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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백패킹

 

비안도

고독이 필요할 때,

비안도로 떠납니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위기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국가를 위해 모인 집회는 국가를 더욱 위기에 빠뜨렸습니다. 최소의 인원으로 가장 사람들이 오지 않을 섬으로 갑니다.

글 사진 · 김석우 편집위원

 

항상 섬을 같이 가던 광주의 백패커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4명의 단출한 인원으로 길을 떠납니다. 지도를 펴 놓고 대상 섬을 고르던 중, 작년에 갔던 위도 옆의 작은 섬이 보입니다. 섬의 모양이 날아가는 기러기처럼 생긴 비안도입니다.

비안도는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비안도리에 있는 섬입니다. 군산항에서 43km, 부안 가력도항에서 7km 떨어져 있고, 고군산군도의 여러 섬 중에서 남동쪽 끝에 있습니다. 동경 126도 32분, 북위 34도 46분에 위치하고 면적은 1.63km2, 해안선 길이는 6.6km입니다.

 

부안 가력도항에서 출발하는 여정

새만금 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비안도는 시련을 겪습니다. 이전에는 군산, 선유도를 거쳐 2시간 30분 만에 비안도에 도착하는 여객선이 있었지만, 새만금 방조제가 생기면서 여객선은 더이상 운항하지 않습니다. 여객선이 다니지 않으니 10여 년이 넘게 비안도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사선을 이용합니다. 새만금의 행정구역 다툼으로 비안도는 거리와 시간에 비해 비싼 운임을 들여 사선을 타야 합니다. 군산시와 부안군의 현명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비안도로 가는 배는 하루 2번, 부안군의 가력도항에서 출항합니다. 가력도항에서 비안도까지는 편도 15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주민이 직접 운영하는 작은 배라 승선 인원은 12명입니다. 항구에 도착한 순서대로 비치되어있는 작은 승선 명부에 이름과 연락처, 주소를 적어둡니다. 12명이 넘으면 선장님의 판단에 따라 한 번 더 운행합니다.

새만금 공사로 인해 빨라진 조수 간만의 물살은 비안도 앞바다의 갯벌을 뒤집고 파헤쳤습니다. 2002년 4월, 어부의 신고로 비안도 북동쪽 1km 해역에서 다량의 고려청자가 매몰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2년간에 걸쳐 종합적인 발굴을 시행한 결과, 3,100점이 넘는 고려청자를 인양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비안도는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른 아침, 광주에서 온 이화영, 신문호, 노영, 조영문씨와 가력도항에서 만납니다. 비안도로 가는 배는 부지런한 비안도 주민들로 정원이 이미 다 찼습니다. 비안도를 못 가는 게 아닌가 걱정을 하는 우리에게 선장님이 “한 번 더 운행할 테니, 30분만 기다려 달라”는 말로 우리의 놀란 가슴을 달래줍니다. 마침 젊은이 한 명도 비안도로 들어가러 왔습니다.

자그마한 배가 항구를 떠나고, 선착장 바닥에 앉아 돌아올 배를 기다립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항구에 들어온 꽃게잡이 배 위에선 그물에 붙어있는 꽃게를 떼어내는 작업으로 바쁩니다. 이제 꽃게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당연히 비안도에서도 꽃게를 잡으리라 생각을 하고, 섬에서 꽃게를 사서 먹어 보리라 생각해봅니다.

30분이 지나 배는 가력도항으로 돌아옵니다. 이제까지 섬에 들어갈 때 타 본 배 중 가장 작은 배입니다. 배 안에는 2명의 선장님이 계십니다. 두 선장님 모두 오랜만에 들어온 배낭 여행객이 반가우신 모양입니다. 비안도로 가는 내내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경치에 취하는 비안도 해안 트레킹

금세 도착한 비안도에서 항상 그래 왔듯이 섬에서의 식사와 꽃게 구매가 가능한지 물어봅니다. 식사가 가능한 민박집이 없을 거라며, 선장님들께서 알아봐 주신다고 하며, 자전거를 타고 가십니다. 자전거를 나란히 타고 가는 두 분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선착장을 떠나, 우리가 목적지로 정한 곳으로 가봅니다. 바다를 따라 조성된 외길을 걷다 보면 섬을 가로질러 반대편 바다로 넘어가게 됩니다. 섬은 조용하고 한적합니다. 하지만 길을 걷다 보니, 저수지며 발전소까지 있는 개발이 잘 된 섬이었습니다. 섬의 크기에 비해 과한 설비입니다.

선착장의 반대편 바다에는 몽돌 해변이 있습니다. 몽돌 해변에는 깜짝 놀랄만한 해변 데크가 이어져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금액이 투자되었을 이 데크길은 그동안 수많은 태풍을 견디며 많이 손상되었습니다. 군데군데 급한 대로 보수된 길을 위험스럽게 건너가 봅니다.

몽돌 해변 위에는 야영장도 있습니다. 데크와 화장실도 잘 갖춰져 있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이 오지 않아 풀이 무성합니다. 이렇게 잘 꾸며진 곳이 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 글을 쓰며 알아보니 비안도는 2011년에 안전행정부가 선정한 “찾아가고 싶은 섬”에 선정된 이력도 있습니다.

배를 타고 들어오는 시간도 짧고, 경치도 훌륭합니다. 전국 각지에 몽돌 해변은 많지만, 몽돌 해변이라 불리는 필요조건 중 하나인 파도가 빠져나갈 때 들리는 ‘촤라라라라락’하는 돌에서 물 빠지는 소리는 흔치 않습니다. 비안도의 몽돌 해변은 그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도 왜 이곳이 이렇게 외면당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도 여객선의 문제가 아닐까 예상합니다. 약 10년 전, 야영장과 해변 데크 등을 만들며, 관광 수입을 기대했던 마을 분들은, 손상되고 황폐해진 시설처럼 마음도 같이 허전해졌으리라 생각됩니다.

