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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문의 벽 _ 인수봉 귀바위D(취나드A)

 

무자비한 고통의 길, 겸손을 배우는 길,

조금의 용기면 충분한 길!

글 · 최석문(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사진 · 주민욱 기자

 

아무리 더워도 추석이 지나면 산은 선선해지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등반하기 좋은 계절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가을이 오면 농민들은 추수를 하지만 등반가들은 계획했던 등반에 결실을 맺어야 하는 시간일지 모른다.

 

명쾌한 등반선, 취나드A

이번 취재는 본지의 기자였던 민은주씨와 함께했다. 민은주씨는 등반에 대해 솔직하고 열정적이며, 자연을 대하는 남다른 감성을 가진, 그리고 그것들을 글로 유려하게 표현할 줄 아는 등반가이다. 그녀는 얼마 전 미국 서부지역 등반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간의 등반 얘기도 궁금하고 얼굴도 볼 겸 함께 등반하자고 제의하니 흔쾌히 응해 주었다. 등반 대상지는 민은주씨가 가고 싶은 곳으로 정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인수봉이었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그녀의 모암(母巖)인 듯했다.

필자도 긴 등반여행 후 으레 첫 번째로 찾는 곳이 인수봉이다. 등반에 갓 입문했을 당시에는 인수봉이 도전의 대상지였다면 지금은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다. 20년 넘는 시간 동안 이곳을 수없이 다니면서 기량도 향상되었겠지만, 등반에 가려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인수봉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은주씨 오늘 어디 가실 건가요?”

“취나드A 가고 싶어요.”

“특별히 그 길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요?”

“등반선이 한눈에 들어와서요.”

그렇다. 크랙의 등반선은 명쾌하다. 복잡한 루트 파인딩이나 볼트 수를 굳이 알 필요가 없다. 크랙등반은 정해진 홀드나 일정한 동작 따윈 없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손발이 가면 그곳이 홀드가 되는 것이다. 그저 넉넉한 캠과 조금의 용기면 충분하다. 취나드A도 명쾌한 등반선을 자랑하는 루트다. 많은 사람에게 취나드A는 단내가 가득한 추억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보통 인수봉을 즐겨 찾는 사람들은 이 루트를 처음 등반하고 나서 자신의 등반을 평가하거나 돌아보게 된다. 특히 크랙 등반이 능숙하지 않고 슬랩과 페이스 등반을 주로 했다면 말이다.

목적지를 정한 후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인수봉으로 가는 길은 몇 해 전부터 참나무시들음병이 돌아 많은 나무가 약해져 있었는데, 이번에 태풍 링링의 여파로 쓰러져 있는 나무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의대길 출발지점의 소나무가 쓰러졌다는 소식이다. 오랜 시간 인수봉에 뿌리를 내리고 뭇 등반가들에게 작은 쉼터를 제공했던 소나무가 더는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안전상의 문제로 곧 베어진다고 하여 오늘 등반을 마치고 오아시스에 들러 다시는 못 보게 될 나무를 보고 오기로 했다.

 

시간과 노력, 그리고 결실

모처럼 함께 줄을 묶은 두 사람, 언니 이명희씨가 먼저 출발한다. 그래야 가장 멋진 4피치를 동생인 민은주씨가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명희씨는 한국을 방문하는 각국의 클라이머들과 취나드A를 자주 등반했다. 취나드A가 그녀의 ‘즐겨찾기’가 되기까지 그녀도 시간과 노력이라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이명희씨가 필자와 함께 2010년에 세계 최고의 크랙등반 대상지인 미국의 인디언크릭으로 함께 등반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홀드를 잡고 등반하는 방식에 익숙했던 이명희씨는 재밍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오를 수 없는 등반을 경험하고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한국에서 5.13b급을 레드포인트 하는 실력이었으나 인디언크릭에서 5.9급의 크랙도 제대로 못했던 것이다. 이후 이명희씨는 낙심에서 그치지 않고, 수많은 노력 끝에 지난 2015년 12월, 선인봉 강적크랙(5.13a) 여성 초등의 결실을 맺었다.

본 취재를 마치고 이명희씨가 SNS에 첫 취나드A에 대한 글을 남겨 필자가 요약해 보았다.

 

2019년 9월 16일, 오랜만에 인수봉 취나드A를 등반하고 나서 내가 처음 그 길을 올랐던 때를 기억해 본다. 내가 산에 다니기 시작한 1990년대 초만 해도 도봉산 선인봉에서 등반하는 산악회는 북한산 인수봉 등반을 거의 하지 않았다. 물론 인수봉을 등반하는 산악회도 선인봉에 거의 오지 않았다. 재미있는 표현으로 선인파 혹은 인수파로 불렸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타이탄산악회였기에 선인봉에서만 등반했고 선인파였다. 25년 전 그 시절은 참 용감하게 등반했고 나 자신을 스스로 과대 포장했던 시절이었다.

때는 1990년 중반 7월 17일 제헌절, 평소 친하게 지내는 청죽산악회의 김미선 언니(인수파)와 둘이 등반하기로 했다. 공휴일이라 인수봉에 많은 인파가 몰렸고, 빈 곳을 찾기 어려웠다.

“어느 길 갈까요?”

내가 물으니 언니는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한여름 뜨거운 햇볕을 피해 그늘지고 등반자가 없는 취나드A 루트를 등반하자고 했다. 2, 3피치는 언니가 등반하고 4피치는 내가 등반하기로 했다. 크랙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았지만 확보지점 외엔 볼트가 보이지 않았다. 캠을 많이 가져가야 했지만 우리에겐 캠이 한 세트뿐이었다.

