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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 대특집 설악산에서 여름나기 ④ 개척등반

 

험한 세상 건너가는         

      이틀간의 거친 항해

 

인간은 파괴되어 죽을지언정 결코 패배하지는 않는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노인과 바다」중에서-

 

정승권씨와 함께 한 소토왕골 암벽 개척 설악산 소토왕골 암장에 150미터짜리 루트가 새롭게 탄생했다. 정승권씨(41세·정승권등산학교 교장)와 본지 기자가 2박3일에 걸쳐 개척한 이 루트의 이름은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Ⅲ 5.8 A4)’. 더 높은 등반 세계로 건너가려는 클라이머들에게 다리가 되기를 기원하면서.

글|윤대훈 기자   사진|장병희 기자  장비협찬|(주)호상사

 

 꼭 40년 전 오늘, 내가 제일 좋아하던 헤밍웨이가 자신의 머리 속에 엽총 탄환을 박아 넣고 생을 마쳤다. 그날도 오늘처럼 햇빛이 이렇게 무성했을 것이다. 설악은 사방을 가득 채운 한여름의 열기와 빛으로 휩싸여 있었다. 설악산 소공원에서 나는 아득한 현기증을 느꼈다.

그 불볕처럼 이글거리는 뙤약볕 아래를 50킬로그램에 달하는 홀백을 지고 허리를 반쯤 접은 채 소토왕골로 접어들었다. 설악은 온통 검푸른 신록의 갑옷으로 무장한 검투사 마냥 냉정하고 의젓하고 당당했다. 장마라는데 비 한 방울 비치지 않는 하늘을 쳐다보며 우리는 절망하고 있었다. 혹 헤밍웨이도 이 뜨거운 하늘에 절망했던 것은 아닐까. 코가 땅에 닿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고 그러고도 두 다리가 한없이 후들거릴 쯤에야 우리는 겨우 캠프지에 도착했다. 덥다. 지독하게 덥다. 7월 2일이었다. 그리고 헤밍웨이가 떠난 날이었다. 한여름 설악산 소토왕골에 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짓을 한번 더 하기 위해 다시 내려가야 했다.

 

산티아고와 마놀로

간밤 쏟아지는 별빛과 흐르는 물소리와 밤하늘을 이리저리 항해하는 반딧불이의 깜박이는 불빛을 보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헤밍웨이가 떠났던 그 무심한 날은 이제 지나고 오늘은 또 오늘의 ‘태양이 또다시 떠오르고’ 있었다. 망원경을 든 채 소토왕골의 계류를 따라 올라 비스듬한 경사의 바위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그리고 산티아고 노인이 망망한 바다에서 고기를 찾아 떠돌 듯 우리는 우리가 항해할 루트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망원경으로 끝없이 벽을 관찰하던 정승권씨가 대략적인 선을 그려냈고, 이 선을 그려내기까지는 적지 않은 집중과 노련한 어부가 끈질기게 고기를 기다리듯 집요한 인내가 요구되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서서히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으로 빠져 들어갔다.

노인 산티아고처럼 집요하고 노련한, 그러나 결코 패배하지 않는 정승권이라는 사내. 그 옆에서 나는 산티아고와 함께 항해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소년 마놀로였다.

일단 소토왕골 벽에서 등반이 가능한 선을 찾아낸 산티아고와 마놀로 2인조는 혹 더 큰 대어를 낚을 수 있을까 싶어 또 다른 바다 비선대 적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적벽에서도 우리는 끝없이 항해 루트를 찾기 위해 망원경을 눈에 달고 있었고, 적벽의 출발지점까지 올라야 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적벽은 늘 그렇게 서 있던 것처럼 그와 나, 노인과 소년을 금방 집어삼킬 듯한 기세의 파도처럼 덮치듯 위태로운 모습으로 서 있었다. 최근 재등이 이루어진 무라길(A4) 오른쪽 크랙을 따라 등반이 가능한 선을 이어보고 소토왕골 벽에서 제대로 된 등반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적벽에 새로운 루트를 내기로 하고 우리는 다시 소토왕골로 돌아왔다. 설악은 저항령 부근과 공룡능선 위로 무거운 먹구름을 잔뜩 짊어지고 있었다. 소리 없이 내리는 어둠이 설악을 온통 검게 색칠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일은 비가 올 기세다.

