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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문의 벽(壁) _ 선인봉 양지길

 

볕드는 바위선에서 자유등반을 외치다

· 최석문(노스페이스클라이밍팀)  사진 · 주민욱 객원기자

 

필자는 등반하러 가지 못하거나 갑자기 등반하고 싶어지면 가끔 암벽 가이드북을 본다. 바위 형태와 난이도를 보면 재미가 있다. 그래서 해외 등반을 가거나 돌아올 때 꼭 가이드북 몇 권을 사곤 하는데 언젠가 갈 것이라는 믿음과 그곳에서 펼쳐질 등반을 상상하기 위해서다.

8월 말 인수봉에서 처음 등반을 시작한 개미산악회 선배들과 알프스 3대 북벽 등정 20주년 기념 등반을 했다. 20여 년 전, 암벽등반을 시작하고 얼마 후 산악회 선배로부터 <바윗길>이라는 암벽루트 안내책을 받았다. 선배는 자신보다 후배인 필자가 가지고 보는 게 더 유용할 것 같다며 줬다. 그 후 몇 년간 이 책을 보며 일요일에 있을 루트를 선정하고 상상하는 즐거움을 가졌다. 또한 등반을 마친 후에는 사용했던 확보물이라던지 특이한 사항을 책에 표시해 두곤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윗길 책에 있는 인수봉의 루트들은 대부분 등반했다고 표기됐지만 선인봉의 루트에는 아직 등반해 보지 않은 곳이 있었다. 그곳들 중에는 서면벽 가장 좌측에 있는 양지길이 있었다.

 

양지를 찾아 개척한 길

개념도를 보니 전체적으로 크랙 라인으로 따라 오르는 등반선은 흠 잡을 곳이 없었다. 선인봉에 루트가 채 열 개도 되지 않던 1964년 10월에서 1965년 4월 사이, 요델 산악회에서 개척한 루트이다. 개척을 주도했던 백인섭 선배님의 <나의 작은 거산 개척등반기>에는 “1960년대 초반, 당시 암벽등반에 매혹된 내게 매우 아쉬웠던 점은 겨울철에는 암벽등반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쓰여 있다. 등반에 빠진 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겨울 암벽등반 대상지를 고민하는 건 같은가 보다. 바람이 불지 않고 해가 잘 드는 양지를 찾아 길을 만들고 양지길이라 명명했다.

필자가 양지길을 찾은 이유는 가보지 않아서도 있지만, 선인봉 전면 벽에 비해 사람들이 번잡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과 무엇보다 4피치의 인공등반 난이도 A1과 하켄 불량이라는 개념도를 보고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필자는 10여 년 전부터 크랙등반에 심취해 있다. 국내 루트뿐만 아니라 해외 암벽등반에서도 주로 크랙만을 등반해온지라 ‘A1의 인공등반 루트가 자유등반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루트 이름에 대하여

선인봉의 남측이나 서면은 상대적으로 전면에 비해 찾는 이가 많지 않다. 이유는 루트가 많지 않을 뿐더러 먼 어프로치 때문일 것이다. 전날 선인봉 산악훈련장에서 야영한 터라 가볍게 남측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남측의 경관은 등산객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주말이면 혼잡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몇 년 전부터 남측오버행 아래 사각바위가 타이타닉바위로 알려지면서다. 누군가로부터 잘못 불리기 시작한 이름이라 오는 사람마다 원래의 이름이 사각바위라고 일러주곤 하지만 그때뿐인 것 같다.

이와 비슷한 일들은 이곳뿐만은 아니다. 이제는 인수봉의 귀바위 C, D 코스라고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오직 취나드 A, B 라고만 한다. 선우중옥, 이강오 선배님들과 이본 취나드(Yvon Chouinard)가 함께 개척한 루트인데 왜 우리는 취나드로만 부르고 있는가? 취나드가 유명 등반가라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으리라는 짐작은 가지만 말이다.

최초의 5.15a 루트는 프랑스 세우스(Ceuse)에 ‘바이오그라픽(Biographie)’ 연장 루트이다. 이 루트를 초등한 미국인은 ‘리얼리제이션(Realization)’으로 루트명을 붙였지만 프랑스인들은 바이오그라픽 연장 루트라고 부르고 있다. 물론 미국과 프랑스의 등반문화가 다른 것도 있겠지만 말이다.