선착장에서 약 3km를 걸어 몽돌 해변의 끝까지 걸어가면 ‘망아정(忘我亭)’이라는 단출한 정자가 나옵니다. 쉬지 않고 걸어가면 땀이 나는 걷기 좋은 코스입니다. 몽돌해변은 덤이겠죠. 망아정에서 배낭을 벗고, 휴식을 취합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 마치 잘 관리 된 무인도에 온 기분입니다.

망아정에서 보는 경치는 바위의 풍경이 압권입니다. 바닷속에서 하늘을 향해 장쾌하게 치솟은 바위와 섬에 연결된 절벽은 지질학에 문외한이더라도 알만한 발달한 퇴적층을 보여줍니다. 경치에 취해 휴식을 취합니다. 망아정이란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주변을 바라봅니다. 비안도를 가면 반드시 망아정에서 시간을 보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붉은 빛에 물든 아름다움 섬

배꼽시계가 울릴 무렵, 선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점심을 먹을 민박집은 없고, 별 찬은 없지만 선장님 집에서 점심을 차려주시겠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섬 가정식 백반을 먹을 기회입니다. 어차피 비용을 낼 생각이므로 반가운 마음으로 마다치 않습니다.

다시 해변을 돌아 동네로 가니, 선장님께서 길까지 나와 기다리고 계십니다. 배에서부터 꽃게 타령을 해서 그런지, 비안도 집밥은 꽃게탕, 꽃게 무침, 간장게장, 방금 만든 겉절이, 알이 굵은 바지락국, 갈치젓갈이 나왔습니다. 선장님은 사모님을 졸라 집에 있는 꽃게를 총동원한 것 같습니다. 맛도 좋지만, 차려주신 마음에 더 감동을 받습니다.

섬에 있는 봉우리는 두 개입니다. 191m의 노비봉과 170m의 남봉산입니다. 등산로는 풀이 무성해 올라갈 수 없다고 합니다. 선장님의 만류에 등산보다는 섬을 더 돌아보기로 합니다. 마을 안에는 두 개의 구멍가게가 있습니다. 규모가 크고 마을 작업장 옆에 위치한 구멍가게는 문이 닫혀 있습니다. 하지만 50여 년이 되었다는 마을 안 깊숙한 구멍가게는 문을 열어보니, 할머니들이 모여 10원짜리 고스톱을 치고 계십니다.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입에 뭅니다. 고스톱에 잠깐 참견을 해봅니다. 누가 제일 잘 치시냐고 물으니, 고스톱을 치지 않고 구경하고 계신 두 할머니를 모두가 가리킵니다. “잘 친다고 끼워주지도 않아!”라며 두 할머니가 푸념하십니다. 모두가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가끔은 잃어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셨나 봅니다.

다시 망아정으로 돌아갑니다. 오는 길에 보지 못했던 경치를 천천히 돌아보며 걸음을 옮깁니다. 비안도에도 꽃무릇이라 불리는 상사화가 핍니다. 아마도 위도 상사화라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예쁜 꽃들이 만발인데, 섬엔 우리밖에 없습니다. 우리밖에 없어 왠지 미안한 마음이지만, 코로나로 인한 시기에 이렇게 섬에 와 있을 수 있다는 게 고맙습니다.

비안도에 온건 행운이었습니다. 다들 각자의 시간을 보냅니다. 아침부터 끄물끄물한 날씨라 일몰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붉은 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습니다. 하지만 해가 사라지며 보여주는 장엄한 모습에 모두가 숙연해집니다. 붉게 타오르는 하늘이 우리들의 마음을 빨갛게 물들입니다. 기대하지 않고 온 섬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을 선물 받았으니, 모두가 고맙고 소중한 백패킹이라 말합니다. 망아정에서의 밤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오롯이 즐긴 고독한 섬여행

연이은 태풍 중 두 번째 태풍이 오고 있다는 소식에 아침 첫배로 나가기로 합니다. 선착장으로 가는 도중 선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옵니다. 태풍을 피해 육지로 가려는 마을 주민들이 많아 일찍 출발한다고 합니다. 다녀올 테니 기다리라고 합니다. 짐을 챙겨 여객선 대기소에서 다음 배를 기다립니다. 태풍 특보가 내리면 비안도의 모든 배는 가력도 항으로 갑니다. 그때 같이 나가기로 합니다.

시간이 넉넉하니 다시 섬을 둘러봅니다. 비안도의 유일한 초등학교를 둘러봅니다. 깜짝 놀랍니다. 우리나라에서 학교 운동장 중 바다에 바로 붙어있는 초등학교는 처음 봅니다. 비안도 초등학교는 지금 학생이 한 명입니다. 6학년인 이 학생이 졸업하면 비안도 초등학교는 폐교될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등학교입니다.

여객선 대기소로 돌아오니, 한 아이가 강아지를 데리고 왔습니다. 비안도 초등학교 마지막 학생인 김경주 학생입니다. 외지에서 온 우리가 신기한지 집에 가서 햄스터도 가져와 보여주고, 우리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섬을 떠나, 중학교에 다니기 위해 육지로 유학을 갈 것입니다. 경주양의 씩씩하고 건강한 학교생활을 기원합니다.

바람이 거세어지니, 태풍 특보가 통보되었습니다. 비안도의 배들과 같이 섬을 떠납니다. 많은 배가 동시에 섬을 떠나 육지로 가는 장면은 장관입니다. 빠른 속도로 달리다 보니, 하얀 포말들이 바다에 떠다닙니다. 예상치 않게 비안도는 많은 것을 보여줬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즐거운 격리를 오롯이 즐겼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비안도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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