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산 세계의산 전문등반 등산정보 MM산장 쇼핑몰 사람과산
spaceid spacepw space

title

원정등반기
해외등반지
해외트레킹

자전거 순례④

 

, 남자들의

의 나타샤!

 

구한말 식민지 시절 북방이 트였을 때 백계 아라사(俄羅斯, Russia) 미인에 대한 이야기가 신문 잡지 소설 등 문학작품에 자주 등장했다. 백러시아와 백계러시아는 비슷한 것 같지만 약간 다르다. 나타샤, 카츄샤, 쏘냐 등은 러시아 소설 속에서 만난 여인들이다. 카츄사, 볼가강뱃노래, 스텐카라친, 카사크 노래, 백학 등을 추억의 앨범에서 소환해 본다.

글 사진 · 김규만(굿모닝한의원 원장)

 

# 고르바쵸프는 자살특공대?

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한다면, 공산주의는 ‘자유를 제한하는 대신 평등’을 우선시했다. 이론적으로 평등을 갈망하는 것은 ‘엄청난 차별’이 존재한다는 전제이다. 그들의 행동강령이 ‘계급투쟁’인 것은 ‘평등’을 목말라했다는 것이다.

짜르(황제)가 지배하는 강력한 전제정치, 전 국민 6천만 명 중에 5천만 명이 농노(農奴)인 제정러시아의 차별이 그랬다. 빈부(貧富)는 소유의 다소(多少), 귀천(貴賤)은 신분과 계급의 상하(上下)이다. 극단적인 차별(差別)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평등’이 될 수밖에 없다. 1980년대에 미소 간 냉전(Cold War)이 약화되면서 점차 새빨갛고 촌스럽기만 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스탈린주의, 마오주의 등 다양한 형태의 세련되지 못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피켓을 든 국가들은 비상식 비합리 비효율 비실용적이어서 국제적인 수준과 경쟁력이 너무 낮았다.

공산권의 핵심인 소련에서 평등을 부르짖으며 계급투쟁을 했던 그들이 또 다른 공산 귀족계급(노멘클라투라)을 형성하는 모순이 몰락을 재촉했다. 새로운 계급으로 부상한 그들도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으로 이권을 독점하면서 부정부패는 심각해졌다. 경제 규모가 소련의 2배인 미국과 군비경쟁을 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고 감당할 수도 없어 전략무기감축을 시도했다. 1986년, 고르바초프(1931~) 서기장은 글라스노스트(гласность, 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перестройка, 개혁)를 내세워 소련의 경제 부흥을 이끌면서 199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1991년 보수파들의 8월 쿠테타로 실각했지만 2일 만에 부활했으며 자살특공대처럼 소비에트 연방을 폭파하고 해체했다. 역사적으로 ‘공산화를 재촉하던 도미노(Domino)’가 반대로 ‘공산주의를 해체하는 도미노’로 작용했다. 혹자는 여럿이 합해진 소비에트 연방도 오래되면 반드시 나뉜다는 합구필분(合久必分)으로 설명했다. 나뉜 결과가 독립국가연합(CIS)이다.  

1990년대 한국의 산악인들은 러시아와 독립국가연합으로 원정을 많이 갔다. 코뮤니즘(7,483m), 포베다(7,439m), 레닌(7,134m), 고르제네브스키(7,105m), 한텡그리(7,010m) 등 7천m대 봉우리는 히말라야 8천m대 원정을 가기 전에 다녀갔다. 촌스럽고 세련되지 못한 사람들의 비합리 비상식 비효율 비실용적인 문화와 관행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한 것을 목격했다. 1993년 모스크바를 거쳐 카자흐스탄 알마티로 날아갔다. 그리고 알마티에서 상트페테르부르그로 갔다가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사회주의 나라의 제도 전반이 너무 많이 망가진 느낌이 들었다.

칼 마르크의 공산주의는 인간의 본질을 성찰하지 않았음에도 인류의 마음을 1세기 이상 사로잡았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공산주의는 20세기 초에 꽃피어 활활 타오르다가 세기말을 넘지 못하고 저물어갔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긴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희생이고 실험이었다. 다만 모든 인간은 평등해야 하고, 골고루 분배받아 인간된 권리를 향유해야 된다는 본질적인 가치를 가르쳐 주었다.

