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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클라이밍

레드페이스와 함께하는 아웃도어 파라다이스 _ 태안 학바위

  

언젠가 떠오를

그날 그 해벽의 눈부심

 

글 · 양승주 기자  사진 · 주민욱 기자  협찬 · 레드페이스

 

 

 

학바위는 서해안 태안반도의 학암포해변에 있는 해벽이다. 해변의 북쪽 끝에 작은 산이 있는데, 이 산의 서면에 학바위가 있다. 클라이머들이 등반과 해수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최적의 피서 등반지로 꼽는 곳이다.

학바위는 2003년 봔트클럽에 의해 개척됐다. 암장은 15m 정도 높이의 오버행과 페이스로 이루어져 있고, 크고 둥근 홀드가 많으며, 난이도 5.8~5.12c에 이르는 루트 12개가 있다. 하루 종일 해가 들어오기 때문에 여름에는 타프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해벽을 함께 오를 김예진씨와 서울에서부터 같이 차를 타고 이동했다. 예진씨는 인천대학교 산악부 소속이다. 이제 막 졸업해 OB 회원이 됐다.

예진씨의 어머니가 등반을 했던 덕분에 그녀도 어릴 때부터 등반과 가까웠고, 대학교에 입학해서 산악부에 들어갔다. 산악부의 힘들고 거친 생활을 이겨내지 못하고 많은 동기와 후배들이 탈퇴했다. 그럼에도 예진씨는 꿋꿋이 산에 다녔고 임자체, 그리고 유럽 최고봉 엘부르즈 두 번의 원정을 떠나 모두 등정에 성공했다. 현재 예진씨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준비 중이지만 등반이 재밌기 때문에 계속 산에 다닐 생각이다.

 

실화가 된 어릴 적 꿈

서울을 출발한지 2시간 남짓, 학암포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은 학암포해변의 북단에 있다. 조업을 마친 어선 몇 척이 방파제를 따라 줄지어 정박한 모습이 평화롭다. 하늘과 바다는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듯 푸르고,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그곳에서 해벽을 함께 오를 또 다른 클라이머 조근진씨(더탑 아웃도어클럽)를 만났다.

근진씨는 어렸을 때 북한산에 갔다가 암벽 등반가들을 목격한 이후, 반드시 나중에 등반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중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수소문한 끝에 자연바위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실내암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간의 훈련을 거쳐 실제로 자연바위에 붙었을 때 그는 자신에게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등반을 계속했다. 이제 암벽등반은 그의 삶의 일부가 되었고, 가을이면 클라이밍의 성지 요세미테로 3주간 등반 여행을 떠난다.

학암포선착장 주차장에서 오솔길을 따라 산을 넘어 직진하여 참호를 따라 내려가면 바다가 보인다. 이곳에서 해안가로 내려간 다음 오른쪽으로 조금만 가면 암장이다. 10분쯤 걸린다. 썰물 때는 해안가를 돌아서 5분이면 곧장 학바위로 갈 수도 있다.

 

파도를 닮은 바위 아래서

학바위는 입을 크게 벌리고 밀려오는 파도처럼 머리를 우악스럽게 내밀어 오버행을 만들고 있다. 햇빛을 피해 그 오버행 그늘 아래로 가서 등반을 준비했다.

근진씨가 오버행에 붙었다. 학바위는 루트명과 난이도가 바위에 표시돼 있지 않다. 개념도를 보니 학암의 전설(5.11c)이다. 오버행을 직등하면서 바위턱을 넘어야 하는 만만치 않은 루트다. 그런데 오버행 오른쪽에 개념도에는 없는 볼트가 2개 있었다. 오버행을 쉽게 통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일까. 직등이 어려워 보였기 때문에 가볍게 몸도 풀 겸 그 볼트를 이용해서 바위턱 아래까지만 올라갔다. 근진씨는 동작들을 물 흐르듯 이어가서, 어려움 없이 바위턱을 찍고 내려왔다. “생각보다 바위가 미끄럽지 않네요. 파도 소리가 등 뒤에서 계속 들려 와서 좋았어요.” 원래 학바위는 해벽이기 때문에 바위에 소금기와 물기가 있어 홀드가 미끄럽다. 아무래도 요즘의 건조한 날씨가 영향을 준 것 같다.

