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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페이스와 함께하는 아웃도어 파라다이스 _ 설악산 권금성

 

저 높은 바위 사이로

짙은 가을이 반기는 구나


글 · 문예진 기자  사진 · 주민욱 기자  협찬 · 레드페이스

 

볼에 스치는 바람이 차다. 여름내 즐겨 입었던 짧은 셔츠를 옷장 깊숙이 넣고, 한동안 입지 않았던 재킷을 꺼내 먼지를 턴다.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이달에는 이른 가을을 느끼고자 대표적인 단풍명소 강원도 속초 설악산으로 떠난다.

지난달에 이어 이태현씨가 취재에 동행했다. 이태현씨는 얼마 전 고창 선운산 속살바위에서 난이도 5.13a를 끝내며 일명 ‘써틴 클라이머’의 반열에 들어섰다. 이제는 스포츠클라이밍 실력을 기반으로 전통등반에 입문해 ‘토탈 클라이머’가 되고 싶다는 미래가 기대되는 청년 등반가이다. 클라이밍을 시작한 지 2년도 채 안 돼 이룬 빠른 성장에 그는 타고난 신체조건과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을 비결로 꼽았다.

“언제나 마음속으로 ‘해피클라이밍!’을 외쳐요. 즐겁게 임하다 보면 성장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모험을 찾아 바람을 가르고

“그냥 여기서부터 걸어갈까요?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안 하네요.”

“몇 년 전 이맘때 왔을 때도 주차장 들어가는 데만 2시간이 걸렸었는데, 여전하네요.”

여유로운 촬영을 위해 취재 일자를 월요일로 잡았다. 한여름 휴가철도 지났겠다, 아직 단풍이 무르익지도 않았으니 간만에 한적한 설악을 만나리라 기대했건만… 아뿔싸 작전실패다. 설악동야영장을 지나자마자 끝이 보이지 않는 자동차 행렬이 이어진다. 엉금엉금 기어가는 형상을 보니 도로 위 주차장이 따로 없다. 청봉교를 지나기 무섭게 핸들을 우측으로 틀어 차를 세운다. 남은 2km 남짓은 도보로 이동하기로 한다. 설악산로를 따로 올라가는 길, 이태현씨가 늘어진 차를 보며 지난 추억을 떠올린다.

“마지막으로 설악산을 왔던 게 작년 봄이었는데, 혼자 스쿠터를 끌고 왔었어요. 최대 5리터 밖에 주유가 안 돼서 주유소만 네다섯 번 들렀었죠. 여섯 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그때 얼굴이 드러나는 헬멧을 썼었는데, 나중에 얼굴이 새카맣게 변한 걸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어떻게 스쿠터로 설악산에 올 생각을 하셨어요?”

“어디든 훌쩍 모험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하필 그날이 산불감시 기간 입산통제에 딱 걸렸었지 뭐예요. 무작정 왔다가 큰코다친 거죠! 결국 설악동야영장에서 혼자 쓸쓸히 야영만 하고 다시 여섯 시간을 달려 돌아갔어요.”

최고 속도 85km의 스쿠터를 타고 서울에서 속초까지 내달렸다는 그의 독특한 이력을 듣다보니 어느새 소공원 매표소에 이른다. 청봉교에서 매표소까지는 도보로 30여 분 소요된다.

전국의 국립공원 입장료가 사라진 지 10여 년이 훌쩍 넘었으나, 설악산 국립공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인당 3,5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공원 내 위치한 고찰 신흥사(新興寺)에서 ‘문화재관람료’라는 명분으로 걷는 것이다. 사찰을 찾지 않고 오로지 등산이나 등반 목적으로 설악산을 찾는다 해도 예외는 없다.

 

권 장군과 김 장군이 벽을 쌓은 곳

설악산은 국내에서 가장 빨리 단풍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수려하고 웅장한 초록의 산하가 노을 지듯 오색 빛에 물들면 사계절 중 가장 화려한 설악이 펼쳐진다. 입구에 들어서니 멀리 노랗게 물든 정상부가 보인다. 그에 비해 아직 산 아래는 대체로 초록빛이다. 그래서인지 홀로 무르익은 단풍나무 앞으로 사진 촬영을 위한 방문객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정상부 단풍조망을 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權金城)에 오르기로 한다. 권금성은 신흥사 남쪽 바위산 해발 약 800m에 있는 산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권금성에 대해 ‘오래전 권 씨와 김 씨 성을 가진 두 장군이 이곳에서 난리를 피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기록돼 있다. 현재는 성벽이 거의 허물어지고 터만 남아 있다.

