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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등반 _ 요세미테 엘 캐피탄 프리라이더<상>

 

프리라이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저 벽을 달려가리라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까까머리 고교시절 주영선배의 등반기를 읽으며 꿈을 키웠던

요세미테 엘 캐피탄, 저 거대한 벽을 오로지 인간의 힘만으로 오른다는 원대한 계획의 주인공이 나라니!

이 얼마나 신기하고 감사한 일인가? 하물며 이제 한국나이로 53세.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놈이다.

이 혼자만(?) 행복한 한국 아저씨의 고난에 찬 프리라이더 도전기를 2회에 걸쳐 적는다.


글 사진 · 유영욱

 

 

캐나다 스쿼미시와 미국 하이시에라 인크레더블 헐크를 거쳐 요세미테에 들어왔다. 엘 캐피탄 사라테월(5.13b or 5.13c/d) 자유등반을 위한 무려 83일의 여정도 거의 절반으로 접어들고 있다. 10월 초, 아직은 사라테월을 시작하기엔 좀 더운 날씨다. 광주에서 온 김병렬과 살라테월 변형루트인 프리라이더를 먼저 등반했다.

 

살라테월 맛보기, 프리라이더

프리라이더 11피치 허트리지에는 고정로프가 깔려있다. 우리는 이 고정로프를 이용해 5일 분 식량과 포타레지를 데포한 다음 휴식을 취하고 한 번에 밀어붙일 생각이다. 따라서 11피치까지 먼저 자유등반을 마쳐야한다.

요세미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당일치기 등반코스인 살라테월 하단 11피치를 프리블라스트라 부른다. 항상 붐비는 코스인 지라 10월 6일 새벽 6시에 출발, 7시에 등반을 시작한다. 오늘은 내가 선등이고 병렬이 후등이다. 1피치는 5.10c 핑거크랙이다. 몸이 덜 풀려서인지 쉽게 느껴지진 않는다. 3피치는 5.11b 언더크랙으로 생각보다 쉽게 넘어간다. 프리블러스트에서 가장 어려운 구간인 이곳은 2년 전 등반 땐 후등으로도 몇 번 줄에 매달렸던 곳이다. 병렬도 잘 따라오고, 거칠 것이 없다. 5피치 11b 슬랩, 6피치 11a 슬랩 모두 2년 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한 동작 한 동작이 여유 있고 자신감이 넘친다.

스쿼미시에서 시작된 한 달여의 등반으로 몸이 잘 만들어진 것이다. 며칠 전 피피버트레스의 파이널 프론티어에서 5.12d, 5.13a, 5.13b를 오른 것도 그냥은 아닌 게지. 오늘의 등반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자만은 금물인 것을…. 8피치 10c 침니 구간의 시작점에서 로프 유통을 걱정한 나머지 확보물을 생략하고 가다가 미끄러져 20m를 날았다. 사선 추락이라 몸의 충격이 심하다. 로프마저 표피가 반쯤 벗겨졌다.

뜻하지 않은 추락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곧바로 붙어보지만 동작이 잘 안 된다. 문제는 햇볕이었다. 오후 1시 햇볕에 달구어진 바위에 손이 닿으면 땀이 흥건하게 배어나오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5.10c에서 인공으로 간다. 내일 병렬이 해결해 주길 바라면서 10피치까지 등반하고 하강을 마치니 오후 3시다.

 

자랑스런 후배의 요세미테 첫 선등

둘째 날 아침에 일어나니 오른쪽 어깨가 올라가질 않는다. 온 몸이 상처투성이다. 안 아픈 데가 없다.  특히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무지하게 아프다. 암벽화를 신을 수조차 없다.

오늘 난 주마링만 하기로 하고 아침 7시 프리블라스트로 향한다. 출발이 늦었다. 어제완 다르게 여러 팀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2피치까지만 등반하기로 하고 병렬이 선등으로 간다. 요세미테에선 첫 선등이다. 국내에서도 5.11대의 크랙(월출산 악우길과 우정길)을 선등한 그이지만 요세미테는 좀 다르다. 무엇보다 확보물 설치 경험이 부족한 것이 걱정이다.

