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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영과 걷는 산16 _  

사이, 

납신다

 

원산 또는 납산으로 불렸던 호구산(626.7m)은 1983년 11월, 괴음산과 송등산 일대를 합쳐 남해군 군립공원에 지정됐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남해현 산천조엔 원산으로 기록됐지만 산의 형상이 호랑이를 닮아서 또는 지리산에서 건너온 호랑이가 이 산에 살게 되면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글 사진 · 황소영 객원기자

 

뭔 바람이 불었는지 덜컥 텐트를 사버렸다. 10만 원짜리 1인용 텐트는 취재산행 이틀 전 도착했다. 17년 전쯤 구입한 반포텍 시리우스에 이어 두 번째 구입이었다. 일행들과의 약속시간에 맞추려면 늦어도 새벽 5시 30분엔 일어나야 했다.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던데 나는 늘 피로에 찌들어 있었다. 선잠을 깨고, 씻고, 기차를 타고 약속 장소인 하동까지 가는 것보단 아예 산에서 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빨리 텐트를 쳐보고 싶단 생각이 더 컸던 것도 사실이다. 여자 혼자 산에서 야영을?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깟 공포쯤은 자유, 일탈, 설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염불암에서 호구산, 다음날은 비

묵직한 백패킹 배낭을 메었으니 가능한 포장도로는 걷지 않기로 한다. 남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염불암까지 간다. 길의 가장 끝에 염불암이 있었다. ‘호구산·송등산 정상 가는 길’ ‘수행 중 정숙’ 진회색 기와에 하얀 색으로 글씨가 쓰였다. 택시를 보내고 조용히 암자로 들어선다. 대웅전 옆을 돌아 산신각을 지나면 두 군데로 길이 나뉜다. 오른쪽은 원산(1.4km), 왼쪽은 송등산 방향인데 km만 남았고 숫자는 지워지고 없다. 원산은 호구산의 옛 이름이다. 당연히 원산으로 가야 맞지만 경사도가 만만치 않아 송등산 방향으로 길을 꺾는다. 둘러 가겠지만 난이도 면에선 이 편이 낫다. (다음날은 염불암 사방댐 옆으로 하산).

숲은 시간에 상관없이 어두웠다. 나름 괜찮았던 등산로는 갈림길에서 멀어질수록 흐릿하다. 걸음을 멈추고 두리번댈 만큼 좁았지만 다행히 길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시끄럽게 따라붙던 모기를 피해 올라서면 호구산과 송등산을 잇는 능선에 닿는다. 이정표엔 염불암까지 0.5km라고 적혔지만 출발 전 실행한 등산어플은 “1km를 걸어왔습니다.” 착실히 보고를 한다. 2km인 송등산을 등지고 0.7km로 가까워진 호구산으로 향한다. 이제부턴 길이 좋다. 가야 할 호구산의 펑퍼짐한 정상부도 또렷하게 보였다.

예상대로 산꼭대기엔 아무도 없었다. 봉수대는 당장이라도 연기를 올릴 것처럼 견고했고 노도를 품은 앵강만은 태풍전야를 짐작한 듯 잔잔하게 흔들렸다. 호구산 봉수대는 동쪽으론 금산, 남쪽으론 설흘산 봉수대와 맞닿았다. 말발굽 모양으로 휘어진 앵강만을 가운데 두고 세 개의 산이 마주선 셈이다. 산들은 바다를 호위하고 있었다. 남쪽에 앵강만이 있다면 북쪽엔 강진해가 있다. 잘록한 두 개의 만이 호구산 좌우로 펼쳐졌다. 노를 많이 생산해 이름이 붙은 갓 모양 노도는 ‘구운몽’ ‘사씨남정기’ ‘서포만필’을 쓴 김만중의 유배지로 더 유명한 섬이다.

한없이 넓어 보이는 정상이지만 대부분 바위로 이뤄져 텐트를 칠 곳은 마땅치 않다. 풀밭이 좋다 싶으면 큼직한 돌멩이가 복병처럼 박혔다. 딱 한 곳, 텐트 한 동 칠 수 있는 공간이 놓였다. 배낭을 열고 짐을 풀었는데 커다란 개(골든리트리버)와 어르신이 올라온다. 개는 질주 본능을 뽐내며 달려왔다. 슬그머니 스틱을 쥐지만 다가와 킁킁대는 생명체에 바짝 긴장이 된다. “이 놈은 안 물어요.” 주인은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지만 물고 안 물고는 둘째 문제다. 큰 개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겁이 난다.

퇴직 후 산 아래 다정마을에 정착했다는 어르신은 풀어놓은 짐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다 개와 함께 사라진다. 휴우, 안심도 찰라 하산한 줄 알았던 개가 다시 뛰어와 카메라닦이용 빨간 천을 물고 늘어진다. 뒤늦게 도착한 주인은 결국 목줄을 하고 녀석을 데려간다. 침이 덕지덕지 묻은 천은 세탁을 해도 쓸 수 없을 것 같다. 대신 텐트 앞에 두기로 한다. 작은 산짐승들이 개 냄새를 맡고 알아서 사라져주길 바라며…. 산중의 밤은 조용하다. 그럴싸한 일몰도, 밤하늘을 수놓은 별도 없었다. 데이터는 수시로 끊겨 인터넷 연결도 수월치 않다. 미리 사온 빵과 커피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잠이 든다.

