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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등반 _ 그랜드 티턴 노스리지

 

Grand Teton

North Lidge

거인과 함께 보낸 이박삼일

 

글 사진 · 염승찬

 

2017년 여름, 일주일간의 시간을 마련했다. 미국 이민생활에서 7일의 휴가는 한 달 근로시간과 비슷할 정도로 소중하다. 손바닥이 닳고 허리가 휘어지고 몸이 망가지도록 근로에 몰두하는 것이 곧 이민자의 삶이다. 일이 곧 휴식이자 취미인 평범한 동포 이웃들은 소중한 일주일을 금전까지 지출해가며 산에서 소비하는 우리를 별로 옳게 보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등반 장비를 챙겨 원정길을 나섰다. 시애틀에서 와이오밍 잭슨까지는 내비게이션으로 864마일(1,390km), 쉬지 않고 운전해도 13시간 이상 소요되는 머나먼 길이다. 그곳에는 위대한 그랜드 티턴 국립공원(Grand Teton National Park·4,176m)이 있다. 그랜드 티턴 노스리지(Grand Teton North Lidge)는 북미 50 클래식 루트 중 하나로 총 10피치 5.8그레이드의 바윗길이다.

 

바람소리 따라 산 추억을 곱씹는 비박

북미 50 클래식 중 그랜드 티턴은 엑섬리지, 노스리지 그리고 노스페이스, 3개의 이름값 하는 루트를 품고 있다. 작년 8월 엑섬리지를 등반하며 바할라 트래버스를 거쳐 노스리지에 오르는 길을 파악해 두었다. 올해도 손정배와 송재희, 필자 셋이 한 팀이 되었다. 송재희는 2013년 웨스트버트레스 루트로 6,800m 북미 최고봉 데날리를 등정하고 휘트니, 레이니어 등 미 본토 4,000m급 봉우리를 두루 올랐다. 손정배도 미국 본토 최고난이도 산인 4,300m 레이니어 정상을 6번 등정한 경험이 있다. 정배는 근무하는 보잉사에서 지원하는 6개월짜리 미국 등산학교도 졸업했다.

애초에 정한 등반 계획은 그랜드 티턴 트레일헤드에서 약 10km를 치고 올라가 작년 엑섬리지 등반 때처럼 로어 새들 야영장에서 비박하고, 바할라 트래버스를 횡단하여 그랜드스탠드에서 이틀째 비박하고 10피치 노스리지를 등반하여 정상에 오르는 2박3일 일정이었다.

등반허가를 받기 위하여 제니 호수 레인저스테이션에 들려서 정보를 알아보던 중 젊은 클라이머레인저와 노련한 오피스레인저 할아버지가 바할라 캐니언을 통과해 그랜드스탠드로 올라가는 것을 추천한다. 바할라 캐니언이 그랜드 티턴과 오웬 피크 사이 동쪽 경사면이다.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서 트레일을 오르는 길이 편하다. 바할라 밸리는 약 5km를 물길 따라 들어가서 길이 양옆으로 갈라지는데 중간에 개천을 건너 티턴과 오웬 봉우리를 보고 그사이 계곡을 바로 올라서야 한다.

처음 가는 산길은 늘 긴가민가하며 걷게 된다. 아침 7시에 첫 배를 타고 출발해서 그랜드스탠드가 보이는 모레인 지대로 들어서니 오후 4시다. 두 시간 정도 걸어 올라야할 저 위로는 바할라 트래버스로 보이는 사면밴드가 넓게 형성되어 있고 중단과 상단에 설사면이 길게 늘어져 있다. 몸은 고단하고 비가 날리면서 바람도 분다. 4,000m 산군에서 날씨는 종잡을 수 없다. 일기예보에도 오늘밤과 내일은 강풍과 번개를 동반한 폭풍이 예보되어 있었다. 지금 컨디션과 시간으론 바할라 트래버스 위 그랜드스탠드까지는 어림없다. 아침에 호숫가에서 만난 로컬들도 그랜드스탠드까지 가지 말고 바할라 캐니언에서 비박할 것을 권했다. 잘 모르는 산에서는 남에게 들은 정보가 때론 핑계도 되고 또한 이유도 된다. 애들에게 “그만가고 비박 하자” 짧게 말하고 누울 자리를 만든다. 불편한 곳이지만 마음이라도 편하게 먹고 데울 수도 없는 찬밥으로 허기를 달랜다. 그리고 각자 비박색 속에 들어가 윙윙거리는 바람소리에 지나간 산 추억도 먹는다.

