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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하의 장비등산사 / 전쟁과 장비 _  텐트

 

‘좀더 어렵고 좀더 높은 곳을 향하여’

무게 줄어든 머메리 A형 텐트

새로운 편의성과 기능성 높인 네덜란드 군용 텐트, 6.25 이후 민간 등산용으로 인기 끌어

글 신성하(해강종합건설 전무이사)  사진 주민욱 기자

 

초기 A형 텐트의 변천 과정

시시각각 돌변하는 산이라는 거칠고 험한 악조건의 자연 환경 속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대처하며 올라야 하는데 필요한 도구가 등산장비이다. 그 중 텐트는 장기간의 산행에 있어서 필히 지참해야하며 최대한 소형화와 경량화에 중점을 두고 경험 많은 등산인에 의하여 개발되고 발전되어 왔다. 이와 같이 윔퍼 A형 텐트 이전에도 계속 개량되어 왔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은 1860년 윔퍼의 첫 번째 마터호른 도전 중 텐트 제작의 실패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텐트의 구조는 상단에 고리가 달린 2개의 긴 알펜스톡을 지주로 사용하였고 범포지를 길게 늘어뜨려 밑을 안으로 접어 바닥에 깐 후 양쪽의 고리를 통과한 로프를 당겨 땅에 고정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로프 위에 걸치는 천막의 무게를 지탱하며, 천막 하단에 몇 개의 끈을 달아 돌을 묶어 고정하는 방식이지만 윔퍼는 “강풍에 천막이 흔들리고 고정 말뚝이 통째로 날아갈 것만 같아 불안하였다”라고 기술하였다. 그래서 차라리 천막을 깔고 앉아 있는 편이 낫겠다고 술회한 바 있고 “천막으로 몸을 감싸고 밤을 지샜다”고 하였다.

그 뒤 2년 후 마터호른 재도전 때 종전의 나무 프레임 수량을 줄이고 가벼운 천을 본체에 사용하는 등 새로운 A형 텐트가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텐트는 영국 산악회내의 초대회장 뿐만이 아니고 창립회원과 회원들에 널리 소개되어 알프스는 물론 북극, 히말라야, 그린랜드, 남미에서 사용되어 좋은 평을 들었고 그 후에도 실전을 바탕으로 더 개량되었다. 그것은 본체 위에 덮었던 무겁고 방수성이 떨어진 방수포를 개량하였고 가장 무거운 풀푸레 나무 재질의 프레임 지주를 속이 빈 대나무로 대체하였다. 또 그 지주를 중간부분에서 잇도록 하여 가벼움 뿐 만이 아니고 이동성 및 수납성까지 고려하여 개량하였다. 또한 그 접합부분에 가공하기 쉽고 녹슬지 않는 동 재질을 둥글게 말아 하단 상부에 고정하여 동가락지 속에서 맞물리게 하는 연결구조를 채택하였던 것이다.

 

머메리즘

19세기 중반의 알프스 등산의 황금시대가 지나고 가이드리스를 발판 삼아 새로운 등정 방식이 출현하게 됨으로써 은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종전의 일반적인 방식에 따라 정상에 오르는 것만이 목적이 아닌 좀 더 어렵고 좀 더 높은 곳을 추구하며 고난을 극복하는 그 등반 과정을 중시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것은 가이디드 등반 방식에 젖어 있던 영국 산악회를 주축으로 한 보수적인 등산인에게 반발심을 일으키기도 하였지만 다른 한편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등정주의에서 등로주의 방식으로 전환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위와 같은 주장을 펴고 몸소 실천한 이는 머메리(Alfred Frederick Mummary, 1856-1895년)이다. 그의 등산 이념을 머메리즘(Mummerism)이라 한다. 그는 영국 남부 켄트주 도바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렸을 때부터 알프스를 동경하며 1873년 바다건너 원정길에 나서 몬테로자를 등반 한 후 1879년 마터호른에 도전하며 츠뭇능(Zmutt Ridge)을 등정하였다. 또 1880년에는 에끼유 뒤 샤르모(Aiguille du Charmoz)를 초등반하였고, 이어 다음 해인 1881년에 에끼유 드 그레뽕(Aiguille de Gr?pon, 3489m)을 등반하였다. 이는 몽블랑 산군 중 샤모니의 에끼유군이라 하는 바늘처럼 생긴 30여 개의 암봉 중 가장 오르기 힘든 침봉을 가이드리스 등반을 함으로써 암벽 등반의 새로운 기준을 확립하였다. 이를 후세들은 머메리즘의 탄생으로 보고 있다. 사진의 표정에서 느낄 수 있듯이 보통 체구에 경제학자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외용보다는 더 마음 속은 단단하고 굳센 내강이었던 것이다. 1895년 노맨 콜리(J. Norman Collie)와 낭가 파르바트(Nanga Parbat, 8125m)등반중 얼음 사태로 행방불명되어 영원한 ‘산중의 왕’ 디아미르(Diamir)가 되었다.

