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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등반_ 요세미티 엘 캐피탄 조디악

 

햇살, 조디악, 그리고 꿈의 메스칼리토

글 사진 · 조소영(익스트림 라이더 등산학교 44기)

 

나는 2년 연속 요세미티를 다녀왔다. 2018년에는 휴가차 갔었다. 거기는 햇살이 끝내주니까. 나는 휴학 중이고 할 일이 없었다. 그때 원정을 떠나며 주변에 마구 자랑하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ER(익스트림 라이더 등산학교)의 마당발 고경한 선생님이다.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쫓아갔다. 선생님은 비행기 표를 끊어온 내 패기에 항복하고 데려가 주셨다. 그때 ER은 전설에나 나오는 학교였다. 한국등산학교 정규반 87기 에이스였던 김우준 형마저 언급할 때는 목소리를 낮추던 그런 학교. 그리고 대원들과 원정 생활을 함께하며 나는 말 그대로 등반, 회수, 홀링만 빼고 모든 걸 해봤다. 그리고 내가 ER을 졸업해 다음해엔 원정팀으로서 가는 게 당연했다.

 

조디악 등반… 다섯 명 한 팀에서 홀로 탈출

나는 2019년 6월, 대원으로서 요세미티를 다시 방문했다. 루트는 조디악이었다. 엘 캐피탄의 인기 루트인 만큼 볼트 정비가 잘 되어있지만 결코 쉽지는 않다던, 소문 많은 루트였다.

원정기간은 6월 4일부터 29일이었고, 등반 시작일은 6월 7일이었다. 우리 팀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5명이 한 팀이었다. 팀의 리더인 고경한 대장님은 5명이 함께 올라가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5명이 쓸 효율적인 시스템을 개발해 국내에서 훈련도 열심히 했다. 연습 때 참 복작복작 힘들다고 생각했다. 근데 내가 애초에 4명과 함께 올라갈 수 있는 위인이 아닌 것은 몰랐다. 첫 주마를 하면서 알았다.

시작부터 좋지 않았다. 우리 팀은 홀백 쌓기의 중요성에 대한 잔소리를 들은 뒤 각자 대장님이 1, 2피치 등반하는 걸 보거나 듣거나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두세 시간짜리 피치였고, 대장님이니 걱정할 게 없었는데, 갑자기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올려다보니 선등자가 추락한 게 보였다. 우리는 대장님의 진실한(?) 추락을 처음 보았고 모두 놀랐다. 마치 부모님의 약한 모습을 처음 본 아이 같았다. 나는 벌 받는 느낌으로 대기했다.

험악한 분위기 속에 2피치가 종료되고 우리도 올라가게 되었다. 내가 로프 두 동을 끌고 거의 뒤집어지다시피 올라갔다. 팀이 다섯 명이라 올라가는 순서, 등반 로프 둘, 홀링 로프 둘,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홀백은 다섯 개, 포타렛지 3개. 반쯤 올라갔을 뿐인데 너무 허공이었다. 삼성산과는 달랐다. 오버행이라 발도 안 닿았다.

무엇보다 내가 확인하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고도나 체력도 문제지만 당장 내가 매달린 줄이 의심스러웠다. 4명의 대원 모두 한 명 한 명이 시한폭탄 같았다. ‘누군가 매듭을 잘못 지었으면?’ ‘내가 해놓은 걸 누군가 만졌다면?’ ‘한 개의 시스템이 4명의 손을 거치면 이상해질 수밖에 없어’. ‘나는 모든 것이 내 통제 하에 있어야 안심이 되는데….’ 누군가는 등반을 통제된 위험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다. 나는 위험해지려고 가는 게 아니다. 나는 불안해졌고 등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이유는 등반을 중단할 핑계가 안 되기 때문에 나는 떼거지 등반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적어도 그날은 신이 존재했던 것 같다. 대장님의 실수로 폭포 밑에 포타렛지를 쳐서 모두가 홀딱 젖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내 포타렛지가 부서졌다. 그래서 다음날 홀로 하강하려 했는데 모두들 재충전을 위해 내려왔다. 그리고 다들 다시 올라갈 때 나는 밑에 남았다. 홀백 3개에 포타렛지가 매달린 줄줄이 사탕에서 중간에 낀 내 홀백만 빼내 던지는 진귀한 장면을 보았다.

