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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도

그래도 살아야 합니다,

살아서 나아가야 합니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온 지 반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섬으로 가는 남도(南道)의 논은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어두운 마음과 다르게 눈이 부시게 피어있는 자연이 경이롭습니다. 인간이 힘든 동안, 자연은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가고 있었던 겁니다. 태어난다는 뜻의 ‘생일’을 섬 이름으로 가지고 있는 생일도(生日島)에서 생로병사의 의미를 물어봅니다.

글 사진 · 김석우 편집위원

 

생일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생일면에 속하는 섬입니다. 동경 127도 00분, 북위 34도 18분에 위치하며 면적 11.3km2, 해안선 길이 23km, 최고봉은 백운산(483m)입니다. 처음에는 산일도, 산윤도라 불리다가, 주민들의 본성이 착하고 어질어 갓 태어난 아기와 같다 하여 ‘生(날 생)’과 ‘日(날 일)’ 자를 붙여 생일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하나의 유래는 예로부터 험한 바다에서 조난 사고와 해적들 횡포가 심해 ‘이름을 새로 짓고 새로 태어나라’라는 뜻에서 생일도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습니다.

생일도엔 재미있는 일화가 많습니다. 2006년 한 해 동안 섬 안에 방목해 놓은 염소들이 실체를 알 수 없는 산짐승의 습격으로 희생되면서 ‘괴물’ 공포에 떨었습니다. 이에 완도군이 육지의 전문 포수들을 동원해 사살한 괴물의 정체는 몸무게가 200kg이 넘는 멧돼지였습니다.

2007년엔 각종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로 등극하며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든 화제의 사진, ‘투명산’으로 유명세를 치렀습니다. 사진에서는 앞산의 모습 안에 가려져 있어 보이지 않아야 할 뒷산의 모습이 보입니다. 백운산의 주변엔 세 개의 해발 480m급 산이 1.5km의 거리를 두고 겹쳐 있어 나타나는 이 현상은 백운산에서 4km가량 떨어진 금일읍 동백리 선착장 부근에서 일 년 내내 잘 보입니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고 궂은 날씨와 해 질 녘에 더욱 또렷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두 가지 사건으로 생일도는 유명한 섬이 되었습니다.

 

생일케이크가 반겨주는 섬

생일도로 가는 배는 완도군의 당목항에서 생일도의 서성항까지 약 한 시간 간격으로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하루 일곱 번 출항합니다. 운항 시간은 30분이고 자가용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생일을 맞으신 분은 배값이 무료입니다. 재밌는 정책입니다. 생일도에는 섬을 도는 버스가 한 대 있습니다. 오후 3시 30분 이후에는 버스 기사님께 직접 전화를 해야 운행을 합니다. 버스 기사님의 전화번호는 서성항에 있는 여객터미널이나 관광 안내소에 문의하면 되지만, 생일도 주민이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전남 광주광역시와 경기도 안성에서 그동안 섬백패킹을 같이했던 이화영, 백영숙, 박윤후, 이지은씨가 섬으로 들어갑니다. 당목항에 일찍 도착한 박윤후씨와 이지은씨 부부는 먼저 섬으로 들어갑니다. 저와 이화영, 백영숙씨는 마지막 배를 타고 생일도로 들어갑니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항구에 철퍼덕 앉아 마시는 막걸리 한잔은 백영숙씨의 취미입니다. 생일도의 서성항에 내리면 항구에 커다란 생일케이크가 있습니다. 구조물 옆에 찾아보면 작은 스위치가 있는데 누르면 생일 축하 노래가 나옵니다. 생일도란 느낌이 팍 옵니다.

첫날 저녁은 금곡 해수욕장에서 자기로 합니다. 바닷가 바로 옆에 위치한 금곡해수욕장은 개수대와 화장실의 시설이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텐트를 치기에 공간이 모자랄 수는 있지만 파도 소리를 지척에서 들을 수 있어 좋습니다. 모두가 좋아합니다.

