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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덕용의 춤추는 알프스

 

눈사태의 위험 속에서 스키를  타다

글 사진 · 임덕용(꿈속의 알프스 등산학교)

 

2월과 3월, 오스트리아에는 눈이 3m 이상 와서 눈사태 위험이 최고조였고 스위스 스키장에서는 눈사태 방지 폭발물을 설치하던 안전요원 2명이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면서 사망하는 사고가 생겼다. 3월 7일과 8일 엄청난 폭설이 내린 이탈리아 돌로미티에서도 무거운 습설로 눈사태가 발생해 여러 산악인이 조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분 안에 끝내는 산악구조 작전

눈사태 경보는 5등급까지 있는데 산간 지역 일기예보를 보면 눈사태 경보 등급이 표기된다.  눈사태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눈이지만 눈을 눈사태로 만드는 건 바람이다. 무거운 눈을 지고 있는 산 사면을 바람이 때리고 가면 진동으로 눈이 무너져 사태가 일어난다.

산악 구조대원들은 적설량도 체크하지만 바람이 얼마나 부느냐에 따라 눈사태 예상 지역을 미리 감지하고 대비하는 훈련을 한다. 사고가 접수되면 신속하게 출동해서 1분이 아닌 1초를 다퉈가며 구조 작업을 한다. 돌로미티의 스키장에서도 리프트나 케이블카 관리 요원들이 성능 좋은 망원경을 항상 지니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건너편 멀리로, 슬로프가 아닌 산을 올라가는 산악인들이 보이면 망원경으로 수시로 관찰한다. 만약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이탈리아는 112, 113, 118, 119등 여러 긴급 재난신고 번호가 있었으나 최근 돌로미티, 티롤 알프스 지역에서는 모두 112로 통일했다. 스마트폰 바탕화면에 112를 저장해 놓고 비상 시 112창을 치면 즉시 로마의 컨트롤타워 긴급 상황실과 연결된다. 신호만 가고 통화를 못할 경우에도 신고자의 GPS 위치를 파악해 즉시 출동한다. 통화가 가능해 신고자가 어느 주 어느 산의 어느 장소인지, 암벽 등반의 경우 루트와 몇째 마디 어디인가까지 알려주면 조난자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즉시 헬기가 뜨거나 다른 방법으로 구조활동이 이루어진다.

돌로미티에만 24시간 출동 대기하는 민간 자원봉사 구조용 헬기가 4대가 있다. 이들의 작전 목표 시간은 20분이다. 20분, 출동해서 조난자를 구조해 병원에 후송하고 본부로 돌아오기까지 20분. 실제로 필자가 KBS ‘걸어서 세계속으로_겨울 돌로미티’편을 촬영할 때 헬기 구조 실황을 촬영해 방송한 적이 있고, 지난해 8월 필자가 큐레이터로 4회에 걸쳐 방송된 EBS ‘세계테마기행_이탈리아 산골기행’에서도 국경수비대의 헬기 구조 작전을 취재해 방송에 소개한 적이 있다.

 

콧속으로 눈가루 맛을 봐야 사는 사람들

그날 우리가 간 곳은 눈사태 4등급이 예보되어 있었다. 4등급이면 외출을 자제하고 안전한 곳에 머물며 일기예보의 변화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산악스키를 즐기는 산악인이라면 다른 방식의 사고방식이 작동한다. 리스크가 많아질수록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진다. 특히 파우더 스노우 라이딩에 미친 스키어라면 거의 ‘하얀 가루’ 중독 수준이 된다.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댄 오스트리아에 신설이 엄청나게 내렸고 ‘눈사태 예보 등급 4’라는 말에 몸이 탕탕 튀어 오르며 눈가루가 콧속으로 날라드는 맛을 보아야만 살 것 같은 사람들이 모였다.

눈을 찾아 북한을 제외하고는 전 세계를 다 다녀본 프랑코 죤코(Franco Gionco)와 친구들. 우리는 폭스바겐에서 지원 받은 신형 SUV를 타고 볼차노(Bolzano)를 출발, 40분 만에 국경을 넘어 굽이굽이 눈으로 도배된 그리에스(Gries)에 도착했다. 에겔베르그(Egger Berg)는 약 40여 가구만이 살고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고 여름철에는 낙농으로 사는 초원 지대이다.

주차를 하자 마자 창문 옆으로 보이는 산의 경사도가 장난이 아니다. 스키에 씰을 부착하고 오를 수 있는 최대의 경사로 지그재그를 몇 번 하며 눈이 부서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쉽게 오르기 위해 길게 크게 지그재그를 하면 눈이 절단 되어 사태를 일으키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소리만 크게 질러도 공기의 진동으로 눈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말도 숨소리도 죽여 가며 경사면을 올랐다.

약 30분을 긴장하며 오르자 나무 지대가 나왔다. 모두들 모여 직벽 아래 에겔 마을을 내려다보며 잠시 땀을 식혔다. 나무가 빽빽해서 웬만한 눈사태는 막아주는 루트였다. 루트를 선정한 프랑코 죤코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어이 죤코, 너의 뇌는 아직 젊은 것 같아.”