애석하게도 이념대결의 최전선에 선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해 언급하다 구설수에 오르면 잡혀가 고문당하고 인생을 끝낼 수 있어서 조심하고 피했다. 그래서 대부분 아는 것 같지만 잘 모르고 알더라도 두루뭉수리하고 피상적인 정도여서 분명하게 극복하기가 더 어려웠다.

1991년 소련의 해체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실험이 끝났다는 공식적인 선언이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는 낡은 개념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사라진 유령을 보고 빨갱이라 칠을 해 표시(刻舟求劍)하고, 종북 좌파라고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을 들고 다니면서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은 종교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실체가 없는 사라진 유령을 타도하자고 외치는 태극기를 손에 든 성님과 누님들은 종교의 영역에 들어선 것일까? 자고로 도깨비나 유령은 밝은 곳에서는 절대 존재할 수 없다. 이런 미망(迷妄) 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깨우치고자 디오게네스(Diogenes)는 대낮에도 등불을 들었던 것이다.

 

 # 볼세비키에 저항한 백군의 여인들, 백계러시아 미인  

절대왕정 전제정치 하에서 입헌군주제나 공화제, 농노해방을 기치로 걸었지만 실패한 데카브리스트 봉기(1825)는 세기를 넘어 1917년 볼세비키혁명(러시아 혁명)으로 역전되었다. 볼세비키 세력들이 짜르 세력을 물리친 혁명이었다. 기득권을 가진 짜르 보수 백군들은 강력한 저항을 하면서 내전(內戰)에 돌입했다. 이 내전이 적군과 백군의 싸움이었다. 196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솔로호프의 엄청난 대하소설 『고요한 돈강』은 혁명의 격랑 속에서 정확히 갈 길을 모르고 백군과 적군 사이를 몇 번이고 오가고 방황하면서 망가져 가는 돈강변의 카자끄 남성(그레고리 메레호프)과 정열적인 이웃집 유부녀(악시냐)의 비극적인 사랑과 몰락해가는 가족을 그리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볼세비키혁명(1917), 볼세비키 적군에 대항하여 기득권을 가진 멘세비키(소수파) 왕족과 귀족들의 백군이 싸우는 전쟁 중에 빚어지는 갈등과 생사와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일제시대에 적계(볼세비키, 노동자농민)러시아인과 구별하기 위해 백계(멘세비키, 황제 귀족)러시아인이라 했다. 볼셰비키 적군을 피해 만주 연해주 등지로 온 러시아 왕족 귀족 백군 장교들의 부인과 딸들을 백계러시아 미인이라고 불렀다. 이런 우익의 백계러시아인과  벨라루스로 태생의 백러시아인은 같으면서 다르다.

 

# 김 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를 아시나요?

연해주의 우스리스크 부근 고려인 거주지에서 태어난 후 최초의 볼세비키 공산당의 이론가이자 운동가로 살다가 연해주의 아무르강 가에서 총 맞고 수장된 한 많은 조선의 한 여인을 소개한다. 하바롭스크에 가면 김(金)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1885~1918)라는 조선여성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온다. 그녀는 중국 최초 공산당보다 3년을 앞선 한국 최초의 공산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그녀의 삶은 짧았지만 순결하고 용맹했으나 처절했다.  

아버지 청풍김씨 김두서는 함경북도 경흥에서 간도 훈춘을 거쳐 연해주로 이주했다. 그 과정 중 중국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시민권을 얻은 인텔리겐차로 한인촌 촌장이 되어 조선인 보호에 앞장섰다. 그녀는 11살 때인 1896년 식민철도인 동청철도 건설에 강제 동원당한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가서 건설현장에서 아버지를 도우며 자랐다. 중국인 조선인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언어에 능통한 김두서는 대화창구로 분쟁조정자 문제해결자 역할을 하며 소수민족 권익보호에 앞장섰다. 1900년 외세침략에 반대한 중국의 의화단사건이 동청철도 건설현장까지 파급되었다. 수많은 중국인들이 참수당하였지만 김두서는 끝까지 노동자 편에 서서 이들을 보호했다. 여기에서 병을 얻은 김두서는 어린 딸을 두고 쓸쓸히 죽었다. 다행히 그녀는 아버지 친구이자 폴란드출신 역장인 표트르 스탄케비치에게 입양되어 자라며 김나지아(극동의 최고급 엘리트학교)에 들어갔다. 그녀는 문학에 심취했고 웅변에 탁월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교편을 잡고 스탄케비치 아들과 결혼하여 첫아들을 낳았지만 곧 이혼한다. 신산(辛酸)한 혁명가의 길이 시작된 것이다.

