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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클라이밍
 

 

Season Special _ 적벽 ▶ 에코-독주길

 

 

extreme wall

클라이머들의 집념 부르는

아스라한 붉은 벽

 

글 · 강윤성 기자  사진 · 주민욱 기자

 

 

 

 

설악산 소공원에서 비선대에 다다르니 정면으로 하늘을 찌를 듯한 붉은 암봉이 치솟아 있다. 적벽이다. 높이 100여 미터, 등반 길이만 해도 60여 미터에 이른다. 더군다나 벽 대부분이 오버행을 이루고 있다.

적벽을 등반하기 위해 전날 울산암 등반을 함께한 최석문씨(노스페이스클라이밍팀)와 이명희씨(노스페이스클라이밍팀), 그리고 안산에서 새벽같이 달려온 그들의 절친, 안종능씨(블랙다이아몬드 코리아)가 합류했다. 적벽을 눈앞에 둔 그들은 필요한 장비를 챙기면서 루트 파악에 나선다.

“여기 에코-독주길이 어디냐? 왼쪽 크랙이야, 오른쪽이야?”

“좌측 볼트 따기가 독주고, 크랙으로 직상하는 게 에코고, 맨 상단은 똑 독주고… 그런 거야.”

“이야! 명희야 저 위쪽은 어떻게 자유등반으로 올라갔니?”

“저기 올라갔을 때가 몇 년 전인데….”

 

 

1978년 크로니길과 에코길 처음 개척돼

1999년 7월 손정준씨가 에코-독주길을 연결한 직선루트를 자유등반으로 성공하기까지 적벽은 인공등반 대상지였을 뿐이었다. 바라만 봐도 현기증이 나는 적벽에 처음 등반이 허락된 것은 1978년 뜨거운 여름 어느 날, 전년도에 토왕폭을 초등한 박영배씨가 그 여세를 몰아 회원들과 함께 산악회의 이름을 딴 ‘크로니’ 길을 개척하면서다. 그리고 같은 해 ‘에코’ 길도 개척된다. 이후 1980년 인천교대 산악회에서 크로니길 왼쪽에 교대길, 1988년 이성주씨가 에코길과 교차하는 60미터에 이르는 독주길을 냈다.

90년대에 들어서는 1998년 탈레이사가르 북벽에서 추락사한 고 김형진씨가 고난도의 인공등반 코스인 무라길(A4)을 내고, 정승권씨가 인공등반 난이도 A5에 이르는 ‘트랑고의 꿈’을 개척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적벽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등반가들이 그들의 등반능력을 선보인 흔적들이 남겨졌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 2001년 전용학씨와 김영선씨에 의해 ‘트랑고의 꿈’ 우측 벽에 ‘적벽2836’ 길이 개척된다. 당시 개척자 둘의 나이를 붙여서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적벽2836은 2007년 자유등반을 갈구하던 전용학씨에 의해 일부 루트가 변경되며, 자유등반이 가능한 ‘자유2836’ 길로 완성되기에 이른다. 또한 2012년 9월 임채용씨에 의해 ‘자유2836’과 삼형제리지 사이에 또 다른 자유등반 루트인 ‘채송화향기’ 길이 개척된다. 이처럼 적벽에서 조차 자유등반의 물결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자유등반 코스로 거듭난 에코-독주길

“적벽을 오르는 손정준씨의 자유등반 모습을 TV에서 보면서 자극을 받았어요. 적벽 자유등반을 결심하고 3년을 준비 끝에 성공했어요. 해마다 도전을 하면서 부족한 점들을 채워나갔죠. 자유등반이란 게 거벽에서 장비와 시간 모두를 줄일 수 있어 큰 매력이 있거든요.”

에코-독주길은 지난 2009년 이명희씨가 국내 여성 최초로 자유등반을 성사시킨 루트다. 누구보다도 감회가 새로울 이명희씨가 지난날을 상기해본다. 복기하듯 적벽을 찬찬히 훑어보는 그녀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하는 듯하다.

“올라가 볼까?”

