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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숲길

 

봄날의 포근한 풍광이 펼쳐진 곳

서귀포시 안덕면 원물오름

글 사진 · 이승태 편집위원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제주 오름 중 대부분이 풀밭오름이었다고 한다. 소와 말의 방목지로 풀조차 제대로자랄 틈이 없을 정도였으니 민둥산인 오름이 허다했다고. ‘민오름’이란 이름을 가진 오름이 제주 전역에 흩어져 있고,옛 사진에 담긴 제주 오름이 대체로 풀로 덮인 것을 통해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산림녹화사업이 진행되며 오름마다 삼나무와 편백나무 조림지가 생겨났고, 자연적으로 뿌리내린 소나무도가세하며 지금은 제주 오름에서 풀밭을 찾아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오름을 찾는 이유가 탁 트인 제주풍광을 감상하기 위해서인데, 울창한 숲으로 인해 정상에서조차 조망이 막힌 곳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몇 안 되는 초지대 오름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데, 서귀포시 안덕면의 원물오름도 그 중 하나다.

 

샘을 가진 귀한 오름

제주도는 연평균 강우량이 2,000mm 내외로 전국 평균의 두 배쯤이다. 그러나 제주 중산간 지역은 늘 물이 귀하다. 제주 지질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구멍 많은 현무암이 그 많은 물을 순식간에 빨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낫 씻을 때 물 하영 쓰민 저승 강 그 물 다 먹어사 한다(얼굴 씻을 때 물 많이 쓰면 저승 가서 그 물 다 먹어야 한다)’며 늘 물 아낄 것을 강조했다. 오죽했으면 ‘물항아리 비는 집 빨리 망한다’는 속담까지 있었을까.

이렇듯 물이 귀하다 보니 예부터 샘이나 물웅덩이가 있는 곳은 아예 지명에 정보를 담아 ‘여기 물 있소’라며 만천하에 알렸다. 오름 중에 ‘물영아리’, ‘물찻오름’, ‘동수악’, ‘물장오리’, ‘정물오름’ 등이 그 좋은 예며, ‘원물오름(원수악, 459m)’도 그렇다.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북쪽에 솟은 원물오름은 제주도 하이웨이로 통하는 평화로 옆에 조용히 서 있다. 오름 이름은 오름 남쪽 기슭의 원물이라는 샘에서 유래했다. 이 샘이 ‘원물’이라는 이름을 얻은 데는 몇 가지 재미있는 설이 전해온다.

조선시대에 대정원님이 제주목을 다녀오다가 이곳에서 물을 마시고 갈증을 풀었다고 해서 ‘원물’이라 하고 주변의 이 오름도 그에 기인해 원물오름이라 했다는 것. 또 조선말기 때 대정에서 제주로 가는 중간인 이곳에 쉬어갈 수 있는 국영여관이던 이왕원(梨往院)이 있었고, 원에서 이용하는 물이 오름 남쪽에 있어서 이름 붙었다는 것. 고려시대에 몽골족이 세운 원(元)나라가 이곳에 목장을 설치하고 산기슭의 물을 이용했기 때문에 원물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한자로는 원수악(院水岳)이다.

이처럼 오름의 이름까지 낳게 한 귀한 샘이던 원물은 예전엔 일대의 생명수였으나 상수도가 놓이며 외면되었고, 지금은 소나 말이 오가며 목을 축인다.

 

사방으로 탁 트이는 조망이 압권

원물오름 트레킹을 위한 들머리가 이 ‘원물’이다. 원물 바로 옆에는 한국전쟁과 월남전 전몰용사들이 안장된 아담한 규모의 ‘안덕충혼묘지’가 있다. 연이어진 세 개의 웅덩이로 이뤄진 원물은 차례로 작아지다가 마지막 물웅덩이가 끝나면서 오르막이 시작된다.

흙길인 탐방로 주변으로 청미래덩굴과 찔레, 보리수가 많고, 완만한 오름 사면을 따라서는 소나무와 삼나무도 듬성듬성 보인다. 길은 오름 자락을 따라 얼마간 오른쪽으로 돌다가 이웃한 감낭오름과의 사이에 자리한 공동묘지가 보일 때쯤 왼쪽으로 꺾이며 정상으로 향한다. 이 일대는 온통 초지대다. 오름의 한 면 전체가 잔디와 키 작은 억새로 가득해 풍광이 더없이 편안하고 보기 좋다. 잔디밭 여기저기엔 노란 민들레와 진보랏빛 제비꽃, 할미꽃도 보인다.  

들머리에서 정상부 능선까지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원물오름의 능선은 서쪽으로 트인 말굽형이다. 능선 중 북쪽은 숲이 무성해 조망이 막히고 길도 사납다. 최고의 조망이 펼쳐지는 남쪽 능선은 얕은 분화구를 가로질러 지척이다. 분화구도 풀밭이어서 말이나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을 종종 만날 수 있다. 남쪽 능선은 200m 남짓 길이로, 온통 초지대여서 제주 오름이 보여주는 눈맛 시원한 조망의 쾌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남쪽으로 군산과 월라봉, 산방산과 형제섬, 송악산, 바굼지오름(단산)과 그 너머로 가파도도 보인다. 동남쪽으로는 나란히 서 있는 대병악과 소병악, 무악이 정겹고, 대비악과 영아리오름, 돌오름을 지나 한라산 백록담까지 높이를 더해가는 동쪽 풍광은 익숙한 제주의 하늘금을 펼쳐놓았다. 북서쪽은 그야말로 압권. 비슷한 높이의 당오름과 정물오름, 금오름이 겹쳐지고 그 뒤로 멀리 비양도도 얼굴을 내밀었다. 특히 당오름 남사면에 빼곡히 들어선 산담(무덤)들이 눈길을 끈다. 서쪽으로도 오설록 뒤의 남송악(336m)과 서쪽 끝의 당산봉과 수월봉(78m)까지 훤하다. 아무데나 주저앉아 온 종일이라도 취하고 싶은 마법 같은 풍광이다.

 

감낭오름과 이어서 트레킹하기도

원물오름은 이웃한 감낭오름과 엮어서 트레킹을 하기도 한다. 이 경우 평화로상의 광평교 서쪽에서 남쪽으로 난 콘크리트 포장도를 따라 600m쯤 들어선 곳에서 오른쪽으로 감낭오름을 감싸고도는 흙길을 따른다. 길은 감낭오름을 오르지 않고, 그 둘레를 돌아 원물오름으로 향한다. 감낭오름쪽에서 보는 원물오름 서쪽 초지대가 멋지다.

원물오름 분화구 남쪽 능선엔 ‘고고리암’이라 부르는 바위가 있다. ‘고고리’는 ‘꼭지’ 또는 ‘과실의 줄기에 달린 곳’, ‘이삭’의 뜻을 가진 제주 방언이다. 너울을 닮은 모습으로, 너덧 명이 북풍을 피해 쉴 만한 크기다.

내려서는 길은 충혼묘지쪽에서 올랐던 길을 되짚어 가거나 고고리암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우마가 다니는 길을 따라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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