1905년 교사를 그만두고 페테르부르크 대학 법학부 학생이었던 탈옥수 브로나슬라브 필수트스키를 만나 사회주의 수업을 받았다. 블라디보스톡 희랍 정교회 신부이자 혁명적인 사상가인 오가이와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뜨거운 혁명사상을 나누며 아기까지 낳았다. 블라디보스톡을 중심으로 짜르의 전제정치에 항거하는 노동운동과 동맹파업 등의 혐의로 만주로 피해서 예전 동청철도 건설현장에서 같이 지냈던 중국인과 조선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조선독립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1914년 우랄 산맥 부근 노동현장에서 실전경험이 많은 그녀는 우랄노동자동맹을 결성하여 소송대행과 임금투쟁 등을 벌여 노동자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레닌 트로츠키와 함께 3대 영웅으로 추앙받는 야코프 스베르들로프의 신임을 얻었다. 문무가 겸비된 그녀는 볼세비키혁명(1917년) 때 많은 활약을 했다. 그녀는 레닌을 존경했고 볼세비키혁명만이 조선 민족의 해방과 독립의 첩경이라고 굳게 믿었다. 비범한 그녀는 사회주의 확산을 위해 극동으로 떠나게 되었다. 연해주인 하바롭스크로 가서 소비에트 외무위원장(장관급)이 되었다. 한편 그녀는 최초의 공산당인 한인사회당을 창당하도록 이동휘를 도왔다. 당시 독립운동은 투쟁대상(일제)은 분명했으나 앞으로 건설될 미래 비전이 없어 그것을 제시해주려고 노력했다.

이제 그녀의 짧은 역사를 이야기할 시간이다. 1917년 볼세비키혁명으로 상황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짜르의 보수 세력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맹렬하게 저항했다. 그들은 까자크군, 체코 반란군 등과 함께 백군 세력을 결집해 내전(內戰)에 돌입했다. 1918년 9월 4일 백군(白軍)과 일군(日軍)이 연합하여 하바롭스크를 점령하고 조선인을 토벌하고 그녀를 체포했다. 사형집행관에 의하면 총살당한 그녀는 아무르강 우쩌스 절벽에서 죽기 전 조선8도를 상징하는 8걸음을 걸으며 독립과 해방을 염원하는 비장한 말을 남겼다고 전한다. 그녀의 시신은 아무르강에 던져졌다. 나중에 하바롭스크를 탈환한 볼셰비키 적군들은 그녀를 추모하며 2년 동안 아무르강의 물고기를 먹지 않는 지극한 예를 지켰다고 한다.

남과 북의 체제가 고착되기 전에는 우리 민족에게는 독립과  해방이 지상목표였다.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이념은 모두 민족의 독립 해방을 실현키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어떤 이념을 선택했는지 보다 무엇을 지향하고 무엇을 위해 헌신했냐는 본질적 가치가 더 중요했다. 그런 차원에서 2009년에 대표적인 우파정권이랄 수 있는 이명박정권이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녀는 제정 러시아 출신의 공산주의 혁명가이자 한국 최초의 공산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였다.

 

# 북반구 최고의 미인 백러시아 여인들

‘미인의 나라’로 치면 북반구는 벨라루스, 남반구는 베네수엘라라고 한다. 벨라루스 여인은 백옥 같이 흰 피부, 연한 금발, 잿빛 눈동자를 가졌고 주민들은 우리처럼 흰옷을 즐겨 입는 ‘백의민족’이다. 전통 의상은 흰 바탕에 빨강색이 합쳐진 옷이고 흰색 칠한 집도 많이 볼 수 있다. 수도 민스크에서 바비 인형처럼 하얗고 예쁜 금발의 나타샤들을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이 나라 상징은 하얀색이다.

