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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산 사반세기

개척등반 25년

 

타는 목마름으로 개척해온 새로운 벽들

 글 · 김규영 기자  사진 · 자료사진

 

 

인수봉과 선인봉, 설악산으로 대표되던 국내 등반계는 새로운 벽과 마주쳤다. 나날이 향상되는 클라이머들의 등반력을 받쳐줄 고난도 벽과 급증한 등반 인구를 수용할 새로운 암장에 대한 목마름이 바로 그것이다. 90년대 초 개척된 선운산과 간현암은 이러한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단비가 되었고, 이와 더불어 전국적으로 새롭게 개척된 암장들은 이를 뒷받침해 주었다. 새로운 개척 암장으로 5.13급 루트를 넘어 5.14급 루트가 국내에 물꼬가 트였고, 등반인구 상승과 더불어 입신의 경지에 오른 클라이머들도 자연히 늘어나 이제는 5.15급의 벽을 넘은 클라이머가 탄생하는 시대가 왔다.

난도를 높여가는 하드프리 클라이밍의 흐름은 인공등반지를 자유등반화하는 데 이르렀는데, 한편으로 이는 인공등반이 잠시 위축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96년 개척된 갱기폭포 좌벽 인공등반 개척은 자유등반의 흐름에 잠시 밀렸던 인공등반에 새로운 도약을 불러왔다. 새 인공등반지가 여럿 개척되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실력을 가다듬은 전위적인 등반가들이 해외 고산 거벽에 도전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개척 활동은 휴전선 북쪽에서도 계속되었다. 분단 이후 64년만에 국내 등반대가 금강산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2007년에는 남북이 합동으로 금강산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역사적 의미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벽이 아닌 바위에 대한 개척도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큰 의미 없이 지나치던 이름 없는 바위들이 2000년대 들어서 짧지만 강렬한 오름을 추구하는 볼더로 재탄생되어 이름 붙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도봉산, 관악산, 불암산 등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북 운일암반일암, 경남 금정산, 무척산, 울산 신불산, 양양 죽도암, 서산 비룡암 등 전국 곳곳에 볼더가 개척됐고, 볼더링 축제가 열리는 등 새로운 오름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중이다.

 

 

선운산

등반력 향상과 저변화대에 기폭제 역할

고난도 추구와 등반의 대중화로 표현되는 스포츠클라이밍이라는 현대 등반사조가 평범한 골짜기에 지나지 않는 프랑스 남주의 베르동(Verdon)과 비욱스(Buoux)에서 꽃피우게 되었듯이 새로운 시대를 갈구하던 한국 스포츠클라이밍계의 목마름은 선운산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골짜기에서 그 갈증을 풀어낼 수 있었다(2002.05호 발췌).

1994년 4월3일부터 5일까지 3일간 친선 암벽등반 대회와 함께 열린 선운산 2차 개척보고는 한국 최고의 바위터 탄생을 널리 알리는 날이기도 했다. 이미 93년 10월9일 첫 개척보고에서 당시 국내 최고 등급인 5.13c/d급 루트를 비롯한 44개 루트를 선보여 한국 등반계의 미래로 예견되던 선운산 일대의 바위는 파워 클라이밍을 추구하는 현대 등반의 추세에 부합하는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선운산의 바위는 대부분 오버행을 이루고 있다. 크고 작은 포켓홀더에서 언더, 사이드, 오픈 등 홀드의 형태 또한 매우 다양하다. 화산암의 일종인 안산암이 서해의 해풍과 빗물에 부식되면서 수직을 넘는 각도를 만들어냈고, 거대한 오버행에는 다양한 형태로 생성된 홀드를 따라 자연스럽게 등반라인이 이어졌다. 화강암 크랙등반 위주였던 우리나라 암장 상황에 외국 부럽지 않은 고난도 바윗길이 탄생하면서 국내 스포츠클라이밍 인구의 등반력 향상과 늘어나는 등반인구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개척작업이 활발해지던 시기에 기폭제 같은 역할을 했다.

