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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을 기다린 산 

르포1 _ 진안 운장산

 

운장과 구봉, 진안고원을 이루다!

 

무진장의 한 고장답게 진안은 고원이라 불린다. 금남정맥 최고봉인 운장산(1,126m)은 아홉 개의 봉우리로 유명한 구봉산(1,002m)까지 천 미터가 넘는 장대한 산줄기를 이루며 호남의 뭇 산들을 아우른다. 정상에 서면 멀리 덕유산을 위시한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이 사방으로 산 너울을 이룬다.


글 · 강윤성 편집장  사진 · 정종원 기자


“저의 자는 운장(雲長)이고 호는 구봉(龜峰)입니다.”

운장산(雲長山)의 옛 이름은 주줄산(珠山)이었다. 구술처럼 맑고 고운 계곡을 품은 높디높은 산이란 뜻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선조 때 성리학자이자 문장가인 송익필(1534~1599)이 산 서봉 아래 오성대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자(字)와 호(號)를 이 산에 갖다 붙이면서 운장산이라 불리게 됐다. 송익필의 자는 삼국지의 주인공 중 한 명인 관우와 같은 운장(雲長)이고, 호는 구봉(龜峰)이다.

보통 자는 관례를 치르고 나면 스승이나 집안 어른들이 그 사람의 성향을 고려해서 지어 주었고, 호는 일종의 별명으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인생관 등이 반영돼 있다. 사람들은 서얼 출신인 그를 ‘세속에 통달한 선비가 돼라’했을 터다. 하지만 세상이 그를 ‘거북이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처세에 능한 선비’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송익필의 자와 호가 산이 된 운장산과 구봉산

송익필은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한 대신 조선 중기 성리학자로서 ‘8문장가’ 중 한사람으로 이름을 떨쳤다. 율곡 이이와 교우를 맺고, 송강 정철의 지인이기도 했던 그는 서인 세력의 막후 실력자로 군림하며, 조선 중기 피바람이 몰아친 거의 모든 사화(士禍)에 관여했다.

송익필이 운장산의 이름을 통째로 사유화 한 것은 선친의 정변 밀고에 연루되어 유배를 당했을 때나, 형기 중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운장산에 숨어 들어와 지내면서다. 성리학자답게 산자락마다 붙인 많은 지명과 수많은 일화들은 성리학과 관련이 있다. 어찌 보면 파란만장한 선비의 일생이 깃든 산이 운장산이다.

운장산에서 구봉산에 이어진 장쾌한 주릉은 진안고원의 정점을 이룬다. 특히 운장산(1,126m)은 금남정맥을 통틀어 최고봉을 이룬다. 사방에는 여러 봉우리와 장대한 계곡들을 거느리고 있다. 북에는 주자천(朱子川), 남에는 정자천(程子川), 동쪽에는 금강으로 흘러가는 안자천(顔子川)이 흐른다. 주자는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를 높여 부르는 말이고, 정자는 송나라 유학자 정호·정이 형제에 대한 존칭이며, 안자는 공자의 제자 안회를 가리킨다. 선비가 사는 곳은 한적하고 풍광이 좋은 곳이 제격이듯 운장산도 높은 산 깊은 물에 수많은 골짜기를 이룬 심산유곡이다.

8월 3일 9시쯤 전북 진안 운장산 북쪽 들머리인 주자천 상류에 자리한 내처사동 대형주차장에 들어선다. 무진장 중에서도 진안고원답게 구절양장 휘도는 산길 끝자락이다. 처사란 과거시험을 보지 않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은 선비를 부르는 말이니, 아마도 한때 유배됐거나 은둔했던 선비들이 이곳에 거처를 마련했던 모양이다.

“서너 가구밖에 없는 심산유곡인데, 왜 이리 주차장이 커요?”

다들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산길을 탄다. 내처사동은 운장산을 원점회귀 하는 대표적인 들머리다. 이번 취재 산행에는 우제붕·임문미씨 부부가 함께했다. 우제붕(한진관광)씨는 일본 100명산을 죄다 오른 일본 명산 전문 가이드다. 코로나 바이러스 창궐로 본의 아니게 무한 휴직 중이다. 일주일 넘게 전남 경남의 100대 명산을 하루 2개씩 섭렵하는 중 취재진과 운장산에서 합류했다.

