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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철의 세계산책 / 중국 노산

 

알수록 높아지는 도교(道敎)의 노산(山)  

들어설수록 깊어지는 산

 

중국 산동성 청도시 바닷가에 솟은 노산은 높지 않다. 표고 1132미터. 경기도 용문산보다도 낮다. 그럼에도 18,000킬로미터에 달하는 중국대륙 해안과 맞물린 산 가운데 가장 높다. 낮지만 알수록 높고, 깊고, 신령스러운 산이기도 하다. 수천년 역사를 이어 온 중국 민간신앙 도교 발상지로 무진장한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글 · 신영철 편집주간  사진 · 김민규 MBC <사람, 산> 촬영감독

 

인천광역시 청도구

울산 MBC TV가 4년째 제작하고 있는 리얼다큐 <사람, 산>이, 이번엔 해외특집으로 노산을 선택했다. 노산에서 닭이 울면 인천에서 들린다는 과장된 이야기가 있다. 한반도를 향하여 툭 튀어나온 산동반도가 그만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우스갯말. 그 산동반도에서도 다시 동쪽으로 튀어 나온 땅 끝에 노산이 있다. 화강암 바위치마를 슬그머니 바다에 담그고 있는 해안 제1의 경관이라는 노산. 산과, 바다와 도교문화재가 어우러진 노산은 중국이 선정한 ‘명승구’ 중 하나이기도 했다.  

울산 MBC 김병주 PD로부터 이번엔 청도 노산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반가웠다. 깊이 있는 공부는 아니었으나 동양철학에 흥미가 있었다. 그중 도교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태극기는 가운데 태극 문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로 구성되어 있다. 태극 문양은 음(陰:파랑)과 양(陽:빨강)의 조화를 상징한다. 태극은 주역과 연관이 있으나 도교가 받아들여 체계화시켰다. 그러니까 우리 태극기 문양은 도교의 팔괘에서 나온 것. 음양의 상호 작용에 의해 우주 만물이 생성하고 발전한다는 도교판 천지창조.

과연 중국은 지척이다. 신문 8면을 다 읽기도 전 도착한 청도공항에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마중 나온 사람은 조선족으로, 북경동양문화 김성천 사장, 산동신문 김철호, 박금표, 조려하씨. 그리고 중국산악인 곽희범, 묘진지씨가 길라잡이로 동참했다. 한국에서 동행한 트로트가수 백장미씨와 함께 프로그램에 출연할 인물들. 바다를 끼고 달리는 도로를 따라 입산 들머리 ‘팔수하’라는 곳으로 떠났다. 인구 대국답게 탐방객을 감당할 거대한 주차장이 노산들머리에 있었다. 산의 풍경구를 보호하고 몰리는 차량은 통제하기 위해 선택한 묘안이겠다. 거기서 공용셔틀 버스를 타야만 노산 대표적인 등산로에 입장할 수 있다. 우리는 미리 당국의 허가를 받았기에 우리 차로 입장할 수 있었다.

“백장미씨 저 바다를 헤엄쳐 건너가면 인천이 나와요. 그럼 저 바다가 서해인가요? 아님 동해인가요.” “에이, 인천 앞바다이니까 당연히 서해잖아요.” 때로는 고정관념이 우리 생각을 헛갈리게 할 수 있다.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요. 태산이 아무리 높다 해도 동해의 노산만 못하다” 중국에서 보면 우리의 서해는 당연히 동해바다가 맞다. 푸른 바다와 하얀 화강암이 조각처럼 솟은 노산이 참 잘 어울린다. 중국의 민족 종교 도교의 발상지였고, 불로장생을 꿈꿨던 진시황에 얽힌 이야기가 이 산에도 있다. 금강산처럼 불로초를 찾기 위해 많은 신하들을 보냈단다. 불로초를 찾지 못해 시황은 죽은 걸까. 그만큼 신비롭고 바위들이 아름답다. 그러므로 이 노산은 신선의 산이라는 별명도 얻고 있다. 산자락을 푸른 바다에 담근 노산 들머리 팔수하 호텔에 닿았다.

