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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문의 벽 _ 북한산 노적봉

 

‘아마도 어쩌면’ 마지막일

우리의 겨울 등반

글 · 최석문(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사진 · 주민욱 기자

 

2월이면 전국의 모든 폭포가 얼어붙어 한창 빙벽등반을 할 시즌이다. 하지만 올해는 얼음이 귀해 찾아보기가 힘들게 되었다. 필자도 등반을 시작하고 처음 겪는 일이라 겨울 등반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운 좋게도 깜짝 추위로 폭포가 결빙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첫 빙벽등반이자 마지막 빙벽등반을 했다. 그리고 미련 없이 빙벽장비를 모두를 창고로 집어넣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기후변화가 온 듯하다. 한국에서 더이상 빙벽등반을 하지 못할 날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고개를 가로젓는다.

2월이면 으레 빙벽이나 혼합등반을 하던 터라 3월호에 실릴 대상지를 찾으니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3월에 주로 찾는 북한산 노적봉으로 가기로 했다. 노적봉은 북한산 암장 중 접근성이 먼 곳에 속한다. 어디에서 접근하든 1시간 30분 이상 소요된다. 북한산에서 인수봉 다음으로 큰 규모의 암장이지만 접근성이 좋지 않아서인지 비교적 한적한 암장이다.

 

위험에 대한 경계와 책임은 스스로의 몫

2월 15일 토요일, 도선사 주차장에는 시즌에 비해 주차할 곳이 많이 비어 있었다. 아직은 암벽등반하기에는 이른 게 분명했다. 우이동에 노적봉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도선사에서 용암문 방향으로 가는 것이 가장 가깝다. 겨울의 끝을 알리듯 나뭇가지에는 새싹이 움트고 얼음은 생기를 잃어 녹고 있었다. 용암문까지 꽤 가파르지만 이후에는 완만해진다.

여름에는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만경대 리지의 피아노바위 구간 아래에 설치된 철제구조물인 안전망이 흉물스럽게 느껴지면서도 그간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고 등반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최근 이곳을 다녀온 문성욱(코오롱등산학교)씨도 장비를 착용하고도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고 한다.

주로 수직 방향으로 움직이는 암벽등반과 달리 암릉 등반은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여러 방향으로 추락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암벽등반에 비해 난이도는 쉬우나 추락 시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쉽더라도 추락을 대비해 확보물 설치 간격을 좁게 하는 것이 안전하다.

아직 몇몇 사람들이 위험에 대한 인식과 기술이 따라가지 못해 인공구조물을 철거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각자가 위험을 인식하고 등반 장비를 사용하는 것을 얕잡아 보는 그릇된 등반 문화를 고쳐가면 분명 언젠가는 철거할 거란 기대를 가져본다.

우리나라도 등산을 하는 자가 스스로 판단하고 출입에 대한 결정을 했으면 한다. 관리단체는 단지 상황에 대해서만 위험성을 안내하는 역할에 그쳤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파타고니아에서는 등산로 초입에 바람의 세기 등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는데 이를 보고 각자가 결정해서 움직인다. 어려움과 위험함은 사람마다 다르다. 예전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린다는 뉴스가 듣고 일부러 산을 찾고는 했는데 이제는 입산을 금지해버린다. 이젠 더이상 신설 산행은 할 수 없고 추억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산은 도심의 공원이 아니라 야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가 판단할 권리가 있으며 그에 대한 책임 또한 스스로가 지는 것이다.

 

조심해야 하지만 매력적인 뫼우리 2번길

용암문에서 300여 미터쯤 가다 좌측 목책을 넘어 가파른 사면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이른 계절이라 노적봉 동면을 잘 관찰할 수 있었고 몇몇 등반선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다른 곳은 여러 번 등반을 했지만 동남면을 루트는 못 해 봐 등반할 요량으로 접근했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영상의 기온이지만 체감온도가 낮았다. 서둘러 남면 쪽으로 향했다. 불과 100여 미터를 돌아왔을 뿐인데 마법처럼 바람이 불지 않았다. 지난해부터 많은 시간을 내어 취재에 동참했던 문성욱씨가 6개월 만에 복귀했다. 그는 등반가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어깨 부상으로 수술을 했고 빠른 회복으로 다시 동참하게 되었다.

