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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원정 _ 남미 파타고니아 파이네 등반기<상>


Patagonia paine

빛고을 사나이들

바람의 땅에서 등반하다


도저히 사람이 오를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그곳. 남미 파타고니아 파이네 산군. 초속 30미터가 넘는 최악의 바람이 일상적으로 불어대고, 끝이 보이지 않는 깎아지른듯한  절벽의 높이는 무등산의 해발 높이와도 같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쳐 있다. 그 중에서도 중앙봉의 ‘폭풍 속을 달리는 사람들(Riders on the strorm)’이라는 루트는 그야말로 ‘바람의 고장’, ‘불가능의 표본’이라 불리며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세계의 클라이머들을 블랙홀처럼 끌어 모으고 있다.

파이네 산군의 북봉과 중앙봉에 도전한 광주 빛고을 파타고니아원정대의 45일간의 대장정을 2회에 걸쳐 싣는다.

 글 · 유영욱(광주자유등반클럽 파타고니아 원정대)  사진 · 원정대



돼지 뒷다리 하몽, 치즈, 구운빵, 땅콩, 와인, 초코비스켓, 과일….

머릿속에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 한 달간의 등반을 끝내고 하산하는 오늘, 저녁에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하면 마트에서 사서 먹을 것들 말이다.

2월 7일 베이스인 토레캠프에서 각자 30kg에 가까운 짐을 지고 세 시간 거리의 토레 센트럴로 가는 길, 파김치가 된 몸으로 흐느적거리며 걷고 있는 이 지루하고도 고통스런 내리막길에서 날 위로해 주는 건 숨 막히게 맛있는 칠레산 하몽, 치즈, 땅콩, 온갖 달달한 음식을 먹는 순간을 상상하는 것뿐이다.

지난 1월 4일 파이네 북봉의 ‘텔라데솔’ 루트 자유등반, 중앙봉 북능의 ‘보닝턴’루트 자유등반, 중앙봉 동벽의 ‘riders on the storm’루트의 등정을 목표로 한국을 출발한 빛고을 파타고니아 원정대의 배록현 대장님과 유영욱, 한상규는 7일 파이네 3봉의 서쪽 측면, 북벽의 등반 시작 지점으로 부터 1시간 반 거리의 전진캠프에 5일분의 식량과 등반장비, 텐트 한 동을 올렸다

30kg에 가까운 배낭을 짊어지고 11시간을 걸어서 도착한 전진캠프, 이날 힘든 산행을 이겨 낼 수 있었던 건 적당한 습도를 품은 선선한 바람, 따사로운 햇볕, 멋진 풍광들, 이런 기막힌 조건에서 세계에서 가장 멋진 크랙라인을 등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서였을 것이다. 사실 이 때까지도 5일 동안 북봉과 중앙봉을 모두 해치울 계획이었으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우리가 그때까지 걷던 트레킹 코스와 단 몇 시간 거리의 벽에서 얼마나 지옥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데는 단 하루면 충분했다.

북봉의 텔라데솔 루트 등반 시작

8일 아침 4시기상 6시 북봉의 텔라데솔 루트 등반을 위해 출발한다.

파이네는 그렇다. 트레킹지역에선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초속 5m의 바람은 그보다 1000미터가 높은 등반지역에선 비나 눈을 동반한 초속 20미터의 강풍으로 바뀐다. 전진캠프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등반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약한 빗방울을 동반한 초속 5미터 정도의 바람이었는데, 벽 밑에 도달하니 눈보라를 동반한 초속 20미터의 강풍으로 바뀌어 모든 홀드가 눈으로 덮여버린 후다. 황당하다.

머릿속이 텅 빈다. 아무 생각 없다. 묵묵히 등반을 준비한다. 그냥 내려갈 수는 없으니 말이다. 파타고니아를 마음에 품고, 몇 년을 준비하고 지구 반 바퀴를 한 걸음에 달려오지 않았는가?