13세기 몽골 침입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직·간접적으로 몽골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벨라루스는 몽골 지배를 안 받았다. 그래서 지배한 적이 없는 러시아라는 의미로 벨라루스라고 한다. 백색은 ‘흰색’이지만 ‘없다’는 뜻도 있다. Blanco(스페인), bianco(이태리), blanc(프랑스) 등은 모두 ‘없다’는 여백(blank)이면서 ‘흰색’을 뜻한다.  

벨라루스는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다가 1922년 소련에 편입됐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주위 위성국들이 독립을 선언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함께 벨라루스는 독립국가연합(CIS)을 주도했다. 러시아제국과 소비에뜨(Soviet) 시절에는 벨로루시야(Белоруссия, Belorussia)라 했다. ‘하얀’을 뜻하는 벨라야(Белая)와 루스족을 뜻하는 루스(русь)의 조합인 벨라야 루스(Белая Русь)는 White Russia(백러시아)이다. 1991년 벨로루시 소비에트 최고회의는 국호인 『Республика Беларусь』를 줄여 『Беларусь(Belarus)』로 정하고 다른 언어로 표기할 때에도 이 발음을 따르도록 하는 법을 선포했다. 영어식 국호 Belorussia도 Belarus로 바꾸고, 우리도 ‘벨로루시아’에서 『벨라루스』로 수정했다.

러시아와 폴란드 사이에 있는 벨라루스(Belarus)는 바다가 없고 산도 없는 대부분이 평야 지대이고 기후는 대서양의 영향을 받아 온화하고 사람들 또한 모나지 않고 온화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프랑스와 러시아, 독일과 러시아가 서로 침공할 때 길목이고 평야지대라 지정학적으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곳’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진퇴에 따라 독일과 소련의 전장터로 동네북이 되어 융단폭격을 당해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다. 군복 입은 늑대(!)들이 동서로 왕래할 때마다 살인 파괴 약탈 성폭행 강간 등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이루어졌다. 임진왜란 때 왜놈들에게, 병자호란 때 뙤놈들에게 당한 조선여인들의 수난보다 더 빈번했고 심했다. 벨라루스의 금발의 나타샤들도 엄청난 수난을 당했으리라. 냉정한 사기는 이 나라에 미남 미녀가 많은 것은 전쟁 중 이종교배를 통해서 우성인자가 많이 태어나서라고 한다. 아무튼 벨라루스에 가면 김태희가 요리를 하고 전지현이 트랙터 운전을 하며 송혜교가 카페 서빙을 한단다. 이정재가 택시운전을 하고 이병헌이 호텔 도어맨을 하며 정우성이 여행사 가이드를 하고 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 젊은이들이여~벨라루스를 기억하라. 이종교배(異種交配)로 2세는 우수한 우성인자가 태어난다는 사실도 명심하기 바란다.  

 

시즌특집/늦가을 억새 5...
일출명산 가이드/선자령...
낮은산 좋은산 / 팔봉산...
시즌특집/늦가을 억새 5...
납량계곡/응봉산 용소골...
시즌특집/늦가을 억새 5...
눈꽃 명산 가이드/계방...
늦가을 억새산/ 오서산...

HOME 게시판 산행기 정기구독신청 회원가입 개인정보취급방침

copy right

공정거래위원회고시 제2000-1호에 따른 사업자등록번호 548-19-01240
회사명: 도서출판 사람과산/ 등록번호: 서울, 아04289 /
등록일자: 2016년 12월 20일 / 제호: 사람과산 /
발행인: 이충직 /편집인: 강윤성 /청소년보호책임자: 이충직/
발행소: 서울시 금천구 가산디지털1로 212, 309호(가산동, 코오롱디지털타워애스턴) /
발행일자: 2021년 3월 16일 /TEL (대)02-2082-8833 FAX 02-2082-8822
copyright © 1989 - 2007, 사람과 山 All rights reserved.
저작권은 마운틴코리아에 귀속하며 무단 복제나 배포 등 기타 저작권 침해행위를 일체 금합니다.
contact
webmaster@mountainkorea.com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