 종주인은 대개 생략하는 구간이다. 사람이 많아 진행도 더디고 자칫 서두르다가 위험할 수 있다. 장그래님은 트랭글 인증만 받으면 내려가겠다고 하더니 사진이 중요한 바람아래의 고집에 끝내 정상까지 올라왔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 있었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태극기는 격렬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백운대의 비석은 손에 꼽게 아름답다. 내가 본 최고의 비석은 관악산이지만 백운대 또한 자연석에 그대로 이름을 새겼다. 백운대가 아름다운 이유 중 다른 하나는 ‘3.1운동 암각문’과 ‘통일서원 비석’이다. 선조의 고결한 정신과 통일 염원이 그대로 새겨있는 듯싶다.

백운대 구간은 짧지만 일행을 따라가야 하는 압박이 더해져 바윗길을 빠르게 하산하여야 하니 상당한 무리가 가해졌다. 다시 하늘재에서 영봉으로 올랐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3시가 다 되어가고 에너지가 고갈된 것이 느끼어진다. 영봉에서 바라보는 인수봉은 여전히 부드러운 바위 결을 뽐내고 있고 우리의 인증샷 배경으로 제격이다. 장그래님은 본래 바윗길을 좋아하고 사뿐히 날아다니지만 오늘은 청록샘님 마저 이에 못지않다. 뿐만 아니라 줄곧 앞에서 끌어대고 있다. 청록샘님과 산행이 많지 않았지만 이토록 산행을 잘 하는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어찌 보면 줄곧 노루굴님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여전히 관악산에서 다리에 쥐가 나서 어려움을 토로하던 작년 봄의 모습이 남아서일까? 한 부부가 우리를 알아보며 앞에서 일행이 우리를 찾는다고 전해주었다. 복장이 유사하여 한눈에도 일행임을 알 수 있었나 보다. 따라서 속도는 더 빨라졌고 다리의 피로는 더해졌다.

식당에 도착하자 (오후 3:37) 이미 사람들은 식사를 마치고 보고스님이 허기를 달래고 있다. 돼지고기가 두텁게 썰어져 들어간 김치찌개와 콩국수가 놓여 있었다. 오늘 늦은 점심은 그동안 응원 산행을 해 주신 남정님이 찬조하였다. 그리고 아쉽게 이곳에서 산행을 마무리하며 응원을 해 주었다. 지난 26산때 여러 응원 산행을 보았지만 막상 응원 산행을 받으니 기분이 묘하다. 우리의 자봉 대장 한올님은 가까운 곳에 차량을 대기시켜 두며 갖은 편의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럴 때 늘 걱정되는 것은 봉사가 의무처럼 되는 현상이다. 마치 당연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만 한다. 다시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만 그저 껄껄껄 웃으시며 울대고개에서 보자고 한다.


서둘러 식사를 하고 보급품을 챙겼지만 일행이 먼저 출발하는 타이밍은 어쩔 수 없다. 마냥 기다리는 것은 쳐지는 일이다. 다시 추격전이 시작된다.

일행의 꼬리를 오봉능선 갈림길에서 보았지만 우리는 상당히 지쳐 휴식을 취해야 했고 2분간 휴식의 대가로 신선대를 지나서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일행의 꼬리에 붙자 그야말로 청록샘님의 표현에 따르자면 ‘아름다운 페이스’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렇게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것을 왜 그토록 힘들게 와야 했는지, 페이스 조절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다시 깨닫게 된다.

웬일인지 선두에 보고스님이 보이지 않는다. 물으니 신선대에 올라갔다고 한다. ‘아차’ 싶었다. 이번 산행은 55개의 봉우리를 모두 찍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이미 하나를 놓친 것이다. 평소 5산이나 12산종주를 하여도 도봉산 신선대에 올라가지 않은 관성이 그대로 작용한 것이다. 물론 도봉산의 최고봉은 신선대 앞 자운봉으로 장비 없이 올라갈 수 없다. 오늘도 오후의 빛을 받는 자운봉의 가지런한 바위는 파란 하늘과 아름답게 어울리는 모습을 뽐내고 신선대 소나무와 봄꽃이 보여주는 옅은 분홍빛에 더욱 도드라졌다. 작년 신선대를 처음 보고 수차례 보았지만 오늘은 왠지 쓸쓸해 보이며 우리의 멀고도 먼 고행길을 위로해 주는 듯하다.

사패산에 올랐다. 노란 햇살과 바람이 격하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여전히 바위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비석은 사패산을 닮았다. 겨우 552미터라는 표시는 어울리지 않는다. 이렇게 오늘 수도권 55산 제1일차 햇살은 기울어지고 있다. 우리는 삼삼오오 바람이 적은 공간을 찾아 달콤한 휴식을 취하며 아름다운 사패산의 석양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사패산에서 한올님께 하산 소식을 알렸다. 한올님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에 흠칫 놀라며 서두르는 모양새다. 얼마 후 섭외된 식당과 메뉴를 알려왔다. 참 든든하다. 저녁 메뉴는 막걸리가 잘 어울리는 소고기국밥이다. 식사시간은 늘 짧고 아쉽기만 하다. 이제 야간산행을 준비해야 한다. 무박 산행 중 식사를 마치고 다시 검은 산으로 들어서는 일은 늘 암울하다.

식사를 마치고 얼마 후 위브님이 방문했다. 여전히 깜찍한 모습으로 대원들을 위로해 주었고 센스 있게 “무탈 완주를 기원합니다 - 벚나무대장님 외 앵야식구들 - “이라고 적은 응원 플래카드를 준비해 왔다. 누구보다 금개구리님은 환호하며 좋아하였다. 두 번째 만남. 평소 생각하고 있던 경상도 남자의 이미지와는 정 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천진난만한 모습이 보기 좋다. 나도 나이 들어 저런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위브님은 벚나무대장님의 특사로 이곳을 찾은 것 같다. 모든 식대를 찬조해 주었고 아담한 지퍼백에 방울토마토를 정성껏 담아 챙겨주었다.

얼마 후 로제님이 방문하였다. 로제님의 명성은 상당히 알려진 모양인지 사람들은 깎듯이 맞이하였다. 귀중한 시간을 쪼개어 응원과 자봉을 오시는 분은 우리의 손님이다. 로제님은 특유의 매너로 지친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고 사진 기사로 변신하여 사진을 담아주며 가슴속 깊은 응원을 전해 주었다. 로제님이야말로 우리가 진행하는 이 산행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니 말이다. 로제님은 트렁크 가득 음료와 과일을 실어 왔다.

