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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특집 | 북녘의 백두산을 가다②

 

백두산 해돋이를 바라보며

한반도기를 펼치다!

글 사진 · 제임스 안(네이쳐코리아 대표)

 

백두고원 트레킹

백두고원은 백두산 정상을 포함해서 그 주변의 산지와 고원을 통틀어 이르는 용어이다. 백두고원의 시작인 용암대지는 완만한 구릉이었고, 현무암으로 덮여 있었다. 천지를 등지고 있으니 내가 바라보는 쪽은 남쪽일 것이었다.

백두고원은 광활했다. 개마고원과는 구별되는 백두산이 거느린 백두산 자락이었다. 광활한 대지가 끝나는 곳에서 끝 간 데 없는 원시림이 시작하고 있었다. 그 너머로 백두산을 둘러싸고 있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는 눈으로 산봉우리들을 더듬었다. 산들은 날카롭지 않으면서 근엄했고, 불거지지 않아서 심오했다. 수많은 세월을 견뎌왔으면서 끝내 겸손하기만 한 우리의 강산이었다. 그 봉우리들을 따라가다 보면 백두대간(북한에서는 ‘백두대산줄기’라고 한다)으로 이어질 것인지를 생각했다.

지리산을 오르면서 나는 백두산을 생각했고, 한라산 백록담을 내려다보면서도 백두산을 생각했다. 심지어 뉴질랜드의 밀퍼드 트레킹 코스를 걸으면서도 나는 백두산을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나는 백두대간의 꼭지점에 서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한 사람씩 백두고원을 향해서 걸음을 내디뎠다. 9월 중순의 화창한 날이었다. 현무암으로 덮인 용암대지는 황갈색의 완만한 내리막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화산석과 바람, 텅 빈 하늘 그리고 청량한 공기뿐인, 메아리조차 없는 개활지였다.

길이 있을 리 없는 그곳을 우리는 걸었다.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들어 걸었고, 우리가 걷는 길이 곧 트레킹 코스가 될 것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즐기는 전문산악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걷기만을 위해서 무작정 걷는 사람들은 더욱 아니었다. 속세에 묻혀 사느라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서, 무엇에도 오염되지 않은 산과 들을 찾아다니며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그것이 트레킹의 참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무작정 걷지 않았다. 때 묻지 않은 강산의 깨끗한 공기로 숨 쉬면서 자연이 부여하는 아름다움으로 자신의 묵은 때를 벗긴다는 마음으로 걸었다. 울퉁불퉁한 구릉들과 능선들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저만큼 한 떨기 야생화가 홀로 피어 있었다. 현무암 아래에 뿌리를 내리고 돌 틈을 비집고 피어오른 야생화는 한 뼘 정도의 푸른 줄기에 노란 꽃잎을 매달고 있었다. 꽃이 필 자리가 아니었고, 보아주는 사람도 없는 곳이었다. 천지가 생긴 이래 오래전부터 돌무더기 사이에 피어난 수많은 야생화 중의 하나였다. 나는 야생화 앞에 멈춰 섰다. 자연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과연 신비로운 자연이었다.

 

백두고원에서 식사하고 야영

해가 기울면서 서쪽 능선에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백두산 주변은 한반도에서 가장 날씨가 변덕스러운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통나무를 날려버리는 바람이 불기도 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구름에 둘러싸여 비를 뿌린다고 안내원이 말했다. 황갈색 대지는 진회색으로 변해갔고, 공기가 차가워졌다.

우리는 야영지를 찾아서 걸음을 재촉했다. 구릉 사이에서 적당한 곳을 찾았다. 트레킹을 시작하면서 미리 야영과 함께 취사에 대한 사전허락을 받아두었다. 일행이 텐트를 치는 동안 안내원들은 가스 불에 솥을 걸고 밥을 지었고, 다른 솥으로는 라면을 끓였다. 그리고 반찬들을 꺼내놓았다. 깻잎, 두릅장아찌, 김치, 오이지, 감자와 짚 꾸러미에 담은 달걀들이었다.

서양인들을 위해서 따로 준비한 음식은 없었다. 미리 동의를 받긴 했지만 막상 음식을 대하면 서양인들이 먹을 수 있을까 조금 걱정스러웠다. 지금까지는 호텔과 식당에서 식사를 했고, 양식이든 한식이든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걱정이었는지를 깨닫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밥이 익는 냄새가 나자 그들이 먼저 솥 주변으로 슬금슬금 다가앉았고, 밥을 받아들자마자 맛있게 먹었다. 반찬도 골고루 먹었고 라면까지 해치웠다. 아무리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입에 맞지 않는 음식들을 군소리 없이 먹어주는 그들이 고마웠다.

배가 부르자 다들 기분이 좋아졌다. 추위를 막는다며 쓰고 독한 도토리 소주도 한 잔씩 마셨다. 평양에서 온 안내원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안내원들은 영어가 유창했고, 외국의 사정에도 밝았다.

은빛 모래를 뿌려 놓은 듯, 밤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했다. 손을 뻗으면 한 움큼 쥘 수 있을 것 같았다. 밤하늘에 별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텐트로 돌아갔다. 바닥에 매트를 깔고 침낭으로 들어갔다. 술기운이 퍼지자 금방 잠이 들었다. 밤에는 추울 것이라고 안내원들이 알려주었는데, 각오했던 것보다 추웠다.

 

백두산 해돋이는 우리의 해돋이

동이 트지는 않았지만 해돋이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둠이 엷어지자 별빛이 희미해져 갔다. 아직 어두운 대지 위에는 엷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고즈넉한 안개는 신비로운 기운을 머금은 듯했다.

