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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등반 _ 미국 캘리포니아 인크레더블 헐크 & 포지티브 바이브레이션즈

 

괴물바위 모서리에서 

펼쳐진 악몽의 드라마

글 · 오영훈  사진 · 오영훈 우석주

 

내심 별렀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다. 내 수준에는 부담됐다. 미국에 온 지 십 년이 됐지만 함께 오를 등반 친구도 별로 없었다.

그렇게 3년 동안 꿈만 가끔 꾸던 차, 고국의 후배 우석주에게서 연락이 왔다. 8월 중에 보름을 함께 등반할 수 있겠느냐고! 그리고 내 제안은 바로 그 루트였다.

미국 캘리포니아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괴물 바위’, 인크레더블 헐크(Incredible Hulk, 3,365m)를 대표하는 루트, 포지티브 바이브레이션즈(Positive Vibrations, 5.11a, 360m)다. 등반안내서나 인터넷 게시판에는 온통 최고라는 수식어만 가득하다. ‘아마도 시에라 산맥의 최고 암벽 루트’(수퍼토포), ‘화강암 크랙 등반 중에 정말 최고’(마운틴프로젝트) 따위다. 주변 환경, 등반 선, 암질, 등반 동작 모두 최상급 수준이다. 캘리포니아의 웬만큼 좋다는 루트는 찾아가 맛을 봤던 필자로서도 정말 이런 등반을 다시 할까 싶은 그런 바윗길이었다. 물론 5.10급만 넘어가면 숨부터 턱 막히곤 하는 내게는 그렇다는 얘기다.

 

캘리포니아 최고의 전통등반 루트

우석주(32세)는 강원대 산악부로 처음 산을 접했다. 졸업 이후에는 고산 등반과 알파인 등반부터 스포츠클라이밍과 볼더링까지 두루 전력을 쏟는다. 요즘 보기 드문 ‘종합 등반가’다. 그래도 하나 골라잡고 파야 하지 않냐 물으니, ‘모두 나름대로 재미있고 또 더 좋은 등반을 위한 준비’로 여긴단다. ‘인생은 길다, 꾸준한 자 도가 튼다’고, 두루 섭렵하여 그만의 등반세계 완성을 볼 날이 기대된다.

대학 졸업 후 등반장비 회사에 취직했는데 1년에 휴가는 보름을 쓸 수 있단다. 1년 치를 모아 나와 함께 한다니, 모처럼 주말산행 가듯 가볍게 생각했던 나도 마음을 다잡았다.

로스앤젤레스의 필자 집은 보름 동안의 베이스캠프였다. 아내는 갓난애를 안고 잘 다녀오라며 고기반찬을 싸 준다. 먼저 인근에 있는 타퀴즈 암장, 스토니포인트파크 암장에 가서 몸을 풀었다. 맥이 풀려버린 여정 후반부에는 타퀴즈를 다시 찾아 종일 등반으로 마지막 남은 진을 쏙 빼놓기도 했다.

평일 밤 여섯 시간을 내리 달려 공원관리사무소에 새벽에 도착, 선착순 8명에게만 주는 등산허가증을 가까스로 받았다. 인크레더블 헐크 바위 아래 야영터까지는 네 시간을 걸어 올라갔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엔 등산객 서너 팀을 마주쳤다. 그중 한 팀은 70대 중반은 족히 되어 보이는 노부부였다. 대학 신입생 때나 메는 거대한 배낭을 각자 메고,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비틀거리셔서 보기만 해도 내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여기서부터 남쪽 요세미티까지 보름 동안 걸어갈 작정이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요세미티까지는 사실 빠른 걸음으로는 이틀이면 가는 거리였다는 것.

다른 한 팀은 40대로 보이는 여성 두 명으로 마침 인크레더블 헐크를 하고 내려왔단다. 어딜 했어요, 어땠어요? 너무 궁금했다. “포지티브 바이브레이션즈 했죠!” “폴란드 루트(5.10c)하고 레드다이헤드럴(5.10b)도 했고요!” 그러더니 한 명은 두 손을 내밀며 하는 말이, “내 손 부은 것 좀 봐요, 하하!” 세상에, 상처투성이에 벌에 쏘인 마냥 퉁퉁 부은 손을 보여주며 어린애처럼 웃는다.

“저렇게 좋아하네, 우리도 해치워 버리자고!” 가는 거야! 그러나 헉헉거리며 오르고 있자니 아까 본 퉁퉁 부은 손이 내내 걸린다. ‘내 손도 저렇게 될까?’ ‘아예 매달리지도 못하고 마는 거 아냐?’

계곡의 폭포 옆 등성이를 넘어서자 마침내 벽이 나타난다. 역시나, 레이저 광선을 쏘아대며 사방을 압도한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 나는 그나저나 루트가 궁금했다. 그리고 두 눈으로 똑똑히 알게 됐다. 포지티브 바이브레이션즈는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중앙을 좌우로 나누는 한가운데 줄기라는 것, 가장 돌출된 모서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타고 오르는, 이등변삼각형을 세로로 나눈 차라리 수학책에나 나올 법한 등반선이라는 사실이었다.