한올님은 그저 껄껄껄 웃으시며 두 분의 방문으로 더욱 활기가 넘친 분위기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신다. 여러 자봉 중 한올님의 자봉이야말로 가장 귀중한 것임을 잘 안다. 어떻게 하면 저런 자원봉사가 가능한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인지 알지 못하겠다.


검은 밤 임도를 따라 우리는 다시 산으로 가고 있다. 산은 모두 묘지공원이다. 임도 끝까지 가서 사면을 치고 올라 능선에 진입했다. 뭔가 정상 경로는 아닌 것 같은데 보고스님의 말에 의하면 직전에 좌측으로 올라 능선을 따라야 했지만 지금으로선 이것이 최선이라고 한다. 누구도 이런 고행에 대해 별다른 불평이 없다. 얼마간 편안한 능선을 따라가다 다시 임도에 접했다. 또 다른 임도는 어떤 시설로 연결되었고 우리가 다가가자 관리인은 흔한 일인 듯 아래에서 우측으로 가라고 육성으로 안내했다. 시설 울타리를 돌아 능선을 따라 얼마간 올라가다 본격 오르막이 시작되었고 그 끝에서 말로만 듣던 챌봉에 도착하였다. 비석엔 ‘제일봉’이라고 적혀있다.

‘장흥알프스’라고 했던가? 능선 길은 편안했고 그러기에 더욱 졸렸다. 간간이 경로를 살피는데 꾀꼬리봉 갈림길을 지나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 후 선두에서 이를 인지하고 꾀꼬리봉으로 향했다. 개인적으로는 어느 봉우리를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것을 싫어하고 대회에서도 반환을 좋아하지 않는데 55산에 꾀꼬리봉이 포함된 것은 오류라고 생각된다. 산줄기와 상당히 벗어나 상당 거리를 되돌아 와야만 했다. 더욱이 정상에는 비공식 명패만이 나무에 걸려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실망을 한 듯했지만 다시 오기 어려운 곳이라는 데 의미를 두었다. 잠시 휴식이 있을까 싶었지만 간단한 인증 시간만 있었고 그 틈에 설악님은 기대어 눕기에 안성맞춤인 소나무에 근사하게 누워 짧은 휴식은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26산과는 달리 오늘 다소 힘들어하는 모습이 언뜻 보인다.

언젠가 거하게 점심을 들던 한강봉 한강정은 쉼 없이 지나쳤고 홍복고개까지 진행되었다. 여전히 양주 일대의 야경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고개에서 일부는 홍복약수터를 찾았고 우리는 도로 경계석에 앉아 꿀같은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검은 어둠 속에 노란 가로등 불 아래 고개는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우리의 수고에 그저 묵묵부답이다.

호명산에 오르는 길에 다소 혼란이 있었다. 임도는 좌로 돌다가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가는 관계로 이대로 가는 것은 알바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얼마간 다시 입구 쪽을 둘러보기를 반복하고 시간이 지체가 되어 지도를 살펴보니 그대로 진행하는 것이 맞아 보인다. 청록샘님과 가 보니 돌아섰던 10미터 앞에 떡하니 호명산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호명산에서 6분간 휴식을 취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지난 종주 때 양주 대모산성을 지났지만 오늘은 다행히 도로를 따라간다. 산성을 지나는 어려움도 있거니와 이 새벽에 풀어진 개들이 우르르 몰려들면 난감할 것이다.

한데 하산길에 금개구리님이 뒤처지며 힘들어한다. 물으니 지난 발목 부상이 다시 도진 모양이다. 금개구리님은 호탕하게 중탈을 선언하며 진행을 멈추었다. 또 한올님을 만나 찬조를 하며 산행 내내 꾸준한 응원을 보내주어 큰 힘이 되었고 여전히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큰 프로젝트에서 개인이 단체에 누가 될 것 같으면 빠르게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러기에 더욱 쉽지 않은 길이다. 특별히 컷오프가 정의되어 있지 않지만 일행을 따르는데 무리가 간다는 생각이 들면 묵시적인 컷오프가 다가옴을 안다.

도로 구간은 길고 지루했다. 1분 전 새벽 한시가 되어 오산 삼거리 편의점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30분간 보급을 한다. 김성경님은 여전히 막걸리를 즐기며 권했고 각자 본인 입맛에 맞는 음식을 즐긴다. 제법 새벽 공기가 차가워 대개 사발면을 먹은 것 같은데 도시락을 먹었는지 빵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막걸리 두 잔을 마셨다. 이곳에서 30분간 휴식을 취하게 된다.

오늘은 검은 어둠 속에 불곡산을 찾는다. 가파른 바윗길은 느린 진행에 그리 어렵지 않게 다가설 수 있었다. 임꺽정봉을 지났고 양주의 야경은 더욱 눈부셨다. 장그래님이 잠시 야경을 바라보며 상념에 젖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불곡산 구간은 55산 정의에 따르자면 가성비가 높다. 하나의 산으로 인식되지만 무려 3개의 봉우리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유명한 바위산답게 다양한 바위가 줄지어 있다. 복주머니 바위, 신선대, 코끼리바위, 공깃돌 바위 그리고 물개바위, 쥐바위. 어쩐 일인지 상투봉이 보이지 않는다. 후미와 그룹이 나뉘었고 뒤돌아 보니 후미는 상투봉에 올라가고 있다. 다시 봉우리 하나를 미스 하게 되었지만 홀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단체에 누가 되는 일이다. 상봉을 지나 양주 시청으로 하산을 한다.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알바가 있었다. 계속 진직하여 양주시청으로 내려와야 했지만 자연스럽게 유양초 앞으로 하산을 하였고 도로를 따라 양주시청으로 갔다. 후미는 먼저 도착하여 추위에 떨고 있다. 양주의 새벽 추위는 극심했다. 다가가 보니 장그래님은 대회 때 사용하는 비닐 상의를 입고 있고 설악님은 종이상자로 체온을 유지하며 들어오라고 한다. 보고스님이 보이지 않아 물으니 화장실에 갔다고 한다. 마침 소식이 있어 시청 화장실을 찾았다. 보고스님은 다른 곳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이 따뜻하여 나오고 싶지 않다. 더욱이 비데가 있어 깔끔함을 유지할 수 있다.


