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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클라이밍
 

 

살레와와 함께하는 The Wall

춘천 드름산 의암바위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시절!”

의암호반에 자리한 접근 쉬운 중급자용 암장

글 · 임성묵 기자  사진 · 주민욱 기자  협찬 · 살레와

 

 

8월의 염천이 맹렬하기는 했어도 시간의 흐름을 돌려세우지는 못하는 법. 차창으로 들이치는 바람이 어느덧 선뜻하다. 높고 푸르게 열린 하늘을 벗 삼아 잠시 달렸을 뿐인데 춘천이다. 의암호반으로 이어진 2차선 도로에서 잠시 멀어진 순간 길은 산으로 열렸다. 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는가. 매미 소리 아우성이다. 어린 감이 서서히 익어가고 마음속으로 멸종되었다고 생각한 투구꽃은 길섶에서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다. 햇살은 바늘로 찌른 것처럼 따갑지만 드름산(357.4m) 숲 속엔 나무가 많아 청량한 그늘이 드리웠다. 가을로 열린 등산로를 따라 오르자 너른 호수를 굽어보는 거대 암벽과 마주한다. 이름하여 의암바위.

이곳에 길이 난 건 2000년대 초반 맹일억, 이병주, 김영욱, 박규환씨 등에 의해 7개 루트가 열리면서다. 바통을 이어받은 춘천클라이머스 회원들은 10개 루트를 추가로 개척해 크랙과 슬랩, 페이스가 공존하는 종합암장을 일궈냈다.

드름산에는 의암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멋진 암릉길도 있다. 지난 2008년 춘천클라이머스가 삼복더위 속에서 개척한 총 7피치, 등반길이 250m에 이르는 ‘춘클리지’가 바로 그 길. 이 리지의 개척으로 드름산은 암릉과 암벽을 모두 품은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의외로 의암바위 보다 춘클리지에 클라이머들이 몰리는 건 조망의 차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도로에서 1분이면 암장에 닿을 수 있는 짧은 어프로치도 의암호를 적나라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살벌한 고도감을 당해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의암바위의 조망이 아주 꽝인 건 아니다. 60m에 육박하는 최장 루트 ‘석이(5.10c)’의 정상에 서면 춘천시가 서쪽을 감싸는 의암호반의 변모를 오롯이 눈에 담을 수 있다. 고개를 돌리면 하중도와 상중도, 중도, 위도 등 4개 섬이 올망졸망 떠 있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된다. 이때 호반에 비친 새털구름은 의암호가 선사하는 가을 보너스다.

 

 

거대한 암벽, 미끄러운 규암

바위보다 호수에 시선을 내준 일행의 모습을 보니 가을은 사색의 계절임이 틀림없다. 클라이밍의 본질은 오르는 것이라지만 가끔은 게으름을 피워보아도 좋다. 사색은 벽 앞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순간부터 등반 후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는 복기(復碁)까지의 시간이다. 나를 돌아보는 클라이머는 쑥쑥 성장한다.

암장을 둘러싼 숲은 고요하고 아늑하다. 호수 건너엔 기암절벽을 품은 삼악산이 버티고 섰고 물길과 나란한 길엔 자전거만 달린다. 호수를 배경에 두고 등반을 준비하는 이진아(39세·경원전문대 OB)씨의 손놀림이 경쾌하다. 슬쩍 드러난 오버행의 날 선 경사와 대비된다. 흔치 않은 규암으로 이루어진 의암바위는 제1암장과 제2암장으로 나뉘는데, 이진아씨는 크랙과 칸테의 조합을 이룬 춘클B(5.10c) 앞에 섰다. 제1암장의 좌벽이다.

몸 풀려고 나섰다가 강적을 만난 격이다. 어렵사리 크랙이 시작되는 턱을 올라채면 난관은 정작 이제부터다. 그녀 위로는 정말이지 빤빤한 페이스다. 스탠스도 좋지 않아 균형을 잘 잡아서 올라야 하는 구간. 극도의 긴장감이 발끝에 걸리고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크럭스란 바로 이런 곳이다. 한 걸음에 불과한 하나의 큰 움직임이며 여러 동작으로 쪼개서 오를 수 없는 곳. 미세한 균형감은 나비 날갯짓 같은 바람에도 무참히 깨어질 수 있고, 그렇다고 다른 것에 의지해볼 수 없는 좁고 가파른 통로다. 거기를 돌파하는 방법은 오로지 자신을 믿고 밀어붙이든지 아니면 자신을 내던져야 한다.

무엇을 깨달았는지 알 수 없지만 진아씨는 발밑을 주의 깊게 살피며 한 걸음씩 전진한다. 아슬아슬한 구간을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로프는 술술 풀려 그녀를 따라가고 발끝에 걸리는 스탠스는 아무리 작아도 밀리지 않는다. “휴~!” 고비를 넘어설 때쯤 어디엔가 고여 있던 바람이 때를 맞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잘했다고-.

