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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트레킹 _ 89세 트레커의 푼힐(3,210m) 등반기

 

어느 날 아버지께서 히말라야가 얼마나 높으냐고 물으셨다

글 사진 · 박재범

 

아버지는 89세다. 1930년 1월생이니 3개월만 지나면 90세가 된다. 아버지는 지난 4월 평생을 함께 한 어머니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7월 어느 날 느닷없이 아버지가 히말라야가 얼마나 높으냐고 물었다.

내가 1996년 안나푸르나BC를 시작으로 아일랜드 피크, 메라 피크, 촐라체 등반 등 10여 번 히말라야를 다닌 것이 궁금하다면서 본인도 한 번 가보자고 했다. 아버지는 평생 건강관리를 철저히 했고 하루 1시간 수영, 2시간 걷기를 생활화해오고 있었지만, 그래도 히말라야 트레킹 도전은 놀랄만한 일이었고 내심 걱정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89세의 고령은 히말라야와는 거리가 먼 그런 나이였고 게다가 5년 전 쯤에 왼쪽 무릎 관절이 안 좋아서 인공관절 수술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6.25전쟁 때 사나흘 굶고 월남하던 것보다 더 힘들겠냐”고 말하며 태연히 웃었다. 그래 가자, 가보는 거다. 부친은 외국이라고는 십 수 년 전에 일본 한 번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네팔 트레킹이 두 번째 해외여행이 된 것이다.

 

가족 여섯 한 팀이 되다

대상지를 물색하면서 네팔 히말라야에서 가장 유명한 트레킹 코스인 칼라파타르나 고쿄 피크, 혹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심 끝에 푼힐 전망대(3,210m)를 선택했다. 히말라야에서 상대적으로 낮고 쉽지만 안나푸르나 산군과 히운출리, 강가푸르나, 마차푸차레 등의 봉우리를 볼 수 있는 훌륭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계획 중에 중학교 1학년인 아들도 가겠다고 했다. 59세의 누나와 제수씨, 10살 조카도 같이 가기로 해서 우리 팀은 모두 6명이 되었다. 아들 녀석이 고등학생이 되면 당연히 데리고 가 보리라 했는데 이 기회에 함께 가게 됐으니 잘됐다. 풍족하게 불편함 없이 생활해온 아들이 카트만두 거리를 보며,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든 산길을 오르며, 그리고 전 세계에서 찾아온 많은 사람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몇몇 친구들과 함께 했던 2008년도 고쿄 피크(5,630m) 트레킹 때 만났던 가이드 템바 셰르파는 지금까지 인연을 유지해오고 있는 좋은 친구이다. 이번에도 템바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비록 짧은 트레킹이지만 아버지를 배려하여 세세한 부분까지 템바와 의논하고 준비했다. 혹시 몰라서 고산 등반 때 쓰는 산소통도 준비하였고 한국 음식을 먹기로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렇게 준비한 산소통은 쓸 일 없이 짐만 되었고 아버지는 템바가 해 내온 김치찌개나 닭볶음탕보다는 네팔 사람들의 주식인 달밧을 더 좋아했다.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가는 작은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며 아들과 조카는 마냥 신기해 했다. 그렇게 어린아이마냥 좋아하는 모습은 어른도 마찬가지였다. 삼십여 분이 채 되지 않은 비행 끝에 도착한 포카라는 마치 시간을 되돌려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페와 호수가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사랑콧 꼭대기에 숙소를 잡았다. 다음 날 새벽의 장엄한 일출을 아버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본격적인 트레킹 시작은 울레리부터

다음 날 아침 5시 반, 깨우지도 않았는데 모두들 일찍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약 15분을 걸어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올라와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뒷짐을 지고 태양이 저만큼 올라올 때까지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른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드디어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보통 나야풀에서 시작하여 울레리, 고레파니를 거쳐 올라간다. 그러나 우리는 9일간의 짧은 일정을 고려하여 울레리까지 차량을 이용하고 울레리부터 고레파니, 푼힐을 가기로 했다. 하행길에는 고레파니, 울레리, 나야풀까지 걸어서 하산하기로 했다. 템바 셰르파와 포터 셋을 포함한 우리 일행은 지프차 두 대로 갔다.

그렇게 두 시간 넘게 올라가 잠시 차를 세우고 다들 고개를 위로 한껏 치켜든 채 저 멀리 보이는 파란색 지붕의 집 몇 채를 바라보았다. 그곳이 울레리(1,960m), 우리가 묵을 롯지(lodge)가 있는 곳이다. 아들 녀석이 이곳이 얼마나 높은 곳인지를 알게 된 것은 과자 봉지가 부풀어진 것을 발견하고 난 후였다. 드디어 눈 쌓인 고봉을 배경으로 한 울레리 롯지에 도착했다.

 

개선장군에게 걱정은 기우

다음 날 아침 일찍 밖으로 나가보니 이미 아버지는 롯지 마당을 거닐고 있었다. 오늘 하루를 걸어 올라야 한다고 하니 내심 긴장을 많이 했는지 내내 헛기침을 하며 “내가 6시간을 걸어 올라갈 수 있을까” 하신다. “사나흘 굶고 산 넘어 월남하시는 것 보다 더 쉬울 거예요” 하고 나는 대답했다. 여기까지 오긴 했으나 막상 걱정이 되는가 보다.

