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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 이승태 편집위원

 

제주도의 덩치가 큰 오름 대부분은 한라산국립공원과 그 언저리를 따라 분포한다. 한라산의 서쪽에는 장구목오름부터 방애오름, 윗세오름, 만세동산, 사재비동산, 이스렁오름, 영실오름, 볼레오름, 삼형제오름, 살핀오름, 붉은오름, 노로오름 등이 저마다 아름다운 자태로 우뚝우뚝 솟았다. 이들은 1,000미터 이상의 고지대에 있다 보니 여느 오름과는 환경이나 식생이 판이해 저마다 독특한 풍광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중에서 영실오름과 윗세족은오름만 탐방이 가능해 아쉽다.

 

오름의 분화구인 영실

한라산에 열린 다섯 개의 등산로 중 1100도로에서 접근하는 영실-선작지왓-노루샘-윗세오름 코스는 짧고 길도 좋으며 풍광 또한 빼어나 연중 많은 이들이 찾는다. 거대한 영실 분화구와 분화구를 둘러싼 기암이 장관이며, 제주 서남쪽 풍광이 한눈에 드는 조망 또한 감동 그 자체다. 영실 분화구를 지난 선작지왓에서 윗세오름대피소를 지나 만세동산, 사재비샘에 이르는 구간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고산평원의 정취를 간직한 곳이다. 지난 2009년 말, 15년 만에 재개방된 돈내코 코스로 이어가는 길 또한 그렇다. 거대한 성채를 이룬 한라산 남벽과 화구벽의 위용을 가까이서 조망하며 걸을 수 있는 등산로로, 특히 서귀포시 등 제주 남쪽 풍광이 한눈에 들어와 조망이 즐겁다. 백록샘과 방아오름샘, 방아오름 전망대와 등터진괴, 남벽분기점 전망대, 넓은드르 전망대, 평궤대피소, 살채기도 등 이 코스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장소도 매력적이다. 영실과 어리목, 돈내코 코스는 모두 윗세오름에서 만나기에 서로 엮어서 산행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산평원의 독특한 풍광과 생태계를 만날 수 있는 보석 같은 길이다.

영실에서 윗세오름대피소에 이르는 구간은 한라산의 여느 등산로 중에서도 아름답기로 첫 손가락에 꼽힌다. 이 코스에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광으로 둘러싸인 영실오름과 윗세오름을 만나게 된다.

출발지인 영실(靈室)의 ‘실’은 골짜기의 옛말로, 室(실)이라는 한자어를 빌어 표기한 것이다. 즉 신의 기운으로 가득한 신령스러운 골짜기라는 뜻이다. 실로 이 일대는 범상치 않은 기운으로 가득하다. 붉은 둥치의 아름드리 금강소나무 숲 사이를 흐르는 맑은 개울을 건너면 곧 오르막이 시작되며 영실분화구의 장관이 펼쳐진다. 둘레 3,309m에 바닥까지의 깊이가 389m, 2천여 개의 기암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모든 이들을 압도하는 비주얼을 가졌다. 하도 넓어서 사람들은 이곳이 분화구라는 생각을 않고 단지 깊은 계곡으로 여긴다. 제주의 368개 오름 중 가장 넓고 깊고 큰 분화구다.

분화구의 위쪽은 온통 절벽지대. 이곳은 바위 형태가 동쪽과 서쪽이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서쪽은 1,200개가 넘는 바위기둥이 한데 엉겨 붙어 거대한 벽을 이뤘고, 동쪽은 수십 미터의 돌기둥이 울창한 숲을 뚫고 우후죽순처럼 솟았다. 서쪽 바위기둥은 잘 발달된 주상절리층으로 ‘병풍바위’라는 별명을 가졌다. 그에 비해 동쪽은 용암이 마구 분출하다가 그대로 굳은 것으로, 오백 명의 아들과 살던 어머니의 전설이 얽히며 ‘오백나한’ 또는 ‘영실기암’이라 부른다.

영실분화구는 자체의 풍광이 빼어난 것은 물론, 흰진달래와 제주백회, 고채나무, 섬매자, 시로미 등 450종이 넘는 희귀식물의 자생지로도 주목을 받는다. 이들 숲이 만들어내는 봄의 신록과 여름의 무성한 숲, 가을의 황홀한 단풍, 눈 덮인 겨울 풍광은 황홀하기 그지없다. 거대한 함지박에 고이고이 채워 건네는 한라산의 선물 같다. 옛사람들이 왜 이곳을 ‘하늘로 통하는 문[通天]’이니 ‘신들의 거처[靈室]’라는 예사롭지 않은 이름으로 불렀는지 수긍이 가고도 남는다. 이 구간에서는 그 누구도 걸음에 서두름이 없다. 뒤돌아보면 입이 떡 벌어지는 제주가 펼쳐진다. 불레오름, 이스렁오름, 삼형제오름, 돌오름, 영아리오름, 왕이메오름, 당오름, 정물오름, 원물오름(원수악), 산방산, 송악산 등 제주가 왜 오름의 왕국인지를 잘 보여준다.

 

탐방이 가능한 가장 고지대의 오름

영실기암을 벗어나며 거대한 산상 고원인 선작지왓이 나타난다. 영실기암과 선작지왓의 경계엔 한라산 구상나무군락이 넓게 띠를 이루는데, 고사한 개체가 많아서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선작지왓은 봄철 너른 고산평원을 화려하게 수놓는 털진달래와 제주조릿대가 장관인 관목지대다.

예쁜 길이 굽이굽이 돌아가는 선작지왓의 왼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세 개의 오름이 윗세오름이다. 1100고지 서쪽의 삼형제오름을 달리 ‘세오름’이라고 부르는데, 한라산 백록담 서쪽에 나란히 누운 이 세 개의 오름도 그렇다. 아래에 있는 삼형제오름에 비해 위쪽에 있어서 ‘윗세오름’이라 부른다. 신기하게도 삼형제오름과 윗세오름은 모두 백록담에서 정서(正西)로 이은 선상에 있다. 윗세오름은 백록담에 가까운 순으로 붉은오름, 누운오름(1,712m), 족은오름(1,701m)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이 세 오름은 모두 분화구가 없는 원추형 화산체다. 이 중 윗세족은오름에 탐방로가 나 있다.

탐방로는 지극히 단순하다. 한라산 등산로에서 계단을 따라 오름에 올랐다가 내려서는 게 전부다. 그러나 탐방이 가능한 제주의 오름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오름답게 정상에서 조망하는 풍광의 어떠함은 말이 필요 없다. 동쪽으로 누운오름과 붉은오름이 부드러운 능선을 그리고, 그 너머로 거칠고 신비로운 자태의 한라산 화구벽이 강력한 존재감을 뽐낸다. 북쪽으로는 드넓은 고산평원 끝에 솟은 만세동산, 사재비동산, 이스렁오름 등이 눈길을 끈다.

윗세족은오름에서 윗세오름대피소가 가깝고, 중간에 한라산의 모든 좋은 기운이 다 녹아든 듯 물맛 좋은 노루샘도 있다. 윗세오름대피소에서 선택할 수 있는 코스는 세 가지다. 대부분은 반대편의 어리목으로 내려선다. 고산평원의 이국적 풍광이 감동적으로 펼쳐지는 남벽분기점을 지나 돈내코로 가는 것은 최상의 선택이다. 그러나 오후 1시 이후는 출입이 통제된다. 시간이 어중간하다면 다시 영실로 가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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