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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_ 여성 최단시간

 

’는 다짐과

나에 대한 믿으로!

 2020년 9월 1일, 백두대간의 최남단인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지난 1월에 남편과 함께 걸었던 동계 백두대간 종주와 달리 이번 종주는 나 홀로 걷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17일 13시간 29분이 지난 9월 18일 밤, 고성 진부령에 도착하였다. 기록과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그 길을 여성 홀로 걸으며 마주했던 어려움과 극복 과정, 그리고 그 여정 속의 백두대간을 기록한다.

글 사진 · 이하늘(코오롱스포츠 앰버서더)

 

“장거리 하이킹을 하면서 남편을 따라 걸으신 건가요?”

어느 날 들었던 이 질문은 한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PCT, CDT 그리고 AT 등 12,800km가 넘는 미국 장거리 트레일은 물론 세계 곳곳을 하이킹했던 나란 사람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질문자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수 있지만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인 이유는 스스로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 역시 궁금해졌다.

‘내가 산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혼자 힘으로 이겨내며 장거리 하이킹을 할 수 있을까?’

 

두두부부 이하늘? 고솔로 이하늘!

‘이하늘’이라는 내 이름보다는 ‘두두부부’라는 이름으로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2016년 6월, 나는 당시 남자친구인 양희종과 함께 미국 최고봉 마운트 휘트니(Mount Whitney)에서 결혼 서약을 맺었다. 이후 우리는 ‘두두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세계를 여행 중이다. 두두부부는 ‘두 바퀴의 자전거와 두 다리의 하이킹으로 세계를 여행하는 부부’ 라는 의미로, 자연을 좋아하는 우리가 주로 하는 여행 방식인 ‘하이킹’과 ‘자전거여행’에서 착안하여 지은 이름이다.

우리는 미국의 대표적인 3대 장거리 트레일인 PCT(Pacific Crest Trail), CDT(Continental Divide Trail), AT(Appalanchian Trail)를 모두 걸었다. 이 세 개의 트레일을 모두 걸은 하이커에게는 ‘트리플 크라운(Triple Crown)’이라는 명예가 주어지는데, 나는 한국 여자 최초로 트리플 크라우너가 되었고 동시에 양희종과 함께 부부동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다소 독특한 이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동안 두두부부라는 이름으로 남편과 함께했던 여정들과 달리 이번에는 ‘이하늘’이라는 이름을 걸고 나만의 여정을 시작하였다. 도전명, ‘고솔로 백두대간’. 목표는 백두대간 여성 최단시간 단독종주다.

하이킹과 트레일러닝 문화에는 FKT라는 것이 있다. FKT는 Fastest Known Time의 약자로 특정 트레일의 가장 빠른 기록을 의미한다. 이미 국내 백두대간 FKT 기록은 존재한다. 2019년 8월 말, 트레일러너 고민철과 박준섭이 도전했고, 이들은 13일 12시간 28분이라는 FKT를 달성했다. 나는 이들의 도전과 노력을 지켜보면서 백두대간 여성 FKT라는 목표를 갖게 되었다. 고솔로백두대간의 가장 큰 목표는 무사완주이지만, 나는 여성으로서 가장 빠르게 백두대간을 완주해보자는 2차 목표를 세웠다.

 

생명력 가득한 여름의 백두대간

9월 1일, 새벽 일찍 중산리에서 출발하여 천왕봉에 올랐다. 안개가 숲 속을 가득 채우고 있어 마치 구름 속을 걷는 것 같은 산행이 이어졌다. 가파른 오르막을 따라 계속 오르다 보니 어느새 발밑으로 구름이 깔리면서 선명하게 맑은 하늘이 나타났다. 이내 지리산의 산하를 꽉 채운 운해가 황홀한 일출에 물들었다. 흔히 ‘천왕봉 일출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지 볼 수 있다’라고 할 정도로 보기 힘들다고 하는데, 마치 고솔로백두대간의 시작을 하늘이 축복해주는 느낌이었다.