 

 

머메리 A형 텐트

텐트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 무게와 부피를 줄여야 하는 문제가 가장 컸는데 이 점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를 이끈 등산인은 머메리였다고 할 수 있다. 그와 관련해 동시대 머메리와 같이 활약한 등산인들에 의해 장점이 소개되고 알려지게 되었다. 1878년 워커(J. Walker)와 드뤼(Dru)를 초등정했던 클린톤 덴트(Clinton Dent, 1850-1912)에 의해 Mountaineering (1892)에 게재된 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예전에 사용되었던 텐트에 비해 전체 중량과 부피가 줄었지만 그래도 한 사람이 따로 텐트만을 지고 올라야하는 현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가이드없이 소수의 인원으로 좀 더 어렵고 좀 더 높은 곳을 추구하는데 장애가 되었고 고난을 극복하는데도 방해가 되는 요소였다. 이점에서 착안 되었던 것이 삽화 속 텐트였으며 그 시절 그것을 접하는 등산인들은 획기적인 장비였음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 텐트의 바닥 면적은 가로 1.8m, 세로 1.2m의 직사각형이며 높이는 1.2m로 천막의 무게는 1.6kg으로 기존 텐트보다 파격적으로 중량을 줄였다. 그와 같이 가벼워진 가장 큰 요인은 그 시절 개인 장비였던 길이가 1.2m로 긴 피켈을 거꾸로 눕혀 지주로 사용하였던 점이 컸다. 또 텐트를 고정하는 나무 펙을 사용하지 않고 본체 천 바닥 끝에 줄을 매어 야영지 주변의 큰 돌에 묶어 고정했던 점도 있었다. 위와 같은 머메리 텐트의 외형은 큰 변화가 없었지만 그 후로부터 점점 짧아지는 피켈길이의 영향으로 스파이크 부분에 보조나무를 끼워 지주높이를 맞춰 사용되었다. 또 텐트 바닥에 까는 방수포를 따로 준비하였던 것을 본체와 바닥 천을 붙여 사용하는 변화도 갖게 되었다. 그렇게 개량된 텐트는 강풍으로부터 천막이 날아가는 현상이 없어지고 내부 보온에도 좋은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첼트반과 첼트색

