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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 학회(學會)의 출범

글 사진 · 이규태(사람과 산 전 편집주간)

 

역사란 의미 있는 과거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등산사란 의미 있는 과거 등산에 관한 기록이며 그에 대한 인식이다. 과거의 인식은 미래의 예측도구가 된다. 지구 최고봉을 측량하고 신들의 영역으로 치부되던 히말라야 8천미터  상에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고 외치던 근대등산의 황금기. 등산이 추구하는 가치인 탐험과 도전정신은 최고의 빛을 발했다.

 

등산의 최고가치, 탐험과 도전정신의 퇴색

1953년 에베레스트 인류 초등에 이어 1977년엔 우리나라 고상돈도 정상에 섰다. 1986년에는 라인홀트 매스너가 히말라야 8천미터 14봉을 개인 최초로 완등했으며, 2000년엔 우리나라 엄홍길(2001년 시샤팡마 재등으로 등정 의혹 해소)이, 2001년엔 박영석이 연달아 14개봉 완등을 이루면서 등정 대열에 합류했다. 이러한 활동은 등산이 추구하는 가치와 더불어 산악인의 긍지와 자부심이 되었다. 전문산악인들이 추구하는 등반활동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강인한 체력을 길러주는 유익한 운동으로 각광을 받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2019년 기준으로 세계 8천미터 14봉 완등자는 43명이나 된다. 이제는 히말라야 14고봉을 모두 올랐다는 것쯤으로는 산악계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래서 무산소, 동계, 단독, 완전솔로 등의 이슈를 내걸고 등반에 임하지만 성공을 한다 해도 “또 올랐나?” 하는 정도다.

우리나라의 경우 14고봉 완등자는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 김재수, 김창호, 김미곤, 오은선 등이 있다. 이들의 활약은 한국산악인의 자랑이요 나아가 한국인의 강인함을 상징하기도 했으나 이제 8천미터 완등이라는 성과는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을 끌지 못할 뿐만 아니라 탐험과 도전의 상징성도 퇴색했다.

우리나라 에베레스트 초등자인 고상돈이 매킨리 등반 중에 사망하더니 에베레스트 여성초등자인 지현옥은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되고 말았다. 더욱이 8천미터 14고봉을 당시 세계최단시간에 오른 박영석이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되더니, 무산소로 세계최단기간에 14고봉을 오른 김창호마저 구르자히말에서 사망하자, 탐험과 도전정신으로 상징되는 등산의 가치는 “죽음이 그 한계인가?” 하는 자괴감 드러냈다.

그동안 등산이 추구했던 전통적 가치인 탐험과 도전정신의 퇴색은 세계적인 추세다. 탐험과 도전정신으로 무장했던 근대등산은 작금엔 무모한 경쟁을 유발해야만 사회의 관심을 끄는 유희가 되어가고 있다. 현대의 전문등산은 매스컴의 조명과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단순스포츠나 취미활동으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 근대등산 역사를 개관하는데 있어서 김정태의 <등산50년>과 손경석의 <한국등산사>는 매우 중요한 등산역사서다. <등산50년>은 김정태 개인의 활동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근대등산 초기의 전개과정이 기술되어 있고, <한국등산사>는 우리나라 근·현대등산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시대별로 집대성해놓은 책이다. 우리는 이러한 의미 있는 과거 사실들의 기록을 통해서 등산형태나 등산이 추구하는 가치의 변화를 예측한다.