이번 종주는 사실 두 번째다. 지난 2020년 1월, 나는 남편과 동계 백두대간 종주를 끝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산행하니, 겨울과 여름의 백두대간이 많이 다름을 느꼈다. 나무들은 싱그러운 녹음으로 가득 하고, 대간길은 내내 수풀이 무성했다. 때로는 등산로가 수풀과 잔 나뭇가지로 완전히 뒤덮여있어, 신장을 훌쩍 뛰어넘는 높이의 수풀 사이를 헤치고 나갔다. 또한, 하루에 수백 번도 넘게 거미줄을 만났다. 그러다 보니 나의 팔과 다리는 종주 내내 풀독에 오르거나 크고 작은 상처로 가득했고 아물 틈이 없었다. 또한 생각했던 것만큼 빠르게 걷거나 뛰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백두대간의 여름은 겨울과 달리 생명력이 있었다. 다양한 동·식물이 활동하는 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는 특권을 만끽했다. 쉽게 볼 수 없는 곤충들은 물론, 산을 다니며 선배님들 어깨너머로 배웠던 야생화들을 감상하며 산행을 즐겼다. 하지만 위험도 있었다. 뱀을 만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고, 산속에서 멧돼지를 만나 몇 시간 동안은 주위를 잔뜩 경계한 채 하이킹을 진행하기도 했다.

 

예상 밖의 태풍… 위기 속 설악산

이번 종주는 비와 태풍이 나의 발목을 계속 잡았다. 내내 비가 와서 매일 레인재킷을 입어야만 했다. 때때로 종일 비를 맞으며 걸었던 날도 있다. 엎친 데 덮친 격 백두대간을 걷는 동안 두 개의 태풍이 우리나라를 지나가서 나의 계획에도 피해가 생겼다. 원래 목표했던 지점까지 가지 못하고 일과를 끝내야 하는 경우들이 생겼다.

백두대간 여성 최단시간 기록을 2차 목표를 가졌던 나는, 짓궂은 날씨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여느 장거리 하이킹 때는 이런 경우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곤 했지만, 이번에는 괜히 마음만 조급해지고 일기예보를 계속 바라볼 뿐이었다. ‘하계 백두대간’이라 뜨거운 태양과 더운 날씨를 예상했건만 긴 장마와 두 번의 태풍은 종주 일정을 자꾸만 수정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비록 조금 늦어질 수 있지만 예상 밖의 상황도 혼자 잘 견뎌내는 것이 이번 도전의 궁극적 목표 중 하나였다. ‘속도’보다는 가장 기본인 ‘안전’과 ‘행복한 하이킹’에 집중하기로 했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태풍을 핑계로 밀린 잠도 보충할 수 있고 얼마나 좋은가!

문제는 두 번의 태풍이 걸어가야 할 트레일 곳곳에 피해를 주었다는 것이다. 작은 나무들은 물론이고, 몇 십 년 동안 백두대간을 지켰을 울창한 나무들이 넘어져 있는 경우도 많았다. 가장 속상했던 것은 설악산의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태풍이 지나간 뒤 설악산국립공원의 모든 등산로는 통제되었다. 강풍에 등산로의 바위들이 모두 뜯겨 나가고 철계단은 엿가락처럼 휘어버렸다.

설악산국립공원의 백두대간 구간은 한계령~중청~대청~공룡능선~마등령까지 이어지는데(비법정구간인 마등령~미시령~신선봉 제외), 이는 통제 구간에 해당되었다. 이후로 구간별로 통제가 해제되는 곳도 있었지만, 내가 설악산국립공원 목전에 도착할 때는 백두대간 구간은 여전히 통제였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기에 입산이 가능한 구간으로 설악산에 올랐다. 우회로로 선택한 서북능선은 쉽지 않았지만, 맑고 쾌청한 날씨와 멋진 풍경이 나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었다.

 

함께 걷는 솔로 투게더  

매일 새벽 2~4시 휴대폰 알람을 듣고 잠에서 깼다. 종일 많은 수고를 해야 할 다리를 포함해 온몸의 근육과 관절들을 잠에서 깨운 뒤 서둘러 출발 준비를 하고, 캄캄한 산 속 트레일로 발걸음을 옮겨 15~18시간 동안 산을 걷고 뛰었다. 나는 이렇게 혼자 걷는 ‘고솔로’의 여정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것은 나 혼자만의 여정이 아니었다. 남편 양희종이 나의 든든한 서포터가 되어주었다. 백두대간은 전체구간 중 약 80번 크고 작은 도로를 만난다. 우리는 사전에 지점 간의 거리, 차량 진입 가능 여부 등을 고려해 보급지점을 정해두었다. 나는 백두대간을 계속 걸어가고 남편은 차량으로 보급지점으로 이동하여 물과 식량 보급, 그리고 휴식을 도왔다. 트레일의 상황에 따라 하루 1~2회 보급차량을 만날 수 있었고, 나는 서포터의 도움으로 더 긴 거리를, 더 오랜 시간 걷고 뛸 수 있었다.

