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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트레킹 _ 2018 존 뮤어 트레일 with MSR

 

대자연의 길, 존 뮤어 트레일을 걷다

글 사진 · 김현일(아웃도어 아티스트)

 

‘백패커’라면 한 번쯤 꿈꾸었을 그곳

2017년 10월 20일부터 한 달간 ‘2018 존 뮤어 트레일 with MSR’ 2기 모집공고가 있었다. 9박 10일로 직장인에겐 쉽지 않은 일정이었다. 하지만 한 번쯤 꿈꾸었던 장소이기에 무작정 신청부터 했다. 손가락 빨며 부러워하기보단 ‘당신은 참가 자격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통보받는 게 속 시원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 밖 결과였다. 선정되었다는 연락에 무척 기쁘기도 했지만, 이해시켜야 할 아내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직장 연차를 모두 쏟아야 가능한 일정으로 장기간 휴가 결제 또한 쉽지 않았기에 머리가 복잡했다. 그나마 당장 걱정을 덜 수 있던 건 12월 북한산과 1월 도봉산으로 계획된 테스트를 통과해야 최종 확정이었다. 이왕 열심히 해서 꿈에 그리던 ‘존 뮤어 트레일’을 다녀오면 좋겠지만, 훈련을 함께 했던 멤버들이라면 양보하더라도 후회되진 않을 것 같았다.

 

최종 멤버 확정 그리고 새로운 인연

존 뮤어 트레일을 함께하게 될 총원은 4명. 호상사 마케팅 담당이자 리더 이용우 차장 포함이었다. 두 차례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최종 확정 멤버 발표가 있었다. 훈련에 참여한 세 사람(김현일, 권인경, 하범주) 중 한 명은 빠져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예외로 동행 예정이었던 기자분이 취소되면서 결국 세 사람 모두 함께할 수 있게 됐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7년 호상사 존 뮤어 트레일 1기로 참여했다가 투올룸 메도우(Tuolumne Meadows)에서 중간에 탈출했던 이원규씨와 이미 완주 경험이 있던 이윤수씨도 트레일 엔젤 역할을 맡으며 함께하기로 했다.

이후 퍼밋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하범주씨의 소개로 ‘직장을 때려치우지 않고 세계 일주’를 꿈꾸는 이지혜씨까지 총 7명이 되었고 운탄고도, 영남알프스, 원적산까지 3차례에 걸친 공식 훈련을 함께했다. 더 이상 멤버가 늘거란 예상은 못 했는데, 출국 일주일 전 1기 멤버인 심기훈씨까지 트레일 엔젤로 합류하게 되어 결국 8명의 인원으로 마침내 존 뮤어 트레일(8월 27일부터 9월 5일)로 떠나게 됐다.

 

고산병과의 사투

높은 산에 적응하기 위해 첫날 해발 2,600m의 애그뉴 메도우(Agnew Meadows) 캠핑장에서 하루를 보냈다. 높은 산은 처음이라 그런지 조금만 걷거나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전년도 존 뮤어 트레일 경험이 있던 이윤수씨도 고산 증세로 힘들어했다. 그 탓에 이틀간 잘 먹지도 못했고 휴식시간만 되면 매트를 깔고 드러눕기 일쑤였다.

트레일 중 우리 가장 큰 적은 무거운 배낭도, 살이 익을 듯한 찌는 더위도, 무시무시한 흑곰도 아니었고 예상과 달리 고산병이었다.

 

천 개의 섬을 품은 호수 싸우전드 아일랜드 레이크

새벽 4시 잠에서 깨 하루를 시작했다. 해가 떠오르면 더위로 걷기가 더욱 힘들어져 선선할 때 하루 계획된 20km 중 절반은 걸어야 했다. 보름달이 훤히 비춰주는 길, 앞사람 발만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슬슬 주변이 밝아졌다. 고도가 높은 지형 특성상 지그재그 완만한 오르막이 계속된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랬다. 얼마나 가야 끝인지 예상할 수 없는 방대한 숲길을 한참 헤치고 나오니 어느덧 만년설이 쌓인 배너 피크(Banner Peak)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앞에는 한눈에 담을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가 펼쳐져 있었고 작은 섬들이 조각처럼 흩어져 있었다. 지명은 싸우전드 아일랜드 레이크(Thousand Island Lakes, 2,997m). 천 개의 섬을 품고 있어 지어진 이름이었다. 하범주씨는 호수를 맞닥뜨리자 그 풍광에 넋을 잃고 호수에 냉큼 뛰어들기도 했다. 마음은 뒤따르고 싶었지만, 너무 차가워 엄두를 못 냈고 대리만족에 그쳐야 했다.