일출시간에 맞춰 알람을 맞췄지만 텐트 밖 세상은 뿌옇게 흐려 있었다. 조금 더 자려고 눈을 붙였는데 후드득, 플라이를 두들기는 빗소리가 들린다. 태풍 하이선을 앞두고 있었지만 비는 내일부터 오기로 되어 있었다. 일기예보는 맞기도 했고 틀리기도 했다. “비가 와요. 출발하지 마세요.” 일행들에게 문자를 보내지만 어차피 가기로 한 산행이니 출발하겠단 답장이 온다. 오락가락, 비는 산위를 오가고 있었다. 한참 쏟아지는가 싶더니 잠시 잠잠해지기도 한다. 일행을 기다리는 동안 빵과 커피로 식사를 하고 잠자리를 정리한다. 간밤 내가 누웠던 풀들이 납작하게 눌렸다. 덕분에 냉기를 막고 폭신한 밤이 되었다. 풀들아, 고맙고 미안해!

 

이게 ‘찐’이야, 용문사 원점회귀

결국 일주일 만에 다시 가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주말이면 어김없이 비가 오고 날이 흐렸다. 하늘이 예뻤다면 백배는 더 멋있을 산이지만 어쩔 수 없다. 지난주엔 가장 짧은 염불암에서 올랐으니 거리를 조금 늘려보기로 한다. 괴음산~송등산~호구산 종주산행이나 다정마을 원점회귀도 있지만 이번엔 용문사 원점회귀다. 남해는 면 단위 택시 회사가 거의 없어 어디서든 읍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차를 갖고 갔다면 회수가 편한 원점회귀가 좋다. 펜션과 카페 일색인 미국마을을 지나 용문사 일주문 앞에 차를 세운다. 백련암 근처에 주차를 하면 하산 후 그만큼 더 걸어야 한다.

원효대사가 금산에 지은 보광사를 옮겨와 새로 창건한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찰이다. 임진왜란 중엔 이 절의 승려들이 의승군을 조직해 왜적에 맞서 싸웠다. 당시 사용됐던 깃발과 무기, 보물 제1849호 대웅전, 제1446호 괘불탱 등의 문화재가 있다. 본격적인 산행은 백련암에서 시작된다.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명인 용성스님과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석우스님, 또 성철스님이 머문 암자란다. 오래 된 숲을 올라서면 벤치가 있는 첫 번째 쉼터에 닿고, 10여분 후엔 두 번째 쉼터에 닿는다. 본격적인 오르막은 이제부터지만 용문사까지 차로 올랐으므로 크게 힘들진 않다.

밧줄을 잡고 올라서면 예상치 못한 조망이 터진다. 흐린 하늘 아래서도 남해의 바다와 연하게 물이 든 들녘은 참으로 어여뻤다. 커다란 배들은 먼 바다에서 제 나름의 목적대로 움직였고 바다 너머 공단은 오늘도 바쁘게 연기를 뿜어내며 땀을 흘렸다. 발아래 펼쳐진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다 길을 잇는다. 송등산 갈림길을 지나 호구산까진 약 1.4km. 우리가 걸어온 방향엔 염불암이라 적혔지만 실제론 백련암이다. 간혹 거리 표기가 돼 있지 않아 답답한데 앱에 따르면 대략 1.7km 이동, 차를 세워둔 용문사부터 치면 거리가 더 늘어난다.

익숙한 능선을 따라 호구산엘 오른다. 조망은 오히려 비가 왔던 일주일 전보다도 못하다. 아쉬움을 남겨둔 채 석평으로 내려서다 앵강고개 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 길엔 이름도 특이한 돗틀바위가 있다. 정상 못지않은 전망에 성벽까지 있어 기대 이상의 감동을 주는 바위다. 산성은 제법 정교하게 쌓였는데 안내판은 없다. 박진욱의 <남해유배지답사기>에는 “남해 사람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하여 산성을 쌓기 시작했다. 대국산성, 임진산성, 고진산성, 비란산성, 남해읍성, 고현산성. 이들은 내가 직접 눈으로 본 산성들이고 그 밖에도 열 개가 넘는다.”라고 쓰였으니 호구산의 산성도 “열 개가 넘는” 산성 중 하나인 모양이다.

귀양을 온 류의양은 용문사를 구경하고 “대천이 있어 큰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아니 한다 (중략) 짐짓 산성을 만들음직한 땅”이라는 글을 남겼단다. 용문사 옆엔 지금도 제법 큰 계곡이 있다. 이 물이 다 어디서 왔나 싶을 정도다. “저 산 이름이 뭡니까?”라고 묻는 박 작가에게 동네 어르신은 “우리사 늘 호랑이 코빡이라 했지.”라는 부분도 있다. 어려운 한자 이름 대신 예부터 산 아래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민화 속 호랑이처럼 살가운 산이자 적으로부터 민초들을 지켜낸 고마운 산이기도 하다.

돗틀바위와 앵강고개 사이 임도에서 용문사(2.3km)로 내려선다. 하얀색 이정표는 꼬질꼬질 때가 끼었다. 흰색보단 검은색 얼룩이 훨씬 많을 정도다. 이 이정표는 언제부터 이곳의 길잡이가 되었을까. 일요일이었지만 마주친 등산객은 겨우 두 명. 젊은 산꾼이 부쩍 줄었으니 머잖아 대다수 산길은 자연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산에겐 좋은 일이지만 괜스레 아쉬운 건 왜인지…. 풀길에서 포장도로로 바뀐 임도는 용문사 일주문 앞으로 이어졌다. 오전에 주차해둔 차를 회수해 남해를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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