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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재 | 땅·통종주 _ 땅끝에서 통일전망대까지①

 

꿈을 향한 여정, 그 첫 발짝을 떼다

 

산악회와 함께 백두대간을 마쳤다. 시간이 흐르니 나만의 백두대간을 걷고 싶어졌다. 우리나라의 산줄기를 가장 길게 걸어보기로 했다. 해남의 땅끝에서 고성의 통일전망대까지. 나는 이 프로젝트를 ‘땅·통종주’라 이름지었다. 지난 4월 12일 첫발을 뗐다. 계획으로는 내년 10월 24일에 끝날 예정이나, 중요한 건 계획대로 걷는 게 아니라 살피고 즐기면서 걷는 것이다.

글 사진 · 나종대

 

 

제1구간

땅끝~달마산~닭골재~저담정농장

22.2km, 12시간 54분

 

통일전망대를 향한 대장정 올라

새벽 세 시 반, 알람이 울린다. 종주를 시작하는 날이다. 가족이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 씻고 아내가 간밤에 차려놓은 식탁에 앉는다. 아내는 국까지 끓여 놓고 잠들었다. 이번 종주를 두고 아내는 걱정이 많았고 어렵게 동의했다. 국을 데우자니 아내의 따뜻한 격려와 애쓴 마음이 느껴진다.

광주버스터미널에서 해남 땅끝 행 새벽 버스에 오른다. 영암, 해남을 거쳐 땅끝마을에 가까워지니 설악 공룡능선을 닮은 달마산이 보인다. 시작이 반이다. 그간 땅·통종주 계획을 짜고 준비하던 시간이 새삼스럽다. 땅·통종주는 해남 땅끝에서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산길이다. 지금까지 울트라마라톤(622km)으로 도로를 따라 뛰거나, 국토대장정으로 그만한 길을 걸은 사람은 있다. 그러나 산길을 이어서 종주한 사람은 없다.

나는 기꺼이 그 종주자가 되고 싶었다. 나는 백두대간을 두 번 걸은 경험이 있다. 걸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는 대간의 중간에서 일정을 접고 내려온다. 진부령에는 숱한 종주자들의 아쉬움과 여망이 남아 있다. 그래서 한반도의 산길은 그리움의 길이다. 늘 되풀이된다. 이번 종주의 끝은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지만 북쪽으로 백두대간 길이 열린다면 한반도 끝 함북 온성까지 종주를 완성하는 꿈을 꿔본다. 작년 한 해 달아오른 남북화해 분위기가 나를 달뜨게 했는지 모른다.

나는 거창한 배경 없이도 몸과 마음이 가벼운 산악인이다. 몸이 간지럽다고 할까? 눈 앞에 펼쳐진 길과 그 길을 걷는 행위가 주는 열증 같은 부추김을 떨치지 못한다. 내년이면 40년 근무한 회사를 떠나게 된다. 나는 그게 내 생의 어떤 매듭이라는 걸 알지만, 새로 시작하는 발걸음을 일깨워 보고 싶었다. 물론 퇴직 후 보상심리처럼 그간 꿈꾸던 일들을 많이 해보리라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여생 동안 아주 많은 것들을 해보지는 못할 것이다. 많은 걸 하기보다 꼭 해보고 싶은 걸 하는 게 지혜로울지 모른다. 아름다운 산하를 걸으며 여생을 보내보고 싶다.  

 

한반도 최남단 땅끝에 서다

표지석 앞에 선다. ‘국토순례시발지’라는 표지판도 있다. 나는 막다른 곳에 이른 게 아니라 바로 여기서 시작하려고 한다. 대장정을 기념하는 나만의 의식을 치르는 기분으로 새벽 미명에 휩싸인 표지석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사자봉 전망대에 오르는 계단에 발을 딛는다. 나는 앞으로 2년 동안 1,350km를 치올라 갈 것이다.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가 1,000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2,000리로 잡아 선조들은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불렀다. 땅끝마을은 국토의 끝이 아니라 한반도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땅·통종주 코스는 땅끝기맥을 타고 호남정맥에 접속하여 영취산에서 백두대간을 만난다. 나는 백두대간 전 구간을 타기 위해 지리산 끝자락의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산천재에서 출발하여 지리산, 속리산, 소백산을 거쳐 설악산 진부령까지 백두대간을 타고, 죽변분맥으로 내려 통일전망대에서 여정을 마치려고 한다. 한 달에 네 구간을 탄다 해도 꼬박 2년 넘게 걸릴 것이다. 산천재를 시발점으로 택한 이유는 지리산 산너울이 산천재까지 뻗어 있고, 남명 조식 선생이 매일 천왕봉을 바라보던 서기(瑞氣)가 서린 곳이기 때문이다.

