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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클라이밍

 

성하의 양양

서울등산학교와 함께하는 리지등반

남설악 전망대리지

 

“오색천으로 드는 물줄기다. 아! 차다”

1997년 산맥회가 개척한 총 10마디 암릉

글 | 임성묵 기자  사진 | 주민욱 기자  협찬 | 서울등산학교

 

 

분수령(分水嶺)이란 물방울 하나가 둘로 나뉘는 산봉을 뜻한다. 이 말대로라면 설악산 한계령(1,004m)에 떨어진 빗방울은 둘로 갈라져 인제와 동해(東海)로 각각 치달아야 옳다. 과연 그런가. 따라가 보자. 고개의 남동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오색천은 지류와 합류하여 동해로 유입하는 남대천과 몸을 섞는다. 서북쪽 사면에서 발원한 물 또한 일대 계곡을 형성하면서 흘러 소양강의 상류를 물고 있다. 확인한 바, 한계령은 영동과 영서지방의 분수령이자 인제군과 작별하는 양양(襄陽)의 관문이다.

예전에는 양양에 해당하는 산만 설악이라 했으니 본명(本名)의 범주를 이곳부터라고 보아도 무방할 터. 고개의 이름은 한계산에서 유래했다고 전하나 양양군은 “일제강점기에 이름이 바뀐 한계령을 고유 명칭인 오색령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줄곧 주장했다. 2005년에는 정상 휴게소에 오색령 표지석을 세웠고, 양양군지명위원회를 열어 지명 변경을 위한 행정절차에 종지부를 찍으려고도 했다. 하나 인제군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쳐 현재는 일단 유보한 상태. 양양군의 결정에 대해 인제군은 ‘당연한 결과’라고 반겼고, 한계령 정상에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라는 대목을 포함한 양희은의 ‘한계령’ 노래비를 세우기로 했다. 오색령은 제발 잊으라는 투로….

 

 

매복병처럼 선 저 바위가 초입이다

뜻을 익히 알면서도 어색했다. 7월10일 오전 8시를 기해 퍼붓는 비는 분수령의 의미를 일깨우기 위함인가. 남설악이 깊숙이 젖는다. 해가 돋는 땅에 대한 환상을 품고 달려왔든, 변해버린 실체에 실망하든지 간에 갑작스레 조봉한 비에 적잖게 당황했다. 더불어 운무는 동해와 연접한 고장을 신비롭게 감싸며 이방인을 경계한다. “이 비에 등반은 고사하고…”라는 말의 함의는 이성이 지배하는 미약한 내 마음의 한계일지 모른다. 고개를 타고 넘은 바람이 스며들듯 소리 없이 불어와 살랑 재킷을 흔든다. 동해쪽 조망을 염두에 두지 않은 차량들 역시 끊임없이 헐떡이며 가파른 고개를 넘는다.

궂은 날씨에 무엇을 하려면 그만큼의 번뇌와 용기를 요구하는 법. 결정의 시간. 산개했던 일행들이 모인 건 오전 11시를 조금 넘어서다. 판단을 구체화할 근거들은 접어두고 나설 것인지에 대한 원초적인 의견만 오간다. 하늘이 밝아지고 있다는 긍정의 추론이 홀딱 젖어도 상관없다고 마음 추스른 내 주장보다 제법 학구적이다. 남설악의 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는 공허한 수식을 마음에 묻고 우중 등반으로 의견일치를 본다. 살아난 이끼와 미끈둥한 홀드 때문에 낭패를 보았던 옛일이 상기되자 돌연 닭살이 돋는다.

흘림3교 건너편의 계곡은 물폭탄을 맞아 초토화됐던 2006년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황토와 낙석으로 매워진 계곡의 치유와 재생을 말하기에는 아직 감감하다. 왼쪽 사면으로 붙는다. 비로 연약해진 지반과 우거진 잡목, 내리는 비까지 보태니 삼중고다. 설상가상 주민욱 기자는 접근로를 오인해 왼쪽 급경사면에 섰고 나는 이끼에 미끄러지며 후방낙법을 제대로 선보였다.