“죤코, 넌 역시 최고야.”

“죤코 할배, 넌 역시 경험이 많아.”

죤코가 웃었다.

“안전하게 다 내려와서 그런 말 다시 해, 하하하하….”

“맞아, 오늘은 콧속으로 눈가루를 마시며 취하는 날이니 두 발로 집에 걸어서 갑시다.”

 

독일 스타일, 이탈리아 스타일

출발 전 전원 점검한 빕스 전원이 켜져 있는지 다시 확인했다. 빕스는 눈사태로 조난당했을 때 조난자를 찾는 전자 센서다. 배낭에 넣지 않고 어깨와 허리에 두 번 감아 버클로 고정하는 장비로 담배 갑 2개 정도의 크기다.

74세의 죤코가 러셀을 하며 선두에 서고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데 저 아래에서 두 명이 매우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산악 스키 선수이려니 했는데 이탈리아 가이드들이었다.

“챠오 임, 오늘 살레봐 암장이 문 닫는 날이지?”

“아니야, 암장은 열었는데 학교 가기 싫어서 숨어서 흰 가루 먹으려고 땡땡이 쳤어.”

이틀에 한 번씩은 만나는 가이드들과 농담을 주고받자 모두들 한마디씩 거든다. 산이 좋고 친구들이 좋은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1시간 30분 이상 숲 속을 올라가며 나중에 내려올 때 할 트리 턴을 상상하니 벌써 몸이 튀는 것 같다. 에겔베르그에 도착하기 전 카페에서 만났던 독일 가이드 두 팀 18명을 만났다. 바람이 세지는 능선 밑, 목초를 말려 보관하는 작은 통나무 집 아래에서 간식을 먹는데 줄줄이 올라온다. 다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출발하려는데 독일 가이드의 명령이 떨어진다.

“오늘 우리 팀의 정상은 여기까지입니다. 잘 알다시피 눈사태 경보 4등급이라 더 이상 오르는 것은 위험합니다. 위로는 나무도 없고 눈이 너무 깊고 많습니다.”

그 팀은 누구 하나 불평불만 없이 전원 활강을 준비한다. 우리를 부럽게 쳐다보는 사람도 없다. 리더를 따르는 그들을 보며 우리는 역시 독일 병정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간다. 안개가 짙어지는 저 위로.

짙은 안개 속을 산악스키로 오르는데 은근히 겁이 난다. 눈사태가 나도 어디에서 눈이 무너져 내리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귀를 최대한 열어 소리에 집중한 채 긴장을 풀지 않는다. 입으로는 눈사태가 일어나면 해야 하는 행동 수칙을 중얼거려 본다.

 

1. 최대한 멀리 도망간다.

2. 도망갈 수 없는 거리에서 사태가 다가오면 사태 방향으로 등을 돌리고 몸을 최대한 작게 숙이고 앉아라.

3. 손에 있는 스키 폴을 최대한 높게 들어 올려 숨구멍을 만들어라.

4. 폴을 들어 올리면서 두 팔꿈치로 얼굴을 가리고 공간을 만들어라.

5. 눈에 갇혔다고 생각이 들면 두 손을 최대한 양 옆으로 비틀어서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라.

6. ‘나는 살아서 나간다’고 철두철미 하게 믿고 실현해라.

7. 사태가 멈췄다고 생각되면 소리를 치거나 배낭 앞 가슴 조임 웨빙에 달린 호루라기를 수시로 불어라.

8. 소리를 계속 지르면 온기와 기운이 빠지고 탈수 현상이 일어나 위험해지고 바람이 불면 안 들릴 수도 있으니 일정한 간격을 두고 목소리와 호루라기 소리를 내라.

9. 모든 방법을 동원해 몸을 최대한 따뜻하게 해라.

10. 아무리 길어도 10분에서 15분 안에 죽을 수 있다. ‘나는 100일에서 150일이 지나도 살아서 집으로 갈 수 있다’ 생각하고 믿어 뇌에 암시를 줘라.

 

도랑 위 가랑잎처럼

정상의 커다란 원형 안 십자가에 안개와 눈이 달라붙어 신기루처럼 보였다.

“베르그 하이!”

독일어로 ‘정상 인사’를 하며 최대한 신속하게 활강을 준비한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등을 돌리고 최대한 빨리 준비를 마쳤다. 죤코가 다시 한 번 파트너 체크를 부탁한다. 서로 서로 활강 준비를 점검해 주는 것이다.

이제부터 할 일은 짙은 안개 속에서 깊은 눈을 빠개며 눈사태 경보 4에서 도망치는 것뿐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세 번째 턴까지만 안전하고 확실하게 한다면 그 다음부터는 눈에 몸을 맡기면 된다. 급경사든 나무 사이든 눈 덮인 초원이든 세 번만 확실하게, 안전하게 돌자. 그 다음부터는 도랑을 따라 떠내려가는 가랑잎이 되어야 한다. 한 장 가랑잎이 되려면 몸의 힘을 최대한 빼고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멋진 인생을 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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