 

고경한 대장과 단둘이 조디악 재도전

ER카페의 대장님표 등반기를 보면 내가 등반을 못하게 돼서 눈물을 머금고 내려왔다고 되어 있다. 눈물을 머금고 내려온 건 맞는데 그건 너무 춥고, 힘들단 것을 어필해 등반에서 빠지기 위함이었다. 우리 팀과 헤어지고 나서 나는 입이 귀에 걸려 하산하면서 만나는 모든 팀마다 건네는 위로를 어색하게 받았다. 등반팀에서 나 홀로 탈출한 것이다. 나는 팀이 등반할 동안 밑에서 지켜보며 혼자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두 번째 기회가 왔다. 이번에는 나의 통제 범위 안으로 들어오는 팀이 꾸려졌다. 나랑 대장님.

벽상 4일차 6월 26일 오전. 나는 조디악 중간에 매달려 물방울을 구경하고 있다.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물방울이 보란 듯이 위쪽으로 천천히 움직인다. 물방울은 밀리컨의 기름방울처럼 멈추기도 하면서 내 시간을 멈춘다.

나는 매달려 있고 선등자가 단독등반을 할 동안 로프와 홀링 로프를 다 풀어주고 대기 중이다. 요세미티 밸리의, 나무가 몇 그루 서 있고, 말 타며 활을 쏘는 사냥꾼이 달릴 것 같은 반원 모양 풀밭이 보인다. 그리고 그 곡선을 둘러싼 바위. 잊지 못할 광경이지만 나는 몸이 자꾸 떨린다. 대기하는 시간이 정말 무섭다. 차라리 빨리 회수를 시작하고 싶다. 열심히 라면을 부셔서 먹고 파워부스터를 마신다. 무섭고 추운데 배고프면 더 춥고 더 떨리고 더 무섭다.

파트너도 믿음직하고 장비도 모두 튼튼한데 어딘가 사각지대의 뾰족한 엣지 하나가 줄을 자를 것만 같다. 1%의 끔찍한 가능성만 생각난다. 그래서 잊으려고 핸드폰을 꺼낸다. 혹시나 후회할까봐 중간 중간 앞, 뒤, 양 옆, 위아래 풍경을 눈에 새기면서 인터넷 신호를 잡는다. 그리고 쇼핑도 하고 내려가서 묵을 캠프 사이트 나온 게 있나 찾아본다.

드디어 회수를 시작하면 더 무섭다. 단독 등반의 장점이자 단점은 줄 처리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줄 처리를 안 하기 때문에 회수를 하려고 하면 줄이 꺾인 채 돌에 바짝 붙는다. 내가 매달리면 그 줄은 돌에 비비적대며 쓱싹쓱싹 잘리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자리에 멈추어도 보고 기도도 해 봤는데 결국은 빨리 가는 게 답이다. 그 순간 멈춰버리면 다음은 없다. 그래서 간다. 가지만 무섭다. 무섭지만 간다. 그래도 말이 씨가 될까봐 다신 안 온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돌. 뒤, 양 옆, 위아래는 좋은 풍경이고 나를 무섭게도 들뜨게도 한다. 하지만 앞은 그냥 돌이다. 내 모든 시야가 회색과 흰색 바위다. 난 그게 너무 좋았다. 세상에 그런 공간이 또 있을까. 나는 허공에 있고 앞은 내 시야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큰 벽이다. 여기엔 나뿐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 명상적이다.

엘 캐피탄은 보는 것만으로도 귀감이 되는 유명한 돌이다. 그런 돌을 오르는 것. 비비적대고 며칠 동안 바라보고, 떨어지는 물을 맞고, 내가 물을 뿌리기도 하고(이 부분은 없으면 더 좋을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하나의 루트를 오르면서 구석구석 본다는 건, 내 생각에 자연을 즐기는 가장 적극적이고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인간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다.

 

등반보다 힘들었던 것은 대소변 처리

가장 중요한 등반, 아니 벽상 생활. 여성으로서 심리적으로 거리낄 건 없었는데, 신체 구조상 화장실이 걱정이었다. 한국에서 먼저 생각했던 건 여성용 소변기를 들고 가는 거였다. 하지만 씻는 게 더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 ER의 여성 선배님들께 얻은 조언은 비닐봉지에 모으는 것이었다. 나는 비닐이 불안해 고심 끝에 삼다수 페트병을 잘라 썼다. 나중에 홀백 바닥에서 하나뿐인 갤런 통이 나왔을 땐 환호하며 지퍼백에 넣어 소중히 여겼다.

