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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트레킹 _ 돌로미테

 

경이로운 풍경 속으로,

이탈리아 돌로미테 트레킹

글 사진 · 이남기

 

 

 

메스너와 카신의 고향, 돌로미테

오래 전부터 산악 잡지나 귀동냥을 통해 들은 전설적인 산악인 두 분이 있었다. 한 분은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오른 뉴질랜드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 경(Sir Edmund Hillary)이고, 다른 한 분은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테(Dolomites)에서 태어나 세계 최초로 8,000m급 봉우리 14좌를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다. 아직까지 그 분들을 직접 뵙는 행운을 얻지는 못 했다. 아쉽게도 힐러리 경은 2008년에 세상을 떴고, 메스너는 돌로미테 지역에 메스너 산악박물관을 여섯 군데나 세우고 그 일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메스너란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 난 그가 독일인일 것이라 확신을 했다. 그의 이름에서 독일 냄새가 폴폴 풍겼기 때문이다. 독일인이 아니라면 최소한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에 사는 독일계 후손일 것으로 보았는데, 나중에 내 확신은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그는 독일식 이름을 가진 이탈리아인이었고, 이탈리아 북동부 돌로미테 출신이었던 것이다.

독일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할 때, 매년 여름이면 알프스로 하이킹을 떠나는 독일인 동료가 돌로미테에서 찍었던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다. 나는 언제쯤 거길 갈 수 있을까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차에 그 근방을 지나칠 기회가 생겼다. 이탈리아 반도를 여행하기 위해 차로 내려가는 길에 일부러 돌로미테 지역를 관통해 간 것이다. 수박 겉핥기로 보았지만 돌로미테가 무척 위압적이란 인상을 받았다. 겁없이 하늘로 솟은 바위봉들이 거대한 산군을 이룬 지역이라 눈으로 보는 것도 좀 겁이 났다. 산길을 걸을 수도 없었다. 내겐 어린 아이가 두 명이나 있었고 산길을 걸을 아무런 채비도 되어 있지 않았었다. 그저 마음속 깊이 그 장면을 간직하며 언젠가 다시 오리라 마음먹은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돌로미테가 내게 현실로 다가온 것은 그로부터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였다.  

유럽 중부에 자리잡은 알프스 산맥은 동으론 슬로베니아, 서쪽으론 프랑스에 이르는 광대한 산군이다. 그 가운데 오스트리아와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가 위치한다. 현지에선 이탈리아 알프스가 알프스 산맥에 속한 북부 산악 지역 전체를 의미하기보단 북서쪽의 아오스타 밸리(Aosta Valley)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남티롤 지방에 속하는 돌로미테는 그냥 돌로미테란 이름으로 불린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 돌로미테를 영화에서 먼저 접했을지도 모른다. 실베스터 스탤론(Sylvester Stallone)이 산악구조대원으로 나오는 <클리프행어(Cliffhanger)>를 촬영한 곳이 바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클리프행어를 보면서도 로케이션이 돌로미테인 줄은 나도 전혀 눈치채지 못 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악 지형과 유사하게 돌로미테의 생성도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2억 5천만 년 전부터 형성된 바다 속 퇴적암이 7천만 년 전에 일어난 지각 변동으로 땅 위로 솟아오른 것이다. 아프리카판이 유라시아판 위에 올라탄 형국이라 했다. 그 뒤에 오랜 기간 침식 작용과 풍화 작용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형성한 것이다. 돌로미테란 어원은 1788년 프랑스 지질학자 돌로미외(Deodat de Dolomieu)가 마그네슘 성분을 함유한 석회암을 발견하곤 그 이름을 돌로마이트(Dolomite), 즉 백운암이라 부른 것이 이 지역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늘 높이 솟은 기묘한 모습의 바위 봉우리와 빙하, 계곡, 초원, 호수가 함께 어우러져 다른 지역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장관을 연출한다. ‘알프스의 숨겨진 보석’이라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돌로미테가 가진 자연의 아름다움을 인정받아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산길에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어

