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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클라이밍

최석문의 벽 _ 설악산 장군봉

 

이 가을 설악에서

히말라야의 방랑자가 되리!

글 · 최석문(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  사진 · 주민욱 기자

 

필자는 10여 년 전부터 등반 루트 개척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암벽등반 대상지가 적은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곳을 찾고 개척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자 문성욱, 이명희(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씨와 함께 기존 등반지에서 오랜 시간 등반하지 않은 루트 정리와 노후 된 볼트를 교체하는 개보수 작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구공길 우측의 아름다운 크랙

지난 8월 장군봉 구공길을 리볼팅 할 때였다. 첫 피치 좌측 아래로 갈라진 바위 선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다. 중간 중간 풀이 자라고 있는 거로 보아 개척되지 않았거나 오랜 시간 등반이 되지 않은 것이라 예상했다. 구공길 2피치 우측에 등반대회 때 사용했던 것인지 아니면 크랙에서 올라온 등반선을 따라 설치된 것인지 알 수 없는 볼트가 있었다. 상단부와 하단부가 연결되어있는지는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본지 9월호에 실린 장군봉 구공길에 대한 개념도 중 틀린 부분이 있어 직접 찍은 사진에 개념도를 다시 그리게 되었다. 비선대 다리에서 200mm 렌즈로 촬영한 사진을 사용했는데, 사진을 확대하면 확보지점이 보일 정도였다. 사진 위로 구공길의 볼트 위치와 등반선을 그려 넣는 중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구공길 우측으로 2피치 이상의 크랙이 있었다. 출발 부분만 잘 연결된다면 훌륭한 루트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장군봉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사진에서 발견한 크랙 등반선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등반선이 워낙 훌륭해 이전에 선배들이 등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나무가 가리고 있어 등반선이 일부 보이지 않지만, 예전 비선대 산장에서는 등반선이 명확하게 보였을 것이었다. 장군봉에 직접 가서 하단 부분을 확인하기로 했다.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기다릴 수가 없었다. 내심 누구도 손대지 않은 루트이길 바랬다.

9월 28~29일 주말을 이용해 장군봉을 찾았다. 설악은 어느덧 아침저녁 기온이 차가워졌고 고속도로에서 바라보는 대청봉 일원의 가을색은 조금씩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단풍철이 시작되면 암벽의 어려움보다 더 어려운 것은 주차장까지 가는 것이다. 아직 본격적인 단풍 기간이 아니지만 다소 체증이 있었다. 다행히 주차가 가능해 수월하게 1차 고빗사위를 통과했다. 설악산에 오면 거의 거르지 않고 참배를 하는 산악인의 추모비도 급한 마음에 잊어버렸다.

비선대를 향하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오늘 등반은 어떨까? 어떤 일들이 기다릴까? 그런 설렘을 가지고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면 적벽과 장군봉을 맞이하게 된다. 얼마 전부터 암벽 등반지 입구에 있던 출입금지 표지판도 사라졌다. 더이상 범법자처럼 보이지 않아서 한결 마음이 편했다. 이제는 다른 나라의 국립공원처럼 등반가들을 위한 안내 표지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슨 피톤 하나… 초등 개척의 흔적

이미 장군봉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몇 시부터 시작했는지 벌써 정상 아래에 있는 팀들도 있었다. 얼마 후 하강하는 팀이 있어 물어보니 새벽에 헤드랜턴을 켜고 등반했다고 한다. 연중 등반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 된 것이다. 오늘은 급할 게 없는 날이다. 계획했던 등반선까지만 등반하고, 하강하면서 루트를 관찰할 것이기 때문이다.

루트 개척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바닥에서 등반하며 개척하는 방법과 내려오면서 개척하는 방법이 있다. 등반적인 면에서 전자가 좋은 방식임이 분명하다. 필자도 등반하며 개척하는 방식을 선호하지만, 루트 특성에 따라 후자를 선택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루트에 볼트를 설치해야 한다면 위에서 내려오는 방식을 선택한다. 안전한 부분도 있지만 잘못된 볼트 설치를 줄이고자 함이다. 루트 검증을 많이 해볼수록 이러한 실수는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오늘처럼 등반자가 많아 안전에 더욱 주의를 가해야 할 때는 혹시 모를 낙석에 대비해 내려오는 방식을 선택하는 게 좋다.

