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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백패킹

 

굴업도

가고 싶었으나, 가고 싶은

마음만큼 거부했던 굴업도

 

굴업도(掘業島)는 백패킹의 성지(聖地)라 불립니다. 2시간을 넘게 배를 타고 가야 하지만, 성지라는 이름에 걸맞은 시원한 바다 조망과 기가 막힌 일몰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굴업도는 인간들이 가지고 들어온 욕심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며, 많이 아픕니다. 아픈 굴업도를 치료하기 위해 아름다운 사람들과 굴업도로 들어가 봅니다.

글 사진 · 김석우 편집위원

 

굴업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에 속하는 섬으로 면적 1,710km2, 해안선 길이는 13.9km입니다. 최고봉은 덕물산(德物山, 122m)입니다. 인천에서 서남쪽으로 90km, 덕적도 남서쪽 13km 해상에 있습니다. 굴업(掘業)은 땅을 파는 일이 주업이라는 뜻으로 굴업도는 쟁기를 대고 갈만한 농지는 거의 없고 모두 괭이나 삽 등으로 파서 일구어야 하므로 굴업이란 지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섬살이가 팍팍한 곳이란 뜻일 겁니다.

굴업도를 가기 위해선 대부도 방아머리항이나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배를 타야 합니다. 우린 인천항에서 덕적도 그리고 덕적도에서 굴업도로 가는 배로 갈아타야 하는 항로를 선택하였습니다. 인천에서 덕적도로 가는 배는 하루 3번입니다. 시간은 그날그날 다르니, <가보고 싶은 섬> 사이트(https://island.haewoon.co.kr)에서 확인 후, 예매하면 됩니다. 이후 덕적도에서 굴업도로 들어가는 배는 평일 1번, 주말 2번입니다.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

10여 년 전에 굴업도를 처음 가봤습니다. 육지로부터 먼바다에 있는 섬이니, 주변 바다는 광활했고 근처에 있는 섬들은 눈을 지루하게 하지 않습니다. 한적한 캠핑을 즐기기에도 좋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라는 자랑스러운 생각에 가슴이 뛸 정도였습니다.

이후 굴업도는 점차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표가 없어서 섬을 들어가지 못하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가본 이후 2~3번 더 굴업도를 들어가면서 다시는 이 섬을 들어오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굴업도를 들어가는 배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굴업도의 아름다움을 외면하기 충분한 스트레스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수라장인 배 안에서는, 사람이 앉을 자리도 없는 객실 공간에 자신들의 배낭을 넣어두고 나 몰라라 하며 누워서 자는 사람이 태반이었습니다. 나이 드신 분들이나, 굴업도 주민들은, 발 빠른 젊은이들에게 밀려 배 난간을 잡고 서서 섬으로 들어갔습니다.

의협심 많은 누군가 “객실 안의 배낭은 밖으로 내놓고, 누워 있는 사람은 앉아서 다 같이 가자”라고 제안하면 울퉁불퉁한 근육의 키 큰 30, 40대의 사람들이 지금 싸워 보자는 거냐며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의 비싼 배낭이 바닷물에 젖으면 어떻게 하느냐? 네가 뭔데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냐? 한 번 해 보자는 거냐?”라며 과격하게 대응했습니다.  

한창 산과 섬을 다니는 재미에 빠진, 초보 백패커들에게는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을 겁니다. 영혼과 철학 없이 즐기기에만 급급했던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었습니다. 매번 굴업도를 갈 때마다 배 안에서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우악스러운 싸움들을 보며 다시는 오지 않기로 했습니다.

 

구름과 안개 속 굴업도 돌아보기

네이버 밴드 <해를 품은 달>의 리더인 전용호씨는 3년 전부터 굴업도 청소하기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매번 굴업도 백패킹을 할 때마다 청소의 필요성을 느끼다가 2018년 3월 17일~18일 첫 행사를 치릅니다. 첫 행사 때는 13명의 소수 인원이었지만, 봉사가 그들에게 준 기쁨과 희열이 가득한 후기 덕에 2번째인 2020년 6월엔 37명의 참가와 봉사로 성황리에 행사를 마쳤습니다. 항상 섬백패킹을 같이 하는 전남 광주광역시의 신문호씨 소개로 이 위대한 행사에 초대받았습니다. 가고 싶었으나, 가고 싶은 마음만큼 거부했던 굴업도를 다시 가게 된 이유입니다.

행사 하루 전, 서울, 일산, 전남 광주와 인천, 김포에서 오신 분들과 선발대로 굴업도로 들어갑니다. 코로나19의 영향에 더해 평일이어서 그런지 배 안은 조용하고 질서가 유지되었습니다. 덕적도를 떠나 굴업도로 가는 배에서는 선실 안에서는 눕지 말라는 방송도 나왔습니다. 그동안 반복되었던 무질서를 선사에서도 인지하였나 봅니다. 마음이 놓입니다. 무질서를 내버려두지 않고 고치려고 노력한다는 그 자체가 희망적입니다.

굴업도에 도착해서는 예약해둔 민박집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밥을 먹고 내일부터 이틀간 이루어지는 청소 행사에 앞서 미리 섬을 즐겨봅니다. 민박집 앞, 큰말 해변의 면적은 1.71km2, 길이 400여 미터이며, 썰물 때 너비는 300여 미터입니다. 완만한 경사는 해수욕장으로 큰 미덕입니다. 가족 여행지로도 손상이 없습니다.