권금성에서는 국내산 중에서도 웅장하고 수려하기로 꼽히는 설악산의 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케이블카를 이용해 단 5분이면 해발 약 800m 고지에 도착하므로, 설악산의 여러 자연 전망대 중 접근성이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다. 굳이 힘들여 오르지 않기 때문에 따로 특별한 장비가 필요하지 않아 사시사철 찾는 이들이 많은 설악산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와~ 평일에 출근하지 않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니….”

“눈치 게임 실패네요.”

매표소에 도착해 전광판을 확인한다. 정원 50명에 5분 마다 출발하는 케이블카의 대부분 시간대가 매진이다. 겨우 승차권을 끊고 북새통을 이루는 매표소를 빠져나와 2층의 탑승장으로 이동한다. 안내원의 지시를 따라 케이블카에 탑승하면 곧바로 안내방송과 함께 케이블카가 출발한다. 케이블카는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어 멀어지는 설악동과 가까워지는 주위 산세를 감상하기에 좋다. 케이블카를 처음 타본다는 이태현씨가 창밖으로 빠르게 변하는 고도와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바깥 풍경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게 신기하고 재밌어요. 암릉 주위의 운해도 멋지고요. 올해는 설악산에 올 일이 통 없었는데, 단풍도 보고 케이블카도 타보네요.”

“감동하긴 일러요. 위에 도착하면 더 멋진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케이블카에서 내려 우측의 나무계단을 따라 암릉 지대로 향한다. 갈림길 없는 외길을 따라 5분 정도 이동하니 권금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바위지대가 나온다. 주위로 웅장한 기암괴석들이 펼쳐지고, 그 위로 천연색으로 물든 단풍이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멀리 시선을 옮기니 설악의 힘 있는 산세가 한눈에 담긴다.

“설악산은 과연 골산이네요. 바위산과 침봉들이 만드는 풍경이 장관이에요. 이 정도 고지에 성벽을 쌓았다는 것도 대단하고요. 한때 웅장한 요새였던 만큼 확실히 묵직한 힘도 느껴지는 것 같아요.”

금세 안개가 자욱해지더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부랴부랴 감상을 마치고 케이블카로 돌아간다. 권금성에서 지상의 매표소로 돌아가는 케이블카는 올라가는 편과 달리 정해진 시간이 없다. 천천히 줄지어 선착순으로 케이블카에 탑승한다.

 

가을 향기 가득한 신흥사 돌담길

막상 땅으로 다시 돌아오니 날씨가 맑다. 권금성을 올려다보니 정상부만 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탑승장을 빠져나와 신흥사로 향한다. 신흥사는 삼국시대 진덕여왕 6년(65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당시에는 향성사라 불렀으나, 이후 여러 차례 불에 탄 것을 조선 16대 인조 22년(1644년)에 영서, 연옥, 혜원 세 스님이 지금의 자리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신의 계시를 받고 세웠다’는 의미의 신흥사라 지었다고 전해진다. 신흥사는 케이블카 매표소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다.

신흥사에 이르니 신흥사 주위를 둘러싼 돌담이 눈에 들어온다. 돌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하게 뒤덮인 담쟁이덩굴이 그 어느 단풍보다 붉게 무르익어 사찰에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한다. 돌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방문객들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덩굴 사이 보랏빛 열매들이 가을의 색을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담쟁이덩굴을 바라보며 조용히 돌담길을 걷던 이태현씨가 가장 붉은 잎사귀에 손을 내민다.

“담쟁이덩굴에 단풍이 이렇게나 예쁘게 드는지 몰랐네요. 이 넝쿨도 가을이 지나면 곧 시들어 버리겠죠?”

“아쉬워말아요. 땅에 떨어진 열매에서 새로운 넝쿨이 올라올 거예요. 어김없이 가을이 오고, 붉은 넝쿨이 우거지겠죠. 내년에는 ‘설악산 스쿠터 원정’을 가을에 진행해보시는 게 어때요?”

“으악. 그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해요. 그래도 스쿠터를 타고 오면, 주차장 교통체증은 피할 수 있겠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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