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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페이스와 함께하는 아웃도어 파라다이스 _ 남한산성

 

역사가 흘러간 산길

· 양승주 기자  사진 · 주민욱 기자  협찬 · 레드페이스


 

남한산(南漢山·522m)은 서울의 동남쪽에 광주, 하남, 성남에 분지 형태를 이루며 걸쳐 있다. 역사에는 삼국시대부터 이 산에 산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지금의 성 형태는 조선시대 인조와 숙종 때 갖추어졌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직전 남한산성은 일본군에 의해 훼손됐다가, 이승만 대통령 때 공원으로 만들어졌다. 1971년 남한산성은 경기도립공원으로 지정됐고 201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1월 17일 오전 10시, 남한산성로터리 주차장에 도착해 정산소를 지난다. 남한산성 내부로 도로가 연결되어 있고 그 중심에 로터리가 있다. 주차비를 받는 직원이 소형차 주차요금 500원을 받으며 생긋 웃어 보인다. 하늘은 쪽빛이다. 남한산성으로 올라오는 도로 옆에 눈이 희끗희끗 쌓여 있다.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경기도 지역에 눈이 내렸다. 약한 눈발이 밤새 날리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그친 것 같다. 얇게 쌓인 눈이 햇볕을 쐬고 살얼음 녹듯 녹아가고 있다.

푸르나, 김경덕씨를 만났다. 지난 달 취재에 이어 이들과 함께 남한산성을 걸었다. 푸르나씨는 네팔 트레킹 출발 준비로, 김경덕씨는 직접 운영하는 고깃집 운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구릉성 분지에 쌓아올린 성벽

푸르나(트레일 러닝 사진작가)씨는 남한산에서 열린 트레일러닝 교육과 대회 때 사진촬영을 위해서 이곳에 왔었다. 남한산 트레일러닝 코스는 오르내림이 생각보다 심해서 만만치 않다는 것이 푸르나씨의 경험담이었다. 다른 트레일러닝 대회를 잘 뛰었던 선수도 남한산에서는 고전했다고 한다. 천혜의 요새인 남한산의 산세를 짐작케 하는 이야기다.

김경덕씨는 식당을 찾아서 남한산을 온 적이 있다고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두부 요리를 하는 식당이 즐비하게 있다. 주차장 옆 식당 사이로 편의점도 있고, 꽤 넓은 운동장을 가진 학교도 있다. 기와지붕이 겹겹이 겹쳐 보이는 남한산성의 행궁(임금이 도성 밖으로 행차했을 때 머물던 곳)도 보였다. 산 위에 지어올린 성 안에 있다는 느낌보다는 평범한 마을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로터리에서 행궁 오른쪽 산길로 올라가면 청량산(482m)으로 갈 수 있다. 서쪽 청량산, 동쪽 남한산이 산성의 가로 축을 이룬다. 남한산성을 쌓아올린 곳의 지형은 화강편마암이 융기한 준평원이다. 봉우리 아래 해발 400m쯤 고도에 넓고 평탄한 지형이 펼쳐져 있다. 남한산은 해가 오래 떠 있다는 뜻으로 일장산(日長山)이나 주장산(晝長山)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왕의 굴욕 신하의 치욕

로터리에서는 청량산이 가깝다. 30분이면 올라갈 수 있다. 청량산 정상에는 수어장대(守禦將臺)가 있다. 장대(將臺)란 지휘관이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은 대를 말한다. 청량산에서 북쪽으로 성곽을 따라 걸어 서문을 지나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북문 방향으로 성곽을 따라 걸었다. 중간에 눈높이보다 낮은 높이로 뚫린 성벽의 통로가 있었다. 그곳으로 나가 성곽 밖을 따라 걷다가 북문을 통해서 다시 성곽 안으로 들어왔다. 서문에서 북문으로 걸어가는 길에서 경기도 하남, 서울시 강동구, 송파구 쪽 도심 경치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병자호란(1636~1637년) 때 조선의 16대 왕 인조는 남한산성에 피신했다. 인조는 47일 만에 청나라에 항복한다. 인조는 남한산성의 서문을 열고 나가 신하 500여 명을 이끌고 삼전도(三田渡; 서울과 남한산성을 이어주던 나루)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삼궤고두고’를 올리며 항복했다. 청나라 황제는 자신의 공덕을 기리려 조선 땅에 삼전도비를 세우게 했다. 비문을 쓰고자 하는 신하들이 없었는데 인조의 부탁으로 이경석이 글을 짓고 오준이 글씨를 썼다. 치욕을 참지 못한 오준은 비문을 쓰고 나서 자신의 오른손을 못 쓰게 돌로 짓이겼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았다.