선운산 바윗길은 93년도부터 박현규, 안진석, 김양배, 마경오씨 등의 도솔암 개척으로 시작했다. 이후 강희윤, 손정준, 이일주, 오영민, 김동현씨 등이 개척에 참여하면서 투구바위, 속살바위, 할미바위 등이 개척되어 현재는 총 300여 개의 고난도 자유등반 루트를 가지고 있다. 2006년에는 이곳에서 손상원이 오토매틱(5.14a), 파워파워(5.14b)를 개척해 고난도 개척의 맥을 이은 바 있다.

 

 

간현암

수도권에서 접근 쉽고 초중급도 즐길 수 있어

매주 휴일이 되면 바위 밑 좋은 공터에 수십 수백의 클라이머들로 장사진을 이루는 모습은 간현암만이 가지고 있는 진풍경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간현암은 매주 문전성시를 이루는 한국 최대 등반대상지 중 하나로 우뚝 서 있다(2002.05호 발췌).

93년 원주클라이머스연합회에 의해 개척된 간현암은 당시 한국 최대 등반지로 태어나던 선운산의 그늘에 가려 한동안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95년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레저스포츠 인구가 급증하고 이에 따른 스포츠클라이밍의 열기가 점차 확산되어가는 마당에 초·중급 클라이머들을 중심으로 간현암 이용횟수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97년 IMF 경제 위기가 터지면서 수도권에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간현암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지게 되었다. 5.7급에서 5.13급에 이르는 다양한 루트는 입신의 꿈을 키우는 클라이머뿐만 아니라 스포츠클라이밍 세계로 막 들어온 새내기들이 도전하기도 적합해 클라이밍 대중화 역할을 선도했다.

전국으로 확대된 암장 개척  

90년대 초 경상도 지역은 쟁쟁한 클라이머들을 보유하며 자유등반계에서 중심지로 급부상 하고 있었다. 특히 90년에는 정쌍영씨에 의해 금정산 ‘형님들의 사랑’ 루트가 개척되며 한국 최초 5.13급 등반 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전북 고창 선운산과 원주 간현암이 개척되고 자유등반 중심축이 다시 타 지역으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영남지역 클라이머들은 새로운 바위터에 대한 열망이 커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록파티산악회가 의령 불암산 병풍암을, 포항제철산악회가 포항시 학담암을 개척해 영남 클라이머들의 도전 욕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등반터가 되었다.

전라권에서는 선운산에 버금가는 한국 최난도 암장이 또 한 번 탄생했다. 고 고미영씨와 김병구씨, 용암산악회, 전주 개척산악회 회원들이 2000년에 27개 루트를 개척보고한 부안군 변산반도 장군바위가 바로 그것이다. 가장 쉬운 루트가 5.10급이고 5.14급 루트도 5개에 이르는 데다 어프로치가 짧고 민박이나 야영이 가능해 고난도 암장으로 갖춰야할 요소들을 두루 갖춘 곳으로 평가받았다. 그해 이곳에서 김정식씨가 5.14a ‘자유2000’을 등반했는데, 이는 국내에 소재한 5.14급 루트를 최초로 오른 기록이다.

인공등반루트 프리화

1999년 조규복, 김명학씨와 함께 적벽을 찾은 손정준씨는 ‘에코-독주길’을 올라 한국 최초 적벽 자유등반에 성공, 인공등반루트 프리화라는 새로운 장을 열어젖혔다(2010.08호 발췌). 전국 곳곳에 개척된 고난도 등반지가 보여주듯 한국 클라이머들의 기량도 나날이 발전했다. 따라서 과거 인공등반으로 오르던 인수봉과 선인봉, 설악산 적벽 등이 자유등반의 새로운 도전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특히 인공등반의 대명사 설악산 적벽에 놓인 루트를 자유등반으로 연결한 것은 새로운 재개척이라 할 수 있다.

적벽 자유등반은 1988년 크로니길 첫째 마디 상단까지 진출한 윤대표씨에 의해 시작했다. 이후 한국등산학교 동창회 암벽등급조사대가 90년 자유등반화 작업에 나서 정쌍용씨가 교대길 첫 마디를, 이근택씨가 크로니길 첫 마디와 에코길 둘째 마디, 독주길 첫 마디 상단을, 허송회씨가 에코길 첫 마디와 둘째 마디 상단을 자유등반했다.