간밤에 마신 ‘청도 맥주’가 유명한 건, 노산의 물이 좋아서라고 중국 출연진이 주장한다. 오늘 산행은 태청궁()으로 부터 반도봉, 명하동, 상청궁, 용담폭포를 거쳐 팔수하 숙소까지 이어진다. 매번 그렇듯 촬영팀은 손발이 척척 들어맞아 허투루 낭비하는 시간이 없다. 큐- 사인이 떨어지자 출연진은 호텔부터 바다를 끼고 태청궁을 향해 걷는다. 태청궁은 기원전 140년 서한 한무제 시기에 건설한 가장 쿤 규모의 도교 건축물이다. 노산이 뭐야 중국 대륙의 무수한 도교사원 가운데 기록에 나타난 가장 오래된 도교의 본산이 태청궁이다. 2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 도교사원엔 거대한 노자(老子) 입상이 우뚝하다. 불꽃처럼 솟은 바위산을 후광처럼 업고 동해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인도에 힌두교가 있다면 중국에는 도교가 있다.

“백장미씨 힌두교 다신교라는 거 아세요” “그럼요” “신이 몇 명인지 아세요?”“그건 모르겠네요” “다, 신이에요. 모두가 신. 그래 다신교지요” 웃자고 한 말처럼 도교도 무수한 신이 있다. 노자 철학이 마음에 들자 노자를 교주로 모시고, 칼 쌈 잘하는 관우도 신으로 등극했다. 그렇다고 만만히 보기엔 우리와 인연이 너무 깊다. 태극기는 물론 옥황상제 용왕 등 한국의 민속신앙에 많은 영향을 준 도교였다.

도법자연

태청궁 앞에서 검은 옷을 입고 모자를 쓴 젊은 도사(道士)를 만났다. 도사는 도교를 믿는 사람을 지칭한다. 그들이 수행하는 곳을 도관(道觀)이라 부른다. 엄지를 휘감아 두 손으로 태극을 만들어 상대에게 흔드는 인사법을 배웠다. 중국무협 영화에서 많이 본 인사법이라 생각하니 도사도 무협고수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이면 광장에 모여 군무를 추듯 유연한 동작을 하는 게 바로 도교가 창안한 태극권이다. 무당검법과 권법도 도교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이미 20년 전  또 하나의 성지 호북성의 무당산을 간 적이 있었다. 거기서 처음으로 태극기의 역사를 알았다. 태청궁 정문 앞 거대한 대리석 구조물에 쓴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는 음각이 보인다. 노자 사상의 핵심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곽희범씨 무위자연은 알겠는데 도법자연은 이곳에서 처음 봅니다. 무슨 말인가요?”

“이 말은, 하늘은 도(道)를 따르고 도는 자연을 따른다는 겁니다. 만물의 근원은 무(無)이며, 무의 성격은 곧 자연으로, 사물에 부딪히거나 거스르지 않고 항상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물과 같다는 뜻이지요. 바로 이것이 생명의 근원을 이루게 한다는 겁니다.”

아리송한 그의 설명과 여기저기 그려져 있는 8괘를 본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머리가 어지럽다. 태청궁 뒤편으로 난 등산로는 중국의 다른 명산처럼 역시 돌로 만든 계단길이었다. 돌계단을 따라 한참을 오르다 중국인 길라잡이 곽희범씨 안내로 사잇길로 빠졌다. 계단을 싫어하는 건 한국인만이 아닌 듯 자신들도 이런 길을 찾아 오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오를 반도봉 정상 절벽에 새긴 요지(瑤池)라는 붉은 글씨가 잘 보였다. 이렇게 산 아래에서 보는데도 또렷하다면 상당히 큰 글씨라 짐작된다. 요지(瑤池)는 도교신화에 등장하는 서왕모라는 대장 여신이 목욕하는 장소라는 것. 가을의 삽상한 기온은 한국과 다를 것이 없었다. 똑 같은 영상이 분명할 돌계단을 버리고 찾은 숲길을 따라 점차 고도를 높였다.

오를수록 가라앉는 황해가 가없이 펼쳐진다. 사방이 툭 터져 바다와 조각처럼 치솟은 바위봉들이 환상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머리에 쥐가 날만큼 어려운 도교의 본산 태청궁 노자상도, 이제 점으로 보인다.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른다. 계곡의 물도 산을 내려가 바다를 만나는데, 인간만 물과 반대로 산을 거슬러 오른다. 노자가 쓴 도덕경(道德經)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구절이 나온다.  “최고로 좋은 것은 물과 같다. 왜냐하면 물은 다투지 않으면서도 만물을 이롭게 하고, 사람이 많은 곳에 머물기를 싫어하는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오르고 있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떠오른 건 역시 도교의 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돌계단을 만났다. 아래서 보이던 붉은 글씨 요지(瑤池)가 커다랗게 보이니 많이 올라오긴 한 모양이다.

