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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트레킹 _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천산의 천상을 걷다

그랬다. 콜사이 레이크에는 알프스를 닮은 호수와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 송이 흘러나올 것 같았고, 드넓고 짙푸른 호수 물결 위로 산산이 흩어지는 햇빛이 나에게 “더 이상 걸어가야만 하나?”라고 유혹한다.

글 사진 · 박준기 후원 PHROS

 

지난 시즌, 헬로우 스키닷컴 백두산 북파 스키투어에 참여하며 인연을 맺었던 파로스트래블 이내희 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몇 년 동안 공을 들여 기획해 온 카자흐스탄 트레킹에 동행을 하자는 내용이었다. 마침, 일정도 맞아떨어졌고 새로 장만한 카메라의 테스트 촬영도 할 겸 얼씨구나 하는 마음으로 동참하게 되었다.

동네 후배 남영호 탐험가를 꼬드겨 짐을 꾸리게 한 건 덤이었다. 8일 동안 동행했던 현지 여행사 ‘세르게이 킴’ 대표는 고려인 4세. 어쩌면 내가 명칭에 얽매이는 편견 덩어리라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고려인이라는 명칭이 주는 이미지와는 달리 동국대학교에 유학 왔다던 그는 겉모습만 보면 강남에서 만날 수 있는 청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자흐스탄은 초행길이었다. 대개 ‘스탄’으로 끝나는 국가가 주는 편견 때문이었는지, 나는 떠나기 전부터 파키스탄 정도의 이미지를 그렸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번잡한 시장통이 늘어선 이슬라마바드와 겹쳐졌던 예상 그림은, 정돈이 잘되고 한적한 동유럽 국가의 도시를 방문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그리고 알마티의 그 감탄 섞인 탄식은 이후 아름답고, 광활하고, 잘 정리되고 보전된 아름다운 자연으로 이어졌다.

카자흐스탄은 분명 중앙아시아의 국가 중 하나이다. 재미있는 건 흔히 말하는 ‘중앙아시아’는 범위가 명확하지가 않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 지역을 동과 서로 나누기도 하고 ‘내륙아시아’의 명칭으로도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실크로드의 중심지였고 이슬람 문화와 유목민의 전통이 남아있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등의 국가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지역의 중심에는 중국 신장 지구부터 뻗어 내린 천산산맥이 위치하고 있다. 백과사전에도 ‘알프스형의 산맥’이라고 기술이 되어있을 만큼 그 이국적인 아름다움은 트레킹을 하며 가끔씩 스위스에 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빅 알마티 피크’

넓은 거리와 커다란 가로수 그리고 카페들을 따라 이어지는 인도 옆 수로를 따라 맑은 물이 흐르는 알마티의 차분한 도시 풍경은 처음 방문한 여행자들에게 아늑한 첫날을 선사했다.

그리고 시작된 다음날의 여정. ‘빅 알마티 레이크’가 트레킹의 시작이었다. 알마티 도심에서 그리 멀지않은 알마티 호수는 만년설이 녹아내린 맑은 물이 모여 짙푸른 빛을 띠고 있고 도시와 인접해서인지 주변에는 휴일을 즐기는 인파가 제법 많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은 호수까지다.

호숫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 일행은 천산천문대로 향했다. 천산천문대는 제법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총을 멘 군인들이 모든 사람의 여권을 가져가서 비자 발급 여부 등을 자세히 살펴본 후에 정문을 열어준다. 오르막길이 쉬지 않고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이동하자 구소련 시절에 만들어진 천문대와 연구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낡은 건물들 사이로 잔설이 남아있는 풍경이 마치 007 같은 스파이 영화의 배경 같다는 직업적 발상이 스쳐지나갔다.    

이곳 천문대는 구소련일 때 건립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민간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했으나 이제는 민간인들이 천문대를 통과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있다. 이곳의 해발은 3,200m. 여기서 건물들을 지나 왼편 등산로가 이어지는 곳은 해발 3,684m의 ‘빅 알마티 피크’이다.  

고도가 고도인지라 등산로로 접어들자마자 순식간에 가스층이 밀려들어와 온 산을 휘감았고 갈림길까지 올라간 우리는 다시 올라갔던 길로 다시 돌아내려와 하산했다. 가이드 말로는 하산길이 아직 개방되지 않았다고 한다. 주차 후 오르막길 초입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와 장비를 정리하던 스키어들을 만났던 생각이 났다. 안전 상 아직 눈이 쌓여있는 산길을 전면 개방하지 않았던 것이다. 6월 중순 정도부터는 ‘빅 알마티 피크’를 오른 후 알마티 호수 방향으로 하산하여 검문소 쪽 마을로 걸어 내려 갈 수 있다.  

