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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망명소

글 사진 · 이승태 편집위원

 

해발 1,950m로 남한 땅 최고봉인 한라산은 그 품에 기생화산인 수많은 오름을 거느리고 있다. 한라산을 오르는 들머리 다섯 군데 중 한 곳인 어리목에도 당찬 산세를 보이는 오름이 있으니 ‘어승생악’이다. 해발 1,169m에 오름 자체의 높이가 350m인 어승생오름은 제주도에서 단일 분화구를 가진 오름 중에서는 가장 높다. 들머리에서 정상까지는 1.3km로 왕복 1시간쯤 걸린다.

 

임금이 타는 말이 태어난 곳

제주도 전역에 걸쳐 368개나 되는 오름 대부분은 개인 소유의 땅이다. 그래서 어떤 오름은 목장관리나 다른 몇몇 이유로 출입을 통제한다. 또 숲이 무성해 도무지 들어서지 못하는 곳도 있다. 너무 낮고 밋밋해서 외면당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골프장이 차지했고, 건물이 들어서거나 개발로 아예 사라진 곳도 많다. 그 외 탐방이 가능한 대부분의 오름은 한라산의 동쪽과 서쪽의 광활한 중산간 지대에 퍼져 있다.

한라산국립공원 안에도 물장오리, 살손장오리, 불칸디오름, 성널오름, 어스렁오름, 장구목, 사재비동산, 볼레오름, 도레오름, 삼형제오름, 노로오름 등 수많은 오름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 출입통제 상태고, 영실코스의 윗세족은오름과 성판악코스의 사라오름 그리고 어리목의 어승생악만 탐방로가 열렸다. 이 중 영실코스의 윗세족은오름과 성판악코스의 사라오름은 본격적인 한라산 산행을 한 후에야 만날 수 있지만, 어리목의 어승생악은 단독으로 오를 수 있어서 많은 이들이 찾는다.  

제주는 옛날부터 말이 특산물이어서 조선시대에 제주로 파견된 목사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바로 말 관리였다. 옛날 이 오름 자락에서 명마가 태어났는데, 이를 본 제주 목사가 그 말을 한양에 있는 임금님께 바치면서 어승생(御乘生)이란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즉, 임금이 타는 말이 태어난 곳이란 의미다.

 

어리목계곡 위로 펼쳐지는 한라산이 압권

어리목에 있는 한라산국립공원사무소 옆으로 어승생악 등산로가 시작된다.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인 만큼 탐방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무엇보다 고지대에 있는 오름이어서 중산간의 여느 오름과는 생태계가 판이하다. 오름 표면을 따라서는 제주조릿대가 무성하고, 바위 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기이한 나무도 많이 만난다. 나무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물박달나무와 구상나무, 주목, 당단풍나무, 산딸나무, 후박나무, 모밀잣밤나무 같은 아름다운 우리 나무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하나의 바위 위에 서너 종류의 나무가 함께 뒤섞여 뿌리내린 진풍경도 만난다. 모든 풍광이 신비롭고, 길을 걷는 내내 고산의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오르내리는 동안 탐방로 옆으로 잘 만든 자연생태 해설판이 나타나며 친절한 안내를 해준다.

탐방로 바닥은 나무판과 통나무계단, 돌계단이 섞여 나타나고, 전체적으로 완만해 일행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에 그만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포함한 가족 단위 탐방객을 자주 마주치게 된다. 출발 후 20여 분이면 정상부가 가까워지면서 숲 사이로 조금씩 조망이 트인다. 이즈음에 한라산 정상부도 모습을 드러낸다.

장구목과 만세동산, 사제비동산 일대에서 발원한 무수천이 한라산에 깊은 골짜기를 냈다. 어리목계곡이다. 하도 깊어 바닥은 보이지도 않고 그냥 시커멓다. 그 위로 한라산 꼭대기인 백록담 화구벽이 견고하다. 1월 중순쯤 찾으면 온통 하얀 눈에 덮인 설국을 만날 수 있다.

 

정상부의 일제 진지동굴

이렇듯 어승생악은 제주의 특별한 전망대 역할을 한다. 제주시와 제주 서쪽이 남김없이 다 드러나는 어승생악 정상에 서면 풍광은 황홀하기 그지없다. 서쪽으로 삼형제오름과 노로오름, 노꼬메와 바리매오름 같은 여러 오름이 늘어서며 멋진 하늘금을 펼치고, 그 너머로 멀리 제주바다도 가늠된다. 또 한라산을 이렇게 가슴 벅차게 바라볼 수 있는 곳도 드물다. 한라산 조망을 위한 망원경도 설치되어 있다.

어승생악은 일제강점기의 생채기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정상부엔 콘크리트를 퍼부어 만든 일제의 토치카 진지와 동굴진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가운데 개방된 내부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어승생악을 오른 자의 특권이다.

어승생악은 큰 비가 내리면 물이 고이는, 북서쪽으로 기울어진 커다란 분화구를 가졌다. 예전엔 분화구 능선을 따라 한 바퀴 돌 수 있었으나 지금은 길이 막혀서 정상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해서 아쉬움이 크다. 게다가 숲이 무성해 정상 데크에서 화구호수의 면모를 살피기는 쉽지 않다.

탐방로가 하나 뿐인 어승생악이어서 하산은 올랐던 길을 따라 그대로 내려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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