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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산악부창립 90여년,

아직도 오르고 있는가?

글 사진 · 이규태(사람과 산 전 편집주간)

 

1920년부터 1940년까지 대략 20년을 근대등산 여명기로 본다면 그 시기는 나라를 빼앗긴 암울한 시대였다. 사회활동은 물론 교육의 기회조차 차별당하면서 모든 문화활동은 감시의 대상이었다. 일본인은 강산을 약탈하고 휘젓고 다니는데, 정작 이 땅의 주인은 우리 산악을 마음대로 갈 수도 없었다.

근대 암벽등반의 출발점인 북한산 인수봉 초등에 관한 역사를 명확하게 결론내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1925년경, 인수봉 초등정이 미국인 교육자 언더우드 일행이냐? 당시 영국 부영사 아처와 한국인 임무냐? 아니면 그보다 빠른 시기의 미확인 한국인이냐? 우리의 산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서양인 틈바구니에서 좌고우면하면서 말썽 없이 올라야 했으니 역사가 잘 정리되기가 쉽지 않았다.

 

등산문화는 행위의 결과물

문화란 삶의 의미를 진보·향상시키는 정신적 활동과 그 결과물이다. 등산문화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간다. 조직이나 단체의 사람들과 교분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목표를 업그레이드한다. 그 결과물이 축적되어 문화의 색깔과 모습이 점차 드러난다. 여기에 더하여 문화의 질을 높이려면 학교교육시스템이 매우 중요하다. 불행하게도 당시 교육시스템은 식민지정책 테두리에서 그들의 필요에 따라 좌지우지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한국인의 교육기회는 적어지고 질은 떨어졌다. 그들의 식민지 교육정책에 의해 우리가 추구하려는 문화활동은 교묘히 저지당했다. 초등학교 중·고등, 대학에 이르는 교육편제가 우리와 일본 본국이 달랐고, 그에 따라 대학교육을 받는데 있어서 우리는 여러 면에서 불리하였다. 교육정책은 수차례 수정되었고 1930년 이후엔 전쟁준비에 골몰하면서 학생들은 노무동원과 학도병지원에 내몰렸다. 근대등산 초창기 기록을 정리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다. 오래 전에 이미 끝났어야 할 역사정리를 하기 위해서 아직도 자료를 뒤지고 있다. 암울하게 짓밟히고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했던 어두운 시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학제가 여러 번 바뀌는 가운데 초등학교는 지역에 따라 4년 5년 6년이 혼재하였고 중·고등학교는 4년 또는 5년제였다. 중학교 또는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과정인 전문학교로 진학한다. 국립대학격인 경성제국대학은 1924년 설립되었는데 2년 과정의 예과가 먼저 개교했고 이들의 졸업에 맞추어 1926년, 본과인 법문학부와 의학부가 정식 개교했다. 예과는 1934년부터 3년제로 바뀌었다. 대학 본과에 입학하려면 일본 본국 고등학교과정을 졸업해야 하는데 우리나라엔 일본과 같은 고등학교가 없었다. 우리나라 중학교나 고등보통학교 졸업자들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전 단계로 2년제 예과를 설치한다고 했으나 이러한 교육시스템은 일본인을 위한 것이지 한국인이 접근하기엔 교묘한 장애물이 많았다. 1929년 경성제대본과 첫 졸업 후 42년까지 13년 동안 총 졸업생은 1,846명에 불과하고 이 중 한국인은 627명뿐이었다.

 

등산은 모험과 도전의 행위에서 출발

등산은 모험과 도전의 행위에서 출발한다.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불안과 위험 속에 스스로를 던진다. 그 과정을 통과한 자만이 마음의 배낭에 감동과 환희 그리고 삶의 가치를 차곡차곡 채워올 수 있다. 이러한 행위가 한 번의 체험이 아닌 삶의 일부로 반복되면서 문화는 만들어진다. 등산문화를 형성, 계승시키는 데에는 대학의 등산활동이 중요한 토양이다. 1920년대에 결성된 학교 산악부의 맥이 90여년이 지난 오늘 한국 등산문화를 견인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대학산악부는 강력한 조직을 바탕으로 여러 장르의 등산을 다양하게 확장 발전시켜왔다. 그래서 이것이 우리나라 등산문화를 형성해왔다고 하겠다. 당시 학생산악운동을 선도했던 산악부로는 당시 5년제 고등보통학교인 양정고보가 단연 독보적이다. 배제고보와 경신학교에도 산악부가 있었는데 그 활동에 관한 구체적 내용이 없고 주로 탐사나 답사활동으로 추정된다.