시차적응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어제 첫 등반을 좀 과하게 한 병렬 역시 적잖이 긴장한 듯하다. 하지만 그의 주특기는 역시 과감함이다. 멋지게 1피치와 2피치를 자유등반으로 성공한다. 하강을 마치니 11시다. 오늘 오후는 휴식이다.

 

프리블라스트 크럭스, 3피치 언더 크랙

다음날도 나는 주마링만 한다. 따라서 물과 행동식을 넉넉히 챙길 수 있다. 이틀 전에 갈증으로 고생한 우리로선 2리터 정도의 물을 챙기니 든든한 마음이다.

병렬 선등으로 프리블라스트를 출발한다. 1피치와 2피치는 어제 고정해둔 자일을 이용해 주마링으로 오르니 프리블라스트에서 가장 어려운 3피치 언더 크랙(5.11b)이다. 병렬에게는 요세미테 첫 5.11급 자유등반 선등이다.

요세미테는 지구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거벽등반지이다. 각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거벽등반 애호가들이 모인다. 하지만 4번의 요세미테 원정에서 5.11대 자유등반을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마 요세미티 첫 원정에서 5.11대를 자유등반 한다면 그는 고수다. 가히 선수급(?)이라 할만하다.

병렬이 지금 첫 원정 3일째 등반에서 사라테월 3피치 5.11b 등반을 위해 숨을 고르고 있다. 물론 온사이트는 아니다. 이틀 전 후등으로 등반했으니까. 그 땐, 좀 힘들어 했다. 아무래도 한 번에 완등하긴 힘들겠지…. 그러나 동작을 푸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빌레이 보는 내가 긴장되고 흥미롭다. 직벽에서 극히 미세한 홀드와 스탠스를 믿고 일어서야 한다, 처음 이 피치를 등반하였을 때의 당황스러움이 떠오른다.  “이것도 등반이 가능한 건가? 요세미테 5.11급이란 이런 건가?” 그 때의 놀라움과 절망감이라니.

그러나 그는 정말이지 멋지게 넘어간다. 선운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선운산에서 그는 5.12+급 클라이머다. 그는 볼트가 박힌 스포츠 루트나 캠을 설치하는 트래드 루트에서나 변함없이 과감하다. 타고난 톱장이라고 해야 할까. 항상 기대 이상의 등반을 보여준 그는 요세미테에서도 변함이 없구나. 5피치 11b 슬랩에서 그리고 8피치 내가 떨어진 곳에서 딱 두 번 추락한 걸 빼면 모두 한 번에 자유등반으로 완등한다. 이틀 전 내가 자유등반하지 못한 8피치를 자유등반하고 11피치 하강루트까지 깔끔하게 자유등반하고 내려오니 4시다.

 

코스믹 데브리스 루트에서 컨디션 점검

어제 종일 선등을 선 병렬에게는 휴식이 그리고 주마링으로 따라가면서 온몸의 타박을 달랜 나에게는 컨디션 점검이 필요한 날이다. 이런 날 코스믹 데브리스는 최고의 선택이다. 5.13b의 핑거크랙으로 도봉산 강적크랙을 연상케 하는 이 시원한 핑거크랙을 완등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핑거크랙에 적응하지 못 한 병렬에게도 좋은 경험과 훈련이 될 것이다.

푹 자고 아침 9시에 등반을 시작한다. 아직 회복이 덜 되어선지 몸이 무겁다. 하지만 세 번째 판에 기회가 왔다. 지난번 떨어진 상단 크럭스 구간을 넘어서 캠에 클립까지 하고 여유 있게 넘어갔으나 수평크랙에서 극심한 펌핑을 이기지 못하고 로프에 매달린다. 코스믹 데브리스! 완전 지구력 루트다.

일찍 등반 종료하고 내일을 위한 홀링백을 꾸린다. 5일분 물 15리터를 챙겼다. 10월임을 감안해 하루당 1.5리터로 준비했다 그러나 예년과 다르게 온도가 높아 물 부족으로 고생 좀 했다. 두 명의 5일분 식량과 물, 침낭 등을 챙기니 조그만 홀백에 8kg정도를 채우고도 큰 홀백 무게가 27kg정도 나가는 것 같다. 포타레지까지 더하면 37kg인데 홀링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내일 4시 출발하기로 하고 일찍 잠을 청한다.