그리고 첫 자유등반 물결을 맞은 지 11만에 적벽에 자유등반 시대가 열렸다. 1999년 7월 손정준, 조규복, 김명학씨가 그 주인공으로, 적벽 에코길과 독주길을 연결해 자유등반을 마친 것이다. 이후 2009년 이명희씨가 에코-독주길에 도전해 여성클라이머로서 최초로 적벽 에코-독주길을 자유등반에 성공했다.

국내 5.13~5.14급 루트 개척

90년 8월28일 금정산 부채바위 ‘형님들의 사랑(5.13a)’을 정쌍영씨가 초등을 시작으로 한국 등반계는 5.13급에 들어섰다. 이후 선운산, 간현암 등 굵직굵직한 암장이 개척되면서 5.13급 루트가 대거 나오기 시작했고, 그중에서 변산반도 장군봉, 선운산에는 5.14급 루트가 개척되었다.

5.14급에 진입한 클라이머들도 속속 등장했는데, 국내에 개척된 5.14급 루트를 처음 오른 이는 김정식씨로 변산반도 장군바위 ‘자유2000(5.14a)’을 2001년 초등했다. 이후 2006년에 손상원씨가 선운산 '오토매틱(5.14a)'와 '파워파워(5.14b)'를 초등하면서 국내 5.14급 루트 개척의 맥을 이었다.

충북 제천 저승봉

가장 최근에는 충북 제천 저승봉 북벽이 개척되었다. 2014년 10월 개척보고회를 가진 저승봉 암장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북한산 암벽 ‘자율이용신고제’ 도입과 설악산 울산바위, 천화대 등 4곳 등반 금지 소문이 도는 어수산한 상황에서 들려온 소식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장형원씨를 필두로 문성욱 최석문 이명희 안종릉 강태원 김진형 조연식 박미경 김은숙씨 등 20여 년 전 인수봉 야영장에서 자일의 정을 키운 이들이 의기투합해 7개월에 걸쳐 개척했는데, 수직고 100m, 폭 200m에 이르는 암벽은 중부권에서 보기 드문 대형 암장이다. 등반거리 120m에 이르는 멀티피치 루트만도 4개가 있고, 난도는 5.8급에서 5.13급으로 다양해 초·중급자 모두 등반이 가능한 대중적인 암장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인공등반

고산 거벽등반에 필수적인 등반기술

1930~40년대 금강산 집선봉, 북한산 인수봉 등지에서 벌인 루트개척, 60~70년대 인수봉, 선인봉에서 행해진 주된 등반활동은 주로 인공등반 기술에 의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80~90년대에 들어서 장비의 첨예화와 개인 등반기량 향상은 인공등반 코스를 점차 자유등반화하는 변화를 가져왔고, 상대적으로 인공등반 기술은 점차 퇴색되는 듯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96년 1월 고 최승철·김형진씨가 갱기폭포 좌벽에 등반길이 110m, 최고난도 5.9 A3급 ‘웅조철진’ 루트를 인공등반으로 개척했다. 같은 해 고 최승철·김형진씨는 소승폭 우벽에 등반길이 87m, 3마디. 최고난도 5.11b A4급 ‘허큘리스’ 루트를 개척했고, 97년에는 거벽 인공등반기술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익스트림 라이더 등산학교를 설립했다.

인공등반 개척은 계속 이어져 1998년 1월 장기헌씨와 김점숙씨, 고 최승철·김형진씨는 갱기폭포 벽 중앙의 오버행 천장 등반에 나서 ‘천국’과 ‘샤모니’ 루트를 개척했다. 1998년 9월 고 최승철·김형진·신상만은 히말라야 탈레이사가르 북벽 블랙 피라미드 루트를 개척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고산 거벽으로 향한 클라이머들의 도전은 끊이지 않았다.