그런데 김병주 PD가 등산로를 벗어나 그 글씨가 써진 바위절벽을 오를 걸 제안한다. 그림이 좋을 것이 틀림없는 명당이었으니까. 우리는 가파른 바위틈을 비집고, 막히면 세미클라이밍을 하며 글씨 바로 아래까지 올랐다. 막힘없는 조망에 놀랐고 붉은 글씨 한 획이 수십 미터는 족히 된다는 걸 보며 또 놀랐다. 다음으로 오를 곳은 명하동(明霞洞)이란 곳이었다. 이 높은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그 마을 이름이 명하동인가 싶었다. 그러나 노점상들이 즐비한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서 만난 명하동은 도교의 한 분파가 시작된 성지였다. 거대한 바위가 떨어져 덮인 천연바위동굴인데, 이곳에서 도사들이 수행을 했다는 것이다. 후대에 지어진 사원들은 옥황상제를 모시고 있다. 경내에는 수령을 700년 이상 추정하는 은행나무 암수 두 그루가 사이좋게 서 있다. 특이하게도 나무 우듬지 주변을 작은 은행나무들이 자식들처럼 둘러싸 자라고 있었다. 명하동 석축에서 노산 아래를 조망하는 풍경이 아주 보기 좋았다.  

하산길에 만난 도교 사원 상청궁은 깊은 산속의 사원답게 조용하다. 정문 앞의 은행나무는 천년을 넘긴 노거수라 청도에서 가장 유명한 나무라고 했다. 노산 곳곳 도교사원에 유독 은행나무가 많은 이유가 있다. 모두 인공적으로 심은 것이다. 은행나무는 독특한 수액 때문에 해충이 덤비지 못한다. 도교 역시 살생을 금하므로 은행나무를 심는다는 것. 끊임없는 돌계단을 내려가 만난 용담폭포는 노산에서 손꼽히는 절경이었다. 높이 30여 미터로 바다 가까운 곳에 이런 폭포가 존재한다는 게 신비롭다. 용이 꿈틀대듯 떨어지는 물줄기와 폭포아래의 쪽빛 담 때문에 용담이라는 이름이 유래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 산악회에서 이 산을 자주 오는데 장마철이면 그 위용이 대단하여 무지개가 늘 떠 있더군요. 지금은 많이 어렵지만 한국기업이 천여 개가 운영 중이고요. 한국촌에서는 중국말 몰라도 삽니다. 그러니 청도에도 조선족 산악회가 수십 개 있어요.”

조선족 산악인 박금표씨가 그렇게 말하는데 중국인 곽희범씨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조려하씨 통역으로 그 이야기를 이해한 곽희범씨가 그 말을 받고 나선다.

“중국에서 한류가 유명하듯 우리도 한국에서 등산문화를 배웠습니다.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소풍 유람에서 등산으로 방향이 옮겨 가고 있지요. 그건 모두 한국의 영향입니다.”

공연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오후 3시경 하산을 마친 우리는 차량으로 다시 태청궁으로 이동했다. 어렵게 태청궁 관장을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유서 깊은 도교의 본산 최고위직인 관장을 만날 때의 주의 사항을 들었다. 악수를 먼저 청하지 말라, 모자를 벗어라, 경의를 표해라 등등. 카메라가 우르르 앞에 설치되고 관장과 대담이 시작되었다. 도교의 교리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었는데 파룬궁에 대한 강력한 비판론도 나왔다. 도교 교리를 일부 베낀 혹세무민하는 사교(詐敎)라고. 파룬궁에 대한 폐해가 심각한 듯 보였다. 파룬궁은 한국에선 법륜공이라 부른다. 그런데 자꾸 웃음이 나와 관장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다. 검은 옷에 모자를 쓴 관장의 모습이 영화 취권에 나오는 사부모습과 너무 닮았기 때문.  

천지순화를 돌다

이튿날 노산에서 제일 유명한 노말 루트인 거봉 산행이 시작되었다. 이곳도 셔틀버스만 운영된다. 우리는 허가를 받았기에 들머리인 천지순화(天地淳和) 광장까지 차를 가지고 올랐다. 광장으로 오르는 2차선 도로 양쪽엔 도교 성지답게 온갖 조형물들이 서있다. 신선상하며 노자상 그리고 도덕경 구절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이 조각되어 있었다. 노산의 최고봉 거봉(巨峰)이 위치한 이 등산로는 가장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곳이었다. 천지순화라 쓰인 거대한 대리석 산문 뒤로 화강암 봉우리들이 수석전시회처럼 늘어서 있다. 케이블카가 중턱까지 운행하지만 우리는 걸어 올라야 한다.

