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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트레킹

히말라야 트레킹 _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네팔앓이,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걷고 걸으며 오롯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오후가 되면 끝이 보이지 않는 구름들이 서서히 몰려와 산을 감쌌다. 마치 신성한 신선의 나라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아 경건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번 여행이 나와 인연이 되어 이곳에 몸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글 사진 · 나보영(㈜포카라대표)

 

바쁜 일상 중에 일주일 이상의 시간을 내서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오는 일은 쉽지 않다. 더욱이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는 경우라면 가족들의 양해를 구하기란 더더욱 부담스럽다. 2018년도 여름 아는 지인들과 해외 트레킹에 관한 말이 나오자마자 흔쾌히 가겠노라 장담을 했지만 긴 시간 해외 트레킹을 다녀오겠노라고 말을 꺼내기까지 한동안 고민과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막상 남편에게 2주간의 휴가를 달라 하니 걱정이 무색하게도 흔쾌히 다녀오란다. 내가 다녀와야 남편도 다음 기회에 친구들과 계획을 잡을 수 있다나? 실제로 후에 남편은 친구들과 베트남을 즐겁게 다녀왔다.

사실 나는 이번 트레킹을 결정하기 전까지 네팔에 대해 아는 정보도 없었고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행이 네팔 트레킹을 계획한 일행 중 한 명이 이곳에 관한 전문가라고 할 만큼 여러 번의 트레킹 경험이 있었고 평소에도 함께 하는 일행들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꾸준히 산을 찾았었기에 트레킹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막상 출발일이 다가오자 롯지에서 여러 날을 먹고 자며 4,000m 이상을 오른다고 생각하니 슬슬 걱정이 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생각해보면 나에게 있어서는 이 무지함이 여행을 더욱더 신비롭게 하고 멋진 추억으로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놀라움으로 다가온 네팔의 첫인상

여행기간 2주일 중 일주일은 스위스로 일주일은 네팔로 일정을 진행하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스위스의 3,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을 미리 다녀온 것이 빠른 일정으로 진행된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고산증 예방에 큰 도움이 되었다. 스위스 여행을 마치고 일행 중 몇 명은 한국으로, 나를 포함한 3명은 네팔로 향했다. 헤어지는 공항에서 네팔로 이동하는 우리를 보며 얼마나 부러워하던지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네팔의 첫인상은 놀라움 그 자체다. 특히 공항 시스템 대부분이 사람의 인력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마치 80년대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듯 싶었다. 출입국 심사 직원은 대한민국 여권을 보더니 한국말로 인사를 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팔 사람에게 한국은 좋은 이미지 인 것 같았다. 어렵게 느껴졌던 입국심사를 무사히 마치고 타멜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탔다. 네팔의 도로는 신호등도 차선도 없었는데 그들 나름의 규칙으로 흐름이 있는 것 같았다. 도로에는 소들도 간간히 보였는데 네팔인들은 소를 신성시해서 기르던 소가 늙거나 병들면 풀어주어 자유롭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게 한다고 했다. 네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을 믿고 동물을 신성시하며 그들과 공존하는 곳. 이곳은 네팔이었다.

밤부터 내린 비는 새벽이 되니 폭우로 변했고 신기하게도 새벽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아졌다. 몬순 시기에는 매일 밤새도록 많은 비가 내리고 오전에는 그치기를 반복한다. 특히나 이 시기에는 비행기 결항률이 높아 이른 시간 비행 편만 포카라로 이동 가능한 날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도 오전 7시 비행기로 예매했으나 공항에 도착하니 결국 흐린 날씨로 인해 비행이 지연되고 있었다. 시골 버스 터미널을 연상시키는 공항 안에는 안내 방송도 비행 상황을 알려주는 전광판도 없어서 우리가 상황을 지켜보고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일행이 가서 물어보니 지금 탑승해야 한단다. 처음 타보는 경비행기도 이런 상황들도 그저 신기하고 즐거운 경험이여서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비행기에 올라 일행의 배려로 오른쪽 창가 쪽에 앉았는데 포카라로 이동 중에 안나푸르나를 조망할 수 있는 명당 자리였다.