다시 긴 도로를 따라 천보능선으로 향했다. 선답자는 큰 도로를 따라 녹양역으로 갔는데 한적한 이면 도로로 가니 좋다. 삼밭골 교차로를 지나 우측 산길로 진입한다. 어느덧 하늘은 갓밝이가 시작되려는 듯 푸른빛을 품고 있다. 능선에 올라가자 양주의 아침은 어김없이 왔고 산마다 옅은 안개가 허리를 둘러싼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어 지난밤의 피로를 위로해 주는 듯하다. 처음 가 보는 천보산. 한 산 손님이 장그래님에게 묻는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서대문이요”

“사는 곳 말고 어디부터 산행을 시작했냐고요?”

“서대문 안산부터요.”

“……”

곁에서 대화 내용을 들으니 웃음이 나온다. 나 같아도 무슨 이런 미친놈이 있나 싶을 것이다.

축석령 전위봉에 이르어 해님의 모습을 보이니 무척 반갑다. 봄날 청초한 신록에 투명하게 비추는 일출은 화려하지 않지만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잠시 그를 멍하지 바라보지만 시간이 길 수 없다. 첫 번째 일출이다.

설악님은 안부에서 시간이 주어졌지만 마무리가 부족한가 보다. 다시 후미에 섰다. 청록샘님이 최초에 이런 경우 모두 대기하며 기다려 주기로 하였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설악님을 의식해 후미에서 천천히 진행하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돌아와서 역시 명성에 맞는 능력을 소유한 분이란 점을 알겠다.

여명락님은 유독 여명과 일출을 좋아하는 것 같다. 발걸음은 가볍고 얼굴엔 미소가 지워지지 않는다. 그 뒤를 장그래님이 따르며 노란 아침을 즐기고 있다. 참 아름다운 아침이란 생각이 든다.

축석령과 축석고개는 다소 혼란스럽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니 경로 이탈 경보가 울렸고 다시 돌아와 축석령/어하고개 방향으로 직진하였다.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도 명쾌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의문은 축석령에 가서 풀렸다. 이정표 축석령 600미터는 우리가 생각하던 축석고개가 아니라 산길 언덕이었다. 즉 산줄기 언덕은 ‘축석령’이었고 도로가 나 있는 고개는 축석고개였던 것이다. 누군가 나무에 ‘축성령’이라는 명패를 걸어두었는데 이는 ‘축석령’의 잘못된 표기가 아닐까 싶다.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 반가운 한올님 지원 차량을 만났다. 한올님은 도로가 시끄러워 취침이 어려울 것을 헤아리고 미리 마땅한 장소를 찾아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배려의 끝이 어디까지 인지 알 수 없다. 덕분에 편안하게 침낭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몸을 밀어 넣으며 꿀잠을 잘 수 있었다. 사실 따사로운 햇살과 누군가의 대화소리에 그리 잘 자지는 못했다.

보고스님과 청록샘님은 선두조로 갔기에 다시 이곳으로 오도록 안내를 해야 했는데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나로서는 지리가 어두워 그저 내려간 방향에서 돌아오면 될 일을 왜 이리 복잡하게 이야기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더니 나중에 알고 나니 축석령에서 바로 내려오는 길이 아닌 조금 더 진행하여 내려오는 길이 소위 정코스로 되어 있는 모양이다. 문득 이 분의 치열함에 놀랍기보단 두려움이 인다. 겨우 산행 2년 차인 나로서는 생소한 모습이다. 지도를 살펴보니 축석령은 한북정맥이고 아무리 산줄기가 주가 아닌 봉우리가 주인 종주길이라도 산줄기를 따르는 것은 기본이다. 즉 축석령에서 다은 봉우리까지 올라 능선을 타고 축석고개로 내려가야 했던 것이다.

취침을 하고 축석령 휴게소 한식뷔페에 모여 식사를 하였다. 뷔페는 가성비가 좋아 하나씩 모두 맛보기 어려울 정도로 가짓수도 많고 맛도 만족스럽다. 더욱이 우리 같은 종주꾼에겐 기다릴 필요 없이 즉석으로 담아 먹을 수 있는 뷔페나 함바집은 제격이다. 사람들은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양치도 하고 커피도 한잔하며 나름 게으른 아침을 즐기고 있다. 이런 것이 무박 산행의 묘미라고 생각된다. 함께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이하면 처음 보는 사람과도 끈끈한 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부쩍 햇살은 강해져 새벽의 추위와 달리 여름 날씨를 보이고 있다. 다름고개까지는 산길을 버리고 도로를 따랐다. 이후 긴 부대 철책길을 따라 걷는 길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한북정맥에 이런 부대가 들어서 있는 것이 불편하다. 우리는 정맥에 맞는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노고산 초입 그루터기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보고스님의 표정이 압권이다. 딱 보아도 왜 자꾸 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이다. 마치 내가 초보 지인들과 산행을 하면서 잦은 휴식에 짖던 표정과도 같은.

고모리산성을 지나 노고산에 도착한다. 380미터. 낮은 산의 높이에 맞는 앙증맞은 비석을 모 산악회에서 설치하였다. 이렇게 이름이 있는 산은 가장 잘 어울리는 비석을 갖추고 있을 적에 가장 아름답다. 북한산 북쪽의 노고산과 더 북쪽의 북노고산과는 전혀 분위기가 달랐다.

비득재는 생태다리 공사가 한창이다. 마침 잘 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도로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오는 수고를 해야만 한다. 산줄기 도로 절개지마다 산줄기를 잇는 이런 생태다리가 연결되는 최근의 추세는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다만 아직 공사 중이라 우리가 지나가자 관계자로 보이는 한 사람이 나와 제지를 하려고 한다. 이때 힘을 발휘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아닌 여명락님이다. 여명락님이 “죄송합니다. 굴삭기 뒤로 금방 지나갈게요. 그리고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하자 금세 누구러 들었는지 우리가 지나며 인사를 건네자 “수고하세요”라고 화답까지 한다.

가파른 임도 절개지가 앞으로 있을 고행을 예고하는 듯하다. 죽엽산은 말 그대로 죽을 둥 살 둥 올라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추풍낙엽에 멘탈이 우수수 떨어지는 형국이다. 그야말로 잔인한 산이다. 죽엽산 아래엔 죽엽산마을이 있다. 죽엽산은 얼핏 보기에도 대나무 잎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마을엔 ‘… 매년 수해가 있어 현감이 뒷산에 올라 대나무 잎으로 샘물을 엎은 후고 수해가 사라졌다…’라고 적고 있다.

