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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클라이밍

 

서울등산학교와 함께하는 리지 등반 북한산 만경대 리지

 

손은 존재의 숙연한 진실을 증명하는가!

북한산 대표 리지…만경대로 도열하듯 선 암봉군

글 | 임성묵 기자  사진 | 주민욱 기자  협찬 | 서울등산학교

 

 

등반하다가 망연히 손을 바라보는 수가 더러 있다. 생각에 잠긴달지 휴식이 필요할 때 잠시 앉아 손, 아니 정확히 손바닥의 굳은살을 바라본다. 두툼하면 두툼할수록 괜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공연한 버릇이되, 드물게는 손에 힘을 팍 주어 울근불근 정맥이 지렁이 자국처럼 툭 튀어나오는 순간 또한 즐겼다. 수상(手相) 따위에 어둡고 흥미가 없는 나지만 깊고 굵은 생명선을 바라보노라면 “오래 살겠네!” 혼잣말하며 위험이 내재된 등반 행위를 자위하곤 했다.

5월9일 북한산 도선사 주차장. 일행들을 기다리는 사이 실로 오랜만에 손을 다시 바라보았다. 암벽등반중이 아닌데도 그랬다. 굳은살은 오간데 없이 깔끔했다. “참 안전하게 살아왔구나” 자탄이 터졌다. 클라이머로 살아낸 역사의 징표이자 응고인 굳은살의 소멸을 못내 아쉬워하던 그때 서울등산학교 서성식 교감 일행이 도착했다.

한국 암벽등반사와 줄곧 함께 달린 서 교감은 아직까지 현역이다. 얼마 전 딸을 시집보냈으니 예비된 할아버지인데도 그렇다. ㈜호상사 부설 서울등산학교를 통해 등산의 정신과 기술을 일반인들에게 설파하는 그와 악수를 하고나니 낯 뜨거워졌다. 아무려나 손은 그냥 손, 굳은살은 그냥 굳은살이라고 좋게 생각해 보아도 소용없었다.

클라이머의 자존감은 거칠고 투박한 손이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래 굳은살 박인 손은 원시성의 표상이며, 웬만한 바위에 긁혀도 까지지 않는 강인함의 상징이다. 자고로 등반가라면 얼굴은 고와도 손은 투박해야 응당한 이치다. 두 명의 새내기 클라이머 조창현(20세, 한국폴리텍대학), 김혜리(20세, 한국폴리텍대학)와도 손 인사를 나누었다. 동병상련은 나만의 느낌인가.

중견 클라이머들과의 취재등반이라면 필경 뒤로 빠져 따라 오르기만 해도 기자의 본분을 지킬 수 있었다. 하나 5월의 푸른 하늘보다 더 맑은 꿈을 꾸는 저 어린 클라이머들의 뒤를 따라 오를 수는 차마 없었다. 젊음들이 줄곧 하산하는 산동네 저간의 사정으로 볼 때 용기백배한 이들의 정신이 잘 여물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만경대는 설렁설렁 오르면 안 되었다. 선배의 입장이라면 더구나….

 

 

망연하게 바라본 손

5월의 숲은 초록의 덩어리. 고도를 올리자 땀은 맑게 개운했다. 여기서 잠시 쉬어야겠다는 물리적 필요가 아니라 여기서 멈추어 설 수밖에 없는 진경이 펼쳐졌음을 의미했다. 북한산의 풍광을 탐하며 만경대 리지로 가는 길, 잠시 휴식을 취한 초여름 계곡의 싱그러움이 그랬다. 도선사에서 용암문까지 30분이니 몸풀기는 맞춤한 거리. 한 걸음 한 걸음 꼭꼭 밟아 나아갔다.

용암문에 닿고서도 길은 평평하고 큼직한 바위들이어서 걸음이 여전히 탄탄했다. 고갯마루까지 각개약진. 고도를 더하니 왼쪽으로 펼쳐진 노적봉의 웅장한 모습과 뒤편으로 도열하듯 선 보현봉과 문수봉, 나한봉, 나월봉이 속세와 선계의 경계를 나누는 듯하다.

“만경대가 어느 봉우리지요?” “저어기…” 서성식 교감이 가리키는 곳은 푸른 하늘뿐. 천둥처럼 불쑥 솟은 저 암봉을 넘어야 시야가 터지려나 보다. 다짐했듯, 예상했듯 줄을 묶고 나섰다. 15m 바위벽은 난도가 아니라 감이 문제였다. 손이 지시하는 대로 머리가 가다 보니 낯선 세계에 불시에 떨어진 듯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위쪽일 거야 했던 힘없는 믿음은 점차 짙어지는 하강길의 선명함에 사그라지고 있었다. 그때 “오른쪽으로 하강해야 합니다.” 서 교감이 말로 하강길을 현시한다. 그제야 연결되는 암릉.

시작만 제법 경사가 급한 10m 바위벽을 오르자 악명의 피아노바위. 숱한 사고로 점철된 트래버스 크랙에는 초크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삶과 죽음을 가른 홀드가 매정했다. 그래도 잡고 가야 할 길.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바른 초크가 홀드에 덧씌워진다. 삶도 등반도 그렇게 덮고 가는 것인가.

