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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문의 벽 _ 저승봉

 

어김없이 돌아온 봄에는

저승봉에 간다

글 · 최석문(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사진 · 주민욱 기자, 최석문

 

“카톡”

시작은 2014년 3월 3일 이른 아침이었다. 제천에 사는 장형원씨가 한 장의 사진을 보내 왔다. 사진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암벽이었고, 자세히 살펴보니 크랙 등반선이 잘 발달해 있었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형, 여기 어디에요?”, “응! 저승봉(596m)인데 개척해야겠어! 너도 내려와…!”

 

저승봉의 등반가치

장형원씨는 제천에서 건설업과 부동산을 하며 살고 있다. 사업차 학현리에 들렀다가 우연히 저승봉을 보게 됐고, 업무를 미룬 채 마법에 걸린 듯 벽으로 다가갔다고 한다. 그가 저승봉에 도착해 벽을 대하는 순간, 그는 직감적으로 이곳을 개척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혼자 하기에는 규모가 상당한 바위이기도 하고, 여럿이 함께한다면 더욱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는 필자를 비롯해 9명의 개척팀을 꾸리게 됐다. 이후 저승봉 개척팀은 3월부터 거의 매주 고된 루트 작업을 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4일, 우리는 개척보고회를 가졌다.

저승봉은 보고회로 끝나지 않았다. 개척팀은 매년 봄, 청소와 루트 점검을 하고 있으며 2년 전부터는 저승봉에서 ‘트래드 클라이밍 페스티벌’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6월 8~9일 양일간 개최될 예정이다.

저승봉은 올해로 개척한 지 5년이 되었지만 사실 인기 없는 암장이다. 개척 당시 대중성을 전혀 배제한 건 아니었지만, 이곳에 오는 등반가들은 저승봉이 ‘부담된다’고 말한다. 슬랩과 페이스를 제외하고 크랙에는 거의 볼트가 없기 때문이다. 볼트가 많은 우리나라 등반문화에 익숙한 등반가라면 분명 부담스러울 것이다. 한번 오면 다시 오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저승봉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도 있다. 저승봉 등반 후, 지금까지의 자신의 등반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의 의도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나름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렇듯 저승봉의 루트들은 현재의 흐름에 역행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등반 흐름이 지속되지 않을 거라 본다. 볼트를 적게 박는 것은 모험을 더욱 추구하는 것이다. 또한, 자연훼손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등반가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저승봉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 그것이 ‘부족함’이던, ‘재미’던 한 번쯤은 경험해봤으면 한다. 저승봉은 언젠가 보석이 될 것이다.

3월 말에 루트 점검과 청소를 마친 저승봉은 손님 맞을 준비를 마쳤다. 4월 13일을 취재 일정을 잡은 것은 본지 5월호에 저승봉이 소개되면 야생의 바위를 좀 더 많은 사람이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등반은 성공과 실패로 나누는 것이 아니다

저승봉 어프로치는 1.1km의 가파른 오르막이다. 쉬엄쉬엄 40분 오르면 벽 앞에 도착하게 된다. 암장에 다다르면 누군가 등반하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항상 있었지만, 몇 년 전부터 그 마음도 사라졌다. 매년 어김없이 첫 손님은 우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상을 깨고 청년 등반가 2명이 등반에 열중하고 있었다. 저승봉은 북향이라 아직 봄기운이 미처 벽까지는 오지 않아 기온이 찬데도 이곳에 온 걸 보니 열정을 가진 친구들이 분명했다. 그들 손에는 제2회 트래드 클라이밍 페스티벌 때 배포한 가이드북이 들려 있었다.

청년들은 어제부터 등반했다고 한다. 꽤 어려운 루트를 시도했다가 생각했던 것보다 쉽지 않아서 도중에 내려왔다고 한다. 웬만한 등반가들도 저승봉 초입에 있는 루트들은 대부분 지나치기 마련이다. 필자도 등반해봐서 알지만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닌데 처음부터 이런 코스를 시도한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끝까지 오르지 못했다고 침울해 하는 표정을 전혀 찾을 수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등반은 성공과 실패로 나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달 숨은벽 취재에 함께했던 청년 등반가 조근진, 이수항, 김우경, 조안나씨가 이번 취재에도 함께했다. 저승봉 등반이 처음인 조안나씨를 제외하고 모두 경험이 있었다. 특히 조근진씨는 개척팀의 막내로 4년 전 저승봉에서 처음 만났을 때를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명월테라스 하단에서 하강을 준비하고 있던 조근진씨는 필자가 있는 명월테라스 상단으로 되돌아와서 등반에 대한 여러 질문을 했다. 저승봉 등반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등반이기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듯했다. 그것이 인연이 돼, ‘묻지마’라는 재미난 루트도 개척했다. 그는 등반에 대한 진지함과 열정, 자연을 존중하는 등반가로 성장하고 있다.