 

이탈리안 크랙을 따라 노스리지에 진입하다

여유롭게 캠핑하는 이들에게 새벽은 속히 오지만 시간이 부족해 비박하는 이들의 새벽은 늘 더디다. 비박색을 열어 얼굴만 내밀고 세 번쯤 묻고서는 채 동이 트지 못한 하늘을 보며 배낭을 다시 꾸린다. 신기하게도 비박 후의 짐은 늘 첫날보다 커진다. 온기 없이 차가운 바닥에서 몸으로 땅을 덥히느라 찌뿌둥한 온몸은 산을 오르면서 저절로 풀어진다.

두 시간을 올라 장비를 차고 등반해야 할 곳에 도착한다. 새날이 시작됐다. 루트 개념도를 보고 등반기도 읽어보고 사진도 봤지만 거대한 벽 앞에서 바른 루트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볼트만 따라 오르던 등반에 익숙하던 우리가 미국으로 이민 와서 아무 볼트 없는 루트를 찾아 오르는 것에 익숙해지기까지는 많은 실패와 오류가 따랐다.

두 피치를 오르고 첫 번째 흔적을 찾았다. 바위에 슬링을 묶고 탈출한 확보지점이었다. 주변 조건을 보아 바할라 트래버스에서 그랜드스탠드로 가는 길목의 마지막 확보지점이자 그랜드스탠드에서 등반을 포기하고 바할라 캐니언으로 탈출하기 위한 마지막 하강 포인트다. 퇴색한 바위틈에 애처롭게 걸려 있는 붉은 줄 슬링 앞에 앉아서 배낭 속에서 이리 저리 뭉개진 찬밥덩어리를 꺼내 고추장에 비벼 아침과 점심을 한꺼번에 먹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네 피치 정도 오르면 그랜드스탠드인데 중간 사면에 눈이 덮인 얼음이 있다. 크램폰과 아이스엑스가 없으니 우회하기로 한다.

그랜드 티턴 웨스트 꿀루아르를 통해 설사면을 오른쪽으로 우회하여 그랜드스탠드에 섰다. 약 3,600m 고지인 그랜드스탠드 정상은 무릎 높이로 돌을 쌓아 바람을 막은 작은 비박지가 만들어져 있고 노스리지 출발점은 스탠드가 별로 없는 칼날 능선이다. 노스리지를 만나면 선등을 하기로 했던 재희가 나에게 선두를 양보한다. 총 10피치인 노스리지 피치 중 하단은 이탈리언 크랙이나 아메리칸 크랙 중 한 곳을 통과하여 등반하게 되어 있다. 그랜드스탠드에서 노스리지를 출발하여 두 피치를 한 번에 등반하고 낡은 슬링이 남아있는 포인트에서 확보지점을 만들어 재희와 정배를 올린다.

재밍 크랙을 따라 오른쪽으로 30m 정도 트래버스를 하여 끄트머리에 키 높이 오버행을 올라 이탈리안 크랙에 들어선다. 초입은 크랙이 아니고 걸어 올라가는 침니다. 노스리지의 크럭스는 5.8급으로 이곳 이탈리안 크랙하고 7피치의 볼트 없는 사선크랙 두 구간이다. 약 5~6m 정도 배낭 멘 채로 올라서서 확보물 하나를 설치하여 배낭을 벗어 매달아 놓고 위가 좁아져 몸이 꽉 차는 침니를 직상으로 올라선다.