2002년 1월 임성묵, 장기헌 2인조가 갱기폭 좌벽 ‘친구에게’를 개척하고, 같은 해 샤모니클럽 남인우씨가 소승폭 좌벽 4개 루트를 개척하는 등 국내 인공등반루트 개척은 한동안 계속 이어졌고, 단련된 국내 거벽등반가들은 트랑고타워, 가셔브룸 4봉, 아민브락, 로체 남벽 등 해외 고봉과 고산거벽에서 새로운 도전과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금강산 개척등반

남북합동 해외원정 물꼬 틀 날 기대

금강산 암벽개척사는 금강산이 가진 본연의 가치를 제쳐두더라도 통일이라는 민족 염원의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분단 이후 남한측 등반가의 금강산 접근은 당연히 불가능했고, 85년 체코슬로바키아 등반대와 87년 일본 등반대가 금강산 암벽등반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다만 재미교포 선우중옥씨를 비롯한 4인의 백령길 등반 소식이 본지 89년 11월 창간특종기사로 실렸다.

98년 금강산 관광이 현실화 되면서 분단 후 남쪽 한국인의 금강산 방문이 허용되었다. 산악계에서도 금강산 등반에 대한 희망이 생겼고 마침내 2005년 기회가 찾아왔다. 2005년 9월1일부터 7일까지 서울시산악조난구조대가 금강산 구룡대 일원에 2개 암벽코스 개척등반을 한 것이다. 아산길(5마디 120m)과 독립문길(4마디 100m)은 등반사에 있어 분단을 극복하고 64년만에 금강산에 새 길을 낸 쾌거였는데,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2007년 6월 대한산악연맹 산악구조대원 17명과 북한의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의 금강산 산악구급봉사대원 7~8명으로 구성된 남북 금강산 암벽코스 개척등반대가 합동으로 금강산 세존봉에 ‘평화의 길’과 ‘통일의 길’, 구룡대에 ‘대명길’ 루트를 개척했다. 남북의 산악인들이 한 팀을 이뤄 금강산에 암벽루트를 개척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구룡폭포 우벽인 구룡대 ‘대명길’은 기존 ‘아산길’과 ‘독립문길’에 이어 세 번째로 개척됐으며, 120여m 벽에 5피치를 이룬다. 특히 세존봉 코스 ‘평화의 길’과 ‘통일의 길’은 200여m 벽에 등반길이 250여m에 이르러 광복 후 개척된 루트 중 남북 통틀어 최장 규모였다.

금강산 합동 개척등반은 차후 금강산 개척등반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는 계기가 된 것과 더불어 차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합동등반에 대한 논의도 진행되는 성과를 거뒀으나 한반도 정세 변화에 휩쓸려 합동 해외원정도 금강산 등반도 현재는 다시 모두 닫힌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볼더링

축제까지 열릴 정도로 무르익은 야외 레포츠

항상 제자리에 큼지막하게 버티고 있지만 줄을 달고 오르기에는 너무 낮은, 그래서 가끔 재미삼아 붙어보는 것 외에 단지 휴식처나 이정표의 역할로 지나치던 바위에게 하나 둘 이름이 붙기 시작했다. 이름을 불러주자 볼더가 된 바위들엔 짧지만 강력한 오름을 추구하는 클라이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볼더링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정착된 때는 2000년대 초반이다. 물론 그것도 수도권 일부 지역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지방의 많은 지역들은 각 지방에 거주하는 외국인 등반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차츰 개척된 볼더가 많아지고 볼더링을 즐기는 인구도 늘어나 현재는 자연바위 볼더링 페스티벌이 열리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2006년 불암산 볼더를 개척한 조규복 차호은씨, 2012년 무척산 볼더를 개척한 김영화씨 등 볼더 개척자들과 함께 <사람과 산>은 전국을 대상으로 한 볼더링 연재를 해왔다. 울산 신불산, 양산 금정산, 광주 무등산, 대구 팔공산, 진안 운일암반일암, 동해 두타산, 안양유원지, 파주 심학산, 양양 죽도암, 서산 비룡암, 목포 유달산, 김해 무척산 등이 그곳이고,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볼더링 개척지는 많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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