드디어 항해가 시작되었다.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거친 바위 위를 정씨는 노련한 어부처럼 매끄럽게 항해하기 시작했다. 출발지점은 무성한 잡목 숲 지대다. 출발지점을 벗어나자마자 행거 볼트를 하나 설치했다. 루트 왼쪽으로 잡목지대가 이어져 쉽게 오를 수 있지만 정씨는 역시 노련하고 숙련된 어부였다. 그는 가능한 환히 드러난 벽으로 길을 이어갔고, 이 볼트는 루트의 시작점과 추락을 염두에 두고 설치한 것이었다. 정승권씨가 이리저리 갈라진 크랙을 이용해서 오르다가 다시 리벳볼트를 하나 더 설치한다.

이윽고 왼편의 크랙을 넘어 작은 오버행을 올라서는 순간 추락. 난 그도 추락할 수 있구나 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여태 그이는 결코 추락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추락거리가 짧아 별다른 부상은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이도 숱한 추락의 경험과 생과 사를 오가는 부상을 입기도 했었다. 하긴 그러한 경험들이 모여 지금의 헤라클레스와 오늘 이곳의 산티아고가 되었겠지.

오버행 위에 박은 버드빅이 빠졌다. 암질이 대체로 무르고 약해 쉽게 박힌 듯한 버드빅이 체중이 실리자 견디지 못하고 빠져버린 것이다.

다시 버드빅을 설치하고 넘어선 정씨가 오버행 밑에서 갑자기 왼팔을 휘두른다. 그러더니 조금 내려와서 홀링용으로 달고 가던 스태틱 로프(탄력이 없어 늘어나지 않는 홀링과 주마링 전용 로프)를 사려들고 휘두르기 시작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오버행 밑에 벌집이 있었고, 그 중에 한 녀석이 정씨의 왼쪽 목 부위를 공격했던 것이다. 로프를 휘두른 것은 벌을 쫓기 위한 것이었다. 그이의 왼쪽 목덜미에는 벌에 쐰 자국이 시뻘겋게 남고 말았다. 산티아고의 고기를 물어뜯던 상어처럼.

 

매달린 잠 그리고 달빛

무시무시한 벌을 피해 오버행을 넘어서면 양호한 크랙이 이어진다. 이곳을 캠을 여러 개 사용해 오르면 훅 구간이 두 번 연속해서 나타난다. 이곳을 올라서 좁은 테라스를 이용해 첫 번째 마디를 마무리했다. 이곳에는 행거볼트 두 개와 리벳볼트 한 개를 설치했다.

첫마디를 오르는 그의 등반모습을 지켜보며 확보를 보던 나는 목이 부러질 지경이었다. 누워서 확보를 보면 좋으련만 무시로 떨어지는 낙석과 바닥에 질펀하게 물이 흐르는지라 그럴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쳐다보지 않고 로프만 자꾸 풀어주자니 아까의 추락이 자꾸만 생각난다. 더구나 산티아고를 따라온 마놀로가 누울 수는 없었다.

내 목이 더 이상 좌우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야 첫마디 등반이 끝났다. 확보지점을 마무리한 그는 어렵게 올라간 그 높이를 너무도 쉽게 내려와 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나와 함께 주마링으로 첫마디를 다시 올랐다. 바로 확보물을 회수하는 방법을 친절하고 자세히 알려주기 위함이다. 마치 산티아고가 마놀로에게 낚시를 가르치는 것처럼.

한여름의 해는 아직도 한 뼘쯤 남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하강해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는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설악의 밤은 덮치듯 다가왔다. 순식간에 사위가 어두워지고 노련한 어부와 풋내기 소년은 설악의 적막 속에서 다시 조각배를 타고 항해를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주마링으로 첫마디를 오른 후 우리는 소토왕골로 들어올 때 우리를 절망시켰던 그 무거운 홀백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 홀링 땜에 아마 내 오른쪽 다리는 남들보다 훨씬 두꺼울 거야.”

정씨는 미니트랙션을 설치하고 어센더를 발에 걸어 끝없이 밟아 내린다. 그리고는 신속하게 포타레지를 설치하고 우리는 망망한 어둠의 바다에서 잠시 정박한 채 내일의 항해를 기다리며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저 아래 까마득한 어딘가에서 장병희 사진기자의 랜턴불빛이 가물가물하게만 보인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모기 한 마리 없다. 달빛이 서서히 우리가 내일 항해해야 할 벽 상단부를 비쳐주기 시작했다.

어느덧 날이 밝았다. 포타레지에서의 밤은 생각보다 훨씬 편하고 쾌적했다. 또다시 떠오른 태양이 설악의 여기저기를 비춰대고 있었고 그 중에서 울산바위는 성큼 눈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펄쩍 뛴다면 충분히 건너갈 수 있을 것 만 같다.