 

단 한 피치의 자유등반을 위하여

10월 10일 4시 기상, 두 번에 걸쳐서 홀백과 장비를 나르고 6시에야 주마링을 시작한다. 한 피치씩 나누어가며 홀링한다. 주마링이나 홀링이 처음인 병렬이 힘들텐데 묵묵히 잘해내고 있다. 9시 반 허트리지 도착하여 12피치 등반, 11c 난이도의 슬랩이 크럭스인 곳이다. 먼저 선등을 선 병렬이 크럭스에서 추락한다. 곧바로 선수교체, 내가 간다.

도저히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미 햇볕을 받은 바위의 마찰력은 현저히 떨어져 있고, 손에선 땀이 배어나온다. 더군다나 슬랩에서 조그만 돌기를 딛고 일어서야 하는데 신발창이 비브람엣지 창이 아니다. 쉽게 보고 편한 신발인 부토라 아크로만 가져온 것이다. 도저히 발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건너뛴다. 인공으로 넘어간다.

5.6의 13피치와 5.11d지만 크럭스가 다운클라이밍인 14피치를 넘어 홀링을 마치니 3시다. 로프 두 동을 허트리지까지 고정시키고 베이스에 도착하니 6시다. 14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움직였다. 특히 홀링이 힘들었다. 하체 근육의 피로가 심하다. 그리고 자유등반을 성공하지 못한 12피치 등반을 위해서 내일 다시 허트리지까지 주마링으로 올라가야한다. 원래대로라면 내일은 휴식일인데 걱정이다.

10월 11일, 5시에 기상하여 6시 주마링 시작, 허트리지 도착하니 7시 반이다. “이른 아침 낮은 기온에 엣지창을 신었으니 한 번에 올라갈 수 있겠지. 내일 출발하려면 빨리 내려가 쉬어야 하니….” 그러나 만만치가 않다. 10여 분만에 겨우 동작을 찾아 넘어간다. 단 두 동작이다. 부분난이도로는 5.12a 이상이 나와야 맞는 것 같다. 병렬도 동작을 풀고 내려온다. 하강을 마치니 11시, 요세미티 버그의 사우나로 가 그간의 피로를 푼다.

 

반갑다, 프리라이더!

피로로 인해 하루 쉬고 13일 새벽 3시 반 출발, 홀백 정리하고 등반 시작하니 아침 7시다. 14피치(5.7) 침니는 내가 선등과 홀링을 하고, 15피치(5.10c), 16피치(5.10d) 크랙은 병렬이 선등과 홀링을 이어간다. 대단하다. 요세미테 첫 원정에서 5.10대를 온사이트 한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는가! 선등이 홀링을 해야 하는 등반에서 병렬의 이 같은 분투는 내게 체력적으로 도움이 많이 된다.

드디어 몬스터 앞에 이르니 벌써 1시가 다 되어간다. 바위는 이미 달구어질 대로 달구어져 있다. 도저히 등반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 몬스터는 일단 건너뛴다. 몬스터 우측의 오리지널 루트를 인공으로 등반한다.

등반을 마치고 홀링하는데 고정로프와 선등로프가 꼬였다. 내 잘못이다. 병렬이 주마링으로 올라와 처리한다. 잘 안 되는 모양이다. 내가 하강하여 처리한다. 주마링으로 다시 올라와 홀링을 마치고 병렬이 올라오니 이 한 피치에서만 세 시간을 까먹었다. 역시 거벽에선 시스템에 오류가 생기면 치명적이다. 특히 분초를 다투는 자유등반에서야 더욱 그렇다.

스파이어에 올라서니 여섯시가 다 되어간다. 14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등반했다. 체력소모는 심한데 몬스터는 잡아보지도 못 했으니 마음이 무겁다.