 

한국말은 어려워

포카라에 도착하니 라주(현재 ㈜포카라여행사 네팔현지 직원)가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 있었다. 라주는 네팔 현지 에이전시 담당자로 훤칠한 외모의 호남형인데 얼마 전까지 한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한국어가 유창했다. 긴 시간 동안 트레킹을 진행 해줄 가이드 겸 포터 캠과 수쿠와도 인사를 하였는데, 다행히도 캠은 한국말을 잘했고 수쿠는 영어로 간단한 대화가 가능했다. 우리는 트레킹 출발 전에 든든히 배를 채울 겸 가이드들과 함께 근처 한식당으로 향했다. 다시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고 식사를 하는 동안 라주에게 우비를 구해다 줄 수 있느냐고 부탁을 했다.

“라주, 미안한데 우의를 준비 못해서 그러는데 라주가 잘 아는 곳에서 우의 2개만 사다줄 수 있어요? 고퀄리티 우의로요!!”

“네, 알겠습니다.”

라주는 헬멧을 쓰고 멋지게 오토바이로 빗속을 뚫고 사라졌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도착한 라주는 특유의 멋진 미소를 보이며 오이 두 개를 내밀었다.

“고퀄리티 우의 두 개입니다.”

라주의 손에는 엄청 크고 튼튼해 보이는 오이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순간 우리는 다 같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다.

“라주, 오이 말고 우의, 우비요~”

라주는 다시 빗속을 뚫고 사라졌고 잠시 후 정말 튼튼한 고퀄리티 우의를 사다 주었다. 라주 덕분에 우리는 긴장을 풀고 즐거운 마음으로 트레킹을 출발할 수 있었다.

 

트레킹 시작 중 만난 무서운 복병

네팔은 매일 계속 쏟아지는 비로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특히나 우리의 목적지가 가까워  질수록 길은 점점 험해졌고, 이런 길을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가는 도중에 기사는 아는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의 양해를 구하고 차에 태우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차량 문 쪽에 매달렸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내렸다. 절대로 잠들 수 없을 듯한 비포장도로를 달린 지 3시간. 드디어 우리의 트레킹 시작지인 시와이에 도착하였다. 보통은 마큐에서 시작하나 도로 상황이 좋지 않아 이날은 시와이에서 트레킹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임도를 걸어 마큐를 지나니 조금 큰 마을인 촘롱에 도착하였다. 이러한 마을의 중심부에는 사람들이 기도를 하는 불상을 모신 사당이 있고 그 위로 강렬한 색의 천이 바람에 날리고 있는 타르초를 자주 볼 수 있다. 타르초를 자세히 보면 깨알 같은 글씨로 불교 경전이 쓰여 져 있는데 바람을 통해 온 세상에 부처님 말씀이 퍼지길 바라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했다. 오늘 최대한 많은 거리를 걸어야 했기에 잠깐의 여유를 느끼고는 다시 다음 목적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네팔은 우기 동안 롯지를 정비하고 새로 증설하는 곳이 많았는데 마큐에서 촘롱으로 이어진 다리도 공사 중이었다. 얼마 전까지 다리가 없었을 때는 계곡을 돌아 한 시간 반을 더 걸었어야 했는데 특히나 그 구간은 거머리가 많은데 피해갈 수 있다며, 우리에게 운이 좋다고 캠이 말했다.

