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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클라이밍

 

한국의 벽

 

경남 사천시 삼천포 진널해벽

바다로 떨어지는

한여름 등반의 추억

‘딥 워터 솔로 클라이밍’이 가능한 19개 루트

글 · 김규영 기자  사진 · 주민욱 기자

 

등반 전날 도착한 진주시내 ‘스카이암장’. 서울에서 머나먼 거리를 달려와 이미 해가 저무는 저녁. 조금 지친 눈동자에 암장 안에 가득찬 어린아이들이 들어온다. 벽에 붙은 홀드 위를 입체 정글짐에서 놀듯 이리저리 자유롭게도 움직인다. 자고 나면 커 있는 유연한 몸이 피로를 알 리 없다. 하루하루 성장을 위해 온몸으로 펌프질해대는 어린 몸짓은 ‘펌핑’도 모른 채 홀드를 찾아 팔과 다리를 쉴 새 없이 놀린다. 홀드를 잡고 그늘 한 점 없이 해맑게 빛나는 웃음에 피로가 한 발짝 물러난다.

진주에서 하루 쉬고 아침 일찍 찾아간 등반지는 삼천포 진널해벽. 진널전망대 아래로 탁트인 바다가 열리고 바다에 한 귀퉁이 발을 담근 해벽은 가운데가 안쪽으로 파여 V자 형태로 펼쳐져 있다. “남향에 날씨도 따뜻해 겨울철 해벽등반도 가능해요.” 김규철 스카이 클라이밍 센터장 말대로 진널해벽이 아침부터 햇살을 한 아름 껴안고 있다. 해벽은 온전히 남쪽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으니 따뜻한 남쪽 지방에 햇볕을 그대로 담을 수 있겠다.

 

 

겨울해벽도 가능한 해변

바다에는 항상 설렘이 있다. 햇볕 가득한 여름 바다라면 더욱 그러하다. 볕 좋은 오늘이야 말로 어린아이처럼 당장에라도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 날이다.

“해벽 끝 ‘빠삐용(5.11b)’ 코스가 바로 저곳이에요.” 바닷물이 들어와 해벽 끝자락이 바다에 잠긴 곳. 그 위로 난 오버행 길. 줄 없이 오로지 맨몸으로 바다를 등지고 오르는 ‘딥 워터 솔로 클라이밍(deep water solo climbing)’ 코스다. 추락은 곧 바다로의 추락. 하강도 탈출도 오로지 바다를 통해 이뤄진다.

모든 등반에 항상 내재된 추락. 추락에 대비해 등반자와 확보자를 잇는 로프. 딥 워터 솔로 클라이밍은 바닥에 한 발 디딘 안전줄마저 내려놓고 상승과 추락의 번민 속을 맨몸으로 헤집는 원초적 오름이다. 바다를 피해 오름이 멈추고 난 뒤 찾아오는 것은 바다로의 다이빙. 추락대신 선택한 오름의 끝이 추락으로 귀결되는 모순된 해방감. 영화 <빠삐용>의 명장면 자유의 몸짓을 재현할 수 있는 재미난 코스다.

바다에 빼앗겼던 시선을 찾아와 해벽 안쪽을 바라본다. 진널해벽은 크게 3구역으로 나눠볼 수 있다. 바다를 마주한 가장 안쪽 벽은 페이스 루트가 주를 이룬다. 밀물 때 앞부분이 물에 잠기는 가장 바깥쪽 구역은 ‘빠삐용’ 코스를 비롯해 바다를 아래 두고 오르는 6개 코스가 개척되어 있다. 가운데 벽은 5개 루트가 개척되어 있는데 모두다 오버행으로 시작하는 코스다.

오늘 등반자는 김규철 센터장과 암장 식구 이재희, 김소희씨. 김규철 센터장이 가장 안쪽 벽 인어공주(5.10c)를 올라 줄을 걸었다. 뒤이은 재희씨와 소희씨는 3번째 퀵드로에 먼저 줄을 걸고 시작. 암벽 아래 구간은 파도가 갉아 스타트가 까다로운 짧은 오버행이 있기 때문이다. 오버행을 지난 후부터는 비교적 번듯한 페이스 구간. “아하하” 마지막 구간 앵커에 닿기 전 까다로운 구간에서 소희씨가 위기의 라이브 방송을 한다. 크럭스에서 만난 위기감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중이다.

 

 

바다와 벽 사이 원초적 오름

진널해벽은 2008년 사천클라이밍클럽과 102클라이밍클럽 회원들이 결성한 ‘진널개척단’이 처음 개척했다. 개척 당시 그들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맞물린 해식애 안에 내재된 무언가를 느꼈던 것일까. 그때 개척된 루트 ‘병속에 담긴 편지(5.10b)’, ‘바람의 노래(5.11b)’, ‘달님하나별님셋(5.11b)’ 등에 감수성이 풍부하게 담겼다.

김규철 센터장이 오르고 있는 중앙벽 ‘달님하나별님셋’은 시작부터 등반 종단부까지 지속적인 오버행이다. 무수히 많은 세월, 바위 높은 곳까지 파도가 손을 내밀어 바위 한줌씩 쥐고 떠난 흔적이다. 속살이 드러나 붉거나 짙은 갈색 빛깔 바위 오버행을 넘으면 아직까지 편편한 본연의 모습을 간직한 최상단부가 나오면서 등반이 종료된다.

“희열이 그리웠어요.” 김소희씨가 등반을 처음 시작한 것은 2009년. 센터장과의 인연으로 멋모르고 시작해 1년간 이곳저곳 바삐 등반을 다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벼랑 끝에 매달려 불현듯 고도감을 느끼고 공포가 마음을 잠식했다. 길고 긴 등반 잠복기의 시작이었다. 3개월 전부터 다시 벽을 찾게 만든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희열. 높이와 추락의 공포, 희열은 공포의 한복판을 건넜을 때의 짜릿함이다. 짜릿함에 대한 그리움이 소희씨가 공포를 헤쳐 다시 바위를 잡게 한 원동력이었다.

바다가 해변에 바짝 들어오고 햇살이 바다에 가장 찬란하게 담기는 여름의 한 낮. 바다에 잠긴 해벽을 보며 소희씨가 웃옷을 벗었다. 스포츠브라탑 차림으로 원초적 모습에 한발 다가서서 오름을 시작할 참이다.

이미 바다가 잠식한 코스에 접근하기 위해 멀찌감치 해변가에서 미리 바위에 붙었다. 바위 옆구리를 잡아 총총히 진행하는 트래버스 끝에 드디어 올라갈 길을 만났다. 힘이 불끈 들어간 그녀의 살갗을 태양빛이 반짝 비춘다. 어떤 오름도 결국에 내림으로 마무리되는 등반. 오름과 내림사이에 잠복한 공포 본능과 오르고자하는 본능적 욕망이 충돌해 만드는 짜릿한 희열. 바다와 벽이 만나는 찬란한 바다에 뜨거운 여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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