작은넓고개를 지나 큰넓고개에 도착했다. 한데 갑자기 난감해졌다. 중앙분리대가 있는 대로는 위아래 어느 곳을 보아도 횡단보도가 보이지 않는다. 후에 지도를 보니 위쪽에 생태다리가 있어 보이는데 산줄기에 벗어나 좀 이상하단 생각이다.

어렵사리 도로를 통과했지만 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경험자가 아니면 길을 찾기 어려운 길이라 뭐라고 설명하기 어렵다. 그렇게 어렵게 다시 육사생도 참전 기념비 입구에서 한올님의 지원 차량을 만날 수 있었다. 더운 오후 선배님은 특별히 주문한 수박을 쪼개어 나주어 주었고 시원한 맥주를 건넸다. 약 40분간 이곳에서 휴식을 취한다. 여전히 햇살이 강해 바람이 살랑이는 그늘 아래 자리를 깔고 누워 한 잠잤으면 싶다.

국사봉에 올랐다. 점점 힘이 든다. 20분간 쪽잠을 자리고 한다. 정상석 옆 낙엽에 자리를 잡았는데 바람이 과해 몸이 추워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이제 수원산을 지나 서파로 가면 다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들 낸다. 하지만 다시 두 번째 밤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수원산에 이르는 길은 편안했다. 선두는 앞서갔고 여명락님과 김성경님이 뒤따르고 동서남북님과 바람아래가 이었다. 처음 가 보는 수원산은 다소 혼란스럽다. 길은 거친 임도로 이어지다 부대 입구에서 멈추었다. 이정표 기둥에 수원산 표시가 있지만 정상은 아닐 것이다. 정상은 부대가 차지하고 있어 보인다. “그린”을 외치자 전망대 방향에서 응답이 왔다. 다가가니 김성경님과 여명락님이 휴식을 취하고 있고 선두는 수원산에 갔다고 한다. 조금 더 가면 수원산 비석이 있었던 것이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늦더라도 뒤따라가 정상석을 찍어야 할까? 그러자면 지체가 되어 단체에 피해가 갈 것이다. 후미가 늦으니 선두가 돌아오기 전에 먼저 하산하기로 하였다. 그럼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선두에 추월되었다.

서파에서 설렁탕이나 먹을 줄 알았더니 한올님의 탁월한 선택으로 이름도 특이한 “19홀우렁오삼불고기”식당에 도착한다. 사람들이 만 원이라 제법 유명한 식당으로 보인다. 식당은 두 가지가 중요하다. 편리한 화장실과 충전 콘센트의 확보다. 최근 버스에도 좌석별로 충전 소켓이 마련되는 마당에 이제 식당도 테이블별로 충전 소켓이 준비되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식당에선 보쌈과 비빔밥을 먹었다. 마치 힘든 구간 직전에 포식을 하는 기분이다.


두 번째 밤을 맞이한다. 오늘 밤은 지난밤과는 다를 것이다. 가장 어려운 천마지맥 구간이고 마치고개까지 자봉도 없다. 우리는 식당에서 비빔밥을 봉지에 담아 가야 했다. 식당은 우리의 입장을 잘 헤아리지 못하고 밥과 나물를 따로 담았다. 우리가 어디 자리를 깔고 앉아 여유롭게 밥을 비벼서 먹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각자 원하는 데로 밥에 나물과 소스를 버무렸다

길을 건너자 바로 들머리다. 얼마간 산길을 가다 개주산 임도에 접어든다. 개주산 갈림길까지 산줄기를 버리고 임도를 따라갔다. 그리고 너른 공터에서 25분간 쪽잠을 잔다. 임도에서 장그래님은 특별히 새로 장만한 소프트 플라스크 뚜껑이 떨어져 보물 찾기를 해야 했다. 그리고 행운의 당첨자는 여명락님이다. 아마도 장그래님은 여명락님에게 상금을 전달했을 것이다.

주금산까지는 그럭저럭 갈만하다. 전망이 좋은 정자와 헬기장을 지나니 지난봄 땀범벅으로 이곳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즐기던 추억이 생각난다. 언젠가는 천마지맥 원샷을 진행하는데 동시간에 두 사람이 강북오산 트리플을 하던 모습을 지켜보던 기억이 있다. 어느새 점점 산하에 숱한 추억이 흩어져 점점 산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천마지맥 특유의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마치 늪과 같은 길이 이어진다. 숱하게 바위와 밧줄을 잡으며 봉우리를 넘고 또 넘어 겨우 시루봉에 도착하였다. 다소 이르지만 도시락을 꺼내어 먹었다. 다들 적당히 먹고 일어섰지만 꾸역꾸역 다 먹었다. 가방이 무거워 모두 먹는 것이 더 좋을 거란 생각과 후미에서 느리게 가기보단 거리를 두었다 나의 페이스로 가고자 했다. 도시락을 모두 먹고 일어서자 불빛은 보이지 않고 주변은 온통 암흑이다.

얼마간 적당한 페이스로 검은 고독을 즐기다 다시 일행을 만났다. 이번에는 설악님이 뒤따른다. 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을 것으로 이해한다. 천마지맥 구간이 더욱 힘든 것은 이정표의 소위 사기에 있다. 이정표는 철마북봉과 남봉을 혼란하여 거리 표시가 제멋대로다. 따라서 이제 다 왔겠지 싶으면 아니기가 반복되고 그럴 적마다 몸과 마음이 지친다. 모두 힘든 시간이다. 설악님이 달달한 젤리와 사탕을 입에 넣어 준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밤이다. 바람조차 불지 않아 지난밤과 대조적이다. 양주와 남양주의 차이인가? 얼마간 가니 대장님, 장그래님 그리고 김성경님이 길가에 철버덕 누워있다. 용무가 있는 여명락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간의 고행이 흐릿한 표정에 그대로 드러난다.