이탈리안 크랙을 등반하며 느끼는 고도감이 상당하다. 정배와 재희도 배낭을 달아 올리고 침니를 등반한다. 5.8급 난이도지만, 3,500m 수직고도에서 약 25m의 젖은 침니 등반은 몸과 정신의 완벽한 집중을 요구한다.

 

펜듈럼 추락과 비박을 감내하며 정상으로

이번 원정등반은 두 동의 로프를 준비해 선등자는 8.5mm를 쓰고 후등자는 7.7mm를 사용해 등반했다. 8피치 정도 등반을 끝내고 세컨드를 맡은 재희는 나를 지나쳐 너덜지대 너머 테라스가 형성된 곳에 확보지점을 만들어 후등 정배를 올리게 했다.

로프를 정리하고 테라스에서 쉬는데 마지막으로 올라오는 정배가 시간이 많이 걸린다. 불안한 마음에 재희에게 자일을 당겨 보라고 하니 무게가 걸린단다. 매달려는 있다는 건데 어쩐지 불안하다. 정배에게 무전이 온다. 펜듈럼 구간에서 7~8m 정도 날러 이동해 수직 벽에 매달려 있단다. 빌레이 보던 후등 로프를 고정시키고 8.5m 선등 로프를 내려 재희를 정배가 보이는 곳까지 하강시켜 정배에게 내려준 로프로 몸에 두 줄 묶게 하고 나와 재희 둘이서 올린다. 다행히 정배가 크랙을 잡아 프렌드 설치하고 좀 쉬더니 바로 등반한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4,000m 수직 벽을 펜듈럼해서 매달려 있던 정배는 아드레날린 힘으로 올라와 잠시 퍼진다. 8~9피치 정도를 했지만 머리 위로 보이는 남은 벽이 숨은벽리지 끝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 고갯마루에서 비둘기길을 쳐다보는 것보다 더 높이 있다.

이미 시간은 오후 7시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다. “장비 풀어라. 오늘은 여기서 비박하자.” 다행히 테라스에서 두 사람, 그 밑에서 한 사람이 비박할 공간이 나온다. 등반의 고단함은 생각을 단순하게도 매우 어지럽게도 한다. 두 사람의 의견은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한다. 긴 밤 바람소리 친구삼아 잘 쉬어야 내일 긴 하루도 잘 등반할 텐데, 물도 떨어지고 식량도 떨어져 주머니에 서너 알 남은 사탕과 초콜릿을 만지작거리기만 하면서 잡스러운 생각은 바람에 밀려가는 구름 위에 얹는다.

그녀를 수없이 만나고 그놈도 수없이 때리며 오매불망 기다리던 새벽이 왔다. 3,900m 높이의 오웬 피크를 배경으로 아담한 제니 호수와 거대한 잭슨 호수 옆에 붉디붉은 아침 해가 솟아오른다. 밤새 지치지 않고 불어대던 바람은 얼어붙은 해란강에 말발굽 소리가 멀어지듯 솟구치는 해를 등지며 떠나가고 여명의 고요함이 계곡을 타고 가만가만 올라온다. 눈을 뜨고 사방을 보고 있지만, 움직임 없는 암전이다. 모두의 침묵 속에 별로 부지런하지 않은 재희가 2m 아래 비박터에서 새벽부터 올라와 등반을 시작하자고 조른다. 재희의 무던하고 느긋한 성품은 그가 유명 기업의 데이터 엔지니어로 십여 년째 일하는 비결일 것이다. 그런데 이 새벽은 어쩐 일로 서두르지? 알고 보니 지난 밤 에어 매트리스 바닥이 뽀족한 바위에 찔려 터지는 바람에 밤새 추위에 몸서리치며 이 악물고 떨었단다. 그럼 그렇지.