예진씨도 같은 루트로 올랐다. 예진씨는 키가 크고 팔다리도 길다. 힘을 조금만 쓴다면 어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스타트 자세를 잡는 것에서 애를 먹었다. 뒤에서 근진씨가 동작을 알려줘서 무사히 통과, 두 번째 볼트까지 신중하게 등반을 이어갔다. 세 번째 볼트까지 간격이 조금 넓어 긴장하는 듯 보였다. 발이 조금씩 미끄러지며 불안했지만 손 홀드가 튼튼했다. 추락 없이 바위턱까지 등반을 완료했다. 하강하고 나서야 등반의 긴장감이 풀리는지 밝은 표정을 짓는다. “얼마 전에 무의도 해벽에 다녀왔는데, 무의도랑 비교해서 훨씬 어려워요. 홀드는 좋은데 오버행이라서 힘이 많이 들어요. 또 발이 자꾸 떨어져서 힘들었어요. 저의 문제죠. 더 운동해서 보완해야죠.” 예진씨는 톱로핑으로 줄에 매달려 잘 되지 않았던 동작을 몇 번 더 연습했다. 근진씨도 한 번 더 등반을 한 다음 오른쪽에 있는 학바위 최고의 루트로 이동했다.

 

그들이 오르는 이유

학바위 최고의 루트는 오버행에 매달려 짜릿한 쾌감을 느끼며 등반할 수 있는 빨간등대(5.11b)다. 학바위의 우측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모서리를 따라 사선으로 이동하는 루트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버행이다. 두 발이 공중에 뜬 채로 팔로만 몸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강한 힘이 필요하다. 또 발밑에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추락에 대한 공포가 심하다. 그래서 기술만큼 정신력도 중요하다.

“모서리 따라 쭉 가다가…. 오케이! 5.11b네요. 그래도 한 번에 가기는 쉽지 않아 보여요.” 루트관찰 뒤에 내뱉은 근진씨의 말에서 자신감과 긴장감이 함께 느껴진다. 근진씨가 바위에 바짝 몸을 붙인 채 바위를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사냥감을 쫓는 사바나 초원의 사자처럼 고요하게 움직인다. 규칙적인 파도 소리만이 시간의 흐름을 일깨운다. 태양은 뜨거웠지만 그의 손과 발은 냉철하게 홀드를 찾아나갔다. 그런데 일곱 번째 볼트에 퀵드로를 걸고 나서 등반이 멈췄다. 루트가 급격히 왼쪽으로 휘어지는 지점이다. 이제 일직선 바위틈을 따라서 조금만 더…. 그때 아쉬움 섞인 외침이 들려왔다. “테이크!” 확보자에게 줄을 당겨 달라는 신호다. 그가 줄에 매달려 잠시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힘을 모아 다시 등반을 시작해 빨간등대 꼭대기에 도착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로프가 일직선을 그리며 그가 하강한다. “요새 지구력 훈련을 잘 못해서 그런지 안 되네요. 상단부 바위틈 홀드가 왼쪽으로 좀 흘러요. 밑에서 볼 때랑 다르더라고요.”

근진씨의 뒤를 이어 예진씨가 학바위 가장 우측에 있는 심바의 꿈(5.9)을 올랐다. 예진씨에게 어렵지 않은 루트여서 즐겁게 등반을 마치고, 학암포해변으로 이동해 모래사장을 걸었다.

“클라이머들은 왜 그렇게 바위를 오르려고 하는 걸까요? 땅 위에 있으면 이렇게 편한데….” 예진씨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등반을 보면 마법사의 마법처럼 느끼지 않을까요? 신기하기도 하고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내잖아요.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사들처럼 말예요. 그리고 또 하지 말라는 건 더 하고 싶잖아요.”

근진씨에게 그가 가을에 떠날 요세미테 등반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토털 클라이머가 되기 위한 과정이며, 스키마(schema)를 기르기 위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클라이밍에서 말하는 스키마란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길러진 실력, 멘탈(mental) 정도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암벽등반의 다양한 루트 형태들, 예를 들면 슬랩, 페이스, 크랙, 스포츠 루트 등을 다 어느 수준 이상 잘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루트의 다양한 상황들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당연히 국내에서만 등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바위를 여러 가지 상황에서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렇게 생각했을 때 요세미테의 빅월 엘캐피탄은 클라이머들의 성지인 만큼 꼭 가봐야 하는 곳이에요. 그리고 암벽등반에서 빙벽등반을 넘어 알파인 스타일의 고산등반까지 쌓아 나갔을 때만이 토털 클라이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올여름도 클라이머들은 육지의 끝 해벽을 등반하며, 수평선 너머 저곳에서의 마법과 같은 등반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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