 

일품 조망 자랑하는 백운산

생일도에서의 첫날은 백운산 산행으로 시작합니다. 금곡 해수욕장이 있는 금곡리에서 서성항으로 갑니다. 서성항 옆에 있는 금일중학교 생일분교장 옆에 난 길로 올라가면 등산로를 만납니다. 이곳에서는 섬을 관통하는 도로가 뚫려 있습니다. 등산을 포기한다면 학서암과 일출공원도 차로 갈 수 있습니다.

등산로는 잘 관리되어 있습니다. 능선을 올라서기 전까지 가파르긴 하지만 조금만 발품을 팔아 올라가면 군데군데 조망을 볼 수 있습니다. 호흡이 거칠어질 무렵, 벤치 두 개가 놓인 조망처가 나타납니다. 조망처에서 서성항과 평일도가 시원스레 보입니다. 적절한 곳에 놓인 벤치 두 개가 고맙습니다.

백운산은 의외로 바위가 많습니다.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온 바위들은 멋진 조망과 휴식을 선사합니다. 그렇다고 숲이 없거나 왜소하진 않습니다. 뜨거운 가을 태양을 가려줄 그늘은 충분히 제공해 줍니다.

묵묵히 걷는 백영숙씨에 비해 힘들다고 쉬지 않고 툴툴대는 이화영씨의 조합이 아주 좋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입은 쉬어 본 적이 없다는 이화영씨의 말을 듣고 빙그레 안심의 웃음을 짓습니다. 덜 힘든 게죠. 조망을 보기 위해 쉴 때마다 드러눕고, 발걸음을 옮기려면 바지를 잡고 더 쉬자고 하는 이화영씨의 떼가 밉지 않습니다. 이 좋은 경치 더 즐기고 가자는 말로 들리니까요. 쉬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박윤후씨가 누나들 사진을 찍어주느라 바빠집니다.

경사가 가파르니, 고도가 쑥쑥 올라갑니다. 어느덧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올라섭니다. 완만한 능선에서는 사면팔방으로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정상이 보이는 능선에는 버스 정류장같이 생긴 쉼터가 있습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광주의 빵, 양구의 사과, 그리고 생일도에서 구입한 물과 오렌지 주스를 꺼내 먹습니다.

조망이 좋으니 5성급 호텔 스카이라운지가 부럽지 않습니다. 정상은 사방을 볼 수 있는 데크를 만들어 뒀습니다. 가히 일품 조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변의 크고 작은 섬을 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생일도 백운산은 완도군에서 3번째로 높은 산인 것이 생각납니다.

 

하산 후 즐긴 자동차 섬투어

하산은 금곡리 쪽으로 내려갑니다. 서성항에서 올라오는 것보다 더 가파른 경사입니다. 경치를 보기보단 발밑을 더 주의해야 합니다. 생일도를 관통하는 도로를 만나기 전에 일출 공원이란 곳을 통과합니다. 자그마한 공원인데 1년 12달을 상징하는 동물 인형들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동물 인형 모두에게 마스크를 착용시켜 놨습니다.

관통 도로를 만나 금곡 해수욕장으로 내려갑니다. 도로 옆에 용출봉 가는 길이 있습니다. 힘이 남아있다면 용출봉을 가보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왕복 30분도 되지 않는 거리입니다. 정상에는 데크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바로 밑의 용출마을과 섬의 남동쪽 바다를 원 없이 볼 수 있습니다.

관통 도로는 12구간으로 나뉘어 매달 탄생석과 탄생나무, 탄생 꽃을 설명하는 게시판이 있습니다. 자신의 생일을 찾아가며 보는 맛이 있습니다. 금곡 해수욕장으로 내려와서 텐트를 지키고 있던 이지은씨와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갑니다. 추석 연휴 기간이라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음식점들은 죄다 문을 닫았습니다. 섬 밥상 먹기를 포기하고 돌아가려던 중, 문이 열린 한곳을 발견하고 들어갑니다.