무아지경으로 산길을 걸으며 자연에 심취하는 것도 좋지만 이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역사를 지니고 있고, 어떤 상처를 보듬고 살고 있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메스너가 왜 독일식 이름을 가지고 이탈리아인이 되었는지, 그의 출생지인 돌로미테가 어떤 까닭으로 이탈리아 영토가 되었는지를 알면 돌로미테가 얼마나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곳인지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메스너는 게르만족의 피가 섞인 이탈리아인이지만 그의 조상들은 대부분 오스트리아인으로 살았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는 돌로미테 지역을 포함한 사우스 티롤(South Tyrol)은 원래 오스트리아 땅이었다. 1차 대전이 끝나고 이 지역이 이탈리아로 귀속되면서 졸지에 나라가 바뀌게 된 것이다. 돌로미테가 이탈리아로 할양된 것이 1918년의 일이고 메스너는 1944년생이니 이제는 온전히 이탈리아 태생이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그런 배경 때문에 이 지역의 문화는 오스트리아에 가깝고 언어 역시 독일어가 더 널리 쓰인다. 요즘은 이탈리아어와 독일어를 함께 사용하며 산악지역에선 원주인들이 사용하던 라딘어도 쓰인다. 돌로미테 트레일을 걷다 보면 전쟁 당시에 사용했던 참호와 터널, 막사를 지난다. 우리가 걸었던 많은 지역이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치러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군대와 오스트리아 군대가 산봉우리와 능선을 따라 치열하게 전쟁을 치룬 곳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선이 산악 지형을 따라 형성된 만큼 산악인들로 구성된 산악부대를 만들어 전쟁을 치뤄야 했다. 그런 전선이 무려 600km에 이르렀고, 이탈리아 산악부대만 여기서 12만 명이 전사했다고 하니 산을 피로 물들인 그 참상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트레치메(Tre Cime)의 로카텔리 산장, 라가주오니 산장, 친퀘토리(Cinque Torri)에서도 전쟁의 상흔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 산악 전쟁에선 험한 지형을 이동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벽에 쇠줄을 연결한 비아 페라타(Via Ferrata)를 만들어 전쟁을 치뤘다. 절벽을 따라 루트를 만들고 절벽 안으로 터널을 파서 군대가 이동한 것이다. 이건 이탈리아나 오스트리아 양측이 마찬가지였다. 이 비아 페라타는 현재까지 그 잔재가 남아 있어 요즘엔 액티비티를 즐기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클라이밍보다는 난이도가 떨어지지만 절벽을 오르는 개념은 비슷하다. 돌로미테 절벽을 앞에 두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1930년대 돌로미테를 주름잡았던 리카르도 카신(Ricardo Cassin)이 바로 그 사람이다. 1935년 치마 오베스트의 500m 수직벽을 2박 3일에 올라 북벽 초등이란 위업을 이뤘고, 이는 세계 등반 100대 사건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었다. 그는 돌로미테를 베이스로 삼아 수많은 업적을 이뤄낸 이탈리아 산악인으로 26살에 올랐던 스위스 피츠 바딜레(Piz Badile, 3308m)를 78세의 나이에 다시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노년에도 꾸준히 산을 찾다가 100세까지 장수하는 저력도 보였다.

 

침봉과 초원이 어우러진 경이로운 풍경

“이거 혹시 에델바이스 아니에요?” 함께 트레킹을 하던 여성대원 한 명이 뾰족한 음성으로 물어왔다. 모르고 묻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돌로미테 지역엔 에델바이스가 정말 많다. 몽블랑 둘레길인 뚜르 드 몽블랑(TMB)에선 눈에 띄지 않던 에델바이스가 여긴 몇 발짝 건너 하나씩 발견할 수가 있었다. 에델바이스를 발견하는 기쁨도 쏠쏠했지만 초원에 그것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었다. 바위 틈새에서 자라는 데블스 클로(Devil’s Claw), 즉 악마의 발톱도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저기 마모트(Marmot)가 보이나요?” 시선이 일제히 가이드 안나의 손가락을 쫓았다. 바위 위에서 뭔가 꿈틀대는 녀석이 보였다.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동물이라 사람들이 신기해했다. 물론 마모트는 뚜르 드 몽블랑에서도 가끔 보긴 했다. 같은 알프스 산맥에 속해 있으니 생태계가 많이 다르진 않을 것이다.

