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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숲길

 

삿갓 닮은 제주 김녕의 북망산

삿갓오름(입산봉)

글 사진 · 이승태 편집위원

 

화산섬 제주도에는 기생화산인 오름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다. 368개나 되는 크고 작은 화산체가 제주도 곳곳에 흩어져 감동적인 제주의 풍광을 이룬다. 오름은 제주의 마을과 마을을 이루는 모태가 되었다. 제주 어디를 가도 오름이 있고, 마을은 오름을 배경 삼아 옹기종기 정겹게 들어섰다. 오름은 제주 사람들이 떠받들던 신들의 거처며, 오름과 그 주변으로 넓게 펼쳐진 거친 황무지인 ‘뱅듸(버덩)’는 예부터 말과 소를 키우는 터전이었다. 제주 사람들은 오름으로 억새와 띠를 베러 다니고, 그 자락에서 고사리를 꺾고 나물을 캐며 살아왔다. 그러니 제주인들에게 오름은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제주 사람들이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에 기대어 살다가 오름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을까!

 

망자의 고향, 삿갓오름

오름과 뱅듸를 걷다 보면 수많은 무덤[산담]을 만나게 된다. 거친 돌과 울창한 수풀로 뒤덮인, 사나운 땅 뱅듸를 개간하며 나온 돌로 밭담을 쌓고, 집을 지어 살던 제주 사람들이 죽어서 그 오름과 뱅듸에 묻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름을 다니다 보면 대부분의 양지바른 사면에서 마을 공동묘지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오름은 제주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이고, 망자의 고향인 것이다.

제주시 구좌읍 김녕리에 있는 삿갓오름은 이 점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오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묘지라고 해야 할 정도로 오름 사면을 따라 무덤이 빈틈없이 들어찼다. 우도의 우도봉을 이루는 세 봉우리 중 한 곳에도 무덤이 빼곡하지만 삿갓오름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하도 밀도가 높다 보니 산담 모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무덤도 수두룩하다. 봉분만 서로 다닥다닥 붙은 꼴인 셈. 도무지 무덤을 피해서는 오름을 오를 수 없을 지경이니, 보고도 놀랄 따름이다.

해발 85미터에 불과한 낮은 산인 삿갓오름은 안에 둥근 굼부리가 패어 있고, 산의 전체 모양이 삿갓을 닮아서 이름 붙었다. 한자로는 입산(笠山)이라고 쓴다. 달리 입산봉(笠山峰)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에 이 오름에 봉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봉수대가 있던 봉우리가 ‘망동산’이다.

삿갓오름의 정상부 굼부리는 2만 평쯤이다. 오름 높이에 비해 무척 큰 편이다. 신비로운 것은 분화구 가운데에 100평 정도 넓이의 연못이 있다는 것. 수십 년 전에는 이 연못을 이용해 논농사도 지었다고 하나 지금은 비닐하우스와 채소밭이 들어앉았다. 화구벽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밭뙈기가 한가운데 연못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퍼져 있어서 잘 가꾼 정원처럼 보인다.

이 밭의 한 곳에서 선사시대의 돌괭이 두 개가 발견되기도 했다. 선사시대의 농기구인 돌로 만든 괭이가 출토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수천 년 전 이곳에 선사인이 살았던 셈이다.  

삿갓오름 굼부리 안의 경작지와 북사면과 동사면 일부의 솔숲을 제외한 전체가 무덤이다. 옛 봉수대조차 흔적이 없다. 지금은 더 묻을 공간조차 안 보인다. 옛날엔 무덤 하나의 면적이 네 평을 넘을 수 없다는 읍장의 경고문이 붙었을 정도라고 하니 어지간히 명당이거나 정말 묻을 공간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돗제를 지내던 궤네깃당과 궤네기굴

탐방은 서쪽의 김녕농협 농산물저온저장고 앞에서 시작한다. 저장고 앞, 삿갓오름과의 사이는 보리밭인데, 밭 가운데 기괴하게 가지를 뻗은 팽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궤네깃당’의 당산목이다. 조선시대까지 제를 지내던 궤네깃당은 살아 있는 돼지를 이곳으로 끌고 와서 삶아 제물로 차리는 돗제가 이뤄지던 곳이다. 그 후 4·3사건을 겪으면서 당에 다니지 못하게 되자 각 가정에서 돗제를 지낸다고 한다.

궤네깃당 바로 아래엔 제법 커다란 동굴이 있다. 궤네기굴이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이 용암동굴은 전체 길이가 200미터쯤이다. 중세시대 이후 지역 사람들은 궤네깃당에서 액을 물리치고 풍년과 무병장수를 빌며 제를 지내왔다.

궤네깃당을 마주보는 곳에 입산봉 들머리가 있다. 빼곡한 무덤 사이로 난 길은 분화구의 금산농장으로 이어진다. 농장 대문에서 양쪽 화구벽을 따라 오르면 된다. 길은 선명하다가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빼곡한 무덤 사이에서 사라진다. 딱히 구분된 탐방로가 있는 게 아니어서 능선을 따른다는 마음으로 길을 찾으면 된다.

들머리 반대편, 그러니까 동쪽이 정상이다. 산담이 두텁고 무덤 앞에 방풍림처럼 나무를 심어둔 제법 번듯하고 커다란 무덤 하나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늘에서 보니 이 무덤을 중심으로 모든 무덤이 자리를 정한 듯 보인다. 다른 무덤보다 크기도 커서 단연 돋보인다. 북쪽으로 에메랄드빛 바다를 끼고 들어선 김녕이 손바닥 보듯 훤하다.

최근 장례풍습이 바뀌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조상들의 무덤을 이장해서 가족을 한 자리에 모아 모시는 경우를 많이 본다. 드론으로 살펴보니 삿갓오름에도 이장하며 파헤쳐 놓은 무덤이 적지 않다.

망자의 산에서 삶을 생각하다

그간 제주의 숱한 오름을 올랐었지만 삿갓오름처럼 독특한 곳은 만난 적이 없다. 거의 모든 오름에서 많은 무덤을 만났으나 산발적이었고, 공동묘지였어도 잠깐 스쳐 지났을 뿐이다. 삿갓오름은 오르내리는 내내 무덤을 벗어날 수가 없다. 정상에서 쉴 때도 무덤을 두른 산담이 아니면 엉덩이 붙일 공간도 안 보인다.

땅속에 누운 망자끼리 서로 손이 닿을 만큼 가까이 붙은 무덤들이 살가워 보인다. 살아서도 서로 저리 다정했을까? 여러 관계로 얽히고설키며 아귀다툼하듯 산 이도 있을 테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게 남으로 살았던 이도 많을 게다. 주인으로 또는 평생을 종으로 산 이,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노인…. 아웅다웅하며 다양한 형태의 삶을 질기게 살았겠으나 지금은 모두 한 평씩 차지하고 누워 사이좋고 평온해 보인다.

삿갓오름을 내려서기 전에 자꾸만 내 삶의 방식을 되짚어보게 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서는 안 될, 차가운 심장으로 살지는 않았나 싶어서 엉덩이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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