장비착용하고 1피치 슬랩 구간을 출발한다. 날씨가 차가우니 신발의 마찰력도 형편없다. 5미터 쯤 전진하다 미끄러진다. 내가 신은 신발은 라 스포르티바 티시프로. 도무지 고무가 얼어 버려서 전혀 마찰력을 발휘하질 못한다. 상규의 보레알 실바를 신고 다시 붙는다.

좀 낫다. 슬랩 구간을 벗어나니 모든 홀드에 눈이 쌓여있다. 눈을 손으로 털어내고 홀드를 잡지만, 습설이라 곧바로 녹아 손과 발을 얼려버린다. 등반불가능이다. 20미터 정도에서 스토퍼와 암각을 이용한 지점을 만들고 하강한다.

오늘 쌓인 눈이 녹으려면 며칠 걸릴 것이다. 애써 올린 식량을 축내느니 센트럴야영장에 데포해둔 텐트와 식량을 올려 토레야영장에 베이스를 구축하기 위해 내려간다.


다시 1월 11일 전진캠프로 향한다

기상예보가 그리 좋진 않다. 서벽의 베이스캠프인 재패니스캠프엔 칠레 등반가 5명, 미국 3명이 등반 준비 중이지만, 누구도 선뜻 등반을 시도하지 못한다.

1월 12일 새벽 4시 기상, 6시 전진캠프 출발, 8시 벽 밑 도착, 다행히 홀드에 쌓인 눈은 녹아 없어졌다. 9시 등반 시작. 온도는 0도 쯤. 바람은 초속 15m 정도, 바람이 심하니 홀드를 잡으면 곧바로 손이 언다. 초크백 속에 넣어둔 핫팩과 입김으로 손을 녹여가며 등반을 이어간다. 20미터 슬랩구간과 30미터 직상 크랙구간을 한 피치로 끊는다. 상단에 5.10+의 핑거구간이 어렵다.

양말 한 켤레위에 보레알 실바를 신었다. 등반 중엔 견딜 만하지만, 휴식 중엔 발이 언다. 릿지화를 한 켤레 더 챙겼어야 했다. 자유등반을 하는 선등자로선 그 무게가 부담인지라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반이 불가피하다면, 동계용 암벽화를 준비하던지, 보온과 방수가 되는 릿지화를 달고 가는 게 맞다.

1피치를 주마로 오른 상규가 2피치 선등으로 가고 싶은 눈치다. 후등은 주마를 하기 때문에 장비를 바꾸어 착용하는데 시간허비를 하지 않으려면 선등을 바꾸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그래 상규야 정상까지 가자!” 상규 선등으로 2피치, 3피치, 4피치, 무리가 없다. 5.10의 핸드와 레이백크랙을 모두 깔끔하게 자유등반 한다. 5피치는 경사가 좀 심해지는 구간이다.상규가 나보고 가란다.

“뭐야 양보야 뭐야 추워 죽것고만”

눈발까지 내리기 시작하고 바람도 세진다.

6피치 등반부턴 아예 스노샤워다. 순식간에 홀드가 눈에 덮인다. 손이 거의 젖은 상태로 초속 20미터의 바람에 노출된다. 붉은 색으로 얼어가는 손! 누구든 등반을 중지했어야 맞다.

하지만 여기서 내려가기엔 그 동안의 기다림과 그리움이 너무 컸던 모양이다.

“파타고니아” “짜왕”을 외치며 미친 듯이 폭풍을 뚫고 간다.

어느덧 9피치, 이제 바람이 아니라 폭탄이다. 바람이 부는 게 아니라 터진다. 몸은 중심을 잡을 수가 없고, 스노샤워가 얼굴을 때리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의 등반은 미친 짓이다.

정상까진 2피치가 남았다. 다행인 것은 거의 대부분의 홀드가 재밍 홀드인지라 손과 눈의 접촉을 피해가며 등반할 수 있다는 거다. 마지막 11피치를 상규에게 맡기고 서둘러 릿지화로 갈아 신고 우모복을 꺼내 입는다.