야영지가 멀지 않으니 쉬어가자는 의견에 절호의 기회다 싶어 마음먹고 준비했던 낚싯대를 꺼냈다. 자연산 무지개송어 손맛을 볼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수차례 캐스팅을 시도했다. 순간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은 야속하게도 속마음을 모르는지 물살을 빠르게 만들었고, 물고기가 정말 살긴 하는 건지 물 위로 뛰어오르는 송어 역시 단 한 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손맛은 커녕 입질조차 없자 이 순간을 위해 투자했던 20만 원어치의 낚시도구와 $50 가까이 냈던 퍼밋 비용이 제일 아까운 순간이었다.

싸우전드 아일랜드 레이크는 캠프 불가 지역으로 지정되어 오래 머물 수 없었지만,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증명하듯 많은 사람이 가벼운 차림으로 호수 주변에 머물곤 했다.

 

존맛탱(JMT)의 길 ‘존 뮤어 트레일’

시장이 반찬이라는 옛말은 정말이었다. 5일간 약 100km를 걸어야 했기에 무게를 줄여야 하는 만큼 건조식 위주로 준비했다. 아침은 누룽지, 점심은 라면, 여유롭게 식사 가능한 저녁은 건조 쌀밥과 된장국 그리고 햄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서너 시간을 걷고 난 후 먹는 누룽지탕은 꿀맛이었고, 뙤약볕 아래 한참 걷다가 시원한 그늘을 찾아 먹는 얼큰한 라면 역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해질녘 지친 몸을 이끌고 야영지를 찾은 후 먹는 따뜻한 밥은 압력솥에 갓 지어낸 윤기 좔좔 흐르는 맛처럼 좋았고, 건조 된장국에 한 숟가락 말아 입에 넣으면 종일 쌓인 피로가 싹 가시는 듯했다. 몇 점 안 되는 햄은 양보하기 바빴다.

최근 SNS에서는 #JMT라는 태그를 종종 볼 수 있다. 우리에겐 존 뮤어 트레일(John Muir Trail) 약자로 쓰였지만, 대부분 사람에겐 존맛탱(매우 맛있다는 신조어)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존 뮤어 트레일을 경험해보기 전엔 못 느꼈지만 문득, JMT=존맛탱=존 뮤어 트레일 모두 같은 의미로 함께 쓰여도 괜찮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도노휴 패스(3,370m)를 넘다

존 뮤어 트레일 구간 10개 중 6번째로 높은 패스. 아마도 이번 트레일을 통틀어 한 걸음씩 내딛기 가장 힘들었던 구간이 아닌가 싶다. 드높은 바위산을 넘는 일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늘 한 점 없어 쉴 수조차 없는 뙤약볕을 걷는 게 더 고됐다. 서서 쉬느니 한 걸음이라도 움직여 패스를 넘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고개만 들면 멋진 풍광이 눈을 즐겁게 해주니 오르는 내내 위로가 되어주기도 했다.

아마 조금은 예상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일부 인원이 고산병으로 몸 상태가 안 좋아 자연스레 4인씩 두 팀으로 갈라졌고 거리 차가 꽤 벌어졌다. 뒤처지기 시작하면 쫓아야겠다는 마음 때문에 더 힘든 걸 잘 알고 있기에 재촉하지 않기로 했다.

오르막은 어느새 끝이 보였고, 패스를 넘으니 달력에서나 봤을 만년설로 덮인 라이엘 피크(Lyell Peak)와 호수가 등장했다. 존 뮤어 트레일엔 멋진 호수들이 많은 탓인지 이름조차 없는 라이엘 포크(Lyell fork) 물줄기 중 하나에 불과했다. 갈 길은 멀었지만, 풍경에 취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날은 너무 뜨거웠고 패스를 넘느라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시원한 물에 담그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서로의 생각이 통했는지 급할 거 뭐 있냐며 잠시 쉬어 가기로 했고, 놓칠세라 호수에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아이고 추워’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얼음장 같았지만, 너무 개운했다. 지나쳤다면 기억 속에 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뜨거웠던 도노휴 패스와 더불어 대비되는 차가움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추억으로 남았다.