근데 한 번 사다리에 서서 대기하던 중에 신호가 왔다. 처음에는 미약했으나, 나는 배고팠고, 추웠고, 무서웠으므로 점점 더 마려웠다. 어쩔 수 없이 사다리만 밟고 쪼그려 일을 보게 되었다. 노란 진주알(나의 등반 파트너는 그것을 그렇게 불렀다)이 바람을 타고 올라오는 게 보여 속도를 조절해야 했지만 성공적이었다. 나중에 피넛 렛지(13피치 종료지점)에서 일을 보는 게 시시했을 만큼. 나는 이 등반에서 등반 그 자체보다도 화장실 가기, 밥 해먹기, 잠자기 등 벽상 생활에 적응하는 재미가 꽤 컸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것을 내가 마음대로 만들어가는 재미였다.

막상 등반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생각나는 것이 별로 없다. 16피치 중 네 개만 리딩한 까닭도 있고, 그게 조디악 16피치 중 평범하고 어렵지 않은 3, 6, 8, 12피치여서다. 겁이 나기도 했고, 옷이 추웠는지 할당된 행동식을 다 먹고도 기력이 부족해서 그렇게 됐다(내가 리딩 하지 않은 피치 중 기억나는 곳은 14피치 돌려막기 구간뿐인데, 등반하기도 보기도 무서웠다). 생각나는 건, 큰 어려움도 추락도 없어 등반이 회수보다 무섭지 않았다는 것과 가끔씩 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면 카메라가 날 보고 있어 황당했던 것(지금 생각하면 감사한 일이다)이다.

벽상 5일차인 6월 27일 정상을 밟았다. 정상도 좋지만 하산까지 마쳐야 등반이 끝난다. 정상에 서면 등반의 위험과 흥분이 가라앉은 뒤 차분함, 감사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마음을 간직한 채 짐을 꾸리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 대장님은 담배를 피고, 나는 밥을 세 공기나 먹었다. 이미 지나가버린 등반을 돌아보며 내려간다. 물론 곳곳에 위험과 고난이 도사리고 있어 장르가 갑자기 스릴러로 변할 위험도 있지만, 너무 쉽지 않아 아름답다.

 

이젠 조디악으로도 부족하다  

생각해보면 첫 번째 등반도 쉽지 않아 아름다웠다. 잘하던 것도 못하게 만드는 산만한 5인 팀을 싫어했으면서도 끝까지 갔으면 어땠을까 슬그머니 궁금해진다. 반면에 고요하고 명상적이던 두 번째 등반은 잔 실수 하나 없고 말할 거리도 하나 없는 깔끔한 등반이었다. 하지만 채 한 번 안 되는, 0.2번 정도인 첫 번째 등반이 배운 것도 추억도 더 많다. 사원에서 명상을 하기는 쉬워도 시장바닥에서 마음이 평온하기는 힘들다. 나는 시장바닥에서 도망쳐 나와 사원에서 명상을 했다.

4인 이상의 등반은 3인까지의 등반과는 다른 등반이다. 짐의 양과 무게, 밥을 꺼내 먹는 일부터 화장실 가는 일, 등반 순서를 정하는 일까지 그 복잡성이 비교할 수 없게 크다. 분명 같은 일인데도 4인 이상이 되면 그 자체로 신기술이 필요하다. 루트의 난이도보다 팀 운영이 더 중요할 정도다. 그리고 나의 역량은 5인 팀과 2인 팀 사이 어디쯤 있었다.

벌써 여러 번 엘 캡을 오르내렸지만 나는 아직 부족하다. 처음엔 햇살만 보고 찾아갔지만 이젠 조디악으로도 부족하다. 겨우 2인 팀에서나 내 역할에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엘 캐피탄은 뛰어난 등반 대상지다. 어프로치, 하산 길, 아름다운 날씨. 모든 게 완벽하다. 나는 아직 수많은 다른 루트가 궁금하고, 어떤 사람과 어떤 인원으로 등반할 때의 그 기분이 궁금하다. 다음 루트는 20피치가 넘고 그 선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메스칼리토다. 물론 4명 이상의 팀은 아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 시끄럽고 정신없는 등반도 즐겨보는 것이 나의 새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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