이쯤에서 길은 좀 좋아졌으면 좋으련만 아직 끝은 이르다. 앞으로도 철마산 비석이 있는 철마남봉까지는 2.2킬로를 더 가야 한다. 그리고 또다시 바윗길과 밧줄길이 반복되고 숱하게 봉우리를 올갔다 내려와야 했다. 졸음과 다리의 고통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렇게 철마산에 도착하니 갓밝이가 시작되려나 보다. 정상에 천막 한 동이 설치되어 있는데 우리의 뜻하지 않는 방문에 놀란 표정이다. 우리 일행은 모두 핼쑥한 표정으로 얼이 나가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다시 출발하자 언제 그랬다는 듯이 씩씩하게 진행되었고 야영을 즐기던 사람은 이미 선두로부터 들었는지 긴 거리를 걷고도 다시 힘내서 걷는 모습에 혀를 내두르는 모습이다.

끝내 우리는 15분간 쪽잠을 자야만 했다. 지맥의 무게는 그만치 무거웠다. 그리고 노산객이 쌓았다는 과라리고개 돌무더기 앞에 왔다. 여러 해 전과는 달리 돌무더기는 더 크고 정교해졌다. 지금쯤 그 노산객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매주 천마산에서 철마산까지 등산을 즐기는 루틴을 여전히 하고 있을까? 그러길 바란다. 그가 지은 글귀는 여전히 어설픔이 있지만 이곳을 지날 적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적었다는 순수함이 그대로 엿보인다.

과라리봉에 오르면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출은 보기 드문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나무에 가려 카메라도 담을 수없다. 여명락님은 특유의 유쾌한 성우의 내레이션을 읊으며 여명과 일출을 즐기고 있다. 두 번째 일출이다.

“첫날 일출은 어디서 보았지요?”

“천보산이요”

천보산의 아름다운 일출이 과라리봉의 일출과 겹쳐지며 묘한 생각이 든다. 해는 묵묵히 뜨고 지기를 반복하고 우리도 꿋꿋하게 산길을 걷고 있다. 종착지인 석수에 이르기까지.

후미로 갔지만 멸도봉에 올라가려는 대장님, 김성경님, 설악님 그리고 여명락님을 만날 수 있었다. 그냥 그대로 두었어야 했는데 올라가다 말았다. 익숙한 우회길로 빠져 앞서간다. 그리고 멸도봉이 보이는 천마산은 정말 아름다웠다. 멸도봉은 이곳에서 볼 적에 가장 아름답다. 봄꽃과 옅은 연둣빛 잎이 피어난 신록에 어우러져 그림처렴 펼쳐졌다. 남산우의 표정은 신록을 닮고 여산우의 표정은 꽃을 닮았다.

천마지맥을 따르는 천마산 하산은 상당히 거칠다. 이를 알기에 은근히 우회길을 이야기해 보았지만 통하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그 가파른 길로 안내를 했다. 호평동에 살면서 자주 올랐던 길이다. 바위 밧줄길 우회를 하는 통에 동서남북님은 다른 길은 선택하였다.

얼마간 거친 길을 가면 편안한 길이 이어지리라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길어 무안했다. 표정이 점점 굳어진다. 천마산을 내려가면 곧바로 마치고개가 있는 것으로 알았던 모양이다.

송우회장님은 처음 뵙는다. 산사람답게 직접 메고 온 장비와 음식으로 조리를 하여 지친 우리에게 밝은 미소와 함께 내 주었다.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이라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지 알지 못하겠다.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 우리는 이곳에서 불협화음이 있었다. 이런 장거리 산행은 내부 단합이 중요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여전히 무엇이 문제였는지 잘 모르겠다. 따라서 다소 큰 소리가 오가기도 했다. 자봉을 나온 회장님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니 다소 민망하다. 김성경님은 업무가 있어 중단을 하셨고 설악님과 여명락님도 중탈을 고민하였다. 이는 체력적인 문제가 아닌 분위기의 문제였다.


바람아래도 위기가 왔다. 모두 보내고 어느 그늘 아래 한 잠 하고 나서야 어찌할지 결정을 하겠다고 했다. 백봉에서 동서남북님을 다시 만나고 아래 긴 의자에 누워 19분간 잠을 잤다.

이제 혼자만의 시간이 이어진다. 마음은 편안하다. 몸의 반응을 살펴 갈 수 있을 만치 가 보자고 생각하니 오히려 편안해졌다. 수레넘이를 지나 능선에 올라서자 독립적으로 놓여있는 상돌이 잠자리로 적합해 보인다. 두툼한 바위는 시원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데 뜻밖에도 대장님과 설악님을 만났다. 알바가 있었다고 한다. 계획은 처참히 부서지고 하는 수없이 함께 하게 되었다. 혼자였다면 해비치에서 도로로 내려서 먹치로 갔을 것 같다.

먹치 직전 숲 그늘에 선두는 곳곳에 주워 잠을 자고 있고 분위기가 아주 그만이다. 용마산고문님, 필삭님 그리고 여유님의 자봉 사이트다. 쏘시지 와 계란 프라이가 일품이고 훈연 삼겹살이 제맛이다. 야영에 특화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사람들은 한없이 여유로워 보였고 어떤 면에서는 뭐 하러 이렇게 힘든 고행의 길을 걷는지 묻는 것 같다.

이제 팔당 구간을 마치면 천마지맥 구간이 마무리된다. 여전히 거리는 많이 남아 있지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끝이 보이는 듯싶다.

다시 전의를 가다듬은 대원들은 단체사진을 찍고 들머리로 향했다. 큰명산 능선이 아닌 지맥능선은 먹치 맞은편으로 나 있다. 들머리는 묘지 방향으로 가야 했지만 이를 놓쳐 조금 더 가 오른쪽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대장님, 설악님, 청록샘님, 장그래님, 여명락님 그리고 보고스님이 빠르게 앞서가고 바람아래와 동서남북님이 뒤따랐다. 그렇게 갑산능선까지 진행이 되었고 대장님과 설악님은 볼일을 보고자 빠졌다.

처음 오는 길 이미 심박이 상당히 높아졌다. 지금까지 이렇게 높은 심박으로 진행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갑산까지 그대로 이어졌고 선두를 따르는데 선두가 다시 돌아왔다. 갑산 인증을 놓친 것이다. 새재, 갑산, 적갑산, 철문봉, 예봉산에 이르는 능선은 마치 공원처럼 길이 말끔하고 편안해서 속도를 내기에 적합했다. 그리고 예봉산 할공장에 가자 석양이 황금빛을 쏟아내고 있다. 얼핏 보아도 석양이 아름다워 많은 야영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보인다. 지금도 여러 동의 천막이 설치되어 있고 두 사람이 커다란 가방을 메고 합류하고 있다.

