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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문의 벽 _ 북한산 인수 리지


차가운 바위와 추위가 나는 두렵지 않다


글 · 최석문, 이명희(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사진 · 주민욱 기자

 

최근 몇 년 동안 겨울에 눈다운 눈이 내린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적설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만큼 한국에서 동계 등반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등반문화는 자연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 얼마나 다양한 등반지가 있는가에 따라 어떤 등반가가 나타날지 예상할 수 있다. 한국에 만년설과 거벽이 있었다면 세계 등반의 역사가 바뀌었을 거라는 말을 농담처럼 말하곤 하는데, 그만큼 자연이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요즘 알파인 등반과 같은 모험 등반을 하는 청년 등반가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가장 큰 이유는 녹록치 않은 사회 때문이며 변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등반 환경도 크게 작용을 했을 것이다. 자연환경 요인은 겨울이 짧아져 상대적으로 동계 등반의 기간이 짧아진 이유도 있다. 사회적 환경 또한 현 상황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는데, 대중들에게 등반을 이해시키는 것이 아직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등반은 높이와 숫자로 평가받고 있으며 그러한 기록들은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쉬운 한국의 야영장 문화

내심 눈이 있기를 기대하며 아이스엑스를 한 자루 챙겼다. 며칠 전 내린 비가 산에서는 눈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였다. 인수봉으로 향하며 빙벽화와 크램폰을 챙기지 않은 것이 가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만약 정말로 눈이 바위에 덮여있다면 암벽화를 신고 등반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이동에 다다랐을 때, 그 설렘과 걱정은 완전히 깨졌다. 너무도 깨끗한 암벽이 더욱 우뚝 솟아있었다.

9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도선사 주차장은 여유가 있었다. 암벽등반 시즌이 지난 만큼 등반하는 사람들이 줄었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하루재 마루에서 인수봉이 잘 보였지만 등반가는 보이지 않았다. 인수봉 야영장에는 추워진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위를 찾은 등반가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지난밤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는지 아직 꿈나라인 듯했다.

국내에 22개의 국립공원이 있지만, 북한산국립공원의 인수봉 야영장과 선인봉 야영장을 제외하면 산속에서 야영할 수 있는 곳이 없다. 필자는 매년 해외 등반을 다니고 있는데 산에서 야영하는 것에 관한 다른 나라의 정책을 보면 부럽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청소년들이 친구들과 스스로 큰 배낭을 메고 하이킹을 하고 야영하는 모습을 보면서 또래의 자식을 둔 필자는 안타까움이 더욱 컸다.

우리나라는 오토캠핑장을 제외하고 산속에서 합법적으로 야영할 수 있는 곳이 몇 곳이나 될까? 많은 사람이 대자연과 좀 더 가깝게 호흡하면 좋지 않을까? 국립공원에서 야영금지가 시행된 지 20년이 넘었다. 당시는 무분별한 야영으로 산이 훼손되어 막았다고 치더라도 지금은 좋은 시스템들과 향상된 국민 의식 수준이 우리의 산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북한산의 야영장은 이제 옛날의 절반도 남지 않았지만 이마저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필자가 이곳에서 등반의 꿈을 키웠듯, 후배들도 이곳에서 자신의 한계와 도전을 이뤄가고 자연에 더욱 가깝게 호흡할 것이다. 어렵게 이곳을 지켜내고 있는 산악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동계 알파인 등반 훈련 대상지

인수봉 서북면 능선인 인수 리지는 인수봉 정상을 오르는 등반길 중에 길이가 긴 곳에 속하며, 난이도가 높지 않고 경관이 뛰어나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다. 특히 인수봉 고독길과 더불어 겨울에는 알파인 등반 훈련 대상지로도 훌륭한 곳이다. 겨울이면 아이스엑스를 가지고 다니는 등반자를 흔히 볼 수 있는데, 필자도 이곳에 처음 왔을 때가 알프스 3대 북벽 원정 훈련차 플라스틱 빙벽화를 신고서였다. 이후에도 빙벽등반 시즌 전이나 후에 가끔 이곳을 찾았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더 이상 훈련 대상지로서가 아닌 여가의 목적으로 찾는 곳이 되었다. 2016년 봄, 고 김창호 대장의 첫 코리안 웨이 프로젝트 등반인 강가푸르나(Ganggapurna, 7,455m) 원정 등반을 위해 취재차 이곳을 찾았으니, 4년 만의 인수 리지다. 아침에 챙겨온 아이스엑스도 4년 전 사용했던 장비로, 당시의 추억을 더욱 떠올리게 했다. 매 피치마다 끊이지 않았던 웃음, 원정 당시 밤이 깊도록 등반과 삶에 대해 나누었던 대화들이 떠올랐다. 이번 취재는 단출하게 이명희씨와 둘이서 진행했다. 이전에 언제 왔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에 인수 리지를 찾은 그녀는 인수봉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글 · 최석문)

 

인수 리지를 오르며

북한산 인수 리지를 오르는 내내 크램폰의 오래된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가만히 바라보다 옛 생각에 미소가 지어진다. 다들 비슷하겠지만, 산을 오르며 등반에 입문하게 되는 일반적인 과정이 있다. 나도 처음에는 걸어서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오르고, 정상으로 이어진 바위 능선을 보다 리지 등반을 하게 되었다. 조금 더 어려운 모험을 찾다가 암벽과 빙벽을 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더 큰 벽과 산에 마음이 끌리면서 거벽 등반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후 눈 덮인 만년설이 있는 알프스와 히말라야로 한 단계씩 경험을 쌓으며 클라이머와 알피니스트로 성장했다.