대학과정에서는 보성전문학교(3년제)와 연희전문학교(상과 3년 기타 4년제) 그리고 세브란스의전(4년제)에서 산악부 활동이 시작되었다. 그 맥이 지금까지도 고대산악부와 연대산악부로 이어져 있다. 당시 국립대학인 경성제대는 예과산악부와 본과산악부가 개별적 혹은 합동으로 활동하였다. 이들 산악부활동은 근대등산여명기 우리나라 산악활동의 일부였으나 광복 후 일본이 물러나면서 그들도 함께 사라졌다. 다만 그들의 활동을 잠시 지켜본 우리 산악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러한 국내의 학교산악부활동과 별개로 일본에 있는 대학산악부가 우리나라에 원정 온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교토대산악부, 토쿄대산악부, 와세다대산악부, 간사이학생산악연맹 등이 주로 백두산, 관모봉, 한라산을 대상으로 등반했다. 그들 나름대로 새로운 대상지를 찾아 원정을 온 것이다. 이 또한 우리나라 근대등산 초창기의 한 점이라 하겠다.

당시 우리만의 산악단체를 결성하는 것은 경찰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1934년 결성된 양정산악부는 학교 승인을 받기까지 3년이 걸렸고, 1937년 결성된 백령회는 비밀결사라는 표현까지 했다. 필자가 알고 있는 초창기에 결성된 등산단체들을 년도 별로 살펴본다.

 

1926  무레사네(물에산에 음운. 김정섭이 결성)

1928    경신학교등산부(지도교사 김교문), 배제고보등산부(지도교사 김동혁),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등산부(자도교수 문창호)

1930  연희전문학교산악단(1936년부터 산악부)

1930  금강산협회

1934    양정산악부(김교신 교사가 개인지도하다가 37년 학교에서 승인되면서 황욱이 지도교사를 맡았다. 황욱은 일본 닛교대 유학 시 산악부 활동을 했다.)          

1937  백령회(엄흥섭 주형열 양두철 김정태 외)

1938  보전산악부 창립(지도교수 박희성)

 

이런 단체들이 정말 어려운 시대상황 속에 결성되어, 우리나라 근대등산의 기초를 닦았다. 90여년을 되돌아보면 머리가 숙여질 따름이다.

 

근대등산은 일반산악회와 학교산악부가 상호보완하며 견인

과거나 지금이나 학교산악부와 일반산악회(백령회 또는 개인그룹)의 등산 활동 전개방식에 각각의 특색과 장점이 있다.

학교산악부는 1) 방학을 이용 장거리, 장기간 등산이 가능하고 2)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많은 회원을 기반으로 동계등반, 해외원정 등 대규모 등반을 시도할 수 있고 3) 선후배 재학생 졸업생이 위계질서 속에서 오랜 세월 활동을 한다는 점이다.

한편 개인이나 일반산악회는 1) 빠른 결속력으로 단기간에 많은 등반을 할 수 있고 2) 기술이 뛰어난 회원을 중심으로 상향평준화된 등반결과를 도출하고 3) 학교 등 외부의 간섭 없이 특정 등산장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근대등산의 전개과정을 보면 개인이나 일반산악회가 새로운 장르의 등반을 견인하면 학교산악부가 강력한 조직을 바탕으로 여러 장르의 등산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 발전시켰다. 이러한 상호 보완적 흐름의 등산사. 이것이 우리나라 등산문화를 형성해왔다고 하겠다.

1938년 조선체육회가 일제에 의해 해체되고,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과 45년 일본의 패망과 광복 후 사회혼란 그리고 이어진 한국전쟁 발발과 휴전-. 숨 가쁘게 돌아간 민족의 혼란기는 산악운동의 암흑기였다. 이제 이런 역사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겠지만 작금의 대학산악부활동을 지켜보면서 ‘아직도 오르고 있는가?’ 반문해본다.

등산을 통해 추구해야할 문화적 가치가 흔들리는 것 같아 무언가 상실감이 밀려온다. 나만의 감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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