8월 하순의 평일인 오늘 오후 두 시경, 바위에 매달린 다섯 팀 중 셋이 그 모서리 위아래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가장 위에 있던 2인조는 꾸물꾸물 곧 정상을 넘어 사라졌다. 중단의 2인조는 상단 크럭스에 이르러 큼직한 추락을 반복하면서도, 끈질기게 매달린 끝에 어둑어둑해질 무렵에서야 역시 정상 너머로 사라졌다. 맨 뒤를 따르던 2인조는 포기하지 않다가 느릿느릿 그러나 벼락같이 덮친 어둠 속에서, 랜턴 하나에 의지한 채 자정 무렵에야 내려왔다. 정말 보는 사람 피를 말리는 하강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었다.

내일 새벽에는 누구보다 먼저 바위에 붙어야 승산이 있겠다. 일찌감치 배불리 먹고 침낭 속에 들었다.

 

매일 드라마가 펼쳐지는 산꼭대기 이등변삼각형

우석주는 잠을 깊게 들지 못했단다. 기어코 정상을 다녀온 팀이 밤늦게 걸어 내려오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단다. 소리 지를 만도 하지! 랜턴을 켜고 우석주의 선등으로 첫 피치에 붙었다.

2피치부터는 날이 밝았다. 한 피치 아래로는 우리 옆에서 야영했던 청년 둘이 붙었다. 오리건주에서 아홉 시간을 달려왔단다. 이들은 교대로 선등하며 쑥덕거리며 잘도 올라왔다. 이러다 선두를 내줘야 하나 내심 걱정했는데, 6피치 중반의 5.10+급 크랙에서 두 차례 길게 추락하더니 그길로 하산하고 말았다.

포지티브 바이브레이션즈는 독자적으로는 총 8피치다. 이후 정상능선에 선 뒤 2피치를 트래버스하면 기존루트의 마지막 2피치(5.9)로 정상까지 이어진다.

이 루트의 특징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부분이 손가락 크랙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근방 루트들이 다 그렇듯 각 피치는 짧은 게 30m, 길 때는 60m까지 시원하게 오른다. 생각해보라, 5.10급의 손가락 크랙 40m를 오른 뒤 다시 손가락 크랙이 40m, 또 40m, 또 40m 이어진다니! 끝없는 크랙 잔치는 깊어질수록 온몸은 얻어터진 듯 녹초가 돼 가고, 정상에 올라서는 사진기를 꺼낼 힘조차 없었다.

든든한 우석주는 과감성이 특기다. 추락을 겁내지 않는다.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 과감하게 두 번을 길게 날랐다. 확보가 어려운 실크랙에서 어중간한 스테밍으로 오르는 5.10c/d의 6피치 초입에서 한 번, 이어 60m 정도를 오른 뒤에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5.11a의 크럭스 페이스 동작에서 힘이 빠져 떨어졌다. 두 번째 추락에선 확보물도 빠지면서 꽤 길게 떨어졌다. 이때 발뒤꿈치를 세게 찧은 탓에 이튿날부터 절뚝거렸다. 그 뒤 일정을 변경하게 됐는데 성급했던 제 탓이라고 아마 아직도 자책하고 있을 거다.

우리 뒤에 네 팀 정도가 더 붙었는데 다들 중도에 하강해 내려갔다. 그날 완등은 우리뿐이었다. 3년 전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열에 일곱은 5.10b의 루트 레드다이헤드럴을 올랐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열에 일곱은 포지티브 바이브레이션즈를 찾는다.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전역에 분 실내암장 바람이 숙성된 결과렸다. 실내암장에는 어디든 초보자가 숙련자보다 훨씬 많다. 초보자들끼리 깔끔히 번쩍이는 장비를 차고 자연암장도 찾아 나선다. 팰컨가이드 시리즈나 수퍼토포 같은 등반안내서, 마운틴프로젝트 같은 등반정보 웹사이트는 자유분방하면서 도전적인 개인주의의 미국 등반가들을 이어주는 구심점이다. 볼트 하나 없는 자연의 세계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개를 들이미는 청년들이다. 미국에서 스포츠클라이밍과 전통등반은 조화롭게 서서히 대중스포츠의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볼트 없는 전통등반의 완성

6피치를 끝내 능선에 오른 시각은 오후 2시였다. 그러나 정상은 또 한참을 가야 했다. 정상에는 5시, 한 번의 하강을 거쳐 가파른 하산길을 돌아 텐트까지 내려오니 이미 캄캄해진 저녁 8시다. 등 뒤 괴물바위에서는 어제와 같은 살벌한 드라마가 또 펼쳐지고 있다. 저 3백 미터 상단에서 켜든 랜턴은 쉽게 내려올 기미가 없다. 보는 것만으로도 부르르 떨린다. 야영터의 서너 팀은 저들의 끔찍한 추위와 피 말리는 심정을 고스란히 나눌 수밖에 없다.

야영터에는 6피치에서 내려간 오리건 2인조가 우릴 맞았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다 터져 속심이 드러난 로프를 보여준다. 6피치 크랙에서 추락하면서 로프가 쓸렸던 것이다. 짧아진 로프로 겨우겨우 장비를 사용해가며 하강했단다. 하강하는 팀이 장비를 회수해줄까, 밤은 깊어가는데 잠들지는 못하고 벽만 보고 있다.

우리는 하산이다. 실컷 얻어터졌지만 기어서라도 끝까지는 가련다. 그 빼어난 크랙들, 크랙들, 크랙들… 비몽사몽에 새벽 1시가 넘어 캄캄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기진맥진, 등산과 하산의 기막힌 완성이다. 가만 되짚어보니 이게 우석주와는 처음으로 줄을 묶은 등반여행이었다. 꿈속에 들며 끝내줬던 팀워크를 우리 스스로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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