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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숲길

 

제주시의 일출 명소, 으뜸가는 산책로

사라오름[사라봉]과 베리오름[별도봉]

글 사진 · 이승태 편집위원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한 봄이 가고 있다. 올봄은 마냥 속절없이 간다. ‘코로나19’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은 가운데, 하루가 멀다하고 들어오는 외출 자제와 사회적 거리 두기의 당부를 가장한 협박(?)에 가까운 메시지에 꽃구경은 고사하고 몸과 마음마저 ‘꼼짝 마!’ 상태. 그래도 살면서 어느 때에 이렇게 국가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었나 싶어 고맙기도 한 2020년 봄날이 스치듯 저만치 가고 있다.

 

제주의 관문이자 수문장인 사라봉

제주도엔 368개나 되는 오름이 있다지만 제주시가지엔 오름이 거의 없다. 제주공항 서쪽의 도두봉과 동쪽의 사라봉, 별도봉 정도가 전부다. 물론 남쪽 한라산 자락을 따라 여러 오름이 있지만 시내에 있다고 하기엔 멀다.

제주시의 동쪽에 솟은 사라봉(紗羅峰, 148m)은 제주의 관문으로 통한다. 바로 아래에 제주여객터미널이 있어서 각지에서 뱃길을 통해 제주로 들어오거나, 떠나는 이 모두에게 사라봉은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사라봉은 시내에 있는 오름이어서 일찍이 공원으로 개발되었다. 탐방로가 정비되고, 곳곳에 쉼터와 운동시설이 들어섰다. 주차장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음수대도 있어서 이용이 편한 곳이다. 당연히 제주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사랑도 한몸에 받는다.

건입동의 사라봉 공영 주차장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가장 인기다. 제주올레 18코스기도 한 이 길을 따라 굵은 벚나무가 즐비해서  3월 말, 4월 초면 꽃대궐을 이룬다. 정상엔 팔각정자 망양정이 우뚝하다. 콘크리트로 지은 것이지만 팔방으로 뻗어간 추녀의 끝선이 날렵하고, 난간이며 양쪽의 계단이 깔끔해서 맘에 드는 건물이다. 망양정에서는 제주항을 비롯한 제주시 일대가 잘 보인다. 주변으로 웃자란 나무들로 조망이 가리기도 하지만 멀리 수많은 오름을 품고 웅장한 산세를 펼친 한라산의 자태가 듬직하고 동쪽의 내로라하는 오름들도 조망된다. 북쪽으로 펼쳐진 망망대해 또한 가슴을 뻥 뚫어주는 풍광이다.

망양정 옆엔 옛 봉수대가 복원되어 있다. 좀 더 동쪽의 원당봉수와 서쪽의 도원봉수와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라봉수는 제주도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되었다. 봉수대 옆엔 목책을 두른 곳에 시커먼 아가리를 벌린 동굴이 보인다. 일제가 파놓은 진지동굴이다. 일제강점기 제주시엔 현재의 제주국제공항인 ‘정뜨르비행장’과 동쪽의 ‘진드르 비행장’이 있었는데, 이를 방어하기 위해 구축한 것이다. 사라봉에 판 것만 모두 8개나 된다.  

‘사라(紗羅)’라는 이름에 관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전해온다. 잔디로 뒤덮인 오름 사면에 석양이 비친 모습이 황색 비단을 펼쳐놓은 것 같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거나, 동쪽이라는 뜻의 우리 옛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신성한 산 이름에 흔히 쓴 ‘’에서 나온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성판악에서 한라산 백록담으로 오르는 산길 중간에서도 사라오름을 만난다. 동그란 분화구에 물이 고인 풍광이 아름다워 사랑받는 오름이다.

 

제주만의 독특한 정체성, 칠머리당

망양정에서 올레길을 따라 동쪽으로 조금 내려서다 보면 ‘제주 칠머리당’이 나온다. 칠머리당이란 바다에 기대 생계를 이어가는 제주의 선주와 어부, 좀녀(해녀)가 해신에게 무사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던 곳이다. 해마다 음력 2월 초하루에 제주를 찾아오는 영등신을 맞이하는 영등굿을, 14일에는 떠나보내는 송별제를 지낸다. ‘영등굿’은 마을의 심방(무당)들이 바람의 여신인 영등 할머니와 용왕, 산신령 등 영등신에게 풍작과 풍어를 기원하며 벌이는 굿으로, 제주 곳곳에서 열린다. 이곳 제주 칠머리당은 본래 건입동의 건입포에 있던 것으로, 제주 항만공사로 본 터가 헐리며 이곳저곳 떠돌다가 여기로 옮겨온 것이다. 지금은 여기에 세 개의 신석(神石)만 모시고 굿은 문화재전수관에서 치르고 있다.

제주 사람들은 영등신이 떠나면서 제주에 봄이 시작된다고 믿었다. 영등신이 제주를 떠나면서 해안을 한 바퀴 도는데, 이때 해산물의 씨를 풍성하게 뿌린다고도 믿었다. 그래서 마을의 심방뿐만 아니라 좀녀와 배를 소유한 선주들이 영등굿의 주요 후원자들이었다. 바다를 생각하는 제주민들의 마음이 어떠한지, 제주민들의 독특한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영등굿은 송별제가 더 크게 치러진다. 이때는 굿판을 보려 전국에서 인파가 몰리기도 한다.

 

올레코스 중 손꼽히게 아름다운 별도봉길

사라봉은 이웃한 베리오름(별도봉, 136m)과 중간에 알오름을 끼고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현재 발행되는 모든 지도엔 ‘별도봉’이라 적혔지만 본디 이름은 ‘베리오름’이다. ‘베리’는 바닷가 낭떠러지를 뜻하는 제주어로, 이 오름의 지형을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베리오름과 사라봉은 능선을 따라 이어가거나 각각 탐방할 수도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두 오름을 함께 엮으며 난 올레길을 따라 탐방하는 것이다. 제주올레 18코스가 이 두 오름의 북쪽 산허리를 따라 이어진다. 제주항을 왼쪽에 끼고 오름 자락을 굽어 도는 이 길은 무척 아름다워서 눈이 호강한다. 발아래로 펼쳐진 푸른 제주 바다가 청량하기 그지없고, 부드럽게 굽어 도는 길 자체는 물론, 중간에 만나는 ‘애기 업은돌’ 등 아름다운 풍광이 쉼 없이 이어지며 자꾸만 걸음을 붙든다.

별도봉 자락을 돌아 나오면 화북천 건너로 바닷가에 옹기종기 터를 잡은 화북마을과 그 너머의 원당봉도 보인다. 눈이 시릴 만큼 짙푸른 바다가 알록달록한 지붕을 한 화북마을과 잘 어울린다. 이 풍광 또한 여간 아름다운 게 아니어서 이래저래 즐거운 걸음이다. 화북천을 내려서는 길에 여러 개의 돌담이 둘러쳐진 풀이 무성한 빈터를 만나게 된다. 이곳은 4·3유적지인 ‘잃어버린 마을(곤을동)’이다. 1949년 국방경비대에 의해 ‘안곤을’과 ‘가운데곤을’, ‘밧곤을’의 67가구 모두가 불타고 인적이 끊긴 비운의 마을이다. 당시의 아픔을 웅변하는 듯 휑하게 남은 돌담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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