달마산은 해남군에서 천년 숲길로 잘 다듬어 놓았다. 좌우로 바다가 보인다. 도솔암 가는 길에 가랑비가 날린다. 도솔암은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이 도를 닦으며 낙조를 즐겼던 곳이다. 도솔암에서 달마산까지는 연속된 암릉이다. 운무까지 짙어 연분홍 진달래와 암릉이 서로 색을 섞는 듯 신비롭다. 이런 풍경은 조바심이 난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사진기로 연신 비경을 담는다. 오후 4시가 넘자 해가 난다. 떡봉, 하숙골재, 대밭삼거리를 지나 문바위가 나온다. 문바위를 넘을 때는 숨이 턱에 찬다.

달마산(불썬봉, 489m)은 이름 유래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온다. 고려 고종 때 남송의 배 한 척이 표류하여 가히 달마대사가 살고 있을 만한 산이라 하여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산은 높지 않으나 설악산 공룡능선만큼 난이도가 높다. 조망만 좋으면 달마산에서 한라산이 보인다는데 운무는 쉬 걷히지 않는다.

단단한 암릉을 인 산이 아직도 서너 개 남았다. 하룻길이 예정보다 늦어진 건 길이 험해서도 그렇지만 사진 찍는 데 시간을 많이 쓴 탓도 있다. 해는 기울고 마음만 급하다. 관음봉 바위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다. 휴대폰 손전등에 의지해 겨우 바람재에 도착한다. 더 나아가기 어렵다.

GPS 위치를 체크하고 택시를 부른다. 마을까지는 임도를 탄다. 해남 월송리 저담정 마을은 돼지를 집단 사육하는 산골이다. 돼지농장에서 기르는 검은 사냥개가 사납게 짖는다. 산마을에서 두려운 건 개 짖는 소리다. 내 존재가 산골을 온통 깨워놓는 것 같아 민망하다. 택시를 타고 해남 읍내 모텔에 첫날 여장을 푼다. 식당들이 문을 닫을 시간이다. 숙소 앞 식당에 들어 복어탕을 먹는다. 밥 두 공기가 허겁지겁 넘어간다.

 

 

제2구간

저담정농장~닭골재~두륜봉~오소재

16.1km, 12시간 48분

 

저담정농장에서 산행을 잇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여장을 꾸린다. 날씨가 쾌청하다. 간밤에 탈출한 저담정농장으로 돌아간다. 저담정농장에서 이진재로 오른다. 닭골재를 거쳐 도솔봉으로 진행하는데 기차 화물칸 15량 길이만 한 암릉이 기다리고 있다. 힘겹게 암릉을 타고 큰 봉우리(410m봉)에 올라 점심을 먹고, 두 번째로 나타난 기차바위 암릉에서 쉬고 있는데, 거무스레한 물체가 암릉 사이로 희끗희끗 움직이는 게 보인다. 혹시 멧돼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노래 한 곡 부르고 스틱으로 돌을 탁탁 치며 진행한다. 지금까지 백두대간과 정맥을 타 봤지만, 땅끝에서 오소재 구간처럼 힘든 산길은 처음이다. 대신 조망이 좋다. 완도대교 쪽을 바라보니 산, 바다, 들판, 농가와 어울려 남도 풍경이 한 폭 수채화다.