 

노스페이스, 또 다른 등반을 기약하며

장비를 다시 차고 등반을 시작한다. 3,900m 오웬 피크를 옆에 깔고 잤으니 4,100m 정상은 길어봐야 이제 200m 정도 남았다. 두 피치를 사선으로 올라 재밍 크랙 한 피치를 등반하니 어렴풋이 정상인 것 같은 지점이 보인다. 길을 찾아 정상에 올라 정배와 재희를 끌어올린다. 침니 안쪽 사면에 얼어붙은 얼음을 깨내 서너 조각 입에 물고 5.6급 정도의 마지막 피치 약 50m를 올라 등반을 끝냈다.

2016년에 이어 두 번째로 그랜드 티턴 정상에 섰다. 함께 등반에 임했던 두 아우가 다정하게 포즈를 잡는다. 이틀 밤을 자며 올라온 그랜드 티턴이지만 노스리지를 해냈다는 보람은 아직 이르다. 가슴 깊은 그리움에 마음도 편하질 않다. 올라오며 봐둔 험난한 그랜드 티턴 노스페이스가 더욱 무겁게 마음에 가라앉는다. 인생은 삼세번인데.

이제 엑섬리지로 두 번 하강 하고 세 시간은 걸어 내려가야 물이 있는 그랜드 티턴 노멀 등반 시작점 로어 새들이 나온다. 오늘 하루 무사하게 정상에서 트레일 헤드까지 내려가 잭슨 시내에서 차가운 맥주 한잔 기울일 때 즈음이면 해냈다는 성과에 마음이 설레고 내 가슴에 남겨진 아득한 서러움에 조금 눈물이 맺힐 것이다. 첫 하강 중에 로프를 회수하지 못해 그랜드 티턴에 등반 요금으로 기부했지만 두 번째 하강까지 무사하게 끝내고 거대한 벽 그랜드 티턴을 뒤에 두고 트레일을 내려가기 위해 리지화 신발끈을 다시 조인다.

이박 삼일의 여정이 마무리 되어가는 시점이다. 로어 새들에 눈 녹아 흐르는 생명수와 늦여름 햇볕은 이틀 밤의 추위와 배고픔, 목마름을 위로한다. 가벼워진 생각이 무거운 육신을 일으켜 세우며 긴 내리막을 빨리 내려가 편안하게 쉬고 싶은 조급함이 춤추듯 밀려온다. 작년 여름 원정 때 이곳 로어 새들을 찾아 헤매던 기억을 더듬어 쉽게 길을 찾는다. 모레인 지대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던 사람들에게 길도 가르쳐 준다. 상냥하게 인사하며 어디를 등반하고 내려오느냐는 물음에 우리들은 아주 당당하게 “노스리지”를 외친다. 감탄에 찬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가뿐한 마음으로 내려온 트레일 헤드에는 어느새 밤이 와 있다.

아침햇살에 불타오르는 그랜드 티턴을 바라보며 등반생각에 가슴 설레던 것이 바로 이틀 전이다. 수많은 생각과 후회와 결단이 필요했던 이박삼일 간의 그랜드 티턴 등반은 우리들에 2017년 추억을 오래 오래 상기시킬 것이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알파인 등반에서 나를 믿고 따라준 두 아우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한다.

 

 



등반 대장 염승찬(60세, 시애틀 거주, 벽곡산악회)

· 캐스캐이드 알파인 가이드.

· 미국 스키 강사(PROFESSIONAL SKI INSTRUCTORS OF AMERICA) 알파인 레벨1

 

등반 대원 손정배(55세, 시애틀 거주)

· MOUNT 레이니어 6회 등정

· 북미 50 클래식 그랜드 티턴 노스리지, 다이렉트 엑섬리지 등정

 

등반 대원 송재희(49세, 시애틀 거주)

· 2014년 알래스카 매킨리 등정 (웨스트 버트레스)

· 북미 50 클래식 그랜드 티턴 노스리지, 다이렉트 엑섬리지 등정

· 북미 50 클래식 마운트 스타우트 노스리지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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