 

그리운 문명(시원한 맥주)을 향하여

문명을 벗어난 지 고작 며칠이나 되었다고 시원한 맥주가 그리웠다. 마음 같아서는 투올룸 메도우(Tuolumne Meadows)까지 단숨에 내려가고 싶었지만, 배낭이 어깨를 자꾸만 짓눌렀고 주변은 점점 어둑해졌다. 가까스로 물가를 찾아 하룻밤을 보냈는데, 새벽에 너무 추워 잠을 설쳤다. 기상 시간이 가까워져 온도계를 보니 영하 5도였다. 침낭을 한여름용(충전량 200g)으로 준비했는데, 8월 말에 영하 날씨라니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서둘러 채비를 하고 추위를 잊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목적지까지 10km가 훌쩍 넘는 거리였지만, 시원한 맥주만 떠올리면 발걸음이 가벼웠다. 부지런히 걸어 4시간이 채 안돼 보급소에 도착했고, 폭신하고 따뜻한 샌드위치 한입에 꿈에 그리던 시원하고 달콤하면서 쌉싸름한 ‘요세미티 패일 애일’을 입안에 들이부어 삼키니 날아갈 것만 같았다. 마음은 조금 더 즐기며 쉬었다 가고 싶었지만, 부족한 식량을 보급 받고 밤새 습기로 젖은 장비들이 건조되는 대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했다.

투올룸 메도우엔 우리와 같은 여행자들이 꽤 많이 보였다.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은 물론 팀을 이룬 젊은 남녀, 머리가 새하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각자 활동을 위해 머물렀다.

안타까운 소식이 하나 있다면 끝까지 함께 완주를 바랐던 이원규씨가 컨디션 악화로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중도에 그만뒀다.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두 개의 아름다운 호수 커씨드럴 레이크

여러 호수 중 가장 기억에 남을 장소였다. 왜냐면 전혀 예정에 없던 야영장소에 호수에 비친 커씨드럴 피크(Cathedral Peak)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밤에는 쏟아질 듯한 수많은 별과 선명하고 길었던 은하수도 원 없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투올룸 메도우까지 내리막과 평지였다면 선라이즈 레이크(Sunrise Lakes)까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이었다. 우거진 숲에 가려져 그렇다 할 풍경도 볼 수 없었고 식량 보급으로 배낭 무게는 늘어난 상태라 더 힘겨웠다. 지루하다 싶은 산길에 유난히도 많은 사람을 마주칠 수 있었는데, 그들 차림새는 마치 뒷산을 오르듯 가벼워 보였다. 어느덧 갈림길이 나타났다. 커씨드럴 레이크(Cathedral Lakes)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였다. 여길 언제 다시 와보겠나 싶었고 좋은 구경거리를 지나친다는 것은 후회로 남을 것 같았다. 일부는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김현일, 하범주, 이지혜 세 사람 의견이 일치해 배낭을 내려놓고 맨몸으로 가볍게 나섰다.

선두에 의지하며 걷다가 앞에 서니 제대로 가는 게 맞나 분간이 안 됐지만, 그곳을 오가는 사람 덕분에 헤매지 않고 쉽게 갈 수 있었다. 숲길을 벗어나니 드넓은 초원이 나타났다. 물길이 곳곳에 나 있었지만 전부 말라 바닥이 갈라져 있었다. 설마 호수가 말라 초원으로 변했느냐는 엉뚱한 소릴 하며 사람들이 돌아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초원 끝에는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드넓고 평온해 보이는 호수가 있었고, 그 풍경에 취해 쉬는 모습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어딜 다녀오나 했었는데, 그제야 알게 되었다. 큰마음 먹고 온 우리와 다르게 동네 뒷산 오르듯 찾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부러운 순간이었다.

일행이 기다리던 장소로 돌아오자 사진을 보여주며 ‘너무 멋진 곳이었다’ ‘못 간 걸 후회하게 될 거다’라며 자랑부터 늘어놓기 바빴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 아무래도 선라이즈 레이크까지는 무리였다. 기대가 컸던 야영지를 두고 숲속에서 보낼 생각을 하니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함께 장거리를 가야 하는 만큼 무리할 수 없었다. 적당한 야영지를 찾던 중 우측 나무들 사이 저 멀리 햇빛에 반짝거리는 뭔가가 보였다. ‘아까 그 호수인가, 이렇게도 보일 줄 알았으면 괜히 다녀왔네’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딘가 달라 보였다. 가까운 거리 호수가 더 있다는 게 미심쩍었지만, 사실이라면 꽤 좋은 야영지가 될 것 같았다. 내려가 보니 꽤 큰 호수였고 그 앞에 비친 커씨드럴 피크(Cathedral Peak)가 멋을 더했다. 후에 지도를 보니 도착한 곳은 어퍼 커씨드럴 레이크(Upper Cathedral Lakes), 먼저 들렀던 호수는 로우 커씨드럴 레이크(Lower Cathedral Lakes)로 불렸다.

