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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을 기다린 산

 

르포2

영동 백화산

 

육산인가 골산인가?

물 많고 바위 좋은 명산이로다!

 

우리나라엔 백화산(白華山)이 여럿 있다. ‘티 없이 맑고 밝은 산’이라는 의미가 좋아 으레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품은 산을 백화라 부른다. 그중 충북 영동과 경북 상주의 경계에 자리한 백화산은 깎아지른 칼바위 암릉과 석천(石川)이 휘감겨 흐르는 고찰 반야사(般若寺)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주위로 백두대간 민주지산과 양산팔경 천태산이 있어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으나, 육산과 골산의 아름다움을 고루 갖춘 충북의 숨은 명산이다.

글 · 문예진 기자  사진 · 정종원 기자

 

백화산은 수원(水源)이 풍부하고 바위가 많아 다양한 산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산이다. 주행봉부터 한성봉까지 늘어진 암릉은 그림 같이 빼어난 자연경관을 연출하며 백화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아찔한 산행의 재미를 준다. 굽이굽이 여유롭게 흐르는 석천과 깊은 역사를 품은 반야사는 거친 암릉과 대비돼 백화산에 아름다움과 깊이를 더한다.

최고봉인 한성봉(漢成峰, 933m)에서 반야사로 이어지는 남쪽 능선을 중심으로 동서(東西)가 경북과 충북으로 나뉜다. 한성봉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3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주행봉(舟行峰, 874m)은 추풍령에서 황간으로 내려가다 보이는 봉우리의 모습이 마치 커다란 배가 하늘을 떠가는 모양 같다 하여 주행(舟行)이라 이름 붙여졌다. 한성봉과 주행봉은 백화산을 대표하는 봉우리로, 두 봉우리를 잇는 능선이 백화산에서 가장 유명하다.

 

유난히 멀게 느껴지는 충북의 산

“백화산은 수도권 출발을 기준으로 했을 때, 충북의 산 중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거의 경상도라고 할 수 있지….”  

서울을 출발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3시간여를 달려 백화산이 있는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 이른다. 백화산은 지리적으로 충북과 경북에 걸쳐 있어 유난히 멀게 느껴지는 충북의 산이다. 등산로는 백화산 동쪽으로 흐르는 석천을 따라 다양하게 있는데, 대표적으로 경북 상주시 모서면과 충북 영동 황간 방면에서 오르는 길이 있다.  

오전 11시 30분, 백화산 산행로 초입의 반야교주차장에 들어선다. 황간IC를 지나 4번 국도에서 김천방면으로 우회전하면 지하차도를 만나는데, 차도를 지나 150m 앞 마산삼거리에서 좌회전 후 약 1km를 달려 월류교를 건넌다. 월류교를 지나 다시 좌회전하면 원촌교가 있는데, 원촌교 이후 우측으로 직진하면 반야교주차장이 나온다. 여기서 반야교는 200여 미터 떨어져 있다.

취재진은 반야교를 들머리로 주행봉과 한성봉을 거쳐 다시 반야교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산행을 선택했다. 반야교를 건너면 등산로안내도와 함께 산행을 바로 시작할 수 있다. 반야교에서 주행봉을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삼림욕장과 855m봉을 거쳐 오르는 방법과 들머리에서 바로 주행봉으로 오르는 방법이 있다. 백화산 산행의 백미인 정상 능선을 더욱 여유롭게 보고자 정상까지 바로 치고 오르기로 한다.

안내도 좌측으로 잘 정리된 나무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오르며 시작되는 들머리는 이후 백화산둘레길 삼거리를 지나 주행봉까지 완만한 경사의 숲길이다. 능선에 오르기 직전, 잠시 가파른 암릉지대를 만난다. 밧줄을 잡고 오르면 이내 머리 위로 조망이 트인다. 점차 주위 산세가 선명히 들어오며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지더니 오후 1시 10분경 주행봉에 다다른다. 쉬엄쉬엄 여유롭게 오르면 들머리부터 주행봉까지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주행봉은 앙증맞은 정상석과 텐트 서너 동을 칠 수 있는 정도의 평평한 터가 특징이다. 정상석 뒤로 보이는 주변 산세와 석천의 조망이 장쾌하고 아름답기 그지없어 날이 좋을 때는 이만한 박지도 없을 것이다. 본래 주행봉 백패킹을 계획했던 취재진도 기대보다 빼어난 풍경에 아쉬운 소리를 내뱉는다.