풍경만 발길을 잡는 게 아니다. 암릉 지대를 벗어나 도솔봉을 오르는데 이번에는 나뭇가지와 가시덩굴이 배낭을 잡아당기고 모자를 벗긴다. 오늘 산행에는 벗이 있어 외롭지 않다. EBS 라디오 고전 다시 듣기다. ‘어린왕자’를 검색해 듣다 보니 살포시 미소가 나온다. 말 그대로 진한 휴머니즘의 성인 동화다. 도솔봉 정상에 어렵사리 도착하니, 두륜산 8봉이 한 눈에 든다.

두륜산은 최고봉인 가련봉(703m)을 비롯해서 두륜봉(630m), 고계봉(638m), 노승봉(능허대 685m), 도솔봉(672m), 혈망봉(379m), 향로봉(469m), 연화봉(613m)이 서로 겯고 서서 능선을 이룬다. 이 여덟 봉우리는 둥근 원형으로, 마치 거인이 남해를 향해 오른손을 모아 든 듯한 형상이다.

오늘은 갈 길이 짧아 일찍 하산해서 광주에서 저녁을 하려고 했는데, 이미 틀린 듯하다. 두륜봉과 가련봉이 만만치 않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노승봉에 닿았을 때는 서쪽 하늘에 일몰이 빨갛게 피고 있다. 노승봉에서 두륜산을 향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은 거리가 짧아 광주에서 식사할 것이라고 어젯밤 통화했는데, 하산했다는 전화가 없어 걱정했다고 한다. 오늘 길이 험해 이제 마지막 봉우리라고 했더니, 빨리 하산해야 하니 전화를 끊겠지만, 어두워질 것 같은데 내려올 때 서두르지 말고 조심히 내려오라고 신신당부한다. 따스한 아내의 마음에 코가 찡해진다.

두륜산이 도립공원인데 주중이라서 그런지 종일 등산객 하나 만나지 못했다. 오심재로 하산길을 잡으려고 하나 길을 찾기 힘들다. 몇 년 전 산행 기억을 더듬어 너덜강을 타고 내린다. 하산 속도는 많이 떨어져 또다시 휴대폰 손전등을 켰다.

밤길에 멧돼지를 만날까 조마조마하다. 아침에 탔던 택시기사를 불렀다. 8시경에 오소재로 하산해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분이 오래 기다렸다며 걱정 반 타박 반이다. 내 몰골을 보고는 급기야 핀잔을 준다.

“이게 등산이요, 노동이제.”

맞는 말씀이다.

해남터미널에서 광주로 버스를 타고 오면서 택시기사분의 말씀이 자꾸 되새겨진다. 뭔가 긴장하여 산행을 한 듯하고, 벌써 산행의 즐거움을 놓친 듯하다. 다음부터는 동무들을 만날 수 있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산행 일정을 잡아야겠다.

피곤한 가운데도 이틀 동안 걸은 땅끝기맥 길이 눈에 삼삼하다.

 

 

제3구간

오소재~주작산~계라리고개

17.1km, 10시간 29분

 

해남의 명문가 녹우당

2주 만에 다시 땅·통 3, 4구간 산행에 나선다. 오늘 산행 초입은 오소재다. 827번 지방도를 택시 타고 지나는데, 해남의 명문가 ‘녹우당’ 관광표지판이 보인다. 녹우당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시조작가인 고산 윤선도와 그의 증손이며 선비 화가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를 배출한 명문가의 터전이다. 넓은 벌판을 끼고 덕음산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문외한이 봐도 명승지처럼 보인다.

오늘 걸을 3구간은 주작능선을 거친 다음 작천소령을 지나 해남군 옥천면과 강진군 도암면의 경계인 계라리고개까지 가는 여정이다. 진달래는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빨간 철쭉이 피어 암릉과 하모니를 이루니 눈부시다. 계라리고개를 앞두고 첨봉에서 점심을 먹는다. 라디오 다시듣기의 오늘 프로그램은 톨스토이 대표 단편선이다. 나 같은 홀로 산객에게 라디오는 이점이 많다. 우선 라디오 소리가 야생동물에게 내가 가고 있다는 신호를 준다. 아울러 무료함도 달래준다. 성우의 멋진 목소리와 연초록에 취해 걷다 보니 한결 수월하다.