호수 주변엔 이미 많은 사람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뒤늦게 야영지를 찾아 내려온 이도 보였다. 텐트 설치 후 숲속에서 사람이 불쑥 나와 깜짝 놀라는 일도 있었다. 말로만 듣던 레인저였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마주칠지 모른다던 레인저를 그렇게 만날 줄이야. 그는 멋진 사이트라며 연신 엄지를 세웠고, 절차대로 퍼밋을 확인했다. 함께 촬영을 요구하자 흔쾌히 수락해 기념사진도 남길 수도 있었다. 그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며칠에 걸쳐 산을 넘으며 야영을 하고 주말이 되면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간다고 했다.

예정에 없던 야영지가 된 커씨드럴 레이크의 밤은 그 어느 곳보다 예뻤고, 바닥에 매트를 깔고 누워 은하수를 바라보며 잠이 드는 호사도 누릴 수 있었다.

 

생명수의 소중함 그리고 정수기에 대한 새로운 시선

작년에 다녀왔던 1기 경험에 따르면 존 뮤어 트레일 어느 곳이나 물이 풍부해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예년과 다르게 올해는, 유난히 가물어 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풍부했다던 구간도 대부분 말라 물 흐르는 곳을 찾을 때까지 맘 편히 쉴 수도 없었다. 국내에서야 생수를 사 들고 다니는 게 일반적이지만, 산 곳곳 호수와 계곡 물줄기가 가득한 존 뮤어 트레일에서는 전부 당연하다는 듯 정수기를 사용했다. 그 종류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했는데, 우리는 부피와 무게가 더 나갔지만, 세척과 관리가 필요 없고 정수 성능은 물론 8명의 식수를 보급하는 데 충분한 ‘MSR 가디언’을 챙겼다. 트레일용 정수기 경험이 없어 ‘정말 믿고 마셔도 될까?’ 의심이 많았지만, 어느새 익숙해져 흐르는 물이 보이면 정수를 해서 마셨고 동료의 물통을 가득 채워주기도 했다.

식단도 건조식으로 구성한 만큼 한 끼 식사 때마다 많은 물이 필요했다. 덕분에 식사 장소는 늘 깨끗한 물이 흐르는 주변이었고, 잠시 쉬며 발도 담그고 그 물을 정수해 거리낌 없이 마시고 밥도 해 먹었다.

정수기는 이번 트레일에 있어 가장 소중한 아이템이었고 존 뮤어 트레일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게 해준 1등 공신으로 꼽아도 손색이 없었다.

 

자연재해로 인한 산불은 재앙이 아닌 섭리였다

불과 한 달 전, 요세미티에서 발생한 산불로 트레일이 통제되었다. 화재 규모는 점점 커졌고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여유가 있던 일정엔 다행히 차질 없었지만, 걱정되었던 건 사실이다. NPS(National Park Service)는 자연재해로 발생한 산불의 경우 인명 피해로 이어질 때를 제외하곤 자연적으로 진화되도록 한다고 했다. 미국 국립공원 운영 방식이 그렇다.

그렇다면 화재 이후 풍경은 어떨까? 호기심이 생겼다. 트레일 후반에 접어들어 요세미티에 가까워져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재와 먼지로 가득한 줄 알았던 숲은 경이롭게도 푸릇한 새싹이 가득 자라있었다. 힘없이 쓰러진 고목도 보였지만, 그들은 다시 풍성한 자연으로 거듭나기 위한 거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새카맣게 타버린 나무들은 앙상했지만, 꿋꿋하게 잘 이겨낸 모습이 기특했다. 그리고 가지 끝에 걸린 나뭇잎엔 생기도 느껴졌다. 위대한 자연 그들은 생각보다 나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인상적인 부분이 하나 더 있었다면 쓰러진 나무들을 치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둔다는 것. 길을 막아버린 경우 최소한으로 잘라내는 게 전부였다. 이처럼 자연의 섭리를 따르며 관리되는 모습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무사 완주의 기쁨 교차하는 아쉬움

존 뮤어 트레일을 언제 또 와보겠냐는 생각에 카메라를 무려 6대나 챙겼다. 사진과 영상을 가득 담겠다는 의지였는데, 돌아보면 조금 더 남기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메모리가 부족했다면 모를까 마저 채우지 못한 용량을 보니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과욕으로 채워진 무거운 배낭 탓에 완주 가능할까에 대해 의심스러웠지만,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벌써 끝인가라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점점 커졌다. 지칠 대로 지쳐 기나긴 걸음이 빨리 끝나기만 바랐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무사히 완주했고, 아쉬움이 남았기에 더 오랫동안 그리워할 것 같다. 혹 기회가 다시 온다면 전 구간을 욕심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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