기존길 3피치까지 오른 후 소나무에서 좌측으로 하강을 시작했다. 15m쯤 내려가니 링 볼트 확보지점이 있었다. 2피치가 될 사선 크랙에 캠을 설치하며 옆으로 이동해 나갔다. 군데군데 녹슨 피톤 보여 손으로 당기니 쉽게 뽑혀 나왔다. 누군가 등반했던 흔적이었다. 낙석이 될 만한 돌이 많은 걸로 보아 초등 등반 이후 거의 등반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선배들의 등반 흔적이 반갑기도 하면서 아쉽기도 했다. 공원 내에서 새로운 루트 개척을 금지하고 있는 지금, 선배들의 녹슨 피톤 하나는 범법자가 되는 것을 막아주는 방패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루트에 대한 기대감을 사라지게 했다.

루트 개수는 사실 별것 없다. 확보물 설치가 가능하도록 크랙 선에서 흙을 파내고 낙석을 제거하는 등 청소를 열심히 하는 게 9할 이상이다. 배낭 가득 낙석이 될 만한 돌을 가득 넣어 하강하니 허리가 아팠다. 이명희씨는 1피치 청소와 볼트 마킹을 했다.

첫 피치가 길어 두 피치로 나눌까도 생각했지만, 등반 흐름에 맞지 않는다는 공통된 의견이 있어 50m로 두기로 했다. 긴 등반 거리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 등반문화는 옛날 개척 당시 로프 등 부족한 장비에 구애되면서 부터 시작됐다. 이러한 영향으로 국내에는 피치 당 40m가 넘는 루트가 많지 않다. 대부분 루트 길이가 짧아 장비가 적게 필요하고, 크랙에 볼트가 많이 설치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미국 요세미티, 캐나다 스쿼미시 등 외국의 대표적인 전통등반 대상지에서 2세트의 캠과 1세트의 너트가 최소 등반 장비로 필요한 것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더욱 느껴진다.

 

히말랴야 방랑자 등반 정보

1피치는 중간 부분까지 등반 흔적이 있었으나 이후는 찾을 수 없었다. 첫 피치 확보지점에 나무에 묶여 있는 슬링으로 보아 금강굴 방향으로 쿨르와르 등반을 진행한 후 상부로 연결한 듯했다. 첫 피치는 확보물 설치가 어렵거나 불안정한 바위가 있는 지점에 볼트 3개를 설치했다.  

2피치는 가파른 각도의 비스듬한 핸드재밍 크랙으로 전 피치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구간이다. 등반 길이는 35m로, 출발 지점을 지나 첫 번째 확보물을 설치하기 직전 위치에 볼트를 설치했다. 경사가 세지만 발 홀드를 잘 찾는다면 재미있는 구간이 될 것이었다. 등반자와 후등자의 안전을 위해 확보물 설치 간격을 좁게 하면서 등반하는 게 좋다.

3피치는 쉬어가는 피치이다. 난이도는 어렵지 않지만 로프 유통에 주의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등반보다 로프를 당기는 게 더 힘들 수 있다. 3피치 넓은 크랙 지점에서 오른쪽 바위에 설치돼 있던 링 볼트를 제거하고, 새롭게 볼트 한 개를 설치했다. 이후 기존길과 만나는 테라스 아래에 3피치 확보지점을 만들었다. 옛 등반 흔적은 3피치까지 있었다. 이후로는 기존길로 합류된 듯하다.

4피치는 바위 턱을 넘는 지점에 볼트 하나를 설치했다. 등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1차 개수 때 4피치 확보지점을 따로 독립적으로 만들진 않았다. 나의 소중한 사랑 10월 1일생 5피치나 구공길 2피치 종료지점으로 함께 쓰면 조금이라도 볼트 설치를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10월 1일생 루트와 종료지점을 같게 하기에는 등반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등반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곳으로 간다면 분명 혼잡해질 가능성이 있었다. 구공길로 가는 것 또한 등반하는 팀에게 피해가 될 것이다. 피치 종료지점 고민을 하다 결정하지 못하고, 2차 개수 때 별도의 확보지점을 만들었다. 크랙이 끝나는 확보점은 구공길과 10월 1일생 어느 곳으로도 등반이 가능한 곳이다.

10월 6일, 다시 장군봉을 찾았다. 루트 길이와 난이도, 사용되는 확보 장비를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이명희씨가 자유등반으로 새로 정비된 루트 초등을 했다. 필자는 루트를 개방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청소를 했다. 3피치를 등반을 마친 이명희씨가 개수한 루트 이름을 故 김창호 형의 별명을 따서 ‘히말라야 방랑자’로 하면 어떻겠냐 물었다. 필자도 루트를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창호 형을 떠올렸기에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이명희씨에게는 얘기하지 않은 것이 있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선배들의 등반 흔적을 발견했기에 이 길에 다른 이름을 붙일 수가 없었다. 분명히 이 길은 선배들이 먼저 올랐기 때문이다. 이후 장군봉에 대한 등반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관련 기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히말라야 방랑자’는 임시로 붙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추후에 자료가 발견된다면 원래의 이름으로 변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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