“비 소식만 없었으면 원래 여기서 야영할 계획이었는데 말이야. 아쉽다 아쉬워!”

 

주행봉에서 한성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지대

휴식을 마치고 주행봉을 떠나 한성봉으로 향한다. 취재진처럼 산행코스를 주행봉~한성봉 순으로 계획했다면 방심하는 틈을 타 뒤통수를 맞는다. 반야교를 떠나 부드럽고 무난한 난이도로 이어지던 등산로는 주행봉 정상에서 시원하고 장쾌한 풍경으로 육산의 아름다움을 주더니 이후 거친 바위 이빨을 들어낸다.

“여기가 등산로라고요? 그냥 암릉이 아니고요?”

“위험하니까 조심히 따라와!”

주능선에 오르니 이내 웅장한 바위가 나타난다. 깎아지른 칼바위 자태에 순간 넋을 놓고 바라본다. 짧은 감상을 끝내고 걸음을 옮기는 데, 앞서가는 정 기자가 바위를 따라 운행을 이어간다. 조금 전 넋을 놓고 바라본 아찔한 암릉이 백화산 주능선인 것이다. 이후로 한성봉까지 산줄기를 따라 약 3km의 암릉지대가 이어진다. 안전을 위해 잡고 오를 수 있는 밧줄이 군데군데 설치돼 있으나 로프와 우회로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므로 스틱, 리지화 등 기본적인 장비를 잘 갖춰야 한다.

주행봉~한성봉 능선은 일반적인 산줄기의 흐름과 달리 북동에서 남서로 뻗쳐있다. 이 때문에 ‘머리가 거꾸로 되어있다’는 의미로 ‘두역산(頭逆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대체로 700m 이상의 산지가 연속되어 나타나는 험준한 지세다. 어느 길을 따라 백화산을 오르든 진정한 백미는 바로 이 구간이다. 백화산을 두고 ‘보기보다 악산’이라 하는 것도 주능선을 두고 하는 소리다.

주능선은 머리 위로 하늘이 트인 암릉지대이므로 앞뒤로 고개를 돌리면 지나온 주행봉과 나아갈 한성봉이 선명히 눈에 담긴다. 그럼에도 바위를 오르내리며 이동하다 보니 좀처럼 눈앞의 한성봉이 가까워지지 않는다. 때때로 암릉이 끝나고 잠시 산길을 걷지만 이내 다시 암릉이 나타나면서 계속해서 바위가 이어진다. 내리 안전에 주의를 가하며 천천히 운행을 이어가기 때문에 운행속도가 시간당 1km 정도다.

암릉 구간이 마냥 거친 것은 아니다. 주위의 시원한 조망이 산행에 재미를 더하는데, 백화산을 둘러싼 그림 같은 산세가 사방으로 펼쳐지고 좌측으로는 가을빛을 머금은 금빛 논과 밭이 내리 함께한다. ‘아홉 번 꺾이며 자란다’는 의미의 가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 구절초는 바위 곳곳 활짝 만개한 자태를 자랑하며 웅장한 암릉 지대와 대비된 아기자기한 맛을 더한다.

주행봉을 떠나 1시간 30분 정도 진행하니 어느새 755m봉을 지나 부들재에 닿는다. 부들재에서는 반야교로 빠질 수 있는 탈출로가 있다. 정상 능선을 벗어나 동쪽으로 이어지는 하산길을 1시간 30여분 따르면 반야교에 다다른다. 탈출하지 않고 계속 북쪽 능선 산행을 진행하면 한성봉에 도착한다. 부들재부터 한성봉까지도 1시간 30여 분 소요된다.