설악의 우중 풍경은 순간이다. 눈을 감았다 뜨는 동안이다. 그사이 깨어난 운무와 인사하자마자 안녕하는 단시간이다. 창궐하는 비구름은 시시각각 그 질감을 달리하면서 두껍게 자란다. 시작처럼 활기차게 움직이고, 깨어난 사람들처럼 수런하다. 휙! 휙! 재를 휘두르는 구름바다에 산은 우주처럼 아름다운 미지로 펼쳐진다. 잠시 올랐을 뿐인데 흐르는 도로는 쇠처럼 소쇄하고, 벌써 아득하다.

돌무더기 사이로 바람에 단련된 키 작은 풀들이 서걱대고, 작은 은빛의 단애와 검은 바위들이 갈마든다. 어떠한 재빠른 것도 이 길을 달릴 수 없다. 나의 호흡에 따라 다만 한 발 한발 걷는 길이다. 저 끝 풀숲 희고 차갑게 매복병처럼 선 반침니가 등반 초입이다.

비가 발목을 붙잡거든 악수를 청해서 가볍게, 가볍게, 바위를 오르자고 마음을 써보지만 모든 상황이 불안하니 이 또한 수월찮다. 거듭 보류하던 마음을 다잡아 첫발을 들인다. 명명백백한 건 미끄럽다는 것. ‘떨어지면?’이라는 가정의 개입을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기꺼운 신념으로 누르고 홀드를 잡는다. 축축하고 미끄럽다. 지금부터는 리허설 없는 실전이라는 직접적인 엄포다.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으로 연방 초크를 칠해보지만 먹힐 리 만무하다. 심리적인 안정감은 든다.

홀드를 여러 번 고쳐 잡은 끝에 몸을 반침니에 구겨 넣는다. 그러자 바위와 손등을 타고 유입되는 빗물에 속이 시원하다. 백 앤드 니(back and knee) 자세를 유지할 적마다 모난 장비들이 쨍그랑 소란을 떤다. 재킷 찢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서서히 상승하는 길은 어딘가 있을 법한 몽유도원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공포의 반침니 구간을 힘껏 치고 오르니 높이를 낮춘 올망졸망한 봉우리들로 시야가 활짝 열린다. 돌틈의 작은 꽃잎들과 갓 태어난 이파리들이 궁륭을 만든 곳, 제1피는 여기까지다.

 

 

슬랩을 경외하는 한 인간의 낭만적 떨림

산은, 고요한 명상으로 채워져 있다. 바라보는 마음이 덩달아 깊고 맑아진다. 정취는 보는 이의 영혼이 대상과 공명하는 것. 공명은, 보는 이와 대상이 마음을 맞추어 균형 잡힌 소리를 만드는 일. 그리하여야만 나와 대상은 하나가 된다. 한꺼번에 하나가 된다면, 그건 동감이다.

서성식 서울등산학교 교감도 이에 동의한다. 물바위의 어려움이 우선 그렇고 우무(雨霧) 속에 제 몸을 숨긴 설악의 모습이 설핏 바람에 드러날 때 우리는 탄성으로 동감한다. 비록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취재등반이긴 했으나 강력한 자력을 발하며 취재팀을 끌어당긴 건 나서지 않고서는 면접할 수 없는 비와 구름으로 채색된 설악의 풍신(風神)이다. 유난한 자리에 모여 바라본 선경을 뒤로하니 도열하듯 선 암봉들이 능선에 심어져 있다. 저기를 넘어서면 어찌 올라야 할 방도를 아직 결정하지 못한 제5피치겠지. 일단 연봉을 타고 오른다.

“임 기자 낯빛이 출발 전보다 평안해 보이네요.” 그랬을 것이다. 김인규(서울등산학교)씨의 말대로 오늘도 공치면 큰일인데 라는 직업적 스트레스가 비로 인해 자동으로 표출됐을 법하다.