여기 오기 전에는 야생화나 야생동물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돌로미테 하면 거대한 암봉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산악 풍경이 전부일 것이란 선입견 때문에 다양한 식생이 살아갈 환경은 아니라고 본 것이다. 그런 내 섣부른 판단은 보기 좋게 어긋나고 말았다. 푸른 초원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넘쳐났고, 사람을 두려워 않는 야생동물도 가끔 눈에 띄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어떤 사람은 돌로미테 트레킹을 ‘천상의 트레일’이라 부르기도 했다. 너무 과장된 느낌이 없진 않지만 돌로미테 트레킹을 처음 접한 나로선 정말 괜찮은 곳을 또 하나 발견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모습을 달리하며 우리 눈에 각인되는 암봉의 아름다움에 어느덧 난 돌로미테의 열혈팬이 된 듯 했다.

돌로미테라 불리는 지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다양한 풍경을 연출한다. 로마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귀중한 문화재가 지천이고, 토스카나(Toscana)나 아말피(Amalfi) 해안 등 풍경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곳도 많지만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풍경 가운데 돌로미테의 산악 풍경이 빠질 수는 없다. 울퉁불퉁한 암봉은 마치 파타고니아의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을 보는 것 같았고, 푸른 초원이 펼쳐진 구릉은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알프스를 보는 듯 했다. 해발 3,000m가 넘는 봉우리가 무려 21개나 될 정도로 자연 경관이 뛰어난 곳임에도 오랜 세월 개발의 손길을 거치고 사유화된 탓에 국립공원 지정은 여의치 않아 보였다. 돌로미테 전 지역에 국립공원은 오직 한 군데뿐이고, 대부분 지역은 느슨한 규제를 받는 자연공원(Parco natuale)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함께 걸었던 일행 가운데는 몽블랑 둘레길인 뚜르 드 몽블랑(TMB)을 다녀온 사람도 있었다. 돌로미테와 뚜르 드 몽블랑 모두 같은 알프스 산맥에 위치하곤 있으나 지역도, 풍경도 사뭇 다르다. 자연스레 두 곳의 풍광을 비교하는 이야기가 나왔고 개인적으론 어느 곳이 더 좋더라 하는 의견이 돌았다. 산악 풍경에 대한 각자의 선호가 다르고 트레일 상태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는 일이라 통일된 결론을 내기는 어려웠다. 각각의 트레일이 가진 특징 또한 달라 어디가 더 좋다고 순위를 매길 수도 없었다. 단지, 돌로미테 트레킹은 뚜르 드 몽블랑에 비해 하루에 걷는 거리가 짧고 등반고도도 낮았지만, 암석 구간이 많아 걷기 힘든 구간이 더 많았다.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점을 감안해서 코스를 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장 인기가 높은 트레치메 트레킹

우리가 걸었던 트레치메나 알타비아 1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코르티나 담페초(Cortina d’Ampezzo)를 기점으로 삼는 것이 좋다. 코르티나 담페초는 베네토 주에 있는 해발 1,244m의 휴양도시로 동부 돌로미테의 중심도시다. 1956년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했던 곳이기도 하다. 여름엔 하이킹이나 산악자전거, 겨울엔 스키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마을 한 가운데 자리잡은 성당을 중심으로 오랜 전통을 가진 가게와 호텔, 레스토랑, 카페가 마을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었다. 거기엔 창문을 온통 꽃으로 장식한 집들도 한몫을 했다. 호젓한 마을만 둘러보아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 느껴졌다. 최근 들어 자주 거론되는 힐링 여행은 이런 곳이 제격이 아닐까 싶었다. 코르티나 담페초에 있는 호텔에서 가이드 안나를 만났다. 우리와 5일 동안 돌로미테 트레킹을 함께 할 산악가이드다. 늘씬한 키에 웃음이 참으로 맑았다.

돌로미테 트레킹은 트레치메를 한 바퀴 도는 당일치기 코스가 시작이었다. 공식적으론 트레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라 불리는 곳인데, 트레치메란 세 개의 거대한 바위산을 일컫는 말이고 라바레도는 지명을 의미한다. 돌로미테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돌로미테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라 볼 수 있다. 작은 봉우리란 의미의 치마 피콜로(해발 2,856m)와 가장 높은 봉우리를 의미하는 치마 그란데(3,003m), 동쪽에 있는 봉우리란 의미의 치마 오베스트(2,972m)가 나란히 붙어있다. 우리 식으로 삼형제봉이라 이름을 붙이면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우리가 첫날 걸은 지역은 모두 트레치메 자연공원(Parco natuale Tre Cime)에 속했다.