예봉산에서 예빈산 방향은 좀 혼란스럽다. 예빈산 이정표는 없고 율리봉 표시만 있다. 율리봉 방향으로 얼마간 가자 작은 돌무더기 위에 “운길산역 / 예빈산” 갈림길 이정표가 하나 놓여 있다. 두 길이 마치 합류하는 길 같기도 해서 절묘한 이정표로 보인다.

이정표는 직녀봉으로만 되어 있고 트랙이 안내하는 곳으로 가자 예빈산 300미터라는 수기가 적혀있다. 이곳을 언제가 와 보았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와 본 적이 없는 것 같지만 왠지 와본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하다. 어느 후기의 사진이 오버랩 되는 것일까? 비몽사몽이다.

정상에 올랐지만 비석은 보이지 않고 바위 하나만 놓여있다. 다음 봉우리는 300미터를 기준으로는 아닌 것 같은데 비석이 없는 것인지 더 가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혼자 이곳까지 오면서 서서히 공포가 밀려온다. 언젠가 진행했던 그대로 반복하는 느낌이다. 이제 곧 어둠이 찾아올 것이다. 길은 예빈산을 지나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와 팔당으로 하산하도록 되어 있어 그만 되돌아선다. 그리고 아래에서 세 사람을 만났다. 보고스님은 지도를 보이며 예빈산을 넘어서 다시 팔당으로 내려오는 길로 가자고 하는 것 같다. 나로서는 이미 결심이 섰으니 그냥 내려가겠다고 하였다. 결과적으로 예빈산은 조금 더 가서 다음 봉우리였다고 청록샘님이 다녀와서 이야기해 주었다.

팔당 하산길은 바위계곡 길로 관절에 무리가 가해졌다. 길고 지루한 길이다. 더욱이 어두운 도로를 지나 팔당대교를 건너야 했다. 다리는 무리가 가고 발바닥이 아파졌다.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고 물집을 다스려야 했다. 장거리 산행은 길지만 산길이라 가능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도로였다면 발바닥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며 발바닥 마사지를 하면 다시 걸을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식당에선 뜻밖에도 당산님이 나오셔서 마치 손님을 대하듯 우리를 맞이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은 허름한 식당은 맛이 보통이 아니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먹었는데 모두 흔한 맛이 아닌 어떤 깊은 맛이 느껴졌다. 당산님은 모든 식대를 찬조하며 한 사람씩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자봉은 더욱 눈물겹다.


검단산 들머리는 지금껏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다. 한강변까지 나가 ‘팔당원조칼제비칼국수’집 옆으로 가파르게 올라갔다. 선두는 꾸준히 앞서가고 대장님 설악님 여명락님이 따랐다. 동서남북님과 바람아래가 뒤따르는데 동서남북님이 옆으로 비껴선다. 가파르고 길고 힘든 길이다. 겨우 약수사거리에 올라 의자에서 쪽잠을 자기로 한다. 잠결에 누군가 지나가는데 동서남북님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같이 자고 가면 좋으련만 그냥 지나가셨는지 어쩐지 잠결에 알지 못하겠다. 28분간의 쪽잠을 자고 일어나니 추위가 밀려온다. 동서남북님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발바닥 물집으로 고생을 하시더니 이제 힘이 나시는 것이지, 쳐지는 것이 두려워 먼저 출발하신 건지 알지 못하겠다.

오늘은 3일째 밤이다. 졸음이 극에 달한다. 검단산을 지나 용마산 전에 다시 쪽잠을 17분 잤다. 그리고 비틀 거리던 대장은 엄미리 자봉을 생각하며 마지막 힘을 내었다. 엄미천에서 한기가 밀려와 뼛속까지 전해진다. 양주에서 만났던 것과 같은 맹렬한 추위가 밀려온다. 그런 이유로 능선인 산길보다 하산을 한 후에 더 춥다. 간식을 먹기보단 차량에 들어가 추위를 피하는 것이 선호된다. 43분간 한올님의 자봉 사이트에 머물다 다시 출발을 하자 4:38이다.

대장님은 좀체 몸을 가누지 못한다. 얼마 못 가서 13분간 쪽잠을 잤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는데 대장님은 얼마 못 가 다시 비틀거리고 그대로 낙엽에 쓰려져 잠에 빠졌다. 다시 19분간 쪽잠을 자야 했다. 여명락님은 난감한 표정이다. 여명락님은 여명이 밝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한다. 날이 밝으면 활력이 넘치며 홀로 신났다.

세 분이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런 사항이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볼일이라도 보러 갔던가? 모르겠다. 남한산에 갔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고 얼마간 더 가서 설악님을 만날 수 있었다. 설악님은 바지를 벗고 다리 사이의 땀을 관리하고 있었다.

남한산성 구간은 매번 따라가기만 하다가 길을 찾아가자니 만만한 게 아니다. 겨우 북문을 지나 수어장대 청량산에 도착했지만 검산단은 어찌 가야 할지 모르겠다. 설악님이 한올님께 전화를 걸어 길을 물어 보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도 보았지만 좀체 감이 잡히지 않는다. 우리는 옆에 걸려있는 커다란 지도를 보고 남문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문으로 갔고 도로를 따라 검단산으로 갈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빠른 속도로 걷는데 옆에서 거친 호흡으로 올라가던 사람이 기이하게 쳐다보는 듯하다. 설악님은 시속 5.5킬로가 넘는 속도로 도로 언덕을 올라갔다.

검단산에 가니 어제에 이어 용만산고문님, 필삭님, 여유님 그리고 당산님의 자봉 사이트가 펼쳐져 있고 한올님의 차량이 대기해 있다. 대장님과 여명락님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정비를 하고 있다. 자리에 앉아 여유님의 소시지, 계란 프라이, 삼겹살 + 아스파라거스 그리고 찬과 과일이 풍성하게 차려졌다. 어제에 이어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의 구간은 편안한 구간이다. 이배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하고 이배재 계단에서 29분간 쪽잠을 잤다. 그리고 대장님과 여명락님은 속도가 빨라져 앞에서 사라졌다. 갑자기 힘이 나는가 보다. 설악님은 오르막은 잘 가는데 내리막 통증을 호소한다. 내리막에서 좀체 속도를 낼 수가 없다. 태재고개 800미터 전에서 설악님을 기다리며 대장님 전화를 해 보니 편의점에서 보급을 하고 있다. 식사 없이 바로 간다고 한다.