 

리틀 그랜드 캐년 ‘차린 계곡’

전날 묵었던 알틴수(알마티에서 5시간 거리)의 사막 온천물에 아침 일찍 몸을 담그고 난 뒤 찾아간 곳은 차린 계곡. 아침식사를 다 소화시킬 정도로 한참 이어지는 비포장도로를 지나며 도착한 계곡은 그야말로 ‘그랜드 캐년’의 축소판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기암괴석이 이어지는 그 한가운데를 트레킹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옛날 이 기이한 계곡을 깎으며 흘렀을 엄청난 양의 물길은 탐사자료로나 찾을 수 있을까, 협곡의 아래로 내려서면 현재는 물기가 전혀 없는 건천으로 변해 계곡을 즐기며 걷는 트레킹 코스가 되었다.

사실 400km에 이르는 미국의 ‘그랜드 캐년’은 서로 오갈 수 없는 남쪽과 북쪽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는 대협곡인 데다 협곡을 흐르는 급류는 목숨을 건 래프팅을 시도하기 전에는 살펴보기조차 힘든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감동 5분 뒤부터 너무 큰 사이즈 때문에 지루함으로 남았던 ‘그랜드캐년’과 달리, 축소판 협곡을 걸으며 황토빛 퇴적암들의 지리적 특성까지 살필 수 있는 특이한 이 지역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학창시절, 지구과학 시간에 그리 몰두하던 학생은 아니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이 협곡을 흘렀을 거센 물살과 풍화작용의 산물인 기묘한 풍경은 과학 성적과는 상관없는 몰두를 하게 만들었다.

적당한 트레킹 뒤에 만나는 협곡의 끝에는 방갈로 형태와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생활을 체험 할 수 있는 전통 유르트로 만들어진 게스트하우스들이 모여 있는 차린 계곡의 리조트가 있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던 계곡의 끝에 이런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는 것도 특이했지만 깔끔한 레스토랑까지 있다는 사실 또한 꽤 의외였다. 점심식사로 주문한 카자흐스탄 특유의 불맛 나는 꼬치들을 먹으며 로맨틱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일정 때문에 올지 안 올지 모르는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지만.          

차린 계곡 입구까지 유(U)자 형태로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는 이 트레킹 코스는 리조트가 반환점에 해당되며 돌아올 때는 이미 걸어왔던 협곡 사이가 아닌 능선으로 가게 된다. 이 때 보이는 계곡은 협곡 사이를 걸으며 보았던 것과 또 다른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이 트레킹 코스는 리조트를 거친 후, 협곡을 돌아 나오는 반대로도 트레킹이 가능하다. 또 가끔씩 10여 명 정도를 태울 수 있는 오픈카가 계곡 택시 역할을 하는데, 걷는 것이 훨씬 즐겁기 때문에 짐을 모두 가지고 리조트에서 묵을 여행객들만 이용하는 듯 보였다.            

숙소인 사티 마을로 향하는 동안 여러 마을을 거치며 청년들이 드넓은 초원 위에서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들이 여러 번 시야에 들어왔다. 새삼 이곳이 유목민들의 고장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게스트하우스 전환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에 따라 일반 가옥을 개조한 곳이었는데 우리 집 세탁기보다 좋은 드럼세탁기까지 구비된 제법 쾌적한 곳이었다. 특히 음식 솜씨 좋은 주인 아주머니가 매 끼 푸짐하게 차려주는 식사는 마치 옛날 대학가 하숙집 밥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갓 짜온 신선한 우유, 요구르트, 여러 종류의 치즈부터 중앙아시아에서 맛 볼 수 있는 화덕에서 구운 빵까지 식탁은 풍성하게 채워졌고, 또 트레킹 갈 때마다 정성스럽게 싸준 도시락은 우리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중앙아시아의 스위스, 콜사이 레이크 트레킹

사티 마을 게스트하우스를 베이스캠프로 삼고 오간 곳은 ‘콜사이 레이크’와 ‘카인디 레이크’였다. ‘콜사이 레이크’는 카자흐스탄의 국립공원 지역으로 알마티에서 남동쪽으로 300km(직선거리 110km)거리, 사티 마을에서 12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여정을 떠나기 전, 온라인 검색 사이트 백과사전에 기술되어 있었던 카자흐스탄 천산산맥에 대한 설명. ‘알프스형의 산맥…’ 그 때는 방구석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웬 알프스?”라고 읊조리고 피식 웃어넘겼을 뿐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해발 1,800m에서 ‘콜사이 레이크’를 맞닥뜨리는 순간, 어쩌면 그렇게 기가 막히게 딱 들어맞는 설명을 붙여놓았을까, 라는 생각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호수는 총 3개로 제1호수가 해발 1,800m에, 제2호수가 해발 2,070m에, 그곳에서 3km를 더 가면 마지막 호수가 나온다. 대개는 제2호수까지를 목적지로 삼는다고 한다. 날씨가 점점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이기도 했고 제1호수를 지난 뒤 시작되는 깔딱고개가 산행의 호흡을 좀 가쁘게 만들었다. 제2호수까지의 산행이 힘들다고 생각된다면 전경이 아름다운 제1호수 마지막 부분이나 이후 깔딱고개가 시작되는 지점까지만 가보는 것도 괜찮다.

