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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지산

 

삼도三道를 호령하는 희로애락의 산!

 

민주지산(岷周之山·1,241.7m)은 충청북도 영동군 용화면·상촌면과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에 걸쳐 있다. 북으로 각호산(角虎山·1,202m), 동남쪽으로 석기봉(石奇峰·1,200m)과 삼도봉(三道峰·1,176m) 등 1,000m 이상의 높은 산줄기가 장쾌하게 이어지며 웅장한 산세를 자랑한다. 동쪽으로는 20km에 이르는 수려한 물한계곡이 흐르고, 산 북서쪽 아래로는 민주지산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글 · 문예진 기자  사진 · 정종원 기자

 

민주지산은 정상 능선까지는 오르막이 이어지지만, 주능선에 올라서면 각호산~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을 잇는 무난한 능선 산행이 이어진다. 이 주능선의 산세가 민두름해 ‘민두름산’이라 불리던 데서 민주지산의 산 이름이 유래되기도 했다. 능선에서는 사방으로 조망이 트여 삼도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주변 산세를 한눈에 담을 수 있으며, 곳곳에 솟아있는 바위는 산행에 짜릿함을 더한다. 봄에는 정상부의 진달래와 철쭉이 만개해 장관을 이루고, 겨울에는 적설량이 많아 순백의 심설산행지로 유명하다.

 

호랑이가 살았던 전설의 산

이번 취재는 1박 2일 장거리 산행을 계획했다. 첫날 물한계곡을 출발해 배걸이봉을 지나 각호산에 오른 후, 민주지산 정상 직전의 무인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둘째 날 민주지산에서 석기봉과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산행 후 물한계곡으로 원점 회귀하는 약 16km의 일정이다.

오전 11시, 황룡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물한계곡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물한계곡 각호산 방면 들머리는 자동차 진입을 막기 위해 철창이 설치되어있어, 자칫 등산로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철장 우측으로 등산객이 지나갈 수 있게 되어있다. 철창을 지나 평탄한 비포장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들어가면 사방댐을 만난다. 등산로는 사방댐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방댐에서 이어지는 계곡을 좌측에 두고 산행을 이어간다. 들머리에서 정상 능선까지는 내리 오르막이다. 눈이 많이 쌓여 있어 걸음에 주의를 가하며 걸으니 산행 속도가 조금씩 느려진다. 아이젠과 스패츠를 착용 후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잔잔한 오르막이 이어지다 급경사가 시작되며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다. 취재진 모두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배낭에 넣는다.

오후 2시, 기나긴 오르막 끝에 각호산에 도착한다. 각호산은 오래전 이곳에 뿔 달린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에서 산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민주지산의 다른 봉우리들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두 개의 암봉으로 이뤄진 정상부가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각호산의 정상석은 등산로에서 떨어진 암봉 위에 있다. 정상석은 등산로를 벗어나 가파른 내리막을 따라 50m쯤 이동 후,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100m쯤 올라 만나는 목교를 건너면 만날 수 있다.

각호산 정상석 옆에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다. 각호산에서 민주지산까지 이어지는 등산로 위로 수북하게 쌓인 눈과 멀리 보이는 민주지산의 뾰족한 봉우리가 파란 하늘 아래 더욱 선명한 자태를 드러낸다. 주위를 천천히 돌아보던 이희남씨가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다.      

“아주 좋다, 아주 좋아! 하나도 힘들지가 않네.”

각호산을 오르며 벗었던 옷을 다시 단단히 챙겨 입고 산행을 시작한다. 각호산부터 민주지산까지는 정상 능선을 따라 산행이 이어진다. 각호산 이후로는 등산로가 완만해진다. 등산로에는 안내 표지판이 자주 보이기 때문에, 산행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에 좋다. 민주지산까지 가는 동안, 민주지산 자연휴양림과 물한계곡으로 빠지는 갈림길을 두 번 지나친다.  

 

정상 직전의 든든한 대피소

오후 4시, 각호산을 떠난 지 2시간여 만에 민주지산 무인대피소에 도착한다. 무인대피소는 민주지산 방향 등산로에서 우측으로 3~4m 아래에 있다. 등산로에서 대피소로 빠지는 길에 세워진 작은 기념비가 취재진의 발길을 잡는다. 대피소 기념비는 지난 1998년 4월 1일, 현위치에서 순직한 6인의 특전대원의 넋을 위로하고자 세워진 원정비이다. 당시 사고는 특전사 소속 제5공수 특전여군단(흑룡부대)의 천리행군 훈련에서 발생했다. 훈련 5일 차 민주지산 야간행군 도중 갑작스런 폭설과 강풍 등 기상악화가 찾아왔고, 특전대원 6명이 전원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영하 10도에서 꽁꽁 얼어버린 쇳덩어리 총은 얼음덩어리나 다름없어, 행군 중이었으면 다들 몸에 총을 메고 있었을 텐데, 급격하게 체온이 떨어졌을 거야. 군인이니까 총을 버릴 수도 없었을 테고….”

정종원 기자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비석을 바라본다. 사고 이후 이듬해인 1999년, 국방부는 당시 특전대원들의 사투를 그린 실화영화 ‘아! 민주지산’을 제작하여 그들의 전우애와 조국애를 그렸으며, 국제평화지원단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사고 현장 아래인 물한리에 세워진 위령탑에서 매년 3월 말에 추모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자 여기서 묵념하고 들어갑시다.”

이희남씨가 원정비 앞에서 자세를 고쳐 세우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다. 고개 숙여 묵념하는 이희남씨를 따라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갖는다. 긴긴 오르막 끝에 운행을 마친 기쁨도 잠시, 취재진 모두 한마음으로 숙연해진다. 대피소로 들어가기 전, 비석에 새겨진 글귀를 천천히 읽어본다. ‘세계 최강 특전용사 이곳에 영원히 잠들다….’