에코길 첫 피치는 등반길이 20미터, 난이도는 5.11d급 크랙이다. 최석문씨가 아내 이명희씨의 확보를 받으며 루트에 진입한다. 준비한 장비는 캠과 퀵드로뿐이다. 우리나라 톱클라이머인 그들에게 더 이상의 장비는 등반에 방해만 될 뿐이다.

최석문씨가 마름모꼴의 움푹 들어간 벽의 우측 크랙을 타고 오버행 아래까지 쉽게 진입한다. 이어 볼트에 퀵드로를 설치하고 확보한 다음 오버행을 넘어서기 위해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루트를 파악한 그는 왼손으로 좌향 크랙을 붙들고 오른손을 왼손 위쪽에 얹어 당기면서 서서히 비상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가 다음 먹잇감을 노리는 순간, 몸이 밸런스를 잃고 추락하고 만다. 비록 자일에 확보한 상태지만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등반에서 오름짓은 아주 느리지만 추락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수백 배의 속도로 수직강하하기 때문이다. 최석문씨가 아쉬움을 토로한다.

“어휴, 몸이 맛이 갔네요. 예전에 온사이트로 오른 구간인데, 안 되네요.”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최석문씨는 한 번 더 추락 끝에 기어이 자유등반으로 오버행을 넘어서 다음 볼트까지 진입, 작은 테라스에 올라서며 1피치 등반을 완료한다.

이명희씨 역시 리딩으로 첫 피치에 도전한다. 최석문씨가 추락한 오버행 직전에서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는 더 이상 망설임 없이 연이어 레이백을 하며 익숙한 동작으로 올라선다. 처음엔 바위가 습하다며 다소 자신감 없어하던 것과는 딴판이다.

이어 이명희씨의 확보를 받으며 후등으로 오르는 안종능씨가 연신 엄살을 피운다.

“어휴, 에잇, 으휴, 레이백이 미끄러워~, 무지하게 힘드네.”

하지만 말과 달리 그의 몸은 서서히 바위에 반응하기 시작했고, 파워 넘치는 동작은 기쁨으로 들떠 어렵지 않게 1피치를 끝낸다.

 

 

오버행을 넘어서기 위한 선등자의 고독한 사투

2피치는 30미터 길이에 5.12d급의 크랙과 페이스가 이어진다. 올려다보기만 해도 상단부의 오버행 크럭스는 거의 자유등반이 불가능해 보인다.

안종능씨가 선등에 나섰다. 초반의 커다란 크랙에 캠을 설치하고 자일을 통과시킨 다음, 레이백으로 쉽게 오름짓을 이어간다.  

“이제 떨어져도 안 다치겠네. 아자!”

“내가 이렇게 작은 후렌드를 사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안종능씨가 2피치 상단부 동굴의 천장에 고드름처럼 매달린 바위덩어리 아래서 고민에 빠진다. 그때 최석문씨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훈수를 둔다.

“거기서 왼쪽으로 오르는 것 알지?”

“응….”

하지만 안종능씨는 루트 파인딩에 여전히 어려움을 느꼈는지 여러 차례 오버행을 이룬 바위를 쥐 잡듯이 살펴보면서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고심하고 또 고심하면서 루트 파인딩에 전념한다.

오름짓의 사투는 온전히 선등자의 몫이다. 더불어 고독과 싸움에서도 이겨나가야 한다. 테라스 확보지점에서 들려오는 후등자들의 잡담에 귀기울일 여유가 수직에 선 선등자에게는 없다.

“오랜만에 올랐더니 잘 안 되네.”

안종능씨가 고심 끝에 흘러내린 바위 속에 캠을 설치하고 나서야 좌측으로 바위를 완전히 넘어선다. 설상가상 2피치 나머지는 더 고난도의 루트다. 오버행 아래 난 실크랙이 반원을 그리며 우측으로 뻗어 올라가는데, 붙들고 오를 홀드도 발을 딛고 버틸 스탠스 조차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여기를 어떻게 자유등반한다는 거야. 마지막 한 동작이 사람을 고민하게 만드네.”