트레킹 루트는 오르막 내리막이 있는 돌계단이 많았지만 둘레길을 걷는 듯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도중에 가슴 졸이게 만드는 거머리들의 출몰로 신경이 예민해졌다. 네팔 거머리는 습기가 있는 곳이면 돌, 나무, 진흙, 계단 등 어디든지 붙어 있다가 동물이나 사람들이 지나가면 달라붙었다. 출발하기 전 라주가 소금을 챙겨줘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거머리 퇴치용이었던 것이다. 소금을 다리에 발라도 소용없길래 소금물을 만들어 양말과 신발에 뿌려주니 확실히 달라붙는 수가 줄어들었다. 우리는 거머리 출몰 구간을 지날 때마다 발에 소금물을 뿌리고 최대한 빨리 그 지역을 벗어나서 달라붙은 거머리를 떼어내는 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힘들다고 느낄 때쯤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없던 에너지도 만들어 주는 거머리들이였다.

아래 시누와에 다다르니 어두워진 주변으로 운무가 몰려와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했다. 힘들지만 충분히 보상이 되는 멋진 경험이었다. 시누와(아래)에 숙소를 정하고 첫 롯지 식사를 하였는데 오래 걷고 허기가 져서인지 이날 먹은 프라이드치킨 라이스는 여러 번의 롯지 식사 중 최고로 기억될 정도였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내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안나푸르나를 향해 한 발씩 앞으로

밤새 비가 많이도 내렸다. 일찍 잠든 탓인지 새벽 일찍 눈이 떠졌고 밖으로 나오니 비는 그쳤다. 오늘도 어제만큼 걸어서 데우랄리까지 가야 했기 때문에 일찍 서둘러 출발했다. 우리가 걷는 트레킹 길은 오래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왕래하던 산길로 사람들도 동물들도 함께 이용한다. 가끔씩 지나가는 당나귀 떼를 피해 옆으로 비켜주기도 하고 가끔씩 만나는 외국인 트레커들에게 “나마스떼!”라고 인사하며 잠깐씩 휴식을 취했다.

위 시누와에 다다르니 조망이 너무 좋은 롯지를 만났는데 잠깐 쉬며 따뜻하고 향긋한 밀크티를 마시며 몸을 녹였다. 이 순간이 네팔 트레킹 중 가장 좋았던 기억이 중 하나인데 지금도 일상에 지칠 때쯤이면 그리워지는 그곳이기도 하다.

도반과 뱀부를 지나 히말라야호텔롯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곳의 주인은 캠과 수쿠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우리를 맞아주었는데 데우랄리롯지 주인과 친척이라 했다. 안나푸르나의 롯지들은 대부분 한 가족의 친척들이 운영하는 것 같았다.

데우랄리에 가까워질수록 멀리 안나푸르나 설산이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였다. 3,000m 고지대로 접어들면서 오전과는 산세도 경치도 확실히 달라졌다. 매일 내리는 많은 비는 멋진 폭포들을 끊임없이 만들었고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수많은 폭포를 보는 재미로 힘들 줄도 모르고 걷고 또 걸었다. 조금씩 숨이 가빠오고 발걸음이 느려졌는데 이때부터 고산증세가 조금씩 나타났다.

데우랄리에 도착하니 다시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고, 이곳에서는 안나푸르나 설봉을 보기 위해 2~3일씩 대기하는 트레커들로 북적였다. 옷은 땀과 비로 젖어있었고 얼른 옷을 갈아입었는데도 체온이 내려가 몸이 떨렸다. 캠에게 날진 물병에 뜨거운 물을 받아 달라고 하고 안고 있으니 몸이 따뜻해졌다. 한적한 다른 롯지들보다 활기에 넘치는 데우랄리롯지가 좋았다. 다른 트레커들 말로는 며칠 동안 계속 구름에 가려져 안나푸르나 설봉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부디 내일은 볼 수 있기를….

역시나 밤새 많은 비가 내렸다. 우리는 일정상 하루 더 데우랄리에서 머물기로 했다. 가벼운 차림으로 ABC까지 다녀오기로 하고 서둘러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대부분 오전 일찍 구름이 걷히며 설봉이 보인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날씨가 흐려 있어서 시야가 트이지 않았다. ABC까지 다녀오는 것에 의미를 두자고 서로를 위로했다. 데우랄리에서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까지는 계곡을 따라 웅장하게 떨어지는 폭포들을 즐기며 지루한 줄 모르고 올라갔고 MBC부터 ABC까지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분지가 펼쳐졌고, 안나푸르나 산맥에 갇힌 운무가 신비함을 자아냈다.