통상 고레파니까지는 천천히 4시간 정도 걸으면 충분한 시간이지만 두어 시간을 더 예상했다. 울레리를 출발하여 두세 시간까지는 전혀 문제없었다. 걱정했던 아버지는 그런 걱정이 무색할 만큼 잘 올라갔다. 고레파니(2,860m) 마을이 보일 정도가 되었을 때 아들 녀석이 갑자기 머리가 살짝 아프다고 했다.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이고 따오기 침으로 엄지손가락을 따 주었다. 진통제를 한 알 먹고 잠시 쉬고 난 후에 다행히 두통이 가라앉았다고 하여 다시 출발하였다.

마침 옆에서 같이 쉬고 있던 노르웨이 사람들과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8명인 이 팀은 평균 나이가 75세라 했다. 나는 아버지를 소개했고 89세의 나이라 듣고는 모두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었다. 우리가 출발할 땐 모두 아버지와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아버지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이들의 하이파이브를 뒤로한 채 앞장서서 걸어 올라갔다.

그렇게 6시간 반을 걸었다. 아버지만큼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걱정이 앞섰던 아들, 조카, 누나, 제수씨 모두 씩씩하게 잘 걸었다. 고레파니 롯지 지붕까지 구름이 가득 찼지만 다들 무사히 잘 도착했다.

 

아버지의 한 걸음은 평생을 살아온 한 굽이

새벽 3시, 히말라야의 밤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고요함 그 자체였다. 머리 위에서 쏟아질 듯 반짝이는 별빛은 도시생활에서는 결코 볼 수 없던 장관이었다. 우리 팀 모두의 손길이 분주하다. 등산화 끈을 단단히 매고, 헤비 다운재킷을 입고, 헤드랜턴을 착용하고, 장갑을 끼고 스틱을 챙겨 들었다. 아들과 조카를 몰래 곁눈질로 살펴보았다. 집에서는 어리광을 부리던 아들이 제 사촌 동생을 챙기며 헤드랜턴을 켜 주고 장갑도 챙겨주고 있었다. 기특하다. 어젯밤엔 할아버지가 잘 때 따뜻하라고 준비해 간 핫팩을 비벼 침낭 속에 넣어 주기도 했었다.

3시 30분에 롯지를 출발했다. 1시간 반 정도면 올라가는 높이지만 우리는 다른 트레커들보다 좀 더 일찍 나섰다. 롯지 바로 뒤에서 시작되는 가파른 계단은 처음부터 숨을 헉헉거리게 했다. “세상에 이런 가파른 계단이 있을까.” 누나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내내 혼잣말을 했다. 옆에서 따라오는 템바 셰르파는 네팔어로 ‘비스따리 비스따리(천천히)’라 말하며 아버지를 보살펴 주었다. 그렇게 삼십여 분이 지나자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들리는 것은 각자의 입에서 탄성처럼 쏟아지는 헉헉거림뿐이었다. 끝없는 계단을 오른 지 한 시간여 지났을 때 아들 녀석이 갑자기 주저앉아 힘들어한다. 뜨거운 물을 한 잔씩 먹고 잠시 또 쉬어가기로 했다. 다시 출발하는 아들 녀석의 뒷모습과 아버지의 뒷모습이 하나로 겹쳐졌다.

우리를 앞질러 가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갈 무렵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헤드라이트 불빛이 꼬리를 몰고 이어진다. 장관이다. 아버지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어쩌면 평생을 살아온 한 굽이 한 굽이 추억의 회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지난 4월 어머니를 하늘나라에 먼저 보낸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아버지는 이 계단을 오르는 일보다도 살아생전 고향 땅 한번 밟는 일이 더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아버지, 아들의 아들 푼힐에 오르다

먼 곳부터 어둠 속에서 히말라야 연봉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늘 한편이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어 간다. 우리를 앞지른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바로 위에서 들린다. 드디어 푼힐 정상의 첨탑이 눈에 들어왔다. 아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곤 안아주었다. “아들아, 아버지가 할아버지 되면 그땐 중현이가 이 아버지 모시고 여기 다시 오는 거다!” 이렇게 약속했다. ‘아버지, 정말 잘 오르셨어요. 이렇게 멀고 힘든 곳을 올랐으니 손 내밀면 닿을 듯 지척에 있는 저 황해도 해주 고향 땅도 살아생전에 밟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아버지에게는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태양이 붉게 솟아올랐다.

히말라야를 뒤로하고 아버지의 사진을 찍는 순간 누나가 큰 소리로 외친다. “아버지, 옛날에 텔레비전에서 보던 귀순용사 기자회견 하는 표정 같아요, 웃으세요, 크게 웃으세요!!” 다시 만난 75세 노르웨이 청년(?)들의 반가운 박수 속에 아버지는 다시 웃으셨다. 뜨겁게 솟아오른 태양은 히말라야 연봉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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