민주지산 대피소에는 성인 5~6명 정도 누울 수 있는 크기의 침상과 화목난로가 있다. 지난 대피소 이용객들이 두고 간 쓰레기로 가득 채워진 화목난로는 현재 배출구가 고장 나 사용이 어렵다. 대피소 안에서는 창문으로 각호산과 주변 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취재 당일, 대피소는 취재진 외에 다른 이용객이 없어 취재진 모두 여유롭고 편한 밤을 보낸다.

“지난 가리왕산 백패킹에 비하면 오늘은 완전 호텔 수준이네요!”

 

오르락내리락 석기봉 능선 산행

다음날 오전 8시, 민주지산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민주지산 정상은 대피소에서 300m쯤 떨어져 있다. 이후로는 능선을 따라 석기봉과 삼도봉을 지나 삼마골재에서 물한계곡 방면으로 하산할 계획이다. 아침 식사는 석기봉쯤에서 먹기로 하고, 뜨거운 차를 나눠 마신 후 대피소를 나선다.

대피소를 떠난 지 10분 만에 민주지산 정상에 다다른다. 일기예보에서는 오늘부터 영하 13도에 이르는 한파가 예보되었는데, 다행히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하늘과 따뜻한 햇살뿐이다. 덕분에 사방으로 물결치는 힘찬 산세가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북서쪽으로 계룡산과 서대산, 남서쪽으로 덕유산이 담기고, 지나온 각호산과 나아갈 석기봉이 굽이굽이 아름다운 물결을 만든다. 멀리 끝없이 아득하게 펼쳐지는 조망은 마치 해안선을 떠올리게 한다.

민주지산 정상 주위로 나무 울타리가 둥그렇게 조성되어 있다. 울타리는 민주지산 북서쪽 아래의 민주지산 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진다. 민주지산에서 석기봉으로 이어지는 약 2.7km의 능선 산행은 수차례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민주지산 산행 중 가장 재밌는 구간이다.

석기봉 도착 직전, 200m의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좌측으로 마애불상을 만나게 된다. 마애불상은 석기봉에서 서남쪽으로 50m쯤 아래의 암벽에 높이 6m, 폭 2m 크기로 그려져 있으며, 머리가 세 개인 불상이라 하여 삼두마애불 또는 일신삼두상이라고도 불린다. 마애불 우측 아래로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전해지는 약수탕이 있다. 가까이서 보니 굵은 고드름을 품은 채 꽁꽁 얼어있다.

오전 11시, 석기봉에 도착한다. 작은 바위산인 석기봉은 그 모습이 쌀겨와 닮았다 하여 ‘쌀개봉’이라 부른 데서 석기봉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주위의 각호산, 민주지산, 삼도봉이 유난히 크고 웅장한 정상석을 자랑하는데 반해 석기봉의 정상석은 자그마하다. 석기봉에서는 남서쪽으로 민주지산 정상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가야산이 보인다. 석기봉에서는 무주군 설천면 내북마을로 하산이 가능하다.

 

경북·충북·전북의 삼도봉

“민주지산 산행은 석기봉이 끝이라고 보면 돼, 이후 산행은 아주 쉽고 완만하거든.”

석기봉에서 삼도봉까지의 산행은 이전 구간처럼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지만, 난이도는 훨씬 쉽다. 김영선 작가가 ‘이제 힘든 구간은 모두 끝났다’며 취재진의 사기를 복돋운다. 석기봉을 지나 내리막을 따라 300m쯤 이동하자, 3~4인용 텐트 한 동은 족히 칠 수 있는 정도의 넓은 정자가 나온다. 정자를 지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완만한 능선이 약 1.5km 이어진다.

한층 여유로워진 산행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삼도봉을 바라보며 취재진 모두 가벼운 걸음을 내디딘다. 오후 12시, 석기봉을 떠난 지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삼도봉 헬기장에 들어선다. 삼도봉 정상 전망대 직전의 넓은 헬기장은 소문난 백패킹 명소다. 매 주말이면 넓은 공터 같은 헬기장이 알록달록 가지각색의 텐트로 가득 찬다. 헬기장을 지나 나무 계단을 올라서 삼도봉이 정상석, 대화합기념탑에 앞에 도착한다.  

삼도봉은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까지 3개의 도에 걸쳐 있어 ‘삼도가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로 삼도봉이라 지어졌다. 삼도봉에서는 세 개의 도를 한눈에 담을 수 있고, 물한계곡 방면에서 왕복 4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으므로 민주지산의 산봉우리 중 가장 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다. 이날도 양일 취재진 외에 등산객을 보지 못했는데, 삼도봉에서 등산객들을 마주친다.

삼도봉 이후로는 20분 정도 가벼운 내리막이 이어진다. 내리막의 끝에 밀목령으로 빠지는 갈림길을 지나게 되는데, 여기서 밀목령 방면으로 산행을 이어가면, 화주봉과 우두령을 지나 추풍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탈 수 있다. 취재진은 물한계곡 방면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밀목령 갈림길 이후로 등산로가 계곡을 따라 이어지다 차량이 다닐 수 있을 정도의 넓고 평평한 오솔길로 변한다. 6·25 때 시체가 즐비하게 버려진 골짜기였다고 전해지는 무덤골과 예부터 물한계곡 지역 주민들의 쉼터였던 음주암 폭포, 물한계곡의 자랑인 아름다운 잣나무 숲을 지나며 삼도봉을 떠난 지 2시간여 만에 황룡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인간사 모든 모습이 담긴 이 산에서 순백의 심설산행을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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