 

끔찍한 오프위드, 몬스터를 오르다

10시간 동안 숙면을 취하고 다시 하강하여 7시 30분 몬스터 등반을 시작한다. 아침의 찬 기운에 등반할 맛이 난다. 먼저 11d 다운클라이밍이다. 몸이 덜 풀렸는지 어렵게 넘어간다.

이윽고 크랙에 진입, 일단 레이백으로 5m쯤 오르다 오프위드 동작으로 전환한다. 바꾸고나니 의외로 오프위드도 할만하다. 아예 처음부터 오프위드 동작이 낫겠다.

볼트에 확보하고 15분쯤 휴식 후 11a 오프위드 출발이다. 레이백을 좀 써 보려했으나 안 된다. 분명 작년엔 거의 레이백으로 갔었는데…. 작년보단 날씨가 더운 것이 등반을 힘들게 만든다.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오프위드로 간다. 15m쯤 가니 쉴 만한 구간이 나온다. 캐머롯 6호 한 개를 설치하고 좀 쉰다. 나머지 25m를 밀고 가야한다.

10m쯤 오르다 남은 6호를 설치하고 밀면서 간다. 10m 정도 남았다. 할만하다. 그런데 등반시간이 길어선지 손에 땀이 좀 난다. 홀드 마찰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발도 밀린다. 30cm쯤 몇 번인가 주르륵 주르륵 밀린다. 몸으로 비벼서 밀리는 걸 정지 시킨다.

엄청난 체력소모다. 그러나 이번 시도에서 실패하면 곧 햇볕이 들어올 거고 몬스터에서 하루를 더 지체하게 된다. 그럼 프리라이더 등반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젖 먹던 모든 힘을 쏟아 붙는다. 거의 한 시간의 사투 끝에 몬스터 위에 선다.

 

바위에서 벌어진 햇살과의 사투

곧바로 스파이어로 올라가니 11시다. 20피치(5.11c)는 얇은 핸드와 핑거크랙이다. 오늘 같은 날씨엔 자유등반 자신이 없다. 쉬었다가 오후 늦게 하자니 쉬는 게 더 고역이다. 따가운 햇볕을 피할 데가 없다. 예년보다 더운 10월이다. 요세미테 들어온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비가 한 번도 안 내렸다. 그러니 바위와 공기가 달구어질 대로 달구어져 있다.

크랙에 손을 넣어보니 그래도 찬 기운이 남아있다. 한번 밀어붙여 보자. 12시, 20피치 등반을 시작한다. 홀드 상태는 좋지 않으나 힘은 2년 전보다 더 세진 느낌이다. 모든 홀드를 완전히 제압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등반시간이 길어진 후반에는 손의 땀으로 쉬운 구간임에도 한 동작 한 동작이 힘들다. 사소한 추락이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긴장되고 조심스럽다. 한 시간여에 걸친 또 한 번의 사투다. 지금 같은 날씨면 5.11급이 12급처럼 느껴지고 5.10급이 11급처럼 느껴진다. 5.10급을 자유등반 하는 것도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프리라이더 크럭스를 앞두고

병렬이 오늘은 첫 선등이다. 20피치 톱로핑 등반에서 힘들었던지 좀 의기소침한 기색이다. 하지만 이 친구 타고난 톱장이다. 일단 선등로프를 매고 나면 거침없이 밀고 나아간다.

이제 발 둘 자리를 읽고 효율적인 자세를 잡는 것이 요세미테 바위에 적응이 됐다. 중간확보물 위치선정과 안정된 설치도 어느 정도 된다. 가볍게 자유등반을 성공하고 홀링을 마치니 드디어 후버피치 아래다.

포타레지를 치고 후버피치 아래까지 등반하여 고정로프를 깔고 내일 있을 프리라이더 최난이도 구간과의 싸움을 위해 일찍 잠을 청한다. 역시 포타레지 위의 잠자리가 편하고 아늑하다. 고생해서 가져온 보람이 있다.

어려운 등반을 성공시키고 이렇듯 포타레지 위에서 저녁노을과 시원한 바람을 만끽할 수 있는 날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하고 평안해진다. 병렬과 같은 좋은 친구와 같이 하고 있음에 더욱 그렇다.<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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