 

명월테라스 명품 바윗길

며칠 전 내린 비로 인해 바위가 군데군데 젖어 비교적 빨리 마르는 명월 테라스로 이동했다. 이곳에는 총 7개의 루트가 있다. 슬랩, 페이스, 크랙이 섞여 있는 루트들은 저마다 특색이 분명하다. 명월테라스는 넓고 안전해 여러 명이 함께 등반과 휴식을 할 수 있다. 등반 난이도는 초급자부터 상급자까지 다양하다. 명월테라스의 대표적 루트를 소개한다.

‘멈출 수 없어(1p-5.9, 2p-5.11a)’는 첫피치가 넓은 크랙이다. 스테밍과 레이백을 적절히 섞어 등반하면 큰 어려움이 없고, 캐머롯 6호 이상의 넓은 크랙에는 볼트가 설치되어 있다. 저승봉에서 가장 쉬운 코스로, 인기가 좋다. 첫피치 종료지점인 청풍 테라스는 2평 남짓하며 조망이 뛰어나다. 취재진은 모두 청풍테라스에 걸터앉아 조망을 즐겼다.

‘고맙습니다(5.10)’는 저승봉에서 가장 인기있는 크랙 등반의 교과서적인 루트이다. 고정 확보물로 볼트 2개가 있으며, 이후 핑거 크랙으로 시작해 핸드 크랙으로 마무리된다. 크랙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등반하는 스플리터(Splitter) 크랙 자세를 취하면 쉽게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이때 손과 발을 견고히 재밍해야 한다. 크랙 등반에 익숙하지 않은 등반가들이 하는 가장 큰 실수는 손은 잡으려 하고 발은 디디려 하기 때문에 레이백 자세를 많이 취하게 되는 것이다. 손가락이 가는 사람은 손가락을 겹쳐 쓰는 링락재밍이 필요하기도 하고 얇은 핸드 크랙 기술도 사용되는 아주 훌륭한 루트다.

재밍은 믿음과 기술이 없으면 안 된다. 꾸준히 연습하는 방법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재밍을 하면 다양한 근육을 쓸 수 있어 힘이 절약되고 자세 변화를 쉽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크랙 등반은 스포츠클라이밍처럼 정해진 홀드가 없어 본인의 신체에 맞게 해석해 오를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등반이다. 필자도 ‘고맙습니다’를 즐겨 등반한다. 매번 다른 동작을 시도해보며 많은 경험을 얻고 있다. 어떤 루트를 완등했다는 것은 퍼즐 하나를 푼 것이지 전부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는 오후, 김우경씨가 ‘고맙습니다’를 레드포인트로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2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당시 김우경씨는 재밍에 대한 감각이 없어 서툴러 보였는데, 이제는 보는 이의 마음이 편할 정도로 성장했다. 분명 그동안의 노력에 관한 결과일 것이다.

‘See You Again’(5.10b)은 하단부 핑거크랙 부분에 어려움이 있는데, 이곳 또한 크랙을 정면으로 향해 등반하는 것이 수월하다. 그래야 체중이 발에 실리기 때문이다. 발이 들어가지 않는 얇은 크랙에서는 새끼발가락을 아래로 향하게 하고 뒤꿈치를 내려 새끼발가락에서 중지 발가락까지의 암벽화 바닥을 바위면을 밀듯이 딛고 암벽화 랜드 부분으로 다른 한 면을 대고 무릎을 넘겨 압력을 유지 시켜줌으로 지지력을 얻는다.

저승봉에는 크랙등반의 교과서가 될 만한 루트들이 있다. 위에 소개한 3개 루트는 기초를 다지기 위한 좋은 루트이다. 이외에도 ‘늙은 제자 못난이 사부(5.12-)’, ‘재밍머신(5.11-)’ 등 도전할 수 있는 루트들이 많이 있으니 자신의 능력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정당한 성장

어디서든 마찬가지이지만 자신의 등반 능력을 넘어서는 루트는 등반하지 않는 것이 좋다. 확보물이 설치되지 않은 곳 이외에는 등반자가 직접 확보물을 설치해야 하는 전통등반 대상지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해외 등반을 계획하고 있다면 꼭 저승봉에서 등반해보길 권한다. 이곳에서 자유롭게 등반이 된다면 분명 외국에서도 부담 없이 등반이 될 것이다.

크랙등반은 다시 말하지만, 처음에는 당연히 잘 안 된다. 그것이 정당하다. 등반을 난이도의 숫자로 이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어떠한 목표에 이르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내암장에서 처음 홀드를 잡았을 때 손이 아파 테이프를 감았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크랙 등반도 마찬가지다. 손등과 손가락 피부가 두꺼워질 때쯤에야 우리는 모험으로의 출발 준비가 된 것이다. 캐머롯과 테이프를 챙기고, 5월의 푸름을 저승봉에서 느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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