드디어 정상

정상사진 찍고 곧바로 하강, 처음 두 번의 하강은 스토퍼로 지점을 만들어서 한다. 추위에 체력은 급속도로 떨어지고 바람은 멈출 생각을 안 하니 하강도 걱정이다. 아니나 다를까 5피치 하강 중에 5.5mm 스태틱 로프가 암각에 끼어 회수가 안 된다. 풀러 올라가기엔 너무 지쳐있고 몸이 얼은 상태다.

로프를 일단 버리고 주 로프 한 동만 가지고 하강하기로 한다. 내일 회수하기로 하고 캠을 써서 30미터 하강 6번으로 하강을 마치니 오후 9시다. 등반시간만 12시간 걸렸다.

내 생애 가장 고통스럽고도 극적인 하루였으리라. 이겨낸 내 자신이 대견하다. 같이 해준 상규에게 고맙다. 전혀 위축되지 않고 파이팅하는 모습에서 그에게 내재한 엄청난 알파인등반의 유전자를 보게 된다.

배록현 대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는 전진캠프에 돌아오니 11시다. 전체운행시간 17시간, 토레 3봉 통틀어 시즌 초등이다. 아무도 이런 날 등반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날 등반한 것이다. 하지만 대가를 치루어야 했다. 손가락과 발가락 끝에 오른 동상이 원정기간 내내 나를 괴롭혔다.

파이네 3봉의 등반은 이미 단순한 거벽등반을 넘어선다. 초속 20미터가 넘는 바람을 뚫고 벽 밑까지 도달하는데도 체력소모가 크고, 거기서 좋은 날씨를 기다려야하고, 특별히 운이 좋아 하루 종일 좋은 날씨-이런 날을 한 달 동안 딱 한 번 본 것 같다-를 만나지 않은 이상 눈이나 비 바람 등의 헨디캡을 극복하면서 등반해야 한다. 그리고 등반이나 하강 중 실수가 곧바로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니 알파인 록클라이밍이라 해야 할 것 같다.

토레 북봉 등정의 축하파티는 그토록 노래를 불렀던 짜왕 3개를 칠레 햄과 치즈랑 함께 볶아 먹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행복한 밤이다. 우리 안의 모든 것을 태웠으며 살아 돌아 왔으므로….


중앙봉 동벽 등반

이제는 우리 원정의 핵심인 동벽의 ‘riders on the storm’ 을 등반하기로 한다.

북봉 아래 데포해둔 암벽장비를 회수해 온 다음날 곧바로 동벽으로 향한다. 토레 캠프에서 파이네 중앙봉의 동벽으로의 어프로치는 정말이지 예쁜 길이다. 서벽의 어프로치는 안정된 돌이 하나도 없는 너덜길로 특히 바람이 심한 날이면 사람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그렇다. 그에 비하면 동면의 길은 협곡 사이의 오솔길을 걷는 예쁜, 고마워서 예쁜 그런 길이다.

이 길을 26년 전 불세출의 클라이머 볼프강 귈리히가 걸었을 것이다. 그는 알피니즘의 역사에서 스포츠클라이밍이 분리되어 나오는 시점에 최선두에서 스포츠클라이밍의 발전을 이끌었던, 지금도 악명 높은 엑션다이렉트(5.14d)를 초등한 클라이머이다. 영화 클리프행어의 실베스타 스탈론의 대역이었음을 상기하면 쉽게 이해될 지 모르겠다.

그는 35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요절 했지만 역사적인 인물이다. 알피니즘의 역사에서 스포츠클라이밍이 분리되어 나오는 시점에서 그가 얼마나 진지했는지를 보여주는 루트가 트랑고 타워의 이터널 프레임(5.12c A2)과 파이네 중앙봉의 ‘riders on the storm’(5.12d A3)이다.

그에게 스포츠클라이밍은 보다 더 전위적인 알피니즘을 실현하기 위한 무기였을지도 모른다. 그가 스포츠 클라이밍이라는 무기를 들고 달려든 벽, 그 벽을 향해 내가 걷고 있다.

두 시간을 걸으니 전진캠프로 쓰는 비박동굴이 나오고 비로소 파이네 중앙봉의 동벽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정말이지 멋진 벽, 멋진 라인이다. 여기서 또 한 시간 아이폴 지대를 지나야 벽의 출발지점이다.