갑자기 독사 한 마리가 발치에 나타난다. 뱀을 본 후, 바닥에 신경을 쓰고 걷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머리가 소나무 가지에 자주 부딪친다. 송화가 풀썩 날린다. 배낭과 등산복은 이미 누런색으로 범벅이 되었다.

톨스토이 단편에서 나를 솔깃하게 하는 구절이 들린다.

‘열심히 하루 일하고 누리는 잠이 가장 달다.’

명언이다. 휴대전화 메모장에 입력한다. 혼자서 하는 산행은 외롭지만, 여러 생각을 할 수 있고, 행동도 자유로워 좋다. 어느덧 종착지 계라리고개에 도착한다. 계라리고개에도 해남 윤씨 충혼탑이 서 있다. 계라리고개에서 택시를 불러 10km 정도 떨어진 강진읍에 도착, 숙소를 잡는다. 샤워 후 삼겹살 2인 분을 주문해 소주와 함께 한 잔하고 숙소에 갔는데, 열심히 산을 탔다고 아침까지 깨지 않고 단잠에 빠졌다.

 

 

제4구간

계라리고개~서기산~제안고개~13번 국도

22.4km, 11시간 26분

 

정약용과 해남 윤씨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산행 들머리인 계라리고개로 가는 군내버스를 탄다. 차창 넘어 만덕산이 보인다. 만덕산은 다산 정약용이 귀향살이를 했던 다산초당을 감싸고 있는 산이다.

다산 정약용은 18년의 귀향살이 동안 500여 권의 책을 썼다. 이렇게 많은 책을 쓸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외갓집인 해남 윤씨의 도움이 컸다. 1801년 정약용은 강진에 귀향 와서 주막집 뒷방(사의재)을 전전했다. 1808년 봄에 윤박이라는 해남 윤씨 선비의 별장에 기거하면서 편안히 독서할 수 있었는데, 그곳이 다산초당이다. 다산초당에는 이미 천여 권의 책이 비치되어 있었고, 장서가로 유명한 해남 외갓집 녹우당에서 부족한 도서를 빌려 볼 수 있었다.

또 정약용 저서 중에는 우리 국토의 영역에 관한 귀중한 책 두 권이 있다. 고조선에서 발해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토를 기록한 <아방강역고>를 1811년에 썼으며, 한반도 북부 주요 하천의 유로를 기록한 <대동수경>을 1814년에 완성했다. 아방(我邦)은 우리나라, 강역은 국경, 고(考)는 살피다의 뜻이다. 이 두 권은 발해 땅까지 역사를 기록하여 향후 국경 분쟁이 생겼을 때, 고구려의 넓은 강토가 우리 영역이었음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 서책이다.

선답자의 산행 후기에서 보니 제4구간은 거리 23.5km로 봉우리가 19개여서 어렵다 했다. 계라리에서 약 한 시간 정도 걸으니, 노란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나무에 쳐져 있다. 자세히 보니 작년에 친구 아버지에 의해 살해된 강진 여고생 살해 사건의 슬픈 현장이다. 오늘은 나뭇가지에 가려 조망이 별로다. 그러나 물을 마시고 쉬고 있으면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숲속의 제왕이 된 듯한 기분이다.

서기산 2km 못 미쳐 405봉이라는 암봉이 있어, 강진읍을 포함한 주변의 평화로운 산야를 둘러보았다. 힘들게 서기산(511m)을 올라 점심을 먹고, 320봉에 있는 산불감시초소, 장근봉, 월출산 조망바위를 지나 제안고개에 도착했는데, 오후 5시 반이다. 밤재까지 더 진행할까 고민하다, 다음 월출산 구간이 힘들 것 같아 계획대로 진행한다. 4차선 중앙분리대가 설치된 13번 국도에 도착했는데, 4차선 도로를 안전하게 건너는 지하차도가 보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차량이 뜸할 때 중앙분리대를 타고 넘었다. 다시 도로 절개지를 올라 10여분 진행하다, gps 거리를 계산해보니 남은 거리가 아직도 4km인지라, 다시 13번 국도로 되돌아와 산행을 접기로 한다. 택시를 불러 강진군 성전면 소재지로 가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다음 땅·통종주 5, 6구간은 2주 후인데, 월출산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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