아우론조 산장(Rifugio Auronzo)까진 차로 오를 수 있었다. 산장 앞에 서면 시야가 탁 트이며 울퉁불퉁한 산세가 눈앞에 펼쳐진다. 차에서 내린 일행들 입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돌로미테란 명성이 명불허전이란 것을 첫날부터 확인시켜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날씨 또한 쾌청해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넓고 평탄한 길을 따라 라바레도 산장으로 향했다. 산 속에 홀로 서있는 조그만 교회 앞에는 옛날 군복 차림의 노병들이 모여 산악 전쟁에서 죽은 영령들을 추모하고 있었다. 우리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함께 묵념을 올렸다. 두 아이를 데리고 홀로 걷는 젊은 엄마가 눈에 띄었다. 한 아이 손을 잡고 또 한 아이를 등에 업은 엄마라 절로 눈길이 갔다. 엄마 손을 잡았던 네댓 살 여자 아이가 갑자기 3m 높이의 바위를 기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졸지에 여자 아이의 볼더링 실력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 같으면 위험하다고 뜯어말릴 판인데 이 엄마는 아이를 격려하고 있었다. 우리도 덩달아 옆에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라바레도 산장을 지나 날망에 오르니 로카텔리 산장(Rif. Locatelli)이 눈에 들어온다. 산장으로 내려서며 바라본 트레치메의 모습이 위풍당당하게 다가왔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럴 때면 늘 집에 두고 온 가족이 생각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환상적인 풍경을 함께 즐기지 못 하는 것이 아쉬웠다. 산장 앞에는 돌탑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거기엔 산장을 세운 제프 이너코플러(Sepp Innerkopler)의 흉상이 새겨진 동판이 있었다. 이 사람은 오스트리아의 산악부대를 이끌었던 사람으로 전쟁 중에 사망했다. 이 주변엔 1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가 싸운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트레치메를 한 바퀴 돌아 아우론조 산장으로 돌아옴으로써 첫날 트레킹을 마쳤다. 해질녘에 바위가 붉게 물드는 순간을 보지 못한 것은 좀 미련으로 남았다.

 

돌로미테 트레일의 고전으로 불리는 알타비아 1

이제 산장에서 숙식을 하며 3박 4일 일정의 알타비아 1(Alta Via 1)에 나선다. 알타비아 1은 돌로미테 트레킹 코스 가운데 아주 인기가 높은 트레일이다. 돌로미테에는 알타비아라 불리는 트레일이 모두 8개가 있는데, 모두 톱-다운 방식으로 북에서 남으로 이어진다. 알타비아 1은 그 중에서 가장 고전적인 트레일이라 비아 클라시코(Via Classico)라 부르기도 한다. 브라이에스 호수(Lago di Braies)를 출발해 벨루노(Belluno)까지 가는 150km 거리의 트레일이다. 중간에 코르티나 담페초를 지난다. 전체 구간을 걸으려면 10일은 잡아야 한다. 이 일정이 너무 길다면 벨루노까지 가지 않고 파소 두란(Passo Duran)까지만 걸어도 좋다. 우리는 브라이에스 호수를 출발해 페데라 호수(Lago do Federa)에서 코르티나 담페초로 빠지는 나흘 일정을 택했다. 이 정도로도 알타비아 1을 맛보기에는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우리가 걸을 코스는 대부분 파네스-세네스-브라이에스 자연공원(Parco natuale Fanes-Senes-Braies)에 속했다. 차량을 이용해 알타비아 1이 시작되는 브라이에스 호수로 이동했다. 해발 1,493m에 위치한 에머랄드 빛 호수가 우릴 반긴다. 아름답고 평온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호수를 오른쪽에 두고 30여 분 걸어 호수 끝자락에서 산길로 들어섰다. 경사가 급한 오르막이라 금방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쉬어 가자고 아우성을 치는 사람이 있어 뜨거운 햇살을 피할 곳도 없는 곳에서 휴식을 취해야 했다. 이것이 마지막 오르막인가 싶으면 또 다른 오르막이 나타나 우릴 괴롭혔다. 해발 2,388m의 소라 포모 고개(Forcella Sora Fomo)에 올라서야 긴 오르막이 끝이 났다. 그 밑에 있는 비엘랴 산장(Rif. Biella)부터는 넓고 평탄한 길이 나타난 것이다. 비엘랴 산장은 염치없는 손님들에게 약간 고압적이었다. 커피나 맥주 같은 음료를 시키지 않으면 화장실 이용도 눈치가 보였다.