우리는 태재고개 추어탕 집에서 만나 추어탕 한 그릇 하고 천천히 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추어탕 집에서 한 시간 전에 선두가 머무르다 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제 3그룹으로 나뉘었다. 어디가 선두인지 모르지만 청록샘님, 장그래님 그리고 보고스님의 제1그룹과 대장님, 여명락님의 제2그룹 그리고 설악님과 바람아래의 제3그룹. 동서남북님은 오리역에서 산행을 이어간다는 연락이 왔다. 후미인 우리는 오리에서 다시 한올님을 만나 랜턴을 챙기러 계속 진행을 하였다. 오리에서 만남의교회 들머리로 찾아가는 길 또한 독립적으로 가자니 쉬운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큰 알바 없이 꾸역꾸역 제대로 찾아갔다.

이제 마지막 밤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다음날 마지막 날 만 잘 보내면 완주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만남의교회앞 편의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수차례 다리와 발바닥은 무너지기를 반복했지만 여기까지 잘 왔다. 이제 끝이 보인다.

이번 구간은 설악님이 길을 자신하며 리드를 하였다. 들머리 인증을 하고 출발한다. (오후 6:29) 아직 해가 지기 전이라 광교산까지 빠르게 진행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좀 빠르게 가면 선두그룹 꼬리를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언젠가 오리에서 저녁을 먹고 아직 해가 지기 전 이 길을 걷던 기억이 난다. 이미 어둑해져서 얼마 후 랜턴을 켜야 했지만 분위기가 유사한 면이 있다. 도시는 차분히 저녁을 맞이하고 간간이 산에 올라갔던 사람들은 서둘러 하산을 하는데 우리는 거꾸로 산으로 올라가고 있다. 또 광청구간은 바람이 두려운 구간이다. 대개 바람이 많이 분다.

광교산에 도착하자 어두워졌다. 여전히 바람은 강하다. 마지막 밤이다. 백운산, 바라산 쉼 없이 진행되었다. 설악님은 여전히 오르막에선 빨랐지만 내리막에서 괴로워하며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바라산에 가니 지난여름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아이스크림을 꺼내어 먹고 현금을 넣어두던 기억이 난다. 이 길도 여러 추억이 도처에 흩어져 있다.

우담산은 생각보다 멀었다. 그리고 그 하오고개에 다가가고 있다. 블리스님이 자봉을 하신다는. 우리가 계단에서 내려가는데 계단 아래까지 나와 우리를 맞이한다. 웬일인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블리스님이 바람아래는 절대로 완주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한올님도 여전히 훈훈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날씨가 추워졌다. 바람은 점점 세차게 분다. 두터운 점퍼를 꺼내어 덮어주었다. 블리스님은 곰탕을 끓여 밥을 말아 준다. 따끈한 국물을 마시니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뜻밖에도 블리스님은 가게 문 닫고 우리와 함께 응원 산행을 간다고 한다. 이 춥고 어두운 밤에 말이다. 벌써 시간은 0:14이다. 벌써 마지막 날이 온 것이다. 마지막 날이다. 오늘 석수까지 가면 모든 것은 끝난다.


블리스님의 동행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상당히 지쳐있어서 빠르게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우려하였던 국사봉은 말끔하게 정비가 되어 있어 올라가기 편안했다. 국사봉과 이수봉 안부에서 16분간 쪽잠을 자고 간다. 이수봉의 커다란 비석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고 헬기장을 지나 매봉으로 향한다. 매봉으로 가는 길은 마치 같은 길이 계속 반복되는 느낌이다. 바윗길을 돌아 내려오다 올라오고 다시 내려오기를 반복한다. 실제로 이런 모습인 것인지 우리가 검은 산속에 영혼이 흩어져 꿈을 꾸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내려가자니 속도를 늦추어야 하고 올라가면 세찬 바람을 견뎌야 했다. 지금까지의 강남실크길이 모두 꿈인듯싶다. 블리스님은 이런 모든 과정에 그저 웃으며 우리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다양하게 이야기를 해 주고 있다. 아마도 블리스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어느 안부에서 얼어 죽었을 지도 모르겠다.

매봉에 도착하자 주술사의 주술이 반긴다. 여전히 못생긴 비석에 커다란 이름을 드러내며 우리를 조롱하는 듯하다. 간단히 인증을 하고 매바위 아래 계단에서 휴식을 취한다. 이제 발이 많이 피로해져 주물러 주어야 했다. 주술사의 노래와 독특한 주문을 들으며 17분간 발을 주물렀다.

옛골 하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길도 혼란스럽다. 그동안 선두 길잡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컸다. 누군가 친절하게 길 안내를 해 주던 산행이 그립다. 때로는 한올님이 때로는 노루굴님이 때로는 대장님이. 당시에는 그렇게 쉽고 빠르게 하산할 수 있었건만 왜 이토록 힘이 드는지 모르겠다.

대장님 일행은 이미 오래전에 옛골에 도착했을 텐데 차량에서 취침을 하고 있다. 우리는 황급히 식사를 하고 나로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발 관리를 하는 것이다. 하오고개에서 야지 추위 때문에 양말을 벗지 못했다. 편의점 구석에 숨어들어 헤드랜턴을 켜고 다시 부푼 물집에 실을 꿰고 진물을 뺐다. 그렇게 모두 마치고 발을 주무르니 겨우 걸을만하다. 매봉 구간은 힘든 구간이다. 끊었던 담배를 하나 사서 의자에 넋 놓고 앉아 피웠다. 짧은 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55산은 멈출 수 없는 잔인함이 있다. 숱한 자봉을 받으면 자봉의 대한 보답을 하기 위해 발이 부러지지 않는 한 멈출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선두는 동서남북님과 함께 출발하였다고 들었다. 처음부터 꾸준한 속도를 진격하는 선두 청록샘님, 장그래님 그리고 보고스님의 투혼이 대단하다.

해뜨기 전 추위는 겨울을 방불케 한다. 편의점에서 더 이상 자리를 깔고 앉아 있을 수 없다. 블리스님은 마치 아이 대하듯 다양하게 신경을 써 주었고 한올님도 깔판을 제공해 주는 등 변함없는 지원을 해 주었다. 너무 추워서 산속으로 들어가 쪽잠을 자기로 하고 출발을 한다. (마지막 날 6:16)

인릉산은 생각보다 용이했다. 대모산 초입에서 간식을 먹고 정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뛰어서 올라오는 대장님과 여명락님이 추월을 해 간다. 마지막 날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지 알지 못하겠다.

