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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등반투어 _ 북미 클래식 루트 50 <중>

 

등반의 트라우마는

등반으로 극복한다

 

시티 오브 락스 주립공원 핑고라 피크

솔트레이크를 지나 윈드 리버 레인지(Wind River Range)의 핑고라 피크(Pingora Peak)까지는 이틀을 달려가야 한다. 핑고라 피크는 나에게 트라우마에 가깝다. 몇 해 전 이곳을 찾았을 때 로컬 클라이머 두 명이 프로텍션 실수로 추락한 사고를 목격한 바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가장 힘든 등반이었다. 등반의 결과는 어땠을까?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깃털처럼 가볍다.

글 사진 · 김정덕 본지 편집위원

 

윈드리버 레인지로 향하던 도중 아이다호의 시티 오브 락(City of Rocks)을 찾았다. 물을 구하려고 아담한 레인저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많은 클라이머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한 곳의 캠프사이트를 찾아 휴식도 취하고 몸도 풀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분위기는 조슈아 트리(Joshua Tree) 주립공원과 비슷하지만 캠프 그라운드 환경이 미흡하다. 캠프사이트도 많지 않다.

암벽 한쪽에서는 초급자 교육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숙련된 클라이머들이 등반에 열심이다. 암벽은 인수봉처럼 화강암인데 조금 더 거칠다. 바위에 접근성도 좋고 한 피치 혹은 두 피치 코스의 다양한 루트가 존재하며 크랙 등반이 주를 이룬다. 공원에 곳곳에 등반이 가능한 다양한 형태의 바위들이 산재해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환경이 있으면 등반실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빌어먹을 모기, 모기, 모기

시티 오브 락을 떠나 해발 2,000m의 윈드리버 레인지의 캠프 그라운드에 도착하니 핑고라 피크 주변의 풍경이 장관이다. 올해 눈이 많이 내렸다고 한다. 봉우리마다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다. 등반의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배낭에 장비를 챙겨 등반지로 떠날 때에는 항상 새롭게 마주할 벽에 긴장도 되고 마음에는 설렘이 솟아난다.

새벽 일찍 약 20km의 어프로치를 시작한다. 이곳에는 등반 퍼밋(Permit)이 필요하지 않다. 트레일헤드에 있는 키오스크에 신고서만 작성하면 된다. 빅 샌디 레이크(Big Sandy Lake)를 지나 잭 애스 패스(Jack Ass Pass)에 오르는데 비가 쏟아진다. 바위 밑에서 비를 피하다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아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잔설이 깔린 패스를 지나 캠프지에 도착하니 모기떼가 습격한다. 어프로치에 지친 몸은 모기 때문에 더욱 괴롭다. 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 궂은 날씨와 모기 때문에 등반을 포기한 적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모기장과 모기 기피제로 무장하고 왔다.

다음 날은 휴식을 취하며 등반 자료를 보고 핑고라 피크까지 어프로치를 그려본다. 핑고라 피크의 등반은 심적으로 나에게 상당한 부담감을 안겨준다. 왜냐하면 몇 해 전 이곳을 찾았을 때 로컬 클라이머 두 명이 프로텍션 실수로 추락한 사고를 목격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의 생각이 떠올라 정신적으로 위축되는 것 같다. 핑고라 피크 등반 시작 지점까지 클라이머들의 트레일을 따라 산행을 해 본다. 벽의 높이가 상당히 높고 웅장하다. 자료상에는 스타트 지점에 접근할 때는 벽 밑의 너덜지대를 이용하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해가 없을 때에는 위험해 보인다. 론썸 레이크(Lonesome Lake) 쪽으로 접근하는 것이 편할 것 같다.

가파른 사면을 올라 등반 라인을 확인하고 장비를 데포시킨 후 캠프로 돌아왔다. 왜냐하면 다음날 어프로치 할 때 길을 미리 확인하지 않고 출발하였다가 지체하다 보면 등반을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음날 새벽 3시 출발한다. 어제 보았던 지형들을 되새기며 어프로치 하는데 길을 벗어나기도 하며 가파른 너덜 지대를 한 시간 반 정도 올라 스타트 지점(해발 3,000m)에 도착. 장비를 착용하고 자료를 다시 한 번 확인한다.

 


핑고라 피크를 오르다

역시 이곳에도 고정볼트는 한 개도 없다. 고정 하켄이 두 개 정도 있다. 코스 길이는 보통 60m 등반라인이다. 첫 피치를 오르는데 로컬 클라이머 2명이 올라온다. 뉴욕에서 온 그들은 전날 4피치까지 오르다 포기하고 오늘 다시 시도한다고 한다. 첫 피치를 빠르게 트래버스하고 60m 오른다. 새벽이라 그런지 날씨가 춥다. 바람도 많이 불고. 두 번째 피치는 바위 표면이 미끄럽다. 레이백과 재밍을 반복하며 한 60m 오르니 고정 하켄 한 개가 박혀 있다. 피치 종료.