안종능씨는 결국 몇 번의 시도가 실패도 돌아가자 자유등반을 포기하고 슬링을 이용해 선등을 이어가 피치를 마친다. 사투를 벌였던 터라 여유를 두고 호흡을 정리하며 주변을 살핀다. 비선대를 비롯한 천불동계곡이 내려다보이고, 하늘을 향해 도열한 화채능선의 침봉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명희씨 역시 리딩으로 올라선다. 상단의 크럭스 지점까지는 일사천리다. 하나하나의 동작이 군더더기 없고 매끄럽다. 그녀가 자유등반으로 올랐던 곳이기에 루트에 대한 동작 하나 하나가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있을 것이다. 실크랙에 접어들어선 이명희씨가 주저앉듯이 자세를 취하며 언더로 크랙을 뜯으며 밸런스를 유지한다. 이어 레이백으로 몸을 버티고 상단의 벽에 발을 딛는다. 한순간만 밸런스가 무너져도 몸이 우측으로 쏠려 그대로 추락하기 쉬운 곳이다. 리드미컬하게 등반을 이어가던 이명희씨가 아쉽게도 다음 동작에서 오름짓을 멈추고 자일에 매달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시도 끝에 크럭스를 넘어선 후 참았던 호흡을 몰아쉰다. 이명희씨의 확보를 받으며 오름짓하던 최석문씨가 “다리에 쥐가 난다”고 엄살을 피우면서도 여유있게 올라선다.

 

 

하늘금 너머로 비상하는 클라이머들

마지막 피치는 독주길이다. 등반길이는 25미터. 난이도는 5.13a이다. 한 피치를 오를 때마다 난이도가 한 등급씩 점프하고 있다. 선등으로 나선 최석문씨가 오른쪽으로 날개처럼 뻗은 벽면에 올라탄다. 이어진 루트는 벽 전체가 오버행이고 실크랙이다. 심지어 작은 홀드 조차 보이지 않는다. 단 한 번의 동작만 어긋나도 추락할 수밖에 없는 구간이다. 실크랙에 접근한 최석문씨의 오름짓이 주춤한다. 그리고 예상한 듯한 추락을 거듭한다.

“명희야 여기 어떻게 올라갔어?”

“왼발 딛고 오른손이 가야돼”

또다시 추락 끝에 최석문씨가 소리를 지른다.

“알았다. 이제.”

포기하지 않은 그의 정신은 살아있었고, 오히려 도전을 즐기는 듯 마음은 더 들떠 보였다. 추락을 거듭할수록 고도에 대한, 벽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는 법이다. 추락에 대한 공포가 컨트롤되는 순간에서야 온전히 자기 실력이 드러나게 된다. 적벽 최상단에서 오름짓을 거듭하던 최석문씨가 하늘금 너머로 날갯짓을 하며 서서히 사라진다. 온 힘을 다해 실크랙을 타고 올라서는 그의 오름짓은 순수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남편과 아내, 친구. 자일파트너를 이룬 이들의 신뢰 속에 등반은 안전하고 여유있게 끝났다. 적벽 정상에 서니 수평선을 이룬 동해바다가 펼쳐진다. 들떴던 마음이 절로 평온해진다. 정상에서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던 최석문씨가 친구 안종능씨에게 말을 건넨다.

“종능아, 올 겨울에 파타고니아 가지 않을래? 세로 토레와 피츠로이 한번 올라가 보자.”

“얼마나 휴가내면 되는데….”

“40일 정도면 되지 않을까?”

원정을 가자는 말을 밥 먹으로 가자는 듯이 쉽게 내던지는 최석문씨의 제안을 안종능씨가 덥석 문다. 설사 확답이 아닐지언정 자일 파트너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없고서야 저리 쉽게 제안하고 응할 수 있을까? 세로 토레와 피츠로이가 어떤 곳인데….

피톤에 건 60미터 자일이 허공을 향해 뻗어 내린다. 힘겹게 올라섰던 적벽을 수직 하강하는 최석문씨가 붉은 벽을 응시하며 등반에 미련이 남았는지 속내를 털어낸다.

“아쉬움이 좀 남네. 우리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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