역시 이곳 등산로도 바위를 깎거나 화강암을 깔아 만든 돌계단으로 이뤄져 있다. 입구에 그려진 팔괘를 보며 오늘 역시 도교의 영향권을 벗어 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정상을 한 바퀴 도는 구간에는 팔괘를 그린 8개의 문이 만들어져 있다. 이문(離門), 곤문(坤門), 태문(兌門), 건문(乾門), 감문(坎門), 간문(艮門), 진문(震門), 손문(巽門)이 그것이다. 이 팔괘는 도교에서 인간계를 설명하는 여덟 가지 기호체계다. 하늘, 땅, 우레, 불, 지진, 바람, 물, 산을 상징한다. 도교는 자연주의적 색채가 깊은 종교다.”

중국인 길라잡이 곽희범씨의 설명을 조선족 산악인 박금표, 조려하씨가 번갈아 통역을 맡았다. 박금표씨는 요점만 정리하는 웅변형이었는데 조려하씨는 여성답게 목소리가 너무 예쁘다. 하룻밤 만에 이젠 오랜 지기처럼 편해진 중국인이나 조선족이 방송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누구나 그렇듯 카메라에 집중하면 뻣뻣하다가 익숙해지면 편안해진다. 힘차게 <사람, 산> 파이팅 구호로 카메라가 돌고 산행이 시작되었다.

“이 커다란 산 곳곳에 사원이 있지만 저는 아직 도교가 뭔지 감이 오질 않네요.”  

백장미씨가 그렇게 말했다.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오래 전 사라진 종교이니까.

“신선, 단학, 음양, 오행, 산신령, 용왕, 옥황상제, 치성, 도사, 북두칠성, 성황신에다, 흔하게 회자되는 삼천갑자 동방삭은 들어 봤어요?” “지금 도교 염불하시는 거예요?” “맞아요. 그게 다 도교 용어랍니다. 한국이 도교 영향을 크게 받은 증겁니다.” 백장미씨에게 그렇게 설명하면서도 우리 생활 속에 도교 잔재가 엄청 많음을 깨닫고 새삼 놀란다. 지금은 생소한 종교이지만 도교는 삼국시대엔 국교 역할을 한 적도 있다. 삼국사기엔 고구려 영류왕이 당나라에 도교를 요청하였고, 당은 도법(道法)과 함께 도사(道士)를 파견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은 경복궁의 북쪽에 소격서(昭格署)를 두고 의식을 지냈다. 지금 서울의 삼청동(三淸洞) 소격동(昭格洞) 등이 당시의 도교 흔적들이다.

바위계단이 끝없다. 그런데 매일 돌계단을 걷다보니 저절로 도가 튼 것인지, 한 생각이 비집고 올라온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 했던 인위적인 돌계단이, 자연을 파괴한 게 아니라 보호한다는 깨달음. 토양이 파일 염려가 없으니 천년을 갈 영원한 등산로 아닌가. 원래 노산의 실질적인 정상은 ‘거봉’이다. 하지만 현재 군부대가 위치해 있어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런데 정상 바위봉우리의 군부대 레이더가 흡사 로켓처럼 보인다. 정상을 오를 수 없으나 정상부를 둥글게 한 바퀴 도는 코스가 ‘천지순화’길이기에 뛰어난 풍경은 감상할 수 있다. 팔괘의 이름을 붙인 자연석굴 혹은 고개를 도는 등산로였다. 지겨운, 그러나 등만 돌리면 바다와 점점 섬들을 볼 수 있는 돌 등산로. 서해도 동해도 아닌 황해 바다에 떠 있는 섬 풍경이 한국의 바닷가였다. 누구나 노산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등산화에 흙 한 점 묻히지 않고 산을 오를 수 있다.

케이블카 승강장을 지나자 드디어 팔괘 중 첫 관문인 이문(離門)이 나타났다. 정남향으로 세워진 대리석 문에 상징이 새겨져 있다. 집을 지을 때 남향을 찾는 풍수지리도 도교의 영향을 받았다. 태극기에서 본 괘를 만나다니 신기하다. 3시간가량 걸리는 팔괘문을 모두 통과하면 행운은 물론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고 한다. 갈림길이 나타났고 우리는 우리가 오를 수 있는 최고봉인 영기봉을 먼저 오르기로 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알봉을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래에서 보니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팔각정 누각이 보였다. 올라가 보니 바로 영기봉 정상 턱밑에 만들어 놓은 ‘재성각’이었다. 팔각정을 만들 때 팔괘를 염두에 둔 게 확실하다.