혼합 등반을 한 번도 안 한 클라이머는 있어도. 한 번만 한 클라이머는 없다. 눈과 얼음이 가득한 크랙에서 빙벽화에 크램폰을 착용하고 아이스엑스를 사용하며 혼합 등반으로 바위를 오른 클라이머가 많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추억이 서린 대표적인 루트가 인수봉의 고독길, 설교벽, 인수 리지가 아닐까 예상해본다. 바위에 긁힌 흔적은 저마다의 등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곳에서 흘린 훈련의 땀방울 같은 것이다.

나 역시 원정을 갈 때마다 인수봉에서 믹스 등반으로 바위를 오르며 열정의 불꽃을 피운 경험이 많다. 한 선배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명희야! 고독길을 믹스 등반으로 올라가면 어디든 다 갈 수 있어!” 물론 해외원정의 현지 환경이 훨씬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 말은 등반에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인수 리지는 본격적인 암벽 등반을 하는 첫 구간을 지나서 10여 미터를 하강하면 넓은 터가 있다. 그리고 이곳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다. 시간을 보니 오후 1시 30분, 아침도 거른 취재진은 따뜻한 겨울 햇살을 지나칠 수 없어 휴식을 겸해 점심을 먹는다.

공터 이후 인수 리지의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된다. 좌측의 핑거크랙은 이 루트에서 가장 어려운 구간으로 길이는 10m 정도, 난이도는 5.8~5.9 정도이다. 이후에는 난이도 5.7의 크랙선을 타고 오른다. 피치를 끊지 않고 한 번에 오르면 50미터 정도 되는데, 꽤 등반할 맛이 난다. 이후 인수C 루트를 따라 60여 미터를 더 올라 인수봉 정상에 도착한다.

 

내가 선택한 클라이머의 삶

오랜만에 겨울 시즌에 여유롭게 암벽 등반을 하고 있지만 마음 한쪽이 허전하다. 예전 같았으면 한창 아이스클라이밍 대회 준비를 하고 있을 때이기 때문이다. 아이스엑스를  잡고 있어야 할 손으로 바위를 잡고 있는 것이다.

암벽 등반을 가장 좋아하지만 겨울이 되면 빙벽 등반을 하면서 가끔 대회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1998년 제2회 토왕빙벽대회를 시작으로 마지막 대회인 2018년 2월 아이스클라이밍 동계체전까지 20년 동안 대회에 참가했다. 대회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새로운 등반은 늘 재미있었다. 자연 등반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체력적인 부분과 정신적인 부분까지 대회는 나름의 배움이 있어 참가하곤 했다.

처음 출전한 1998년 설악산 토왕성폭에서 열린 대회는 하단 빙벽을 누가 더 빨리 오르는가를 겨루는 속도 경기로 우승자를 가렸다. 당시에는 손목걸이와 코플라치(플라스틱 이중화)를 신고 크램폰(푸트팡)을 착용하고 오르는 대회였는데, 이후 해가 바뀔수록 대회 경기 방식과 형태가 변화하고 발전했다.

인공 빙벽에서 선을 그려 놓고 타격하며 오르는 난이도 등반 대회가 지금은 얼음이 아닌 인공 암벽에서 홀드에 아이스엑스를 걸고 오르는 드라이툴링 대회로 변화되었다. 가볍고 날렵한 아이스엑스와 크램폰, 일체형 빙벽화 그리고 다양한 등반 기술로 대회는 계속 발전해 나갔다. 나는 언제나 그 변화에 적응하려 노력했고, 지난 2015년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에서는 준우승의 성과를 거두었다.

국내 아이스클라이밍 대회는 2017년부터 5번의 시리즈가 생겼으며. 선수권 대회 2번과 동계체전까지 총 8번의 대회가 개최된다. 대회가 자주 개최되는 것은 선수입장에서는 아주 반갑고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선수보다는 클라이머가 되고 싶었다. 훈련하지 않고 대회에 참가하면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것이고, 그렇다고 1년 내내 아이스엑스를 잡고 싶지는 않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시합만을 위해 드라이툴링에만 몰두하는 과정은 나에는 그리 좋은 방향이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가 한 번에 두 가지에 몰두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등반을 위해 한 곳에만 에너지를 쏟기로 결정했다. 나는 선수가 아닌 클라이머의 삶을 택했다. 그래서 이젠 아이스클라이밍 대회는 출전하지 않는다. 20년 동안 쉬지 않고 대회에 참가했던 나에게 올 한해는 안식년이 되었다. 어서 빙장에서 등반을 하고 싶은데 아직 겨울다운 겨울이 찾아오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그래도 지금 나는 자연에서 바위를 잡고 등반을 하고 있다.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시리고 까칠한 자연의 느낌이 아주 좋다. 겨울 암벽 등반, 차가운 바위와 추위가 꼭 두렵지만은 않은 날이다. (글 · 이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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