김정태는 1969~1970년에 걸쳐 월간 <산>(당시는 <등산>)에 ‘한국의 산과 등산’이라는 글을 연재했었다. 그 후 1975년 11월부터 2개월간 <중앙일보>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 ‘등산50년’이란 제목으로 53회의 글을 썼다. 신문 연재를 끝내고 기고과정 중 착오된 부분도 바로잡고 월간 <산>에 연재했던 내용을 보충해 <등산50년>이란 책을 만들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등산사 정리의 출발점이 되었다. 나는 1969년 대학산악부에서 등반활동을 시작할 당시 월간 <산>에 연재된 ‘한국의 산과 등산’을 열심히 읽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2010년 8월 손경석에 의해 <한국등산사>가 발간되었다. 손경석은 등산을 학문의 대상으로 본 산악인이며 생전에 등산에 관한 많은 저술활동을 하였다. 그가 60년간의 자료수집과 20년에 걸쳐 집념으로 완성한 책이 바로 <한국등산사>다. 그는 책의 서문에 “이 책에서 서술하는 등산사는 완전한 정사(正史)라기보다는 시안(試案)이고, 아직 발굴되지 않은 숨겨진 많은 산악기록이 집대성되어 확립될 때까지의 가설”이라고 했다. 후학들에게 더 많은 자료를 발굴하여 미완의 등산사를 완성해주길 바라면서 등산을 학문으로 접근해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나는 이 책의 발간 당시 원고 정리와 교정 작업에 참여했었다.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명제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김정태의 <등산50년>은 자신의 등반체험과 당시까지의 산악활동 내지는 변천사를 기록했다. 개인적인 등반활동과 중학생 소년의 무용담 같은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어 등산사라기엔 다소 아쉬운 점이 있으나 1929년부터 1945년 한국산악회창립까지 우리나라 산악활동이 잘 정리되어 있다. 손경석의 <한국등산사>는 734쪽에 달하는 분량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 등산활동 중 의미 있는 과거사를 모두 망라하려고 노력한 책이다. 혜초의 중앙아시아순례부터 2008년 코오롱스포츠팀의 마나슬루 등정까지 우리나라 중요 등산활동 거의 모두가 기록되어 있다. 한국산악조난사도 년도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방대한 자료를 수록하다보니 사실관계의 확인(계획서는 있는데 보고서가 없어서 내용확인을 필요로 한 경우 등)이 필요한 부분도 있으나 이는 후학들의 몫이다.

 

한국산악학회 창립, 새로운 등산의 가치를 찾아야

지난 10월 30일 서울 종각역 인근에서 한국산악계에 의미 있는 모임이 있었다. 한국산악학회學會(가칭) 창립을 위한 발기인 모임이다. 우리나라 근대등산이 시작된 지 90여년. 등산의 대중화도 실현되었고 세계적으로 걸출한 산악인도 여럿 배출하였다. 산악단체도 너무 많이 생겼고 등산을 업으로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대학에 등산이란 선택강좌도 개설되고 전국 각 지역에 있는 사설등산학교에서 등산교육을 체계적으로 하고 있다.

2017년, 속초시 설악산자락에 국립산악박물관이 건립되고 2018년엔 같은 장소에 국립등산학교도 설립되었다. 등산의 양적 팽창에 비하면 만시지탄이지만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소위 등산문화를 형성해가는 사회적 내지는 산악계의 토양은 많이 다듬어졌다고 하겠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토양이 다듬어지자 등산이 추구해왔던 전통적 가치, 즉 탐험과 도전정신은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 히말라야 고봉에까지 인간의 발길이 모두 닿자 그곳에 도달하기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그 당위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상황에서 산악에 관한 학회(學會)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현재의 많은 등산학교는 등반기술, 위험으로부터 자기방어 그리고 등산의 역사나 등산예절을 교육과정으로 하고 있다. 물론 좋은 내용이고 필요한 것들이다. 현대등산은 다양한 목적과 다양한 방법으로 산에 간다. 정상이나 어려운 루트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목적에 따른 다양한 수단이 동원된다. 그러니 탐험이나 도전정신만을 그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산이라는 무대에서 각자의 목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 그것이 현대등산의 지향점이다.

서두에 언급한 바 우리는 등산사의 흐름에 따라 고산등반 파이어니어들이 활약하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이제부터는 등산의 목적 다양성에 기반하여 분야별 전문지식으로 무장하고 산으로 향해야 할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학회의 1차적인 활동은 당연히 등산과 관련된 철학, 문학, 등산사, 등반기술, 안전, 생태, 기상, 의학 등에 관한 전문지식의 축적이겠지만 나아가 지리, 민속역사, 문학, 인류학, 환경, 관광까지 연구하고 그 결과를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교류 공유해야 할 것이다.

의미 있는 과거의 사실, 즉 역사의 정리가 올바르지 못하면 등산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좌표설정 또한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학회의 출범을 앞두고 등산사를 제대로 정리하려고 노력하셨던 두 분 선배를 떠올리며 그의 기록정신에 새삼 머리가 숙여진다. 학회의 연구활동도 이분들의 기록에서 재출발하는 분야가 있을 것이다.

탐험과 도전정신을 추구하던 등산활동. 퇴색해가는 그 가치를 대체할 새로운 가치는 무엇인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오를 것인가? 이 역시 학회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학회는 금년 12월 창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회가 예정대로 출범한다면 그 역할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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