늘 그렇듯 우 리는 최고의 한 팀이었다. 4년째 결혼생활과 장기 세계여행을 함께해 오며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편안한 마음으로 길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피곤한 몸 상태로 운전하고, 혼자 끼니를 허술히 때울 남편을 걱정했지만, 나를 산속에 혼자 보내두고 언제 오나, 별일은 없나 걱정했을 그에 비하면 아주 작은 걱정에 불과했을 것이다. 혼자 걸은 백두대간이지만 서포터의 역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더불어 이번 고솔로백두대간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많은 사람으로부터 응원을 받았다. 사전에 두두부부의 SNS를 통해 각자의 위치에서 땀 흘려 7km이상 하이킹하거나 걷거나 뛴 것을 인증하며 나의 도전 응원을 바라는 이벤트를 운영했다. 평소 친분이 있는 분들은 물론이고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보내주는 응원 메시지는 큰 감동이었고,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 나 홀로 걸었던 백두대간이지만 서포터 희종을 비롯하여 ‘고솔로 백두대간’을 응원해주는 많은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이번 여정을 우리는 ‘솔로 투게더’라고 부르기로 했다.

 

17일 13시간 29분 만에 도착한 진부령

백두대간 종주를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이슈는 아무래도 ‘비법정구간’이다. 백두대간에는 생태계보호나 군부대, 사유지 등의 이유로 출입을 금지한 비법정구간이 있다. 지난 동계종주에 이어 이번 종주 역시 ‘비법정구간은 모두 우회한다’는 철칙을 세워두었다. ‘악법도 법’이기에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성숙한 하이킹문화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비법정구간을 만날 때마다 진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백두대간 일부를 가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가지 못하게 비법정구간을 지정해두고 공식적인 우회로가 없는 것도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우회로로 찾은 길이 차도밖에 없어 위험한 구간도 많았다. 이번 종주를 준비하면서 도로 우회길이 아니라 산길을 연결한 우회로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산길 우회로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길을 찾느라고 한참을 헤매기도 했다. 백두대간이 우리나라의 장거리 트레일로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비법정구간이 해제되거나, 공식적인 우회로가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0년 9월 18일, 진부령으로 향하던 마지막 날, 종일 머릿속으로 백두대간에서의 지난 고군분투가 스쳐 지나갔다. 어떤 말로도 정리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느끼며 나아가는 마지막 여정, 마산봉을 지날 때는 울컥하는 감정이 샘솟았다가 마산봉 이후에는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 장거리 하이킹이 처음인 것도, 긴 길의 끝에 처음 서는 것도 아닌데 ‘도착의 순간’을 생각할 공간조차 없는 듯했다.

오후 8시경, 지리산 천왕봉을 출발한 지 17일 13시간 29분 만에 나는 남한 백두대간의 끝, 고성 진부령에 도착했다. 비법정구간을 우회하여 실제 주행거리는 800km가 넘었다. 긴 길이 끝났다는 즐거움은 아주 잠시였고 아쉬움이 몰려왔다. 신기한 감정이었다.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충분히 찾았는지 의문스러웠고 자신을 좀 더 독하게 내몰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분명 내 눈앞에 대간길이 이어지는데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한다는 것도 아쉬웠다. 동시에 다행이기도 했다. 아쉬움이 있어야 다음이 있다.

도전을 마무리하며 마음속으로 나의 가치관을 떠올린다. 나는 ‘작고 사소한 것’의 힘을 믿는다. 내가 내딛는 작은 한 발자국이 쌓이고 쌓여 긴 백두대간을 끝까지 걸은 것처럼, 가늠할 수 없는 오랜 시간 뒤의 행복보다는 목전의 행복한 하루가 모여 삶 전체가 행복해 질 것이라 믿는다. 또한, 나의 백두대간 여성 FKT 도전으로 인하여 자연을 즐기는 여성들이 더욱 많아지고, 여성의 강인함과 유연함을 세상에 전하는 도전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길 위에서 만나요. See you on the tr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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