오후 4시 10분경, 주행봉을 떠난 지 약 3시간 만에 백화산 최고봉 한성봉에 이른다. 한성봉은 포성봉(捕城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포성봉은 일제강점기 때 한민족의 국운을 꺾을 목적으로 ‘금돌성을 포획한다’는 뜻에서 일본이 지은 것이므로 원래 이름인 한성봉을 사용하는 게 맞다. 한성봉은 넓은 나무데크 위로 2m 정도의 큰 정상석이 있고 데크 좌측에 50cm 정도의 작은 옛정상석이 있다. 또한, 사방이 나무로 가려져있어 주행봉과 달리 정상의 조망은 없다. 

 

반야사로 떨어지는 계곡산행

오후 4시 20분경, 어느새 성큼 다가온 가을에 조금만 쉬어도 금세 한기가 돈다. 해도 짧아져, 나무 사이로 어둑어둑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부지런히 반야교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한성봉에서 황간 방면 남쪽능선을 타고 하산하면 반야교로 원점회귀를 할 수 있다. 이 능선이 충청도와 경상도의 경계다. 만약 한성봉에서 황간과 반대 방향으로 내려서면 상주시 모서면 정산리로 갈 수 있다. 한성봉에서 금돌산성(今突山城)을 따라 북쪽으로 15분쯤 가다 동쪽으로 방향을 틀면 금돌산성과 보문사터, 용추골을 지나 보현사쪽으로 하산하게 된다. 한성봉에서 바로 동쪽으로 금돌산성을 따라 내려서는 길 역시 보현사로 이어진다.

정상부를 떠나 황간 방면으로 30분 정도 가파른 하산길이 이어진다. 수분을 머금은 미끄러운 이끼바위와 흙길이 하산에 어려움을 더한다. 스틱을 집으며 한 발 한 발 운행을 이어가다 보면 점차 경사가 완만해지면서 걷기 좋은 평온한 길이 나타난다. 길이 잘 정돈돼 있거나 표지판이 있진 않지만 길을 잃지 않을 정도로 쉬운 산행길이다. 평온해진 등산로는 이내 물줄기와 만나게 되는데, 이후로는 좌측으로 계곡을 끼고 말머리 반야교와 석천까지 이어진다. 처음 계곡을 접한 이후로 반야교까지 대여섯 번 계곡을 건넌다. 수량이 적진 않으나 쉽게 건널 수 있다. 하지만 계곡의 깊이와 너비가 작지 않으므로, 비 내린 직후나 태풍 또는 호우가 심할 경우, 수량이 급격히 늘어나 큰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실제로 반야교 주위의 알림판에도 우중산행을 지양하는 글귀가 크게 적혀있다. 전날 내린 비로 발목 높이까지 물이 차올라있어 취재진도 신발을 벗고 길을 건넌다.

“백화산도 왔는데, 반야사를 빼먹으면 섭섭하지.”  

오후 6시경, 한성봉을 떠난 지 1시간 40여 분만에 반야사주차장에 다다른다. 하산의 기쁨도 잠시, 하늘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반야사를 둘러보기로 한다. 반야사는 백화산 자락 석천변에 자리한 사찰로, 반야교부터 약 500여 미터 떨어져 있다. 말머리에서 반야교를 건너 좌측 도로를 따라 도보 5~10분 정도 쭉 직진하면 된다.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된 고찰 반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로 보물 제1371호 삼층석탑과 반야사 부도, 대웅전과 템플스테이 등 다양한 사찰문화를 간직한 곳이다. 사찰 주위로 백화산에서 흘러내리는 큰 물줄기가 산허리를 감아 돌며 연꽃 모양의 지형을 이루고, 석천 건너편으로는 백화산 기슭서 흘러내린 돌무더기가 호랑이 형상으로 뚜렷하게 보여 호랑이가 있는 사찰이라 불리기도 한다. 천천히 반야교를 거닐며 산행을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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