아침나절만 잠깐 비춘 태양은 이내 몰려오는 먹구름과 소나기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오늘의 항해는 폭풍우 속의 항해가 될 것 같다. 포타레지 위에서 커피를 끓이고 빵으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등반보다 더 어려운 자세로 중요한 아침 생리현상을 해결했다. 그리고는 침낭과 장비들을 다시 홀백에 집어넣고 포타레지를 걷어 매달아 두었다. 이제 다시 항해 시작!

간간이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이제 산티아고가 되어버린 정씨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파도를 헤치듯 이리저리 이어지는 크랙을 따라 끝없이 오른다.

“아! 이 짜릿한 전율.”산티아고는 위태로운 파도를 넘을 때마다 이렇게 내뱉는다. 마놀로의 눈에는 산티아고가 고기를 잡는 것보다는 저 위태로운 항해를 더 즐기는 것으로만 보였다. 두 개의 오버행 사이로 이어지는 지점에서 산티아고는 한참을 망설였다. 전체 루트에서 가장 어려운 지점이다. 오버행 사이의 벽을 넘어가려는 듯했으나 다시 왼쪽 오버행의 턱 밑에다 앵글하켄을 박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산티아고가 거대한 고기를 낚는 순간. 마놀로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래더를 걸고 일어서는 순간 추락. 이번엔 제법 충격이 전해졌다. 그 지칠 줄 모르던 헤라클레스가 추락하다니…. 난 또다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공포와 긴장과 싸워야 했다. 그리고 속으로는 끝없이 야구선수 디마지오를 불러댔다. 산티아고처럼. 그러나 난 마놀로였다. 별 도움이 못되고 있다.

산티아고의 추락을 보는 순간 풋내기 마놀로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전날 아무렇지도 않게 매달려 잠을 잤던 이 벽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저 아래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소토왕골 계곡의 물줄기처럼 두려움과 긴장이 내 등줄기를 타고 끝없이 오르내린다. 그리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지난 겨울 그와 함께 토왕성폭포를 오르며 스물한시간을 벽에 매달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난 다시는 그의 등반에 따라나서지 않으리라고 골백번도 더 다짐했었는데…. 혹시나 하고 따라나섰던 이번 등반에서 다시 그때의 춥고 무서웠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난 이제 무슨 일들이 벌어질까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겁을 집어먹고 긴장하고 있었다.

 

죽을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그러나 산티아고는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 아랑곳하지 않고 앵글하켄이 빠졌던 자리에 다시 로스트애로우를 박고 일어서더니 오버행 너머로 서서히 사라져갔다. 로프가 끝없이 이어져 풀려 나간다. 난 이제 이 커다란 벽 중간에서 비를 맞으며 혼자 있어야 했다. 무서워졌다. 한참을 그리그리를 통해 빠져나가는 로프만 바라보았다. 그러다 올려다 본 순간 이제 그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쏟아지는 비가 온몸을 적시고 나면 어김없이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이 나타나 다시 젖은 옷을 말린다. 젖었다가 마르기를 세 번 정도 했을 무렵 저 어딘지 모를 파도너머에서 희미하게 “완료!”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산티아고가 배를 댈 곳을 찾았나보다. 반가왔다.

이 커다란 벽에 혼자서 버려진 듯한 기분 때문에 무섭고 외로웠는데 역시 산티아고는 마놀로를 잊지 않고 있었다. 난 신나게 주마링을 시작했고, 산티아고가 곳곳에 던져놓은 낚시바늘들을 거둬야 했다. 그가 던져 놓은 낚시들은 역시 노련한 어부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너트와 캠, 버드빅 등을 절묘한 포인트마다에 설치해 두었다.

그가 거대한 고기와 사투를 벌였던 오버행 턱밑에는 로스트애로우가 단단히 박혀 있었다. 로프에 매달려 자꾸만 튕겨지는 바람에 회수하는데 애를 먹어야했고, 겨우 올라선 오버행 위에는 또 하나의 커다란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 이곳을 넘어서니 세로로 갈라진 크랙이 이어진다. 이곳에 산티아고는 리벳볼트를 하나 더 설치했다. 이윽고 올라선 두 번째 마디의 종료지점은 널찍한 테라스였다. 여기저기 잡목들도 있었고, 편안하게 서 있을 수 있어 몸과 마음이 다 편안했다. 확보의자에 앉아서 목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위를 쳐다보아야 했던 첫마디 종료지점에 비한다면 이곳은 폭풍과 파도를 피할 수 있는 안락한 피항지였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울산암이 지척으로 다가와 있었다. 수직으로 약 100미터를 오른 후 이렇듯 편안히 서 있을 수 있는 곳이 있다니 이제 이곳은 이곳을 항해하는 어부들에게 편안한 중간 정박지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곳을 ‘아바나’라고 명명했다.