비가 마지막처럼 온 힘을 다해 쏟아진다. 제2피치를 오르며 발이 이끼에 미끄러지는 동시에 홀드를 낚아챘다. 이렇게 생생하게 추락을 모면한 경험은 인수봉 외에 처음이다. 의심과 고난 대부분은 내가 이미 점유했으니 이제 모든 가능성을 가능했던 일로 기억하는 일행들의 등반이 이어진다. 제3피치는 쉬운 침니. 몸을 비빌 바위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강력히 감동한다. 비 오는 날 슬랩등반을 경외만 하는 한 소박한 인간의 낭만적인 떨림이기도 하다. 줄기차게 이어지던 암봉이 뚝 끊긴 곳에 가외의 벼랑이 솟았다. 오늘 등반의 에센스로 보아야할 제5피치 슬랩과 연이은 제6피치 크랙이다.

암벽 같은 리지, 그 벽이 품은 고빗사위와 몇 개의 위험구간을 시선이 감당할 만큼만 뚫어지게 바라본다. “이거 좀 먹고 하세요.” 김인규씨가 한 템포 쉬어가자고 건넨 건과일을 한입에 털어 넣는다. 우적우적 씹으면서도 시선은 벽이다. 넓은 들은 늘 근원 깊은 안정감을 주지만 수직의 벼랑은 돌아앉아도 늘 위태롭다. 마른 바위였다면 맨발로도 오를 길이건만 낱낱이 바위 전역에 살아난 이끼를 밟는 족족 미끄러지니 무릎이 성치 않다. 왼발이 터지기 전에 오른발을 올리고 오른발이 터지기 전에 왼발을 올리라는 유머러스한 이론과 실기는 어쨌거나 차이를 둔다.

생물처럼 준동하듯 억지로 오른다. 은색의 볼트를 만났으니 바닥치기만은 면한다. 이때 발아래로 현기증처럼 어릿한 고샅이 드러난다. 제6피치 정상에 선 후에도 비가 수그러들지 않는다면 제1의 탈출로로 낙점한다. 첫 볼트를 지나자 이끼는 줄어들었으나 밟으면 소금덩어리처럼 부서져 내리는 풍화된 바위가 문제다. 두 번째 볼트까지 가려면 무얼 하나는 믿고 일어서야 하거늘 만만한 곳이 없다. 장대비에 서서 그렇게 한참.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이끼 가까운 스탠스에 발을 올린다. 추락은 이미 각오한 바….

심상은 그러했으나 막상 콩알 만한 돌기를 밟고 일어서니 온몸의 감각들이 발끝에 걸린다. 더 이상 후진하지 않는 오른발과 더불어 “2m, 1m, 0m, 휴~!” 마음속 카운트다운은 그렇게 유익했다. 줄기차게 유입된 우무가 전면적이다. 서성식 교감의 선등으로 제6피치 등반을 마친 취재팀은 새로운 국면전환을 앞에 두었다. 이 비에 더는 무리라는 걸 모두 알고 있다. 안전과 맞바꿀 완등의 의미는 바닥을 향해 로프를 던질 때 그 싹이 잘렸다. 두 번의 하강으로 정글 같은 고샅을 무사히 빠져나오니 너른 계곡이다. 따라 걷다가 마주한 출입금지 푯말과 철조망이 생경하다.

자연은 신적(神的)이다. 단순한 감동을 주는 어떤 비할 데 없는 평온함과 그 배후에 숨겨져 있는 경이로운 생명력이 그렇다. 이를 느낄 때 우리는 잘려나간 나무 밑동에서도 신성을 감지할 수 있다. 자연은 인문화되지 않은 유일한 종교다. 그 만남은 허심탄회해야 한다. 보존이라는 속박이 자유의 울타리가 되어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수동적인 출입금지 표지는 언제나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야 언짢다. 기억한다. 비 오던 어느 여름날 올랐던 설악의 봉우리들을. 태풍 부는 날 인수봉에 오르고 싶다는 마음이 괜한 객기가 아님을.

계곡에 발을 들인다. 분수령에서 오색천으로 드는 물줄기다. 아!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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