 

전쟁과 평화

당시 왕과 왕을 따랐던 이들은 무엇을 위해 도망치고 싸우고 항복했던 것일까. 남한산성의 성벽을 보며 만약 나였다면 압도적인 힘과 무력 앞에서 어떻게 결정했을지 상상해 본다. 저항할 것인가 순치(馴致)될 것인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답을 내리기 어렵다. 쌓아놓은 성벽 밖으로 나가 항복하는 일은 과거의 왕에게 뿐만 아니라 현재 개인의 삶에서도 벌어진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전쟁들 말이다. 살아오면서 쌓아올린 명성, 업적, 재산을 뒤로 하고 굴욕당하는 일을 겪을 때가 있는 것이다.

서쪽 성벽 안쪽을 따라서 오래된 나무들의 가지가 큰 구렁이들이 머리를 치켜들듯 구불거리며 하늘로 힘차게 솟아 있다. 이곳의 나무는 과거 주민들이 힘을 모아 벌채되는 일을 면했다고 한다. 성벽도 나무 가지처럼 구불거린다. 멀리로 흘러가고 있는 성곽을 따라 걷는다. 성벽에 눈이 조금 쌓여 있다. 그 옆으로 노인들이 걷는다.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남한산을 오른 학생들도 있다. 남한산성은 본래의 기능은 잃고 도심 속 휴식처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여행은 때가 있다

눈 쌓인 주말농장 텃밭을 지나서 산길을 조금 걷다가 발길이 커피숍에 닿았다. 커피숍 안은 훈훈했다. 참나무를 태워 난로를 피우고 있다. 연통이 건물 천장으로 연결됐는데 천장은 교회의 천장처럼 중앙이 탑처럼 높다. 그곳에 창문이 나 있어 자연 채광이 좋다. 은은한 볕이 실내를 감싸고돈다. 난로 위에는 주전자가 놓여 있었지만 무엇이 끓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아메리카노 한 잔하고 카페라떼 세 잔 주세요.”

“등산하시나 봐요?” 주인이 친근하게 응대하며 묻는다.

커피를 기다리고 마시며 주인과 얘기를 나눴다. 장사는 잘 되는지 난방 연료로 쓰는 참나무는 1톤에 얼마를 주고 있다든지 잡지를 구독 중인데 등산 잡지도 볼 계획이라든지 하는 이야기가 오갔다. 김경덕씨는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커피숍 주인과 얘기가 더 잘 통하는 것 같다.

로터리로 돌아오면서 김경덕씨는 자신이 60살이 되었을 때 세계여행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푸르나씨는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내일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삶인데 지금부터 당장 여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한반도 대서사의 현장

10년의 공사 끝에 2012년 복원이 완료된 행궁을 둘러봤다. 성인 1명 입장료가 2,000원, 경기도민은 무료다. 남한산성 행궁은 조선왕실에서 나라 곳곳에 세운 23곳의 행궁 중에 하나다. 남한산성은 동서로 긴 형태를 이루고 물길은 동쪽으로 흘러간다. 행궁은 이 남한산성의 서쪽 높은 곳에 동쪽을 바라보고 지어졌다. 남한산성은 1624년 행궁은 1625년 건립됐는데, 1624년 이괄의 난을 계기로 인조가 유사시 도성을 떠나 머물 산성과 행궁을 지을 것을 지시하여 남한산성과 그 안의 행궁이 건립됐다.

만약 한국에 외국인 친구가 놀러온다면 남한산에 함께 올라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남한산은 한국적 경관을 보여준다. 이 산을 30~40분만 오르면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오늘도 24시간 멈추지 않는 회색빛 대도시 서울의 도심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다. 또 남한산엔 한반도의 대서사시가 흐른다. 침략과 저항과 항복, 씻을 수 없는 나라의 굴욕과 신하가 흘린 핏빛 눈물, 누군가 그 거친 손으로 벽돌을 쌓아올렸지만 이제는 껍데기만 남아 공원이 된 신기루 같은 성곽, 일제의 파괴와 근대적 복원의 과정이 있다. 성이 쌓이고 무너지고 복원되는 역사를 산에서 지켜보며 살아온 한국의 풀과 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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