목기미 해변으로 가봅니다. 청소 행사 장소입니다.  목기미 해변에는 육계사주가 있습니다. 파도가 힘을 잃고 약해진 곳의 만(灣)으로 안쪽에 대부분 모래가 쌓입니다. 이렇게 쌓인 모래를 지리학에서는 사빈(砂濱, sand beach)이라 부릅니다. 본섬인 동섬과 부속섬인 서섬을 이어주는 ‘연육사빈(聯陸沙濱)’이 있는 곳이 목기미 해변으로, 지형적으로 북풍이 많이 불어 거대한 파도가 밀려옵니다. 바로 청소 행사의 장소로 선정된 이유입니다. 해변에는 바다에서 떠 밀려 온 많은 쓰레기가 있습니다.

목기미 해변에는 코끼리 바위가 있습니다. 반드시 가봐야 할 곳입니다. 이름에 걸맞은 모양과 크기의 바위입니다. 목기미 해변을 지나 서섬에 가면 굴업도에서 가장 높은 덕물산(138.5m)과 연평산(128.4m)이 있습니다. 산에 올라가려고 하니, 비가 후두둑 떨어집니다. 섬 트레킹을 멈추고, 캠핑을 하기 위해 개머리 언덕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비를 맞으며, 구름과 안개를 뚫고 개머리 언덕을 향해 올라가는 길은 마치 외국에 있는 느낌이 듭니다.

몇 해 전, 백패커의 실수로 개머리 언덕에는 불이 났었습니다. 휴가를 나온 군인이라는 설이 있지만,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개머리 언덕은 사유지이고, 공식적으로 캠핑이 금지된 곳입니다. 개머리 언덕은 백패커들의 캠핑 장소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화장실과 식수원이 없습니다. 멋진 경치만큼이나 똥밭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이 상태로 내버려두기 보다는 개머리 언덕의 캠핑을 양성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 죄책감을 느끼며, 개머리 언덕에서 텐트를 칩니다.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내립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갑자기 하늘이 열립니다. 바다와 지는 해, 그리고 구름이 어우러져 멋진 일몰을 선사해 줍니다. 개머리 언덕의 진가를 확인하게 된 순간입니다. 여기저기 텐트를 치고 있던 많은 백패커들이 의자에 앉아 해가 지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숙연하고 행복해지는 순간입니다. 해가 지고, 다시 안개와 구름이 밀려옵니다. 청소 행사를 걱정하며 눈을 붙입니다.

 

생태계 위기에 희망을 가져온 사람들

아침이 밝아옵니다. 일출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지만, 결국 해 뜨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날이 개어, 청소 행사를 치르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아침 첫배로 부산, 영광, 용인, 원주, 김해 등에서 추가로 27명의 봉사자들이 들어옵니다. 굴업도로 들어오자마자 민박집에서 점심을 먹고, 청소 봉사를 시작합니다. 지난밤의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햇볕은 쨍쨍합니다.

전용호 리더의 지시대로 육지에서 가져온 마대자루와 톱, 장갑을 이용해 목기미 해변을 청소합니다. 그물, 스티로폴 어구, 플라스틱 어구, 페트병, 냉장고 등 각종 쓰레기를 열심히 주워 모읍니다. 준비해 온 400개의 마대 자루가 어느새 꽉 찹니다. 더운 여름, 뙤약볕 밑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일어섰다 앉았다 반복하며 쓰레기를 수거하는 모습은 고행하는 수도승 같습니다.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비로 들어와, 굴업도에서 전일정 음식을 사 먹고, 봉사활동을 하는 그들을 보니,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다음날, 여기저기 아프고 피곤한 몸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는 아침 시간, 전용호 리더와 몇몇은 못다 한 쓰레기 처리를 위해 해변으로 다시 조용히 나갑니다. 그중에는 굴업도에 처음 온, 김해에서 온 문재호씨도 있습니다. 경운기를 몰 수 있어서 전날 종일 경운기를 혼자 몰며, 모아 둔 쓰레기를 섬 쓰레기장으로 옮겼습니다. 같이 온 여자친구 장윤정씨는 사람들에게 휩쓸려 어쩔 수 없이 종일 땡볕에서 일만 했습니다.

두 연인은 시간이 남는 아침 시간에 오붓하게 개머리 언덕이라도 다녀오려 하였지만, 어제 다 옮기지 못한 쓰레기를 옮기느라, 굴업도에서 쓰레기만 보다 가게 되었습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라지만, 여자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합니다. 섭섭하고 화가 날 법도 한데 짜증 안내고, 아픈 몸만 만지고 있는 여자 친구도 참 대단합니다.

행사를 마친 후, 전용호 리더는 아쉬운 마음을 토로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와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배표가 모자라 많은 사람이 굴업도 청소 행사에 못 왔다고 합니다. 정기적으로 오가는 선사를 비롯해 옹진군청, 덕적면 행정선, 어업지도선, 해경, 서해 어업 관리단, 행정 안전부, 유람선, 낚싯배까지 알아보았다고 합니다. 하나하나 전화를 한 곳을 말하는 그의 말에는 짙은 섭섭함이 있습니다. 공짜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많은 돈을 쓰며 봉사 활동을 하는 이 아름다운 사람들에게 다음에는 많은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굴업도는 많이 아픕니다. 인간들이 데리고 들어온 사슴과 염소들이 식물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나무와 풀이 없어진 곳엔 흙이 무너지고, 사람이 머물고 간 자리에는 배설물이 가득합니다. 인간이 만든 위기에 희망을 가져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네이버 밴드 <해를 품은 달> 회원들의 봉사는 소중한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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