호프집과 노래방을 같이 하는 곳이지만, 물회와 생선구이도 판매하기에 들어갑니다. 인원수에 맞게 생선구이 백반과 전복 물회를 시켜 먹습니다. 싱싱한 전복과 삼치구이, 산행 후 먹는 늦은 점심은 숟가락, 젓가락질만 요란한, 조용한 점심을 불러옵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자동차를 타고 섬 구경을 합니다. 제일 먼저 간 곳은 학서암. 섬의 산 중턱에 있는 절들이 그러하듯이 절 앞의 바다는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절 뒤로는 커다란 바위들이 뭉쳐있어 산의 맥을 모아주는 느낌입니다.

서성항 옆에는 ‘생일송’이라는 소나무가 있습니다. 전라남도 보호수인 수령 200년의 해송은 굵기가 튼실하고 나무의 형세가 좋아 아주 근사해 보입니다. 생일송을 쳐다보면 저절로 잘생겼다는 감탄이 나옵니다. 항구 바로 옆,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이니 꼭 보시고 가시길 권합니다. 주변에 묵혀두고 있는 밭에 꽃밭을 만들어두면 많은 사람이 와서 사진을 찍고 가리라 생각됩니다.

섬의 남동쪽을 제외하고는 자동차로 돌아볼 수 있습니다. 생일도를 돌아본 느낌은 아주 잘 가꿔진, 스토리텔링을 잘 이용한 섬이라 생각합니다. 생일이라는 화두를 잡아 섬 전체를 체계적으로 잘 개발했습니다.

 

생일도의 밤하늘 아래에서

아침부터 바쁘게 산행을 하고, 자동차로 섬을 도는 동안, 박윤후씨의 지인들이 저녁에 놀러오기로 합니다. 지금은 광주에 살지만, 생일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강현숙씨의 가족들도 추석을 맞아 생일도에 들어왔습니다. 저녁 시간을 같이 보기로 하였습니다. 보길도에 살고 있는 박영수씨도 어머님과 가족들을 모시고 생일도로 넘어오겠답니다. 갑자기 판이 커졌습니다. 아내 때문에 감성 캠핑을 좋아하고, 나누기를 좋아하는 박윤후씨가 손님맞이 준비에 갑자기 바빠졌습니다. 테이블을 나르고, 모닥불과 식사 준비를 합니다.

사람들이 태어나고, 만나서 사는 일은 일견 쉬워 보일 수 있습니다. 모든 게 인연이기도 하지만, 태어남과 만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인연을 유지·보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 사고, 다툼 속에서도 그 관계를 유지하고 보수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중요합니다. 물론 그 의지와 노력은 서로가 가지고 있어야겠죠.

사랑과 가족, 회사, 국가도 크기만 다를 뿐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생일도에 들어와서 태어남과 살아감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들녘에 자란 눈부시게 찬란한 벼들을 보며, 자연의 묵직한 위대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해가 지고 피어놓은 모닥불 주변으로 생일도와 보길도의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아이들이 4명이나 모이니 주변은 금세 시끌벅적해지고 생기가 돕니다. 이 아이들도 커서 사랑을 하고 이별도 하며, 즐거운 시간과 고통의 시간을 맛보며 삶을 살아갈 겁니다.

머릿속에서 아무리 고민하고 지지고 볶아도, 시간은 흘러가고, 모든 것은 성장하리라 생각됩니다. 그게 자연이겠죠. 그래도 살아있어야 합니다. 살아서 날들을 보고 지내야 합니다. 그게 생일(生日)이라 생각합니다. 2020년 11월은 월간 <사람과 산>이 태어난 지 31년째 되는 달입니다. 인쇄 매체의 위기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구성원들의 의지로서 잘 버텨오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할 일이 더 많겠죠. <사람과 산>의 31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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