좌벽에는 고만고만한 루트들의 연속이다. 폭 2m를 사이에 두고 5.10급 코스들이 연이었다. 그중 페이스 루트인 춘클C(5.10c)를 선택한 조경아(쿠드클라이밍센터장)씨도 몸을 풀어볼 기세다. 오후에 반드시 등반해야 할 높고 가파르며 엄중한 우벽 등반의 전초전인 셈.

규암 바위의 감촉이 낯설다. 천천히 이어가던 걸음을 멈춘다. 턱이 진 곳을 경계로 바위의 배열이 달라지는 부분이다. 미끈한 바위엔 초크가 약이다. 없던 마찰력이 생기니 몸이 움직인다. 금방이라도 빠져버릴 것 같은 손끝에 믿음을 부여하고 떨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버리니, …넘어섰다. 처음부터 할 수 있었던 거지만 등반하기 전까지는 그저 상상 속의 일일 뿐이다.

한 차례 땀을 쏟아낸 일행들이 짧은 휴식을 취하는 사이 공허함이 숲을 채운다. 풍경이 바람에 일었다. 천성이 밝은 이진아씨의 수다만 아니었다면 적막강산일 것이다. 아직 푸른 단풍나무는 아무도 모르게 바람에 흔들리지만 지금은 그 흔들림마저 고요하다. 바위벽과 물과 수목으로 둘러싸인 의암바위에서는-.

 

 

살벌한 트레버스 구간

오후가 돼서도 암장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숲을 파고든 경적 소리에 암장이 도로에서 멀지 않음을 깨닫는다. 회색 벽은 눈부신 가을 햇살을 반사했다. 저 멀리 들리는 소리라곤 “줄 줘!” “왼쪽에 있는 홀드 잡아!” 촬영을 위해 고정로프를 설치하는 일행들의 낯익은 음성뿐이다.

제1암장 우벽으로 나섰다. 높이 60m에 경사가 120도를 넘는 벽은 세차고 진지한 몸짓을 요구했다. 그 중 ‘곰 발바닥’(5.11d)은 중앙 루프를 왼쪽으로 관통해 오르는 루트다. 이곳에 오르려면 우선 하단 슬랩을 올라야 한다. 볼트 간격이 제법 멀어 정신력을 시험하며 올라야 하는 구간이다. 언제나처럼 조경아씨가 앞장선다.

선등은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일이다.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중력을 거스르는 일이기도 하다. 누구나 등반할 수 있지만 누구나 선등할 수 있는 없다. 그것은 기술과 힘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별한 정신력이 필요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선등의 가장 큰 걸림돌은 등반의 어려움이라기보다는 공포감이다. 등반이 내포한 위험이 사람을 경직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것까지가 등반이다. 조경아씨는 20년 넘게 그 행위에 매진한 이다.

완경사 슬랩을 올라 작은 테라스에 도착한 그가 숨을 고른다. 천장을 향해 이어진 페이스에 붙박인 다양한 홀드는 조합하기에 따라서 극과 극의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출발!” 최상의 조합을 머릿속에 그렸나 보다. 홀드는 손에 감겨들어 왔지만 역시 암질이 문제였다. 초크가 눈처럼 내린다.

“루프 옆으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겠어요?” 주민욱 기자는 사진이 고프다. 천장에서 트레버스라! 쉽지 않은 진행이다. 숨을 멈추었던 그가 다시 움직인 건 어떤 결심이 선 이후다. 그의 큰 키를 고려하더라도 홀드 간격이 너무 멀다. 자칫 균형을 잃는다면 100% 몸이 뒤집힌 채 큰 원호를 그리며 왼쪽 벽에 처박힐 것이 틀림없다.

“도대체 몇m나 온 거야? 7m? 떨어지면?” 이런 가정이 개입하자 보는 사람이 더욱 손에 땀을 쥔다. 이건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순간 조경아씨가 살피지 못한 볼트가 내 눈에 들어왔다. “허리 옆에 볼트가 있어요. 일단 확보하세요!” 즉각 반응이 티 날 정도로 갈라진 목소리에 놀란 그가 재빠르게 줄을 걸었다. 그러나 촬영을 위해서는 옆이 아니라 위로 올라야 하는 것을-. 위로 오르려면 건 로프를 다시 빼야 하는 것을-. 이 세상에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방법은 없나 보다.

안전고리가 풀어진 폭탄처럼 자유로운(?) 몸이 된 그는 오로지 위로 올랐다. 확보를 보는 진아는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을 머리에 그리며 즉각 대처할 준비를 했다. 그 기나긴 횡단구간을 지나는 조경아씨를 바라보며 나는 모든 고빗사위는 그것 하나로 전체가 된다고 생각했다.

“OK! 조심해서 다운클라이밍 하세요.” 짧고 긴 기다림 끝에 주 기자가 사인을 냈다. 의암바위를 바라보며 올랐으니 이제 의암바위에서 맞이한 긴박했던 순간을 등에 지고 돌아갈 일만 남았다. 가을은 등반의 계절이자 사색의 계절이다.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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