뽀얀 새벽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날씨는 맑을 것 같았다. 검은 능선과 희뿌연 하늘 사이에 틈이 벌어지면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백두산의 태양은 순식간에 온 누리를 뒤덮으며 거침없이 솟아올랐다. 바다를 물들이면서 올라오는 태양과 달랐고, 도시의 건물들 위로 불쑥 튀어 오르는 태양과도 달랐다.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볼 때마다 나의 왜소함과 하찮음을 절감했다.

해돋이에 취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나왔는지 일행 모두가 돋는 해를 향해 서 있었다. 누군가는 카메라를 들이댔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아 잡았고, 누군가는 가슴으로 태양을 받아들였다.

해돋이는 어디에나 있다. 그렇지만 백두산의 해돋이는 나의 해돋이였고, 모두의 해돋이이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의 해돋이를 찾아서 이곳에 왔다. 그래서 모두의 해돋이를 기다리고 반겼던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한반도기를 펼쳐 들었다. 그리고 찬란한 햇빛 아래에 깊숙이 꽂았다.

햇볕이 말려준 대지 위에서 우리는 아침 식사를 했다.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밥과 라면이었고, 깻잎, 두릅장아찌, 김치가 반찬이었다. 갈 길은 멀고, 언제 먹을지 모를 밥이라고 여겼는지 다들 잘 먹었다. 먼저 식사를 마친 안내원들이 넓적한 대접에 커피를 탔다. 소주를 마시던 플라스틱 컵으로 커피를 마셨다. 사람들이 야전삽을 들고 어디론가 갔다.

일행이 텐트를 걷는 동안, 안내원들은 장비와 취사도구를 정리했다. 안내원들이 자동차 아래에 모닥불을 피워서 엔진을 녹였는데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다 함께 자동차를 밀자 시동이 걸렸다.

 

한반도기 들고 압록강(鴨綠江) 시원(始原)을 찾다

이슬에 젖은 만년초가 바짓가랑이를 적셨다. 걸음은 감회와 정취에 따라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했다. 어디서는 빠르게 걸었고, 어느 지역에서는 천천히 걸었다.

우리 일행은 큰 소리로 불러야 할 정도로 길게 늘어섰다. 배낭에는 작은 한반도기(북한에서는 ‘통일기’로 불린다)가 꽂혀 있었다. 하얀 바탕에 파란 한반도가 그려진 한반도기를 배낭에 꽂은 일행이 길게 한 줄로 서서 백두산이 만든 들판을 걸었다.

한낮의 부드러운 햇볕이 내리쬐었다. 몇 시간이나 걸었을까,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비단 치마를 펼쳐 놓은 것처럼 주름진 구릉과 메마른 대지뿐이었다. 눈앞이 푹 꺼지면서 강이라기에는 너무 좁은, 그렇다고 개울이라고 하기에는 미안한 물줄기가 나타났다. 신기하고 반가웠다. 다들 미끄러지듯 물가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열 길 남짓한 폭포가 있었다.

사기문폭포였다. 좁은 바위 절벽에서 세 번에 걸쳐 떨어지는 폭포 아래에 물웅덩이가 있었고, 그 옆에는 아담한 정자가 있었다. 땅속으로 스며들었던 천지의 물이 바위틈으로 솟구쳐 나오는 것이며, 압록강 시원의 한 갈래라고 안내원이 설명했다. 아, 압록강! 나는 압록강 또한 우리의 강산에서 시작하는 우리의 강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폭포 아래에서 야전 식량으로 점심을 먹었다. 플라스틱 용기에 물을 부으면 더워지는 쇠고기볶음밥이었다.

 

밥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소연지봉 대연지봉

가파른 돌길을 40여 분 정도 기어올랐다. 허리만큼 자란 갈대와 키 작은 나무들 사이를 걸었다. 길이 고르지 않아서 사람들의 간격을 좁혔다. 언덕을 넘어서자 고리 모양의 능선이 나타났다.

밥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두 개의 봉우리는 소연지봉(小脂峯)과 대연지봉(大脂峯)이었다. 연지를 바른 듯 붉은빛을 띤다고 해서 연지봉이라는 두 봉우리 사이는 십여 리라고 했다. 대연지봉으로 올라갔다. 세찬 바람 때문일까, 정상 주변에는 마른 잡초들뿐이었다.

눈 아래 백두고원의 울창한 침엽수림이 펼쳐져 있었다. 모두가 숲이었고, 시작도 없었고 끝도 없었다. 그야말로 백두산이 만든 밀림이었다. 저만큼 간백산(間白山)이 건너다보였다. 백두산과 소백산 사이의 산이라고, 안내원이 말했다.

빗물골을 따라 허리 높이의 잡목지대를 지났다. 야생동물들이나 다녔을 좁다란 길이 숲속으로 이어졌다. 새들의 움직임이 부산한 것이 해거름인가 싶었다. 수풀 사이로 빨간 지붕들이 내려다보였다. 사람들의 움직임도 보였다. 첫 번째 밀영이었다.

나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거친 길을 걸었다. 따뜻한 햇볕을 맞으면서 돌 사이에 핀 야생화들을 만났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자연의 신비로움에 흠뻑 젖었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로지 자연과 자신만을 생각했다. 왜 그리 다투었는지를 생각했고, 왜 그리 옹졸했던가를 생각했다.

백두산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정말 몰랐다. 백두산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았고, 유혹하지 않았으며, 칭찬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백두산은 훼손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과연 백두산에는 특유의 비경(秘境)이 있었고, 그것은 한반도의 자랑이다. 특유한 것은 특유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두산이어서가 아니었고, 내가 한국 사람이어서가 아니었다. 세계 어느 산에서도 볼 수 없는 고유한 정취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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