미선 언니가 먼저 2,3피치를 가볍게 올라갔고 후등인 나도 별 어려움 없이 등반을 했다. 그리고 내가 선등을 이어받아 4피치 출발하기 위해 장비를 받는데, 이곳을 처음 오르는(온사이트) 내게 언니는 위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가장 큰 캠까지 다 가져가라고 했다. 머리 위 오버행을 넘어가면 알게 될 거라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재밍을 잘 못했다. 오로지 스테밍과 레이백 그리고 온몸을 바위에 비비며 올랐다. 등반 인생에서 자신만만함이 최고조였던 20대 중반 시절이었으며, 스스로도 등반 실력이 좋다고 생각했고 무서운 게 없던 때였다. 하지만 취나드A 4피치 오버행을 넘어 펼쳐진 세상은 지옥을 맛보기에 충분했다. 그 길은 내게 등반에 있어 겸손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해줬고,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그때 나는 40미터의 크랙을 오르는 동안 세상에 존재하는 욕이란 욕을 다 뱉어내며 미덥지 못한 캠을 아쉬워하고 추락에 대한 공포를 느끼며 올랐다. 이것이 내가 처음 오른 취나드A의 기억이다.

25년이 지난 지금, 인수봉 취나드A는 내가 좋아하는 루트 중 한 곳이 되었다. 지금은 볼트가 더 많아졌고 좀 더 편하게 등반할 수 있는 루트가 되었다. 크랙에 볼트를 박는 것에 대해 잘잘못을 말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 장비도 좋아지고 실력도 높아진 데 반해 정신력은 후퇴했다는 생각이 들어 아쉽다.

 

등반가라면 한번쯤 거쳐야 할 관문

이명희씨의 선등에 이어 민은주씨가 4피치를 시작했다. 그녀는 빠르진 않지만 멈추지 않고, 힘으로 등반을 압도하지도 않은 채, 바위선과 하나 되어 벽을 올랐다. 그녀가 보여준 등반은 크랙 등반의 교과서적인 자세였다. 지난 몇 년간 전통등반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 주었다. 이러한 민은주씨에게도 취나드A는 과거에 도전과 모험의 대상이었다. 그녀의 블로그에서 그녀가 2011년에 기록한 첫 취나드A에 대한 글을 찾을 수 있었다.

 

…군더더기 없이 강렬한 직선크랙, 루트를 헷갈릴 걱정은 절대 없지요. 자연스럽고 멋진 등반선입니다. 내가 안 가도 된다면…. 취나드A를 입 밖에 꺼내놓고 일주일 내내 공포로 파랗게 질렸습니다…. 어프로치 내내 연주선배가 겁을 어찌나 주던지, 발목 하나 정도면 감사하겠다는 자포자기의 마음으로 스타트지점에 섰습니다.

2명이서 거의 4조의 캠을 들고 올랐습니다. 그러나 프렌드 설치가 익숙하지 않은 저에게 고정확보가 거의 없는 60m 크랙은 난이도와 상관없는 공포였어요. 4피치 40m의 크랙 중 볼트는 3개, 위의 20m의 수직크랙은 고정확보물 없이 가야합니다. 무자비한 괴물의 아가리 속으로 혼자 걸어가는 느낌이었어요.

두 번째 볼트까지 어찌어찌 걸고, 여기서도 제가 설치한 캠은 도중에 3개나 빠졌습니다. 정말 눈물이 날 것 같더군요. ‘매달리면 빠진다. 떨어지면 다 빠진다.’ 그런 강력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추락이나 텐션 없이 앵커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쌍볼트가 보이는 순간, 30년 만에 만나는 첫사랑도 이보다 반갑지는 않았을 거예요. 엉엉. 살았다.

취나드A 4피치 앵커에서 내려다보는 세상,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감각이 거기 있습니다. 불확실성, 그것은 등반이 저를 매혹시키는 이유이자 삶이 절대로 시시해지지 않는 힘이지요. 온사이트는 실패했지만 괜찮아요. 만족합니다.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일어설 만큼 긴장했고, 완전히 몰입했었고, 살아서 돌아왔으니까요. 아마도 다음엔 조금 더 잘할 수 있겠지요….

 

필자도 취나드A의 첫 등반을 잊을 수가 없다. 필자가 처음 등반을 시작했을 때 계절은 봄이었다. 당시 바로 다음 해 7월에 알프스 3대 북벽 등반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었는데, 등반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원정 전 선배들의 경험치에 빠르게 접근하기 위해 오로지 열심히 등반하는 방법을 선택했었다.

어느 날 아이거북벽을 다녀온 선배가 ‘취나드A를 빙벽화 신고 올라갈 정도면 기술적으로 아이거북벽은 등반할 수 있다’는 말을 했고, 곧바로 선배와 둘이서 취나드A를 찾았다. 등반경험이 6개월 남짓이었던 필자가 둔탁한 빙벽화를 신고 오르기에 취나드A는 너무 무서웠고 어려웠다. 게다가 지금처럼 큰 캠도 없었고 힘과 기술은 말할 것도 없었다. 몇 시간이 걸린 줄도 모르고 4피치를 오르니 어두워지기 시작해 하강을 했다.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플라스틱 빙벽화는 10년은 신은 듯했다. 그게 필자의 첫 취나드 등반이었다.

그때 너무 힘들었던 기억에 이후 몇 년 동안 취나드A에 가지 않았다. 그래도 필자에게 첫 취나드A 등반은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관문과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추억과 경험을 했던 게 지독하게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나 지금이나 취나드A(귀바위D)는 누군가에게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루트,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스스로를 일깨우는 곳이다. 뭐가 됐든 취나드A는 등반가라면 한 번쯤 거쳐야 할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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