지나는 비를 피해 세네스 산장(Rif. Sennes)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평탄한 산악 지형을 걸었다. 산책에 나선 사람들처럼 다들 발걸음이 가벼웠다. 초원 지대에 에델바이스가 얼마나 많던지 일행들 시선도 이제는 좀 무심해졌다. 바닐라 향이 나는 바닐라 난초(Vanilla Orchid)도 눈에 띄었다. 첫날 묵을 포다라 산장(Rif. Fodara)에 도착했다. 시설이 깨끗하고 잠자리도 아주 편했다. 식사 또한 훌륭했다. 이탈리아 산장은 모두 이럴까 싶었다. 해질녘에 홀로 산책에 나섰다. 산장에서 목축을 겸하는지라 소들이 자유롭게 산장 주변을 돌며 풀을 뜯고 있었다. 가족만 이용하는 앙증맞은 교회가 눈에 띄었다. 너와 지붕을 한 목조 주택은 오랜 세월을 머금은 듯 했고, 그 벽에 켜켜이 쌓아 놓은 장작더미조차 낭만이 흘렀다. 이 얼마 만에 맛보는 정겨운 산골 풍경인가.

아침에 다시 길을 나섰다. 페데류 산장(Rif. Pederu)까지는 급경사 내리막이 우릴 기다렸다. 낭떠러지가 있어 차가 나타나면 모두 한쪽 옆으로 비켜서야 했다. 경사가 얼마나 급한지 차들도 엉금엉금 기었다. 페데류 산장에서 다시 긴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파네스 산장(Rif. Fanes)부터 다시 오르막이 나왔지만 그리 길지 않았다. 조그만 호수를 지나고 조랑말과 소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 초원도 지났다. 양쪽으로 줄지어 나타나는 암봉들을 사열하는 기분으로 걷고 또 걸었다. 우리가 묵을 스코토니 산장(Rif. Scotoni)으로 가는 가파른 산길도 있지만, 우리는 로시아 고개(Col de Locia)를 내려선 후 도로를 따라 걸었다. 산장에 이르는 마지막 오르막에 다들 안간힘을 쏟아야 했다. 그렇게 스코토니 산장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다. 해발 1,985m에 있는 고즈넉한 산장은 규모는 작았지만 정감이 갔다.

 

돌로미테 산중에서 맞은 산상 음악회

스코토니 산장부터 바로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걷는 알타비아 1에서 가장 높은 지점인 라가주오이(Lagazuoi) 산을 오르는 길이다. 라가주오이 정상은 해발 2,835m로 백두산보다 조금 더 높았다. 두 시간 이상을 계곡을 따라 줄기차게 오른 다음, 정상부에 있는 라가주오이 산장까지는 지그재그로 낸 길을 올라야 했다. 여기저기 산악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바위를 파내 참호와 터널을 만들었고 바위 아래엔 조그만 사무실을 지어 놓았다. 라가주오이 산장 테라스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돌로미테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마르몰라다(Marmolada, 3343m)가 우리 시야에 들어왔다. 마르몰라다에는 유일하게 빙하가 형성되어 있었다. 자식들 부축을 받으며 케이블카로 산장까지 올라온 할아버지의 연세는 93세란다. 라가주오이 정상은 표지석이나 돌탑 대신 십자가 하나가 달랑 세워져 있었다. 정상 표시도 이탈리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가주오이에서 팔자레고 고개(Passo Falzarego)로 하산했다. 산 아래로 찻길이 보이고 그 건너편 산자락에 우리가 묵을 산장이 보였다. 팔자레고 고개에서 잠시 휴식을 하곤 다시 긴 오르막을 올랐다. 라가주오이에서 급하게 내려와 다시 오르막을 타는 여정이 퍽이나 길게 느껴졌다. 크로다 네그라(Croda Negra)를 우회해서 아베라우 산장(Rif. Averau)까지 올랐다. 거기서 암봉 꼭대기에 지어 놓은 누볼라우 산장(Rif. Nuvolau)을 갈 것인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해발 2,576m 지점까지 왕복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우리가 묵을 스코이아토이 산장(Rif. Scoiattoi)으로 바로 갈 수도 있었음에도 한 명도 빠짐없이 전원 누볼라우 산장으로 올랐다. 산꼭대기에 지어 놓은 산장인만큼 조망은 훌륭했다. 맥주 한 잔 마시고 바로 하산했다.