귈리히는 네 명의 당대 최고의 클라이머들과 함께 1200미터의 이 초대형 벽에서 불가사의한 파타고니아의 날씨와 싸우며 36피치를 이어 정상에 도달했고, 그중 30개의 피치를 자유등반으로 올랐다. 두개의 5.12d 피치를 포함한 5.12 피치가 11개, 5.11피치 12개, 6개의 5.10 그리고 5.7이 한 개이다.

그가 자유등반하지 못한, 주로 스카이훅을 써서 인공등반 한 여섯 개의 피치는 그가 후대의 클라이머들에게 남긴 무시무시한 유물이리라. 26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수한 도전이 있었다. 그 중 단 다섯 팀만 이 유물의 존재를 확인-등정-하였고 또 조그만 진보를 이루었다.

그 진보의 한 주인공 메이언 스미스가 위에서 걸어오고 있다. 작년에 ‘riders on the storm’ 의 다섯 번째 완등자가 되면서 17피치와 32피치에서 자유등반을 성공시킨 그녀는 우리보다 먼저 파이네에 들어왔고 이미 보름이상 등반을 하고 있었다. 작년과는 다른 나쁜 날씨로 인해 오늘까지 7피치까지 밖에 도달하지 못한 그녀는 내일 날씨가 좋아 아침 일찍 등반을 시작하겠다고 총총히 두 명의 동료들과 함께 토레캠프로 하산한다.

그동안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강행군 한 우리는 비박동굴에 암벽장비를 데포시키고 하산한다.

1월 22일, 포타렛지를 비박동굴에 올려놓고 한 시간을 더 걸어 ‘riders on the storm’ 출발지점에 도착하니 11시 30분이다. 벽에는 눈이 녹아 흘러내려 젖은 곳이 많다. 5피치까진 5.10의 쉬운 슬랩구간이니 가 볼만 하겠다. 무엇보다 바람이 없고 온도가 높으니 지금까지 파이네에서 가장 등반하기 좋은 날이다.

1피치 출발, 전혀 손이 시렵지 않은 것이 마치 윌출산 매봉에서 등반하는 것처럼 여유 있고 즐겁다. 드디어 파타고니아에 온 보람이 있나 보다. 슬랩에 크랙이 잘 발달되어 있으니 캠을 써서 지점을 만들고 피치를 끊는다. 피치를 길게 뽑아 원래보다 한 피치를 줄여서 4피치를 등반하니 6피치 쌍볼트다.

크랙과 슬랩이 섞인 5.11a의 6피치, 드문드문 젖어 있는 구간이 있지만 자유등반하는 데 문제되지 않는다. 7피치, 5.12b의 슬랩이다. 좌측 슬랩으로 가야하는데, 직상크랙으로 출발 후 트레버스 하다가 죽는 줄 알았다. 슬립하면 15미터는 족히 추락 할 것 같다.  메이언의 픽스 로프가 나도 모르게 손에 잡히고 만다.

“으! 스타일 구겼다. 거의 다 왔는데….”

바위만 마른 상태라면 크게 어렵진 않겠다.

자! 여기까지가 메이언이 보름 넘게 등반하여 도달한 곳인가? 지금 메이언은 두 피치 위에서 등반하고 있다.

8피치 등반이다. 초등 당시 네 개의 스카이훅을 쓰고 인공등반된 곳을 누군가 직등라인으로 자유등반을 성공시킨 5.12b의 슬랩이다. 크럭스가 젖어 있다. 좀 전에 자일을 잡아 구겨졌던 자존심을 만회하려 했을까? 과감하게(또는 무모하게) 가다가 보기 좋게 슬립, 중간에 너트 두개가 모두 빠지면서 15m를 추락한다. 날 잡아 준건 26년 된 볼트 한 개다.

젖은 상태론 저 슬랩을 넘어 갈 수 없다. 시간은 오후 5시 30분, 오늘은 어차피 루트정찰이 목적이다. 감 잡았으니 하강하자. 이제 포탈레지 가지고 출발할 날짜만 잡으면 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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