 

안나푸르나 여신이 선사한 경이로운 선물

높은 고도 때문인지 몇 걸음만 걸어도 금방 숨이 찾다. 쉴 때마다 보이는 많은 야생화들은 자연스레 카메라를 꺼내게 만들었다. MBC를 지나온 지 한 시간쯤 걸었을까 드디어 ABC 이정표가 보였다. “NAMASTE”라고 쓰여 있는 글자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주변은 운무로 가득 차 있어서 롯지 마저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고대했던 안나푸르나 설봉들은 더욱이 찾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어 데우랄리로 하산을 하면서도 힘들게 올라온 그 길을 아쉬워하며 혹시나 하는 기대로 걷는 내내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였다. 일행 중 한명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순간 구름이 걷히며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 설봉들이 하늘에 떠있는 섬처럼 구름 위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멋진 산들을 본 순간 얼마나 행복하던지. 멀리 타국에서 온 이방인들에 대한 안나푸르나 여신의 선물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구름이 몰려오더니 산들이 순식간에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이런 선물을 받은 우리는 가슴이 뛰었다.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고 안나푸르나의 또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우리는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네팔에 도착한 이후로 날씨가 가장 좋은 날이었다. 데우랄리 뒤쪽으로 안나푸르나 설봉이 너무나 크고 아름답게 보였다. 아, 시간이 하루만 더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짧은 일정으로 이곳을 찾은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보이지 않았던 산들, 마을들,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교복을 입은 작은 아이들과 웃으며 인사도 하고 항상 어디에선가 나타나 길을 안내하고 사라지던 검둥이 강아지의 에스코트를 다시 받으며 발걸음도 재촉했다. 촘롱의 롯지에서는 뜨거운 물로 샤워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렇게 트레킹 마지막 밤이 지나갔다.

 

아쉬운 이별과 그리움, 그리고 네팔앓이

다음날은 시간 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조금 늦장을 부리며 걸었다. 트레킹이 곧 끝난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고 언제 다시 올수 있을지 모르는 이곳에서의 경험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시와이에 도착하니 지프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두 번째 타는 지프라 그런지 고단함 때문이었는지 그렇게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잠이 들다가 차가 멈춰서 깼는데 나야플이었다. 캠은 차에서 내려 체크 포인트에서 무사히 하산했다는 도장을 받은 후 팀스퍼밋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었는데, 이 종이 한 장이 그렇게 값질 수가 없었다.

포카라에 도착해서 호텔로 이동했다. 전기 상황조차 열악했던 롯지에서 생활하다 호텔에 머무니 새삼 느껴지는 문명의 혜택이 이렇게 감사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간단히 씻고 캠과 수크 라주와 만나 호텔 주변 레이크사이드를 돌며 주변도 보고 지인들에게 선물할 네팔에서 유명한 밀크티와 녹차도 샀다. 우리는 라주 찬스로 싸고 질 좋은 물건을 구입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함께 고생한 가이드 캠과 수쿠와 함께 한식당에서 삼겹살로 회포를 풀었다. 며칠을 동고동락하며 함께 고생했는데 이제 마지막이라니 너무나 아쉽기만 했다. 이렇게 네팔과 하나씩 이별을 하고 있었다.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수속을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는 네팔과 정말 이별이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몇 주 동안 네팔앓이를 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곳의 풍경들과 바람에 휘날리던 타르초와 고요했던 고원 그리고 신비로웠던 운무까지 그곳에서 정서적으로 느꼈던 교감, 그곳의 사람들이 그렇게 그립고 보고 싶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네팔을 다녀온 사람들이 다시 네팔을 찾는 것 같다. 나 역시 다시 한 번 그립고 그리운 그곳으로 갈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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