대모산을 지나 구룡산에 올라가면서 몸에 이상이 왔다. 어쩐 일인지 다리가 움직이지 않고 한걸음 내딛을 적마다 거친 호흡을 뿜어대야만 했다. 마치 제대로 동력이 전달되지 않는 자동차의 요란한 엔진음 마냥.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긴 의자에 누워 쪽잠을 잔다. 무려 38분을 잤다. 좀 따뜻하면 좋으려만 여전히 바람이 쌀쌀하여 오래 잘 수가 없다. 잠에서 깨니 골반과 무릎에 심한 통증이 온다. 통증을 참으며 스트레칭을 하고 설악님을 깨워 다시 출발을 하니 신기하게도 몸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마도 잠의 한계에 직면하여 잠을 자도록 몸이 유도를 한 모양이다.

양재를 지나 우면산으로 가는데 물이 없다. 염곡사거리 공사 중 횡단보도가 없어 꽃 시장 방향으로 건너서 오면서 편의점을 만나지 못했다. 하는 수없이 물 없이 올라간다. 이럴 땐 속도를 늦추어 심박을 낮게 유지하면 물은 먹히지 않는다. 소망탑에 올라오니 아스께끼 장수 가 반갑다. 하나씩 입에 물고 휴식을 취하는데 지난해 26산때 먼추억님이 정성스럽게 간식을 준비해서 소망탑까지 올라와 응원을 해 주던 기억이 난다.

이제 사당으로 내려가 식사를 하고 마지막 구간을 마무리하면 되는데 하산하는 도중 엔진이 다시 꺼진다. 하는 수없이 설악님께 양해를 구하고 20분간 쪽잠을 자야 했다.


로데오김밥에 로데오라면을 먹고 로데오김밥 한줄을 가방에 넣었다. 편의점에서 물과 허쉬초콜릿 그리고 빵 두봉을 담았다. 마지막 구간을 위한 보급품을 챙겼다. 사실 나로서는 정신적으로 이미 중탈을 한 것 같다. 별 의욕이 없다. 모든 보급품은 설악님이 알아서 구입하였고 설악님을 따라간다.

설악님은 앞에서 천천히 진행하며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와보지 않은 내가 보기에도 우회 길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설악님은 암벽을 해서인지 대개 정면으로 주파했다. 반면 까마득한 바윗길도 막상 다가가니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시계로 전달되는 카톡 알림을 보니 선두는 벌써 어딘가 도착을 하거나 삼성산 인증 사진이 올라오는 것 같다. 동서남북님이 전화를 주어 안부를 묻고, 벚나무대장님이 전화 와 문자를 주어 격하게 응원을 해 주니 힘이 난다. 여전히 앵야에 초대받아 나가 보았던 벚나무대장님의 함박 미소가 잊히지 않는다.

연주대를 지나 난감해 졌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았지만 학바위능선 조차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대략 트랙의 방향으로 가서 진입길에 들어서자 이 길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한 사람은 우리가 이 길로 가려하자 고개를 흔든다. 해지기 전에 못 내려가지 가지 말라는 것이다. 막 학바위 능선을 어렵사리 찾아 진입하자 한올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이미 뒤풀이가 진행이 되고 있다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전화가 오고 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우리가 도착해야 한올님도 짐을 내리고 귀가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다. 학바위 초입에서 마지막 김밥을 모두 먹고 하산을 서둘렀다.

무너미를 지나 삼성산으로 올라간다. 두 기의 안테나가 있는 삼성산까지 하얀 바위가 직선으로 펼쳐져 있다. 언젠가 저 길로 노루굴님을 따라갔지만 대부분 우회길로 갔었고 우회길팀이 더 빠르게 하산을 한 적이 있었다.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강남16산 종주를 하던 날이다. 한데 설악님은 우회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바위를 타고 올라갔다. 조망바위에 올라 바위에 걸 터 앉아 바라보니 기운 빛을 받으며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멀리 관악산부터 우리가 내려온 학바위능선과 발아래 삼성산 능선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고 안양 방면의 시가지가 크고 작은 산과 조화를 이루며 초록빛을 뿜어대고 있다. 이제 정말 끝이 보이는가? 저 아래로 내려갈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무릎과 발의 통증이 깊다.

임도 끝으로 갔다. 한 사람이 트럭을 몰고 올라왔다. 트럭이 탐난다. 시설을 돌아 삼성산 비석 앞에 섰다. 서쪽에서 석양이 설악님의 얼굴에 오렌지 빛을 더하며 멋진 인증 사진을 완성해 주고 있다.

이제 장군능선과 석수능선을 타고 하산을 하면 된다. 장군봉은 가는 길에 조금만 가면 있을 것으로 아는데 모르겠다.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몸은 여기에서 한계가 온다. 긴장이 풀렸는지 한 걸음도 옮기고 싶지 않다. 택시를 부르거나 아까 그 트럭을 타고 내려갔으면 싶다.

임도에서 장군능선에 진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설악님은 이리저리 바삐 돌아다니더니 한차례 짧은 알바를 하고는 거북바위를 찾아냈고 용케 장군능선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장군봉은 잊혔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으로 알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도통 알지 못하겠다. 여러 보았던 또는 보지 못했던 기억이 가물거리고 정신이 혼미한 바윗길과 임도같이 너른 길을 가다 호압사 갈림길을 지났을 테고 한우물이 있는지 어쩐지 어떻게 내려갔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끝내 하산길은 찾지 못해 한올님께 에스오에스를 쳤다. 그리고 얼마 후 한올님이 핸드폰 조명을 켜고 올라왔다. 설악님을 분주히 여기저기 길을 찾고 한올님이 올라오고 하는 새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지 못하겠다. 그저 자다 일어나다 걷다 자다 모든 것이 희미하다.

마지막 돌계단을 내려오니 리더대장님과 댓길님이 반가이 맞이해 준다. 조촐하게 삼겹살집에 모여 후미 뒤풀이를 하였다. 댓길님이 식대 찬조를 하였다. 로제님과 5차클럽 멤버라고 하더니 두 분이 서로 닮은 것 같다. 리더대장님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식사를 하고 나자 한 걸음도 떼지 못할 정도로 발이 아프다. 집까지 택시를 타고도 문 앞까지 가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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