세 번째 피치는 레이백으로 오른 후 프렌드를 설치하고 우측으로 트래버스한다. 작은 오버행을 넘어 크랙을 한참 오르는데 확보점을 지나친 것 같다. 후등자가 자일이 모자란다고 한다. 적당한 크랙을 찾아 프로텍션을 하는데,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라 몸이 많이 위축된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 네 번째 피치는 손 재밍과 칸테 쪽의 홀드를 이용하여 오르는데 촉스톤에 슬링이 걸려있어 확보점인 줄 알았는데 밑의 팀이 전날 탈출할 때 설치한 것이며 확보점을 더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

다음 피치는 풀과 돌가루가 크랙 사이에 끼어 있어 조심스레 오른다. 자료상에는 고정 하켄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발견하지 못하고 올라 작은 스탠스 위에 서서 너트와 프렌드로 프로텍션한다. 여섯 번째 피치는 경사가 가팔라진다. 우측으로 트래버스하고 크랙을 따라 오른다. 와이드 크랙에 프렌드 4호를 설치하고 몸을 크랙 안쪽에 넣는데 배낭 때문에 몸놀림이 수월치 않아 힘들다. 확보점을 지나쳐 올라온 것 같다. 아래서 줄이 모자라다고 한다. 좁은 크랙에 너트로 프로텍션. 항상 그렇듯이 원정 오기 전 이미지와 동영상을 보고 수없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지만 실제 등반 중에는 코스의 라인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기억력이 안 좋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피치의 확보점 개념이 없다. 최대한 높이 오르고 시간만 잘 할애하면 등반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밑의 로컬 클라이머들이 힘들다고 아우성치고 그레이드가 잘못 되었다고 욕을 하며 오르고 있다. 새삼 느끼지만 어떤 행동이나 말들이 다른 등반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고 행동하여야 하며 등반가의 품위를 잃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일곱 번째 피치 벽을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반복되는 손 재밍과 바위 표면의 홀드를 이용하여 작은 홀드를 딛고 빌레이를 보는데 우측 턱 높이 넓은 테라스의 확보점이 보인다. 미처 확보점을 파악 못하고 힘들게 벽에 매달려 빌레이를 보고 있었다. 후등자가 그쪽 확보점에 오르고 장비를 회수하여 넘어간다. 시간을 허비하는 불필요한 행동을 한 것이다.

 


클라이머는 클라이머를 믿는다

여덟 번째 피치는 더욱 가파른 경사지만 잘 발달된 크랙은 손 재밍과 프렌드 설치가 용이하다. 그리고 거친 바위 표면에 암벽화가 안정적으로 밀착된다. 등반의 즐거움에 흥분이 고조되고 있다. 코스 중간에 프렌드를 몇 개 설치하고 오르는데 밑을 내려다보니 고도감이 상당하다. 스태밍 자세로 오르니 넓은 안부가 나온다. 다음 피치는 이곳 루트의 마지막 구간이다. 침니로 등반할 수도 있고 크랙으로 오를 수도 있다. 오버행 크랙에 손을 넣고 몸을 끌어 올리는데 몸이 밀려 나온다. 동작이 어색하다. 위에 홀드가 보이지만 손이 닿지 않는다. 칸테의 홀드를 잡고 힘겹게 올라서는데 발이 이끼 때문에 미끄러진다. 이곳에서 추락하면 많이 다칠 것 같다. 배낭을 벗고 침니 안으로 등반을 할 것을…, 후회가 된다.

손끝에 온 힘을 주고 오르니 정상이 눈앞에 보인다. 안자일렌하고 짧은 크랙을 오르니 정상이다. 옆으로는 클래식 루트에 포함되어 있는 울프스 헤드 피크(Wolf’s head peak)가 보이고 웅장한 탑들의 권곡(Cirque of the towers)이 한눈에 펼쳐진다. 그동안 힘들었던 것을 보상 받는 기분이다. 이제는 핑고라 피크의 대미를 장식할 차례이다.

하강은 사우스이스트(Southeast) 루트와 타이거 타워(Tiger tower)로 할 수 있다. 우리는 사우스이스트로 결정하고 하강 포인트로 클라이밍 다운한다. 로컬 클라이머 2명이 하강 준비 중이다. 우리 줄이 짧으니 도와주겠다고 한다. 산악인의 본능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우리 산악인들도 가슴속에 있는 내면의 무언가를 활성화시켜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등반 중 곤경에 처할 때가 있다. 그때 서로 신뢰할 수 있다고 확신을 하고 공존을 한다면 더욱 등반의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하강 슬링에 자일을 건다. 자일이 짧아 위험할 수 있지만 프로텍션 할 때 사용했던 코드슬링을 자일에 연결하고 하강하니 걱정했던 것보다 클라이밍 다운이 수월하다. 네 번의 하강을 마치고 캠프에 도착하니 낯선 클라이머들이 우리 캠프를 방문해 오늘 우리가 등반한 루트에 대해 물어본다. 외국에서 온 우리가 미국의 클라이머에게 이곳의 정보를 제공하는 낯선 경험을 다 해 본다.

이곳은 미국 각지에서 많은 클라이머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그들 대다수가 피치가 짧은 사우스이스트 루트를 등반한다. 노스이스트 루트는 전형적인 클래식 루트로 이곳 클라이머들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인 듯하다. 다음날 울프스 헤드를 등반하려 했으나 준비해 간 식량이 충분하지 않았다. 울프스 헤드를 포기하고 눈 녹은 물을 밟으며 잭 애스 패스를 넘어 하산한다. 땀을 닦으며 휴식을 취하는데 어제 함께 등반한 클라이머들이 맥주 한 캔을 건네며 말을 걸어온다. 친구가 된 기분이다. 그들과 헤어져 볼더의 캠프 그라운드에 도착했다.

 

가장 힘들었던, 그래서 가장 기쁜 성취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는다. 그 동안 클래식 루트를 여러 곳 등반했지만 핑고라 피크는 심리적 부담감 때문에 가장 힘든 등반이었고 마치고 나서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깃털처럼 가볍다. 다음 등반지는 캐나다의 써 도날드(Sir Donald) 산에 있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반가운 벗이 사는 시애틀이 있다. 우선 벗을 만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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