키를 넘는 산죽 헤치고 운장산 올라

주차장에서 송어횟집을 우측에 끼고 산에 들어선다. 초입에 길이 세 갈래로 나뉜다. 왼쪽 내처사길 오솔길로 접어들면서 등산로를 놓친다. 되돌아 나와 맨 우측 길을 따라 100m 거리의 목교를 건너고 나서야 운장산 동봉으로 향한다. 오랜 장마로 계곡은 수량이 풍부하다. 울창한 숲 아래 호젓한 산길이 완만하게 이어진다. 산죽과 수풀이 우거진 한적한 길이다. 장맛비가 무던히도 내렸던 산은 비가 그쳤어도 후덥지근하다. 몇 날 며칠을 산 탔던 우제붕씨가 천천히 쉬었다가자고 말한다.

“하루살이와 모기떼가 멈추기만 달라붙으니 쫌만 더 가요.”

정종원 기자가 모기가 극성을 부린다며 내리 올라 치다 능선 공터에 이르러서야 멈춰 연신 물을 들이키며 더위를 식힌다. 가끔씩 부는 바람이 반갑기 그지없다. 전국에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호남 지역만 잠시 흐린 날씨를 보여 전날 취재 대상지를 운장산으로 정하고 내려왔다.

사람 키를 넘는 산죽터널을 지나 주능선에 올라서자 운무에 뒤덮인 산세가 모습을 드러낸다. 능선을 따르자 이내 동봉(삼장봉, 1,133m) 정상이다. 사방팔방 조망이 확 트이는 곳인데 도무지 뵈는 게 없다. 하지만 외부세계와 단절된 정상부의 분위기는 또 다른 장엄한 세상을 눈앞에 가져다준다. 또한 구름이 가끔씩 걷힐 때마다 금남정맥의 마루금이 아련하게 펼쳐진다.

“이곳에서 동쪽 산줄기를 따르면 복두봉을 거쳐 아홉 봉우리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구봉산이 나와요. 호남에서는 연석산~운장산~구봉산을 묶어 ‘전북 알프스’로 부르기도 하고요.”

예전에 운장산 이곳저곳을 탔다는 정종원 기자가 추억을 떠올리며 정상 부근의 암릉에 올라 원추리꽃을 찍는다. 마침 동봉을 다정하게 내려서는 우제붕·임문미씨 부부가 뷰파인더에 들어온다. 그 너머로 운장산의 장대한 산세가 힐끗 모습을 보인다. 운장봉까지는 500m. 능선엔 무수히 많은 야생화가 피어 발밑을 즐겁게 한다. 하얀 산수국, 노란 바위채송화, 연분홍 꽃며느리밥풀 등 색깔도 가지각색이다. 산정을 휘도는 안개와 아침햇살이 일군 야생 꽃밭이다.

 

독제봉, 칠성대, 오성대라 불리는 서봉의 풍광

돌무더기가 이어진 옛 성터를 지나 운장산 정상(운장대)에 올라선다. 키 높이만한 정상적이 서 있다. 기대했던 정상부의 조망은 운무가 뒤덮여 한 치 앞을 볼 수 없다.

“운장대가 제일 높기는 하지만 운장산의 백미는 서봉이에요.”

정종원 기자가 서봉에서 푹 쉬자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동봉, 운장대, 서봉이 우애 깊은 형제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솟아 있다. 운장대와 서봉 중간 지점의 암릉에 올라서니 조망이 시원스럽게 트인다. 마당바위 너머로 서봉의 거대한 암군이 웅장하게 솟아있다. 정상 암릉에 놓인 높다랗게 설치된 나무데크를 올라 서봉에 선다. 송익필이 밤낮으로 홀로 임금을 모셨다는 독제봉이다. 현재 푯말은 칠성대라 적혀있다. 그가 말년에 머물렀던 오성대도 서봉 근처다. 암봉 끝에 서자 사방팔방으로 시야가 확 트인다. 무소불휘의 힘이 느껴지는 거대한 암봉이다. 땀으로 젖은 몸은 가스가 감겨들고 바람이 거세게 몰아붙이자 한기가 느껴진다. 붕당정치로 무수히 많은 선비들을 죽음으로 몰았던 사화의 칼바람처럼 몰아친다. 하늘은 시시때때로 햇살을 내주기도 하고, 이내 몰려든 구름이 장막을 치기도 한다. 마치 서얼로 태어나서 학자로 이름을 날린 송익필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는 듯하다.