막영 기구인 천막을 뜻하는 텐트(tent)는 독일어의 첼트(Zelt), 프랑스어 땅뜨(Tente)의 동의어이며 첼트반(Zeltbahn)은 천막천을 뜻하며 첼트색(Zeltsack)이라 불리기도 한다. 첼트색은 당초 목동들이 급변하는 기후에 대응하며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양과 같은 동물들 사이에 큰 마대 자루를 뒤집어쓰고 비나 눈을 피하며 추운 날씨에 노숙하는 주머니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또 이 천을 이용 지주가 없는 천막으로 개발한 츠달스키(Zdarsky)의 이름에서 유래한 츠달스키 첼트색이 있었다. 말뚝도 없는 이 첼트색은 환기구멍이 있는 한 장의 천을 사용하였으며 두 사람이 마주보고 천을 깔고 앉아 머리 위까지 덮어 서로 버티며 비상시에 지새는 방식이다. 이런 첼트색이나 첼트반은 개인 용구로서 군용으로 개발되어 활용되었으며 안, 밖의 색깔을 달리하여 위장복과 비옷 등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19세기 말부터 도입한 독일의 첼트반은 직사각형 모양의 회색으로 처음 개발하여 출현되었으며 여러 개의 단추 달린 개인용 첼트반을 연결하는 구조이다. 용도에 따라 3장을 연결하면 전면이 트인 경비 초소용이 되었고 4장을 연결하면 4인용 텐트가 되어 사용되었다. 1930년대 초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긴 삼각형 첼트반의 끝 상단의 구멍에 자연나무 가지를 잘라 끼워 지주로 사용하였고 양손을 넣는 덮개가 달린 구멍들이 있어 환기구 역할을 하였다. 또한 가슴 앞에 주머니가 달려 있어 첼트반을 사각형 모양으로 여러 번 접어 수납할 수 있는 개인 용구로서 간단하고 용도가 다양한 장비인 것이다. 유럽 각국의 첼트반의 색상은 시대별로 변천하여 왔으며 초기인 19세기말부터는 단색의 백색, 회색에서 제 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한 1930년까지는 녹색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1930년대 초 부터는 녹색 위장 무늬가 출현되며 그 후 여러 색상을 달리하여 무늬도 바뀌며 위장 첼트반이 생산되었다.

 

 

네덜란드 군용 텐트

풍차와 튤립이 연상되며 다이아몬드 가공기술로 유명한 네덜란드(Netherlands)는 일명 홀랜드(Holland)라고 불린다. 국명에서 알 수 있듯이 육지가 해수면보다 낮은 곳이 국토의 25%를 차지하고 그 중에서 1.0m이상 차이 나는 곳이 15%정도이다. 예부터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소리 없이 침투하려는 물과의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내륙의 물을 밖으로 퍼내는데도 국력을 쏟았다. 수도는 암스테르담으로 유래는 암스텔(Amstel)강이 조이델호(현 아이셀호)로 흘러들어가는 하구에 강을 막기 위해 댐(Dam)을 건설하여 만든 것에서 부터이다. 시내에는 170여 개의 운하가 거미줄처럼 교차되며 건너는 1300여 개의 다리로 조성된 해상도시이며 17세기경에는 해양 무역을 주도하던 곳이다. 그러나 해상대국으로 부상한 영국과의 전쟁에 패해 차츰 세력이 약화되어 갔고, 스페인 통치 하에 있는 남부는 1810년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프랑스 영토에 귀속되기도 하였다. 1815년 정식으로 네덜란드로 독립함으로써 20세기부터는 다시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동남아시아등에 남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개척하여 무역과 상업을 통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나치 독일의 지배에 놓인 적도 있었으나 1946년 벨기에, 룩셈부르크 공화국과 함께 3국의 국가 동맹을 맺었다. 또 북대서양 조약기구, 유럽 공동체 등에 가입해 경제, 군사,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발전되어 세계 일류 복지국가가 되었으며 지금도 지난 옛 해상왕국의 영광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근세의 등산사에 있어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네덜란드는 전국토가 저지대와 구릉지대이며 그나마 가장 높은 지면이 해발 330m미만이다. 이런 지형적으로 비산악국가인 점에서 발전이 더디었지만 강대국들의 사이에 국경을 접한 점은 군용 장비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군용 텐트에 있어서는 국가가 주도하여 제작함으로써 우선 튼튼하고 안정적이며 기능을 살린 제품이었다. 그 특성을 살펴보면 동시대 주류를 이루던 A형 텐트와는 외형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고 독특한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지붕 상단이 수평이던 A형과 달리 측면의 한 쪽이 들린 이등변 삼각형으로 실내 거주성을 높여 공간 확보에 주안점을 두어 개발 된 점이다. 또한 폴의 위치를 전후에 배치하지 않고 좌, 우의 제일 높은 부분에 세워 허리를 굽힐 필요 없이 출입할 수 있도록 기능을 살린 편리한 제품인 것이다. 우리와는 한국 전쟁 때 16개국의 군사지원국 일원으로 참전한 인연의 우방이며 그때 남겨진 군용장비는 전후에 등산용으로 전용 사용되었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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