또다시 비가 쏟아진다. 옷과 장비를 흠뻑 적시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비구름은 머리 위의 바위를 넘어 또 흘러가 버린다. 비구름이 넘나들고 어느 곳으로는 햇살이 비쳐지는 설악을 이곳 아무도 오른 적 없는 벽에서 매달려 바라보는 것은 커다란 흥분이었다. 더군다나 내 어릴 적 우상이었던 정승권씨와 함께 등반을 한다는 것은 마놀로가 산티아고와 함께 고기를 잡으러 떠나는 것 못지 않은 흥분이었다.

비가 또 쏟아진다. 난 이제 등반을 마치고 싶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이 까마득한 높이가 무서웠고, 자꾸만 쏟아지는 비 때문에 온통 젖어버린 몸이 자꾸만 덜덜 떨려왔다. 추운 것만은 꼭 아니었다. 그리고 뱃속에서는 꼬르륵대는 소리가 우렁차다. 마치 거친 파도소리처럼. 아침 포타레지에서 먹은 빵 한 조각이 유일했다. 첫마디 종료지점에 매달아 둔 물통이 자꾸만 떠오르고 입에서는 단내가 자꾸만 났다. 시원한 캔맥주가 간절했다.

그러나 내 이러한 속마음과는 아랑곳없이 저 지칠 줄 모르는 산티아고는 또 오르기 시작한다. 그것도 콧노래까지 흥얼거린다.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의 편지 한장

고이 접어 보내오

이번엔 ‘이등병의 편지’였다. 지난겨울 이중화를 신은 채 트럭을 운전하며 한계령을 내려 올 때는 휘파람으로 ‘한계령’을 불렀었다. 지금은 이등병이 한계령을 넘어 설악의 속 깊은 곳에서 벽에 매달린 채 저 험한 세상을 향해 편지를 쓰고 있다. 그 이등병이 이제는 일등병으로 진급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산티아고는 이제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끝없이 빠져나가던 로프가 이제 5미터 가량만 겨우 남았다.

 

드디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희미하게 “완료”소리가 들린다. 난 또 비장한 각오로 오르기 시작했다. 너트와 캠을 회수하고, 부가부 1개를 회수하다가 그만 지치고 말았다. 아무리 위 아래로 두들겨도 요지부동 빠질 기미가 없다. 난 수없이 갈등했다. 그냥 두고 갈까? 그러나 이걸 그냥 두고 간다면 산티아고가 화낼지도 모른다. 마놀로라면 포기할까? 난 위아래로 거의 삼백번 정도씩 두들겼다. 그리고 부가부 주변의 바위들을 수없이 쪼아낸 끝에 결국 회수에 성공했다. “잘 했어. 마놀로” 난 속으로 나를 칭찬했다.

그리고 끈질기게 벽을 올랐다. 마지막 구간은 캠설치가 연속되었다.

이윽고 정상에 올라섰을 때 산티아고는 웃통을 벗어 부친 채 멀리 달마봉과 속초 너머의 동해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산티아고도 고기를 잡고 돌아와선 깊고 긴 잠에 빠졌지. 그래. 이젠 내려가서 깊은 잠을 자야지.’

정상은 지난 5월에 다녀갔던 ‘한편의 시를 위한 길’ 리지의 세 번째 마디 종료지점이었다. 세 번째 마디 종료지점에는 행거 볼트와 암각을 이용하여 확보지점을 마련했다. 세 번에 걸친 하강 끝에 다시 바닥으로 내려왔다. 서서히 사위에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한다.

처음 벽을 관찰했던 계곡 가에 누웠다. 그리고 우리가 올랐던 벽을 쳐다보았다. 금새 목이 아파 온다. 정찰 하루와 등반 이틀을 소요하여 이곳 소토왕골 암장에서 가장 깨끗한 벽을 골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루트를 완성했다.

그리고 노인과 소년은 소리 없이 깊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산티아고는 이 루트를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라고 명명했다. 이틀간 험한 파도를 건너 항해했던 루트에 딱 걸 맞는 이름이다. 그리고 이 루트가 계기가 되어 더 많은 클라이머들이 더 수준 높은 등반을 이루고 더 많은 코스가 개척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실려있기도 하다.

험한 세상을 건너갔다가 이제 돌아가야 하는 세상은 조금쯤 순해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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