송익필은 1534(중종 29년) 한성에서 4형제 중 3째로 태어났다. 송익필의 부친은 송사련이고, 할머니 감정은 안돈후의 천첩이었던 중금의 소생이니, 증조할머리가 노비였다. 적서의 차이는 있지만 안돈후의 아들이자 우의정을 지낸 안당은 송사련의 외삼촌이 된다.

송사련은 예조에서 종5품의 관상감판관을 지내던 1521년(중종 16년) 안당의 아들 안처겸의 모친 장례식에 온 인사들의 방명록을 역모 가담자 명단이라고 고변하여 안당과 그의 아들뿐만 아니라 사촌까지 문초를 받고 사사되는 신사무옥(辛巳誣獄)을 일으킨다. 송사련은 그 덕에 공신에 책봉, 정3품 당상관에 올라 출세가도를 달렸고 덩달아 송익필도 유복한 생활을 했다. 1586년(선조 19년) 안처겸의 후손들은 신사무옥의 치욕을 설욕하고자 송사를 일으켜, 역모가 조작된 사건임을 밝혀냈으며, 이때 송익필 형제들을 포함한 감정의 후손들이 안씨 집의 사노비였음이 드러나면서, 사노비로 환속됐다.

 

북두칠성 전설 깃든 칠성대

송익필은 성씨와 이름을 바꾸어 도피생활을 하며 절치부심, 권토중래만 노렸다. 마침 자신을 노비로 떨어뜨린 동인의 우두머리인 정3품 당상관 이발의 친구이자 전주사람인 정여립이 1589년 역모를 꾀했다는 모반사건으로 기축옥사가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무려 1,000여 명의 동인들이 제거되면서 송익필 형제들은 다시 양반의 신분을 회복했다. 당시 기축옥사를 담당한 인물이 송익필과 절친했던 정철이었다. 이렇듯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진 정치세력은 피를 부르는 정쟁으로 임진년에 쳐들어온 왜의 침략을 속수무책으로 맞이해야 했다.

기축옥사 이후 전라도는 반역향으로 찍혀 중앙정계에 나갈 때 걸림돌이 되었다. 당연히 송익필은 전라도 선비들에게는 원망스러운 인물이 되었을 터다. 그럼에도 호남지역의 대표적인 산에 이름이 떡하고 붙어 살아남았다. 정여립의 한이 서린, 그가 관군에 쫓기다 자결한 천반산 또한 운장산과 용담호를 사이에 두고 20km 거리에 마주해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운장산은 또한 선비의 일생을 다룬 산이다. 선비는 연석산(硯石山)에서 벼룻돌을 얻어 정천면 갈룡리에는 학당의 적지라는 호학동(好學洞)에서 공부에 전념했으며, 과거에 급제하면 홍패(紅牌)를 받을 때 머리에 복두(복두봉)를 썼다. 그리고 동쪽에 아홉 아들(九峯山)을 두었다. 서봉 기슭에 자리했을 것으로 보이는 칠성대에도 선비의 덕과 관련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손님으로 가장한 북두칠성이 선비의 사람됨을 시험하며 “배고픈 사람의 사정도 모르면서 무슨 벼슬을 바라냐고 나무랐다”고 한다. 이후 그곳을 칠성대(七星臺)라 부른다.

서봉은 운장산의 백미답게 하산길이 다양하다. 궁항리, 연석산, 운장산휴게소, 내처사마을 등. 칼바람이 몰아칠 것만 같은 이름이 섬뜩한 활목재를 거쳐 독자동에 내려선다. 내려서는 바위들마다 시퍼런 이끼가 뒤덮인 원시미가 가득한 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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