노적봉 코바위 좌측에는 1937년 백령회에서 개척한 역사 깊은 루트 ‘T침니길’이 있다. 오른쪽 동남면으로는 반도산악회에 개척한 길들이 있다. 그리고 노적봉 전면 벽에는 2000년대에 와서 개척한 루트들이 많이 있으며 슬랩과 페이스가 주를 이룬다. 코바위 아래 테라스까지 접근하려면 슬랩 두 피치를 올라야 한다. 난도는 쉬우나 볼트 간 거리가 멀어 중간 캠을 설치하며 등반하는 것이 안전하다. 출발 지점에 짐을 내려놓고 등반해도 되나 코바위를 중심으로 여러 코스를 등반하고자 한다면 T침니 출발 지점 왼쪽에 좋은 테라스가 있다.

먼저 반도A길(기존길A)을 먼저 등반한 후에 뫼우리 2번을 등반하기로 했다. 반도길A는 크랙이 발달해 있는 루트로 난이도는 5.7~8 정도다. 확보물 설치가 잘 돼 크랙 등반 선등 연습하기에 좋다. 취재진은 노적봉 정상을 가지 않고 코바위 끝까지만 등반하기로 했다. 시간을 줄일 요량으로 70m를 등반해 코바위가 끝나는 지점에 로프를 고정시켰다. 문성욱씨가 촬영을 위해 등반을 시작한다. 수술 이후 몇 개월을 암벽등반을 하지 않았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는 듯 크랙을 따라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복귀전치고 너무 쉬운 코스를 선택했는지 아니면 그가 좋아하는 크랙 등반이어서 그런지 그저 편안해 보인다.

필자는 테라스에 혼자 남아 북한산의 이곳저곳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북한산을 수 백 번 왔을 터인데 아직 가보지 못한 능선과 계곡이 많다. 걷는 산행부터 시작한 필자는 암벽등반을 하기 이전에는 전국의 많은 산을 다니곤 했다. 수직 세상의 풍경에 완전히 매료되면서 등반을 위한 접근으로서만 산행을 했다. 언젠가는 바위에서 내려와 흙길을 걸을 것이다.

금세 등반을 마친 이명희(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문성욱씨가 코바위 왼쪽으로 하강을 한다. T침니 바로 왼쪽에 코너 형태의 멋진 등반선이 뫼우리 2번이다. 코너 형태의 바위는 비가 그친 후에도 습기를 오래 머금고 있다. 크랙 중간중간에 풀이 자라고 있고, 비가 자주 내리는 여름철보다는 건조한 시기에 등반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문성욱씨가 노적봉에서 가장 좋아한다는 뫼우리 2번 길을 이명희씨에게 양보했다. 어깨를 많이 써야 하는 2피치 스테밍 구간을 등반하다 혹여 재발한다면 지난 재활의 시간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필자도 일전에 한번 등반해 봤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루트다.

1피치는 25m 정도, 캠을 설치할 수 있을 정도로 크랙이 잘 발달해 있고, 30m 2피치 구간은 루트에서 가장 재미있는 곳이다. 스테밍 동작을 하면 코너를 쉽게 오를 수 있다. 5개의 볼트가 설치되어 있으며 다소 볼트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 있지만 왼발을 딛는 벽면에 홀드들이 잘 발달해 있으니 이것을 잘 찾으면 된다. 손이 들어가지 않는 얇은 실크랙을 잘 관찰하니 막힌 크랙은 아니었다.

북한산 일원의 암벽 특성은 너트 설치가 용이하지 않지만 막혀있는 부분을 청소한다면 소형 너트와 캠 설치가 가능해 보였다. 다음에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면 기존 확보물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소형 너트와 캠을 설치하고 두 피치를 한번에 연결해서 등반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크럭스 부분에 밥알만한 너트를 몇 개를 연속해서 끼우고 등반하는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작은 벽을 이어 큰 벽을 만들다

우리의 등반 환경은 한계가 많다. 만년설이 있는 고산과 수천 미터의 거벽은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고산과 거벽에 새로운 길을 만들었다. 이는 주어진 환경으로만 등반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작은 벽을 연결해서 더 큰 벽을 만들었고, 혹한의 겨울산을 알파인 지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큰 산과 벽을 꿈꾸지 않아도 되고 꿈꿀 필요도 없다. 각자의 방법으로 각자의 산을 오르면 된다. 다만 필자는 타인과 스스로 만들어 놓은 등반 틀에 갇히는 것보다 나만의 방법과 등반선을 만들어 하나씩 오르는 것이 더 재미있고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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