스코이아토이 산장까진 고도 300m를 내려야 했다. 이 산장 바로 옆에 친퀘토리란 다섯 개 바위가 있다. 친퀘토리는 클라이밍 대상지로도 꽤 알려진 곳이다. 사방으로 시야가 트이는 언덕배기에 산장이 세워져 여기서 바라보는 조망도 아주 훌륭했다. 이곳 역시 도처에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었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역사적인 현장이라 보존이 필요했던지 당시 참호가 있던 지역에 조그만 전시관을 만들어 놓았다. 인형으로 만든 병사 모습도 보였다. 날이 저물어 가는데도 리프트를 타고 사람들이 올라오기에 무슨 일이 있냐고 산장 직원에게 물었다. 전시관이 있는 분지에서 무슨 산상 음악회가 열린다는 것이 아닌가. 입장료도 없다고 했다. 관객은 모두 합쳐 100명도 되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흩어진 돌 위에 앉아 금관악기 4중주와 합창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산상 음악회를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인데 내가 바로 그 현장에 있었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런 행사로 우리 방문을 환영할 줄은 미처 몰랐다. 돌로미테의 또 다른 선물에 감사할 뿐이다.

아침 햇살이 퍼지자 어둠 속에서 친퀘토리가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산상 음악회의 잔상이 남았는지 스코이아토이 산장을 떠나기가 섭섭했다. 이 아름다운 기억을 쫓아 여길 다시 올 수 있을까 싶었다. 마지막 날 일정을 시작했다. 오르내림이 제법 심한 산길로 들어서 해발 2,235m의 지아우 패스(Passo Giau)까지 줄곧 걸었다.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반대편으로 들어섰다. 지아우 안부(Forc. Giau)로 오르는 길이 마지막 고비 같았다. 그런데 우릴 쉽게 보내주기 싫다는 듯 돌로미테는 또 한 차례 내리막과 암브리졸 안부(Forc. Ambrizzol)로 오르는 시련을 주었다. 그 다음부터는 줄곧 내리막이었다. 그 이야긴 끝이 가까워 온다는 의미 아니겠나. 우리 눈 속으로 코르티나 담페초와 크리스탈로 산(Monte Cristallo, 3221m)이 들어왔다. 페데라 호수 옆에 있는 크로다 다 라고 산장(Rif. Croda da Lago)에서 맥주 한 잔 하면서 돌로미테와의 작별을 준비했다.

코르티나 담페초까진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한 시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 무려 세 시간 가까이 걸렸다. 암브리졸 안부에서 우리를 앞질러 갔던 산악자전거 팀이 우리 앞에서 추락 사고를 냈다. 급커브 코스에서 한 바이커가 계곡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자전거를 빨리 포기하고 길 가까이에 떨어진 바이커는 다행히 큰 부상은 면했다. 안나가 우리를 대신해 응급조치를 도왔다. 산길을 모두 내려와 외곽에 있는 민가를 만나면서 코르티나 담페초로 들어섰다. 돌로미테 트레킹 일정을 모두 마친 것이다. 우리가 4일 동안 알타비아 1을 걸은 거리는 총 60km로 추정되었다. 숙식을 제공한 산장 덕분에 짐을 줄일 수는 있었지만 그리 쉬운 트레킹은 아니었다. 트레킹을 끝내고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한두 명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돌로미테 트레킹을 마치다니 정말 꿈만 같았다. 돌로미테에서의 멋진 추억을 되새기며 내 버킷리스트에 있던 트레일 하나를 지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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