크랙 횡단을 마치자 창현과 혜리는 두려움과 설렘을 담은 눈으로 벽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우려가 잡힌다. 하나 벽에 붙은 젊음들은 이 모든 걱정을 한 방에 날려 보냈다. 도대체 공포를 모르는 듯하다. 가끔 “왼쪽 홀드를 잡고 몸을 허공쪽으로 빼”라는 서성식 교감의 훈수에 “예!” 당찬 답만큼이나 그대로 행한다. 물건이다. 등반을 체계적으로 배우면 대성할 이들이다. 불과 두 개의 암봉을 넘어섰건만 이들에 대한 믿음은 벌써 잎이 났다.

연이어 선 바위가 으리으리하게 크다. 경사도 제법이다. 슬핏 두려움을 느낀다. 감정이 더 자라기 전에 캠 두 개를 건네받자마자 출발이다. 확보물 없이 15m를 오르니 실로 오랜만에 추락의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다리가 떨릴지언정 긴박감이 좋다. 크랙에 캠을 박고 완경사 슬랩으로 돌아들자 시야가 왁자해진다. 신록의 진경이 왈칵 다가선다.

병품암 정상이다. 터진 조망이 만경대까지 가 닿았다. 점심은 병풍암을 내려선 후 먹는다. 두 다리를 온전히 땅에 붙이니 그간의 얼굴이 무척 궁금했는지 혜리는 거울부터 빼든다. 20대 꽃띠 처자의 자기관리가 싫지 않다.

 

 

막판에 터지는 조망, 삼각산 진경이 한눈에

걷는다. 좌우의 선경이 달려든다. 수평 이동하는 리지 등반의 매력이다. 정면으로는 숙명처럼, 역사처럼, 우뚝한 단애가 동요 없이 서 있다. 만경대다. 남북으로 뾰족뾰족 늘어선 이 연봉은 만 가지 경치를 펼쳐놓았다고 하여 명명되었다는 일설, 무학대사가 나라 세울 터를 살펴보기 위해 올랐다 하여 국망봉으로 불렸다는 속설이 공존한다. 봉우리는 500년 도읍지를 말없이 굽어보고 있다.

제8피치. 클라이밍 다운해서 올라야 하는 만경대 리지 중 가장 어려운 구간이다. 손금 보듯 이 리지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서 교감은 새내기 클라이머를 위해 고정줄을 이미 설치했다. 또 홀드와 스탠스의 위치를 족집게 과외 하듯 집어주니 등반은 일사천리다.

뜀바위에 당도한 나는 좌우지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담이 크다고 해도 이곳에서는 겁을 좀 내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나 이게 웬걸. 두 다리 사이에 아찔한 협곡의 고도감이 왈칵 달려드는 순간에도 손으로 V자를 그리는 저 여유는 무언가. 물었다. “겁 안나?” “네.” 안 난다는 말이었다.

클라이머의 성장 과정은 들쭉날쭉 제각각이다. 소나무처럼 처음부터 무럭무럭 자라는 클라이머가 있는가 하면, 일껏 선두 그룹에 끼었다가 점점 뒤처지는 마라톤 선수 모양 갑자기 성장을 포기한 클라이머도 없지 않다. 남매 같은 이 두 젊음은 영락없는 소나무였다.

제9피치 트래버스는 야금야금 차근차근 올라야 했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후등자 안전을 생각하며 중간마다 캠을 꽂아 가며 횡단을 완료하니, 기다렸다는 듯 세 명의 등반가가 줄지어 도로를 건너는 어린아이 마냥 병아리 걸음으로 슬랩을 횡단해 온다.

마지막 피치는 양상을 달리했다. 음산한 분위기가 풍기는 이 V계곡에서는 그동안 많은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안전장비를 휴대하지 않은 등반객이 2007년에만 5명이 사망했으니, 기본에 대한 중요성이 백지장에 번진 먹물인 양 또렷이 부각되었다.

“잡을 데가 없어요.” 혜리는 기를 쓰고 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나는 이들이 만경대를 지나오며 곤란함을 한 번 정도는 느껴야 한다고 애초부터 생각했었다. 어려움이 배제된 암벽등반은 놀이와 다르지 않고, 상황을 극복할 동기부여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악을 쓰고 기를 쓰며 올라봐야 등반의 진가를 더욱 깊이 터득할 수 있는 것이며, 자신의 능력 한계를 맞보아야만 겸허를 깨칠 수 있다.

얼굴이 붉어질 정도의 어려움을 모면한 두 젊은 등반가들이 테라스에 섰다. 암봉을 왼쪽으로 에돌아 오르니 터진 조망에 삼각산의 진경이 적나라하다. 일망무제. 세상은 온통 절벽과 하늘이었다. 목을 젖혀 쳐다보게 되는 아찔한 허공이다.

“손이 아리네요.” 혜리가 붉게 변한 손바닥을 내보였다. 말하고 싶었다. 클라이머 손은 존재의 숙연한 진실을 증명하며, 굳은살은 삶의 옹이이며 흔적이고, 현실의 준엄성을 입증한다고…. 나도 손이 아렸다. 다시 시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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