재성각 안에 앉아 촬영에 임했다. 자연이 만든 조각공원이라는 수식에 어울리게 영상이 멋있을 것 같다. 헬리캠은 현대 방송에서 필수품이다. 벌떼 나는 소리를 내며 헬리캠이 신이 났다. 우리 주변을 360도로 돌기도 하고 계곡 아래로 갔다가 까마득한 허공으로 솟는다. 정상으로 오르는 계곡 위 다리 선천교를 지나 영기봉 정상에 섰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밀려와 오래 있을 수 없어 금방 내려와야 했다. 다시 갈림길로 하산한 이제 거봉을 중심에 두고 본격적으로 팔괘문을 돌기 시작했다. 오르락내리락 하며 간문(艮門)을 통과했다. 바위 능선 너머로 못 보았던 쪽의 바다가 펼쳐진다. 푸른 바다를 보니 설악산 공룡능선을 가며 동해를 보는 느낌도 든다. 진문(震門)을 지나자 갑자기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 힘든 산행보다는 소풍 탐방객 수준이 많다는 증거다. 단로봉으로 오르는 길 곁에, 직각으로 잘려진 큰 바위 면에 도덕경이 붉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하(下)편이다. 카메라 앞에서 먹물 자랑을 시작했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무엇이든 지극한 경지의 것은, 인간의 짧고 유한한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는 노자 도덕경의 아주 유명한 문구입니다. 그 뜻은 ‘도를 도라 말하면 그 말하여진 도는 더 이상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런 뜻 입니다.” 백장미씨나 조선족 대원들이 진지하게 듣는 표정이라 먹물답게 한 번 더 오금을 질렀다.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역시 그런 뜻인데요, 세상만물은 시시각각 변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먹물 정체가 단박에 뽀록났다. “그거 당연한 거 아닌가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게 어디 있나요?”

폼 잡는 말끝에 쉽게 나온 백장미씨 반문에, 또 머리를 꽝! 치는 깨달음이 왔다. 정말 그랬다. 노자 철학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자연을 이해하면 누구나 아는 철학이었다니. “자, 더 배울게 없으니 하산을 서두릅시다.”는 말로 얼버무리며 길을 이어 나갔다. 단로봉으로 오르는 길은 암벽에 만든 잔도였다. 거대한 암봉 꼭대기에 복(福)자가 붉은 글씨로 크게 새겨져 있는데, 더블 복을 받으라는 것인지 특이하게도 두 개였다. 감문을 지나고 건문도 지나고 태문을 지나 허공다리인 철삭교도 건넜다. 마지막 곤문(坤門)을 통과하여 하산 길 계단을 만나면 출발했던 이문을 다시 만나게 된다. 천지를 한 바퀴 돈다는 팔괘를 모두 끝마친 것이다.

“백장미씨 팔괘를 모두 돌면 소원 하나가 꼭 이루어진다는데 무엇을 빌었나요?” “당연히 제 노래가 대 히트 되는 날이 오기를 빌었어요. 영험한 산이니 소원 들어주겠죠? 대장님은 요?” “난, 그저 산에만 다닐 수 있는 건강이면 족하다고 기도했어요.” 그건 진짜였다. 명가면비상명아닌가. 출발지점인 이문에서 촬영이 끝났다. 만족할 만한 영상을 얻었다고 생각했는지 김병주 PD가 큰 선심을 쓴다. “자, 하산은 케이블카를 타고 갑니다.” 스텝들 모두 환호한다. 그러나 그 선심은 립서비스로 끝났다. 정류장으로 신나게 내려갔으나 케이블카가 운행을 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억울할 건 없다. 촬영이 없으니 노산이 우리에게 주는 깊고 그윽한 길을 다시 음미하며 내려설 것이니까. 길은, 도교나 불교에서 은유하는 도(道) 아닌가. 도교의 진산 노산을 거닐며 염불처럼 도가도비상도를 외울 수 있는 것도 또한 멋진 풍류일 테니까. 돌로 시작해 돌로 끝났던 노산 등산. 3일 동안 흙 한번 제대로 밟지 못한 산행이었다. 하지만 들어설수록, 알수록 깊은 산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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