멀리 정상 부근의 만년설을 바라보며 이어지는 제2호수까지의 등산로는 전나무 원시림으로 난 시원한 오솔길이다. 외길이며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며 1시간 간격으로 나무로 만들어진 휴식공간이 잠시의 휴식을 손짓한다. 또 그 옆에는 조바심을 내는 트레커를 위해 서있는 입간판이 제2호수까지 남은 거리를 이야기해준다.  

제2호수를 둘러싼 푸른 초원은 노란 민들레와 형형색색의 각종 들꽃들로 장식되어 마치 요세미티의 북쪽 ‘투올로미 메도우’의 풍광을 연상케 했다. 목덜미로 흐르는 땀을 연신 훔쳐냈지만 알프스형의 산에 올라온 보람이 있는 하루였다.

저녁에 게스트하우스 마당 한편에 만들어놓은 사우나를 이용했다. 3명 정도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작은 규모였고 겉보기에는 허름했지만 모두들 개운해하며 엄지를 들어 올리며 좋아했다.

다음 날 게스트하우스 앞으로 희한한 차량 한 대가 찾아왔다. ‘카인디 레이크’로 가는 비포장도로를 가기 위해 필요한 4륜 구동 차량이었다. 운전석 아래로 모든 구동장치가 다 드러나 있을 정도로 낡았는데 속으로는 시동이나 안 꺼지면 다행이다 싶었다.

오지탐험을 많이 해서 잡학다식으로는 따라올 자가 거의 없는 남영호 씨의 이야기로는 구소련 때 제작한 푸르공의 델리까 모델이란다. 그리고 보기와는 달리 딱 움직이는데 필요한 부분들로만 이루어져 수리도 쉽고 고장도 거의 없단다. 일행들이 내가 제일 연장자라고 앞좌석을 양보했는데 뒷좌석이나 앞쪽의 경로석이나, 일단 상상불가의 비포장도로 들어서니 공중으로 튀어 올라 남산 구경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거침없이 튀어 오르며 날아가던 ‘델리까’인지 뭔지 하는 낡은 밴이 계곡물을 헤치며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하자 롤러코스터를 능가하는 스릴에 전부 환호까지 해댔다.

짙푸른 호수 한가운데에 전나무 고사목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신기하기만 하다. 세르게이 대표의 말에 의하면 1910년대에 이곳에 지진이 발생해서 흐르던 계곡의 입구가 막혀서 형성된 호수. 빙하물에 녹아있는 석회석 성분이 죽은 전나무가 썩지 않게 하고 있다고 한다. 호수의 왼쪽 언덕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니 호수로 만년설에서 녹은 물이 유입이 되는 상류 부분이다.

아쉬움 가득한 아시 고원

아시 고원 가는 길. 촉촉한 등산로에 껍질이 없는 민달팽이가 길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한국도 1970년도까지는 이랬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울창한 숲과 10여 m에 이르는 거대한 폭포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시원한 맞바람이 볼을 때린다. 그 바람 너머로 너무나 시원하게 펼쳐지는 평원, 바로 아시 고원이다. 아시 고원은 그 옛날 실크로드 상인들의 주요 이동 루트 중 하나이다.

고고학 유적지들이 발굴되었던 해발 3,000m의 고원 지대이다. 너무나도 아쉬웠지만 우리들은 일정 때문에 아시 고원의 횡단은 하지 못하고 둘러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했다. 그러나 이 아시 고원 때문이라도 카자흐스탄은 꼭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고원의 끝을 향해 간다면 정말 아름다운 트레킹이 될 것 같다. 결국 99% 만족하고 다음번에 마주하게 될 만년설과 푸른 초원에서의 트레킹이라는 1%의 숙제를 남긴 채, 이번 여정이 저물어갔다.

 

필자 박준기

영화감독, 사진작가. 중학교 때 청소년적십자반 회장으로 뽑혀 옆집서 빌린 배낭 메고 처음 등산대회에 나가면서부터 등산에 빠져 열심히 산에 다녔다. 산악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2013년)를 제작, 연출했다. 저서로는 영화와 동명인 ‘우리는 그곳에 있었다’(2013, 꿈결), 알래스카 매킨리 등반과 1996년 세계최대의 개썰매 대회, 아이디타로드 취재 등을 엮은 ‘네 영혼이 아프거든 알래스카로 가라’(2011, 랜덤하우스)등이 있다. 대한항공 ‘MORNING CALM’과 아시아나 항공의 ‘ASIANA’ 객원 사진작가였고 서울오픈아트페어 초청 등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현재 산악스키어들의 다큐멘터리 영화와 산을 배경으로 하는 멜로 영화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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