 

총 4피치, 난이도 5.10-

양지길 1피치는 남측길 좌측의 침니 형태의 크랙을 타고 오르면 남측길 1피치와 만나게 된다. 크랙이 잘 발달되어 있고 침니 등반 방식과 병행하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끝부분의 플레이크가 절단된 것을 모르던 안종능(블랙다이아몬드코리아)씨가 당기는 순간 바위가 들려 나와 떨어지려던 바위를 원위치시키고서야 한숨을 돌렸다. 자칫 떨어졌더라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순간을 노련하게 대처했다. 봄철 낙석 제거 기간에 제거를 하거나 등반시 주의해야 한다. 1피치에서 우측 슬립으로 가면 남측길이며 10시 방향 크랙을 따라 오르면 S침니(남측 직상침니) 시작점과 2피치 확보지점 볼트가 나온다.

3피치는 오버행 바위 아래를 수평 트래버스를 하는데 후등자를 위해 확보물 간격을 멀지 않게 설치하는 것이 좋다. 이 구간은 저승봉 개척팀의 막내 조근진씨가 선등을 했다. 요즘 실내암장에서 재밍보드를 이용해 훈련을 많이 한다는 그는 한층 안정된 자세와 평정심을 유지하며 등반을 마쳤다.

3피치 장비 설치 용이, 4피치 하켄 녹슬어

초입의 하켄 박힌 부분과 중간 배불뚝이 지점의 핸드재밍이 조금 까다롭기는 하나 장비가 잘 설치되니 과감하게 동작을 취하면 어렵지 않게 지날 수 있을 것이다. 개념도에는 5.9의 난이도지만 5.10-정도로 보면 된다. 널찍한 자리인 3피치 확보지점에는 볼트가 하나 있지만 나무나 암각을 이용해도 안전한 확보지점을 만들 수 있다. 마당바위 테라스는 선인봉을 등반하다 만나게 되는 가장 넓은 테라스일 것이다. 마당바위라는 명칭은 초등자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개척 당시 양지길 마지막 피치는 마당바위(3피치)에서 좌측으로 등반선이 연결되어 정상으로 이어지는 루트였다. 지금 개념도에는 직상하는 루트만 나와 있고 왼쪽의 초기 루트는 표기가 없다. 그리고 S침니와 남측길 사이에 Y코스도 알게 되었다. 하켄이 부식되어 루트의 안전성에 대해 알 수 없지만 크랙을 따르는 자연스런 등반선이 눈을 머물게 한다.

4피치는 빛바랜 슬링과 녹슨 하켄이 오버행 크랙을 따라 연결되어 있었다. 배낭에 넣어 두었던 인공등반용 작은 캠을 꺼냈다. 하켄은 단단해 보여도 부식되기 시작하면 지지력이 떨어지니 등반할 때 주의해야 한다. 등반가는 기본적으로 자신이 설치하지 않은 기존 확보물은 의심을 갖고 상태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완벽한 자유등반을 기약하며

캠 설치가 용이한 초입부를 지나면 홀드가 작아지는 것도 있었지만, 확보물 설치가 용이하지 않아 자유등반하지 않고 인공등반으로 이어나갔다. 녹슨 너트 와이어가 끊어져 짧게 추락했지만 밑에 설치한 캐머롯 0.1호가 잘 잡아 주었다. 오르는 동안 자유등반이 가능한지 홀드를 살피며 완료했다.

후등인 이명희씨(노스페이스클라이밍팀)는 자유등반으로 대부분 해결했지만 중간 부분에서는 동작을 해결하지 못했다. 양지길은 4피치로 끝이 나고 측면길 마지막 피치를 따라 선인봉 정상으로 오를 수 있다. 정상에 도착한 취재진은 전면 하강대신 양지길 3피치인 마당바위로 하강을 했다.

비록 이번에 자유등반으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빠른 시일에 다시 이곳을 찾아 섞인 하켄과 끊어진 너트를 걷어내고 자유등반을 다시 시도해볼 것이다. 